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6
66화
“형님! 지금 당장 내려가서 건물 1층에 뭐가 있는지 좀 확인해 주십시오.”
―알았어. 끊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인공이 허겁지겁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리고 곧.
―아, 이게… 무슨 건물 1층에 아무것도 없냐……? 그냥 텅 빈 로비밖에 안 보여.
“로비에 아무것도 없다니요, 그런 빌딩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축구장만 한 게 휑해.
“네에? 축구장만 한 로비에 아무것도 없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든 안 되든, 여기 상황이 좀 그래. 아무래도 내가 장소를 잘못 선택한 것 같은데…….
“그럼 형님! 지금이라도 장소 옮겨서 다시 문자 보내 주세요.”
―아이, 그건 안 돼.
“왜요?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이미 여기 CCTV 위치 싹 다 파악했고, 거기에 맞춰서 작전을 짰기 때문에 장소를 바꾼다는 건 반은 실패라고 봐야 할 거야.
시작도 안 해 보고 절반의 실패라니, 그제야 용하는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제가 어떻게 해 볼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떻게 하려고?
“글쎄요, 전화 끊고 생각해 봐야죠. 빌딩은 그렇다 치고 지금 장소를 어디로 잡으셨어요?”
―아, 여기 2층에 오면 별별개 다 있는데, 카메라에 가장 잘 잡히는 장소가 레스토랑이어서 거기로 잡았어. 그러니까 빌딩 입구 들어와서 로비 가운데 있는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면 오른쪽 복도에 있는 거야. 아마 한눈에 들어올 거야.
전화를 끊은 용하는 편집장과 보현옥이 있는 곳으로 바삐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한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 앞에 도착한 용하는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뭐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난색인 용하를 대하는 편집장은 편치 않은 목소리로 선뜻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혹시 근처에 1층 로비가 축구장만 한 빌딩이 있습니까?”
편집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현옥을 바라보았다.
편집장과 눈이 마주친 보현옥의 표정 또한 편집장과 다를 바 없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는 용하는 생각했다.
‘뭐야, 둘 다 모르는 거야? 그렇다면 혹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인공사가 있는 산꼭대기 아니면, 포천 인근의 변두리밖에 모르는 인공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출판사 근처를 벗어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죄송합니다.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용하가 예를 갖춰 말하자, 편집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용하가 휴대전화를 누르자, 옆에 있던 보현옥도 서둘러 휴대전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검술 도감 저자님!”
용하는 편집장 들으라고 일부러 더 크게 검술 도감 저자님이란 말을 강조했다. 한편 보현옥의 전화 또한 연결된 모양이었다.
“어, 신입! 나 보현옥 팀장인데, 혹시 사무실 근처에 1층에 아무것도 없고 로비가 축구장만 한 빌딩 본 적 있어?”
편집장의 귀에 두 사람의 통화내용이 엇갈려 들렸다. 용하는 적당히 트릭을 보이며 인공이 있을 만한 곳의 위치 파악에 주력했고, 보현옥은 휴대전화 저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채 어림짐작으로 로비가 축구장만 한 빌딩의 위치를 추적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통화가 끝났을 때였다.
“보현옥 팀장, 어디인지 알 것 같아?”
“아뇨, 아직 정확한 건 아니고 일단 가 봐야 알 것 같아요.”
보현옥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편집장의 시선이 용하에게 흘렀는데, 얼핏 난처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런 편집장을 보는 용하의 안색 또한 마찬가지였다.
편집장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물었다. 세 사람 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그런 어색한 시간이 눈 두어 차례 깜박일 만큼 흘렀다.
“편집장님, 혹시 출판사 근처에서 가장 큰 도로가 어떤 겁니까?”
“가장 큰 도로라면… 아, 저쪽 반대편에 얼마 전에 새로 뚫린 16차선 도로 말씀하시나 보다. 보현옥 팀장, 그 도로 맞지?”
“네, 편집장님. 아까 신입도 그 도로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럼 일단 도로로 나갑시다.”
편집장과 보현옥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걷는 용하는 생각했다.
‘이 도로도 버스전용차로까지 합치면 12차선인데, 이보다 더 넓은 도로가 있다니…….’
* * *
대로변 최첨단 빌딩, 2층 레스토랑.
“서로 인사 나누시죠. 이쪽은 검술 도감의 저자이신 인공 스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쪽은 검술 도감을 편찬할 출판사의 편집장님과 디자인을 담당할 보현옥 팀장님입니다.”
양측을 소개하는 용하는 특히 보현옥 팀장을 강조하며 인공을 보는 눈에 힘을 주었다.
“다들 초면이시죠?”
일부러 크게 물었다. 당연히 일면식이 있었을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토록 간교하고 사악했던 보현이, 대체 몇 겁의 세월을 수없이 환생하며 죄를 씻었길래, 이승에서 어엿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보현옥을 바라보는 인공의 눈이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무림에서 보현이 저지른 행실로 봐서는 아귀나 축생이 마땅한 자이거늘.’
아까부터 인공의 표정을 살피던 용하는 확신했다. 인공은 보현옥이 무림에서 아미파 장문인 보현보살이란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반면 보현옥이 자신은 물론 용하마저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인공은 분명하게 아는 듯했다.
‘다행이다. 지금 이 분위기면 어떤 어려움도 없이 협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인공의 시선이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머물렀다. 그리고 곧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용하 또한 곁눈질로 CCTV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일단 저는 검술 도감의 저자님과 편찬을 하실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만 만들어 드린 것이니, 저는 개의치 마시고 두 분이 의견을 나눠보시기를 바랍니다.”
용하의 말이 끝났을 때 협상 테이블에는 일순 찬바람이 쌩하고 불었다.
“아, 너무 그렇게 대립각을 세우지 마시고, 다 잘되자고 만든 자리니까, 서로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좁혀 보십시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이 말을 하는데, 가슴을 짓누르는 듯 숨이 찼다. 한편 용하의 태도를 눈여겨보고 있던 인공은 생각했다.
‘길게 끌 상황이 못 되는군.’
어금니를 꽉 깨문 인공은 편집장과 보현옥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뗐다.
“이런 일 길게 얘기하면 복잡해질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니, 스님이라는 자가 당돌하다 생각지 마시고, 저자의 마음을 널리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돼 있습니다. 그러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면, 이번 출판 계획에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출판이야 뭐,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실 테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평생을 부처님을 섬기며 살아온 터라, 남은 거라곤 틈틈이 써 온 이 검술 도감이 전부입니다.”
“그 말씀은…….”
“이제 이 검술 도감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면, 제게 남는 건 늙고 병약한 이 몸뚱어리뿐이라는 겁니다. 일찍이 불가에 몸을 담은 제가 자식이 있겠습니까, 가족이 있겠습니까?”
인공의 목소리가 갑자기 침통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용하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할까. 초반부터 달라는 대로 안 주고는 못 배기게 분위기를 몰아가네.’
편집장은 깊은 눈으로 보현옥을 바라보았다. 보현옥도 편집장을 바라보았다.
“제 자식처럼 소중히 여겼던 검술 도감의 원고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인공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였다. 그런 인공에게 편집장이 말을 건넸는데 적잖이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스님. 원고를 보낸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옷을 입힌다고 생각하십시오. 저희가 귀한 원고에 칠보단장을 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원고료는…….”
바로 그 순간 인공은 인세만큼은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편집장의 말을 가로챘다.
“인세는 400억입니다.”
400억이라는 말에 용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최하 200억이라고 했다고 진짜 그걸 그대로 지르면 어떡해…….’
편집장과 보현옥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편집장의 표정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표정은 뭐, 그 정도는 받아야 하겠지요, 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편집장의 표정을 못 읽었을 리 없는 인공이다. 하지만 확인 사살은 언제나 필요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그 정도는 받을 만한 원고입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도 회의 결과, 최소 부수에 권당 2,000원씩 계산했습니다.”
“그럼 출판사에서도 인세를 400억으로 잡으셨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게 잠정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그걸 선인세로 주실 수도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반 뚝 잘라서, 200억에 쇼부를 쳐 드릴까 합니다만.”
“아,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예상 부수 대로면 그 정도 인세는 충분히…….”
“그 말씀은 팔린 만큼을 그때그때 인세로 지급하시겠다는 뜻이죠?”
인공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동안 수많은 저자를 상대해 온 편집장이 그 순간을 놓칠 리 없었다.
“아닙니다. 그런 방법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저는 말입니다. 한 가지 일에 매달려 제 할 일을 못 하면서 신경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출판을 안 하는 게 낫습니다.”
“그 말씀은…….”
“일시금으로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데 알아보겠습니다.”
인공의 말에 용하는 마른침을 삼켰고, 편집장은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진행해도 최하 200억은 남기는 장사다. 그런데 만약 그보다 더 팔린다면, 출판사를 두 배로 키울 기회다.’
바로 그 순간 인공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종지부라도 찍듯 결연하게 입을 뗐다.
“보십시오. 제가 내키지 않은 게 바로 이런 겁니다. 시작도 이렇게 불편한데, 앞으로 수년에서 수십 년은 검술도감이 팔리는 동안 이 나이에 거기에 매달린다는 건……. 게다가 저는 불제자라 속세의 일에 신경을 쓸 수 없는 몸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습니다.”
“조심스러워할 것 없이, 딱 잘라서 선인세 200억 일시금으로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겠다면 진행하고, 못 하시겠다면 원고 돌려주십시오. 제가 죽더라도 누군가, 언젠가, 세상에 필요하다면 출판하겠지요.”
“스님! 그 누군가가 바로 저희 출판사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지금입니다. 200억! 일시금으로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인공과 용하의 입이 자칫 귀에 가서 걸릴 뻔했다. 하지만 어금니를 깨물어가며 참고 또 참았다. 인공은 한 수 더해 울먹이기까지 했다.
“스님, 왜요? 왜 갑자기…….”
“그동안 자식처럼 생각하고 온갖 정성으로 써 내려온 원고가 제 손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스님.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원고가 스님의 손을 떠나는 게 아니고, 예쁘게 꽃단장하고 독자님들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만 눈물을 거두십시오.”
인공은 못 이기는 체, 코를 팽팽 풀어가며 눈물을 꾹꾹 찍었다.
“보현옥 팀장.”
편집장은 보현옥에게 준비된 계약서에 서명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보현옥은 첫 번째 계약서를 펼쳐 하나는 편집장에게, 다른 하나는 인공에게 건넸다.
보현옥이 건넨 계약서에는 이미 출판사 대표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스님, 계약서에 받고자 하는 금액과 조건을 기재하십시오.”
편집장의 말에 인공은 CCTV에 가장 잘 잡히는 위치에 계약서를 놓고, 인세와 지급 조건을 또박또박 기재하기 시작했다.
[검술 도감의 인세 200억을 선인세 일시금으로 지급한다는 조건에 합의하여 본 계약서에 서명합니다.]편집장도 같은 내용의 지급 조건을 기재한 후 계약서를 교환했다.
같은 방법으로 출판, 편집, 디자인 계약까지 진행됐다.
이렇게 그날의 출판 계약은 별 어려움 없이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