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어떡하긴 뭘 어떡해?”
“…….”
“입소문부터 내야지.”
“입소문요?”
뜬금없이 입소문이라니, 어리둥절했다.
“무슨 입소문 말입니까?”
“동네가 떠들썩하게 입소문을 내야 흥정이 붙을 것 아니겠느냐.”
용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인공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우선 이 동네부터 시작해서 인근 동네까지, 부동산 사무실부터 섭렵하자꾸나.”
* * *
신도시 공인중개사
학사 공인중개사
석사 공인중개사
믿음 공인중개사
등
이름도 다양한 수많은 부동산 사무실을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신도시 중심 상업지역에 땅 좀 나온 거 있습니까?”
“신도시 중심 상업지역에 땅 좀 나온 거 있습니까?”
무턱대고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 다짜고짜 한 물음에, 부동산 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시다시피 신도시 중심에는 남은 땅이 있을 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상업지는요. 돈 되는 땅이란 땅은 다들 공기업과 대기업이 독식하는 통에 실수요자는 구경도 못 해 보는 게 신도시 부동산의 현실입니다. 물론 저희 업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자기네들도 구경 한 번 못 해 본다는 마지막 부분은 그들에 대한 신뢰감을 반감시켰다. 하지만 어찌 됐든 부동산 업자들의 대답은 대체로 비관적이었다.
신도시 내에서 영업 중인 부동산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형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왜, 하기 싫어? 벌써 지친 것이냐? 약혼녀를 위해 아니,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연회장 하녀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던 그 아량은 다 어디로 간 게야?”
그제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용하는 인공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무엇이 그리도 자네를 힘들게 하는 게야? 걷는 게 그리 힘 드는 것이냐?”
“걷는 거라면 대리운전할 때부터 무림의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광야를 걸을 때까지 아주 이골이 난 몸입니다.”
“그런데……?”
용하는 자신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인공의 눈길을 피해 다시 하던 말을 이었다.
“그런 것보다는 우리를 바라보는 부동산 녀석들의 눈길이 저를 못 견디게 합니다.”
“그자들의 눈길이 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사기는 자기들이 칠 것 같으면서, 우리를 보는 눈이 무슨 사기 치러 온 사람 보듯 하잖아요. 아무튼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납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오히려 그들의 그런 태도가 당연한 거지.”
“뭐라고요, 당연하다고요? 형님 눈에는 사람 의심하고 멸시하는 그런 눈길이 당연한 거로 보입니까?”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 보거라.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놈들이 불쑥 찾아와서 금싸라기 땅을 300평이나 사겠다고 들이대는데, 너 같으면 고운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으냐? 게다가 몰골은 또 어떻고.”
“우리 몰골이 뭐가 어때서요?”
“운동복 차림인 자넨, 누가 봐도 딱 백수고. 얼굴색이 가무잡잡하니 거적 같은 낡은 옷을 걸친 난, 딱 노숙하는 늙은이잖아.”
용하는 인공의 말에 수긍은 하면서도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뗐다.
“그건… 저는 운동선수 출신 검도 체육관 관장이니까 그런 거고, 형님은 부처님을 섬기는 스님이니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건 자네하고 내 생각이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알아 줄 리 없지 않으냐.”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겁니까? 제 말은,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옛말을, 왜 그 사람들은 모르느냐는 거죠. 사람 상대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 정도 아량이라면 그들보다 자네가 확실히 훌륭한 사람이야.”
“네?”
“만약 그들이 자네만큼 생각이 깊었다면, 그들의 모습이 자네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것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피력해 온 논리의 흐름이 분명 달라졌다.
‘뭐지? 저 말은 형님도 그들을 비난한다는 거잖아. 그런데 왜 조금 전에는…….’
그때였다.
“이보게 김용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신도시 내에 있는 중심 상업지 땅이야. 5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300평의 땅.”
예의 결연한 목소리에 용하는 인공을 흘긋 바라보았다. 인공은 줄곧 먼 곳에 시선을 둔 채, 하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그런데 자네도 느꼈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땅을 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요?”
“부동산 녀석들에게 사기당하는 일 없도록 현명하게 처신하면서, 그들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때일세. 그들의 전문성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인공이 하는 말은 선의든 악의든, 목적을 위해 부동산 녀석들과 묵시적인 타협을 하자는 것이다.
그 순간 용하는 사소한 데 연연한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 그럼 여러 소리 말고 옆 동네로 한번 가볼까?”
“네, 형님.”
두 사람의 발걸음은 신도시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석양을 등에 진 그들의 모습이 마치, 무림에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광야를 막연하게 걷던 광경을 연상시켰다.
“형님… 우리가 지금 이렇게 발품을 파는 게 결코 헛된 일만은 아니겠지요?”
“목적하는 바가 올바르다면 헛될 일이 뭐가 있겠느냐.”
* * *
―여보세요? 여기 신도시 공인중개사 사무실인데요…….
―네, 안녕하세요. 학사 공인중개사 사무실입니다…….
―김용하 선생님 되시죠? 지난주에 문의하셨던 땅 말입니다…….
지난주 내내 발품을 판 덕에 몇 군데 부동산 사무실에서 호객을 시도하는 전화가 쇄도했다.
“형님,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왠지 믿음이 안 가서요.”
“믿음이 안 간다니, 그게 다 무슨 말이냐?”
“지난주만 해도 신도시 내에 중심 상업지는 공기업과 대기업이 독식해서 남은 땅이 없다고 했잖아요.”
“음, 그러니까 그게… 아,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렇담 일단 가보면 알 거 아니겠느냐? 설마하니 그자들이 남의 통장에 든 돈을 빼앗아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
“형님도 참, 버젓이 신도시 한복판에 간판 내걸고 영업하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겠어요, 보이스피싱 조직도 아니고 말이야. 문제는 업자들이 머리를 쓴다는 게 신경 쓰인다는 거죠. 입이 청산유수잖아요. 거기에 넘어갈까 봐, 아예 상대하기도 싫어서 그러는 겁니다.”
“용하야, 이 인공이 있는데 뭐가 걱정인 게야.”
인공의 말에 용하는 긴가민가했지만, 그의 통찰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네, 형님. 저는 형님만 믿겠습니다.”
두 사람은 검도 체육관을 나와 신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배차간격을 맞추느라 그런지 차가 밀리는 것도 아닌데 버스가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차창 너머로 자전거가 앞질러 달려가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버스가 원래 이렇게 천천히 달리는 것이냐?”
“네, 형님. 배차간격이 짧은 러시아워 때만 제대로 달리고 나머지는 이래요.”
“신도시까지는 얼마나 남은 것이냐?”
“한… 열세 정거장쯤 남았을 겁니다.”
“열세 정거장이면 거리로 얼마나 되는 것이냐?”
“글쎄요… 도심지 정거장 거리와 변두리 정거장 거리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여러 소리 하지 말고 거리가 몇 리쯤 되느냐고 묻는 것이다.”
“도심지보다 정거장 간격이 머니까… 한 5km 이상 될 겁니다.”
“5km면… 음, 10리가 좀 넘는 거리구나. 용하야. 우리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속보로 걸어 보자꾸나.”
“신도시까지요?”
용하는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싫은 게냐?”
“네. 저는 걷는 데 이골이 나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그럼 자네는 그리하도록 하거라. 나는 다음 정거장에 내려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인공의 고집스러운 말에 용하는 말려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말 인공은 다음 정거장에 내려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버스 앞쪽의 차창 너머에 저만치 멀어져 가는 인공이 보였다. 저런 속도로 쉬지 않고 걷는다면 아마도 한 시간 안에 신도시 부동산 사무실 앞에 닿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 정말 실천력 하나는 아무도 못 따라간다니까. 어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말려 볼 틈도 없이…….”
용하는 운전석 계기판을 흘깃 내려다보았다. 속도 게이지가 20km를 넘지 못했다.
‘이 사람도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 속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을까?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겠지?’
어느새 인공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졌다.
“기사님. 신도시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답답하시죠? 저희도 어쩔 수 없네요. 저희야 뭐, 회사 방침에 따를 수밖에요.”
“그러니까 신도시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요.”
“두 정거장만 참으세요. 그다음부터는 정상 속도로 달릴 겁니다.”
“두 정거장? 그럼 아까 내린 노인네는…….”
용하는 미간을 좁히며 인공을 걱정했다.
“정거장 수가 맞으면 또 태우면 되죠.”
“안 맞으면요?”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버스가 뭐 택시도 아니고 승객을 따라다니면서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두말하면 잔소리. 할 말은 많았지만, 용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사람이 걸어가는 쪽이 보이는 자리로 가 얌전히 앉았다. 그리고 두 정거장이 지났을 때였다.
―부우우우우웅~
거북이가 오르막길을 오르듯 하던 버스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버스가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게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두어 정거장쯤 지났을 때였다. 빠르게 갓길을 걷고 있는 인공이 보였다.
공교롭게도 조금 전 지나친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의 딱 중간쯤이었다. 용하는 황급히 차창을 열고 인공을 향해 외쳤다.
“형님, 달리세요! 이 버스보다 먼저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이놈아! 어떻게 버스보다 빨리 가. 무림도 아니고 21세기에서 경공술이라도 쓰란 말이냐?”
“그럼 할 수 없죠.”
“할 수 없다니, 뭘 할 수 없다는 말이냐?”
“제가 먼저 가서 부동산 사무실 앞에서 기다릴게요.”
“아니, 저… 저 녀석이……. 야! 그러지 말고, 운전기사한테 차 좀 세우라고 해 봐. 의리 없게 혼자 편하게 갈 셈이냐?”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별로 없다니, 버스 기사한테 차 세우라고 하면 되잖아.”
인공은 숨이 헉헉 차올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형님도 참, 그런다고 세워주겠어요. 택시도 아니고 버스가. 게다가 무림도 아니고 말입니다. 아무렇게나 칼을 들이대고 협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곳은 형님 말대로 21세기인데.”
“아니, 저 녀석이 아까 내가 한 말에 토를 달고 지랄이네그려.”
그 순간 버스는 야멸차게도 인공을 저 멀리 뒤로 흘려보냈다. 인공은 어떻게든 버스를 따라가려고 안간힘으로 달려보았지만, 끝내 점점이 멀어질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용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러게 조금만 참고 기다리지. 하긴, 형님도 사람인데 항상 현명할 순 없는 거겠지.’
* * *
삼십여 분 뒤 신도시 부동산 사무실 앞.
용하는 인공이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 도로를 목을 쭉 빼고 지켜보았다.
“이상하네.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왜 여태…….”
그 순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인공이 길을 잃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에 더는 넋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국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도로를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백 미터를 달렸을 때였다.
비로소 엄지손톱만 한 생명체가 눈앞에 아른거렸는데, 다름 아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인공이었다.
후―
그제야 용하는 타이어가 펑크 나며 내뿜는 바람 소리와 흡사한 센 한숨을 토하며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에효―
이번엔 한심해서 나오는 옅은 숨소리를 토했다. 그리고 곧 차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 절규하듯 소리쳤다.
“형님, 제발 좀… 꼭 이렇게 동생 가슴을 도려내셔야 성이 차시겠습니까?”
인공이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자책감에 스스로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