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
7화
“호위무사들 불러들여!”
무엇이 심사를 뒤틀어 놓았는지, 보현의 목소리가 여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탁하게 흘렀다. 평소 같으면 한 번쯤 이유를 물었을 태사였다. 하지만 태사는 입을 벌리려다 닫아 버렸다.
아미파의 서열 2위이자 보현보살의 오른팔인 태사가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건, 아미파 장문인 입에 호위무사들의 이름이 거론된 기억이 까마득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보현의 처소 앞에 일곱 개의 그림자가 어둠을 뚫고 낙엽처럼 날아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절세미인인 아미파의 다른 여인들과는 풍채(風采)부터 달랐다. 뭐랄까, 여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건장하고 날렵한 체구였다.
얼굴 또한 복면에 가려져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내 못지않은 굵은 곡선의 이목구비라 짐작되었다. 절기 또한 아미파 여느 무사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섬찟한 것들이었다. 주로 철퇴나 도끼 같은 타격용 무기들.
이들은 아미파가 자랑하는 방편산과 연검은 물론이고, 강호에서는 보기 드문 절기를 자랑했다. 호위무사들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주요 활동 영역이 어디인지는 알려진 바도 없다. 다시 말해 아미파에 소속된 협객들이긴 하지만, 딱히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강호 어느 곳에나 출몰하며 아미파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다.
그들을 대하는 보현의 태도는 단호했다. 뿐만 아니라 결연하기까지 했다. 무림에서도 절대 무공을 자랑한다는 호위무사들은 보현을 향해 극강의 예의를 갖춘 채 도열해 있었다.
보현이 그들을 향해 무어라 지시를 했지만, 복호사 전당에는 풀벌레 소리만 무성했다.
* * *
―드르렁, 드르렁!
호롱을 밝힌 방문객의 처소에서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연발 터져 나왔다. 이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공이 코 고는 소리 아니, 숨소리였다.
이제 막 그곳에 몇 개의 검은 낙엽이 어둠을 가르며 내려앉았다.
방문객의 처소 주변에 긴장감이 엄습했지만, 인공의 숨소리는 더욱 커질 뿐이었다. 누군가의 수신호로 검은 낙엽들 즉, 7인의 호위무사는 사방으로 흩어져 호롱을 밝힌 방문객의 처소를 에워쌌다.
처소 안에는 배를 불룩하게 내민 인공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두 눈을 부릅뜬 채였다.
‘놈들의 수는 대략 예닐곱쯤! 나 하나 잡자고 그 많은 숫자가 왔단 말인가. 게다가 저자들은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기운의 소유자들이다.’
눈에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코 고는 소리는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드르렁, 드르렁!
‘닌자술을 쓰는 저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들의 기운이 가슴을 짓누른다.’
인공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거리고는 미간을 좁혔다. 일순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체도 모르는 자들과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저자들과 대적해서 과연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이 복잡해지자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려 노력했지만 좀처럼 생각이 정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고 말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만반의 기세로 대기하고 있던 호위무사들이 마침내 방 문을 부수고 요란하게 급습해 들어왔다.
―붕붕붕붕!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철퇴의 회전 소리가 요란하게 방문객의 처소에 퍼져 나갔다.
―휙휙휙휙 휘리릭 휘릭!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협객의 온몸을 레일 삼아 휘감는 도끼의 움직임 소리 또한 철퇴 소리와 뒤섞였다.
잠깐의 긴장감이 흐르고 호위무사들 중 하나가 황급히 몸을 낮춰 인공의 경동맥을 짚었다. 나머지 협객들도 일제히 휘둥그레진 눈으로 인공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 인공의 경동맥을 짚었던 협객이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죽은 것이냐?”
여인의 목소리치고는 꽤나 탁한 목소리였다.
경동맥을 짚었던 협객이 또 한 차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무엇이냐?”
마침내 경동맥을 짚었던 협객이 입을 뗐다.
“주화입마입니다.”
바람 소리와 뒤섞인 은밀한 목소리였다. 주화입마, 얼핏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렸다.
“죽음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것이나, 주화입마는 돌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소상히 아뢰거라.”
“주화입마라 하면, 구도자의 경지에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즉, 구도자의 경지가 높으면 영혼이 육체를 지배할 수도 있으니 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제아무리 살고자 해도 죽을 것입니다.”
“일단 이 자를 보현보살에게 데려가도록 하자!”
* * *
한편 광활한 대지를 걷고 있는 용하와 노화자.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아미산이었다.
“용하 公, 내 이름은 장설이라 하오.”
“장설? 평범한 이름은 아닌 듯합니다. 이름에 어떤 의미라도 담겨 있습니까?”
“정처 없이 떠도는 노화자의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겠소? 한 20년 불려진 이름인데, 그냥 부르기 좋게 붙여진 이름이라오.”
“그럼 앞으로 장설 어르신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냥 장설이라 부르시오. 그게 마음 편할 것 같소이다.”
“좋아요, 그럼 장설 어른이라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괜찮은 절충이죠?”
장설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으로, 그저 먼 곳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저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설의 시선을 따라 먼 곳에 시선을 두었던 용하의 눈이 바로 옆 장설에게로 옮겨졌다.
‘왠지, 저 미소 속에 깊은 비밀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그때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게요?”
장설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처연하게 한 말이다.
“보셨습니까?”
“그렇게 간절히 소구하는데 어찌 안 보이겠소.”
“그렇게 티를 내던가요?”
장설은 말을 아꼈다.
* * *
두 사람은 어느새 아미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장설 어른, 대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겁니까?”
숨이 차올라 말도 하기 어려울 만큼 지친 목소리였다.
“일전에 아미산엘 온 적이 있지 않소?”
“왔었죠.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저는 보름달이 뜨는 날 아미산에 도착해야 합니다.”
“보름달이 뜨는 날? 가만있자…….”
날짜를 짚던 장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이 바로 그날 아니오?”
장설의 말에 용하의 눈도 덩달아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정말 보름달이 뜨는 날이란 말씀인가요?”
장설은 한숨을 훅 내쉬고는 대답했다.
“그러하다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보름달이 뜨는 날 인공 스님을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용하는 울상이 돼 체면 불고하고 징징거렸다. 장설은 다소 놀란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사고무친한 이곳에서 유일한 지인이란 말입니다.”
“유일한 지인이라, 그런데 왜 눈물을 보이는 것인지.”
“보름달이 뜨는 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라면서요.”
“그럼 만나면 될 일이지, 어찌하여 눈물을 보이며 떼를 쓰는 것이오.”
“만나기로 한 곳이 아미파의 근거지인 아미산이란 말입니다.”
용하의 말에 장설은 먼 곳에 보이는 산을 처연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장설을 보는 용하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징징거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러면 못 쓰는 겁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고 말이야.”
그때였다.
“아미산에 와 본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물론입니다.”
“그런데 저기 보이는 산을 보고도 아직 모른단 말이오?”
“네?”
용하는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장설이 바라보는 곳으로 눈길을 보냈다. 시선이 닿은 곳에 눈에 익은 산 하나가 보였다. 아미산이었다.
“장설 어른!”
감탄사였다. 용하는 한달음에 달려갈 기세로 장설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웬일이지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설 어른…….”
“먼저 가 보시오.”
“왜요, 함께 가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나와 함께 아미산엘 간다는 건 위험만 자초할 뿐이오.”
장설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용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점점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장설이 사람의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작아졌을 때였다. 용하는 장설을 뒤로한 채 아미산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스님!”
그리고 머지않아 용하는 아미산 기슭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아미파의 수비대가 용하의 앞길을 방해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대신 그저 지켜보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용하는 생각보다 쉽게 복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당 앞으로 다가가는 용하를 맞이하는 건 다름 아닌, 보현이었다.
“아미산에 잠시 머물고자 하는데, 굳이 포로로 잡혀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불시에 찾아뵙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아미산에 잠시 머물고자 한다! 연유가 무엇이오?”
“보름달이 뜨면 바로 하산할 것이니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 보라는 것이오.”
“보름달이 뜨는 날 이곳 아미산에서, 제게는 유일한 지인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유일한 지인? 혹시 인공 스님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용하의 표정은 누가 봐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문제라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이오.”
“왜죠? 왜 그리 장담하는 것입니까?”
“인공 스님은 지금 이곳에 있소.”
그 순간 인공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들어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볼 계획이다…….
용하는,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그러고는 말을 돌렸다.
“아,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능청 떨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특유의 말투. 보현은 용하의 그런 말투가 거슬렸던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용하는 보현의 기분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그렇게 멀뚱히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스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십시오.”
“그게, 지금은 좀 곤란하다오.”
“곤란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용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수 더했다.
“인공 스님께서는 지금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드셨소이다.”
“주화입마! 그건 또 뭡니까?”
“잠깐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어려움을 이겨 내고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더욱 큰 스님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오.”
‘홋, 이 누나가 나를 아주 띄엄띄엄 보시네. 지금은 일이 있어서 내버려 두는데, 나중에 한번 제대로 봅시다.’
용하는 내심 실소를 지으며 황급히 스마트폰을 열어 주화입마와 관련된 자료가 없나 찾아보았다. 파일을 찾아 부지런히 스크롤하고 있는데, 오래전에 다운로드했던 영화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영화 속에 잠깐 나온 짧은 영상이었지만, 주화입마가 어떤 상태인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방금 보현이 한 말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말을 간과했다.’
어려움을 이겨 내고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주화입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순 머릿속이 뇌전이라도 일으킬 듯 어수선했다.
“저기요!”
용하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보현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만약!”
가슴이 떨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씀하시오. 만약, 무엇이오?”
용하는 수차례나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만약 주화입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그건…….”
보현조차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왜요? 왜 아무 말씀도 못 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오.”
“어찌하여 장담할 수 없다는 겁니까? 주화입마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왜?”
“사람마다 기운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오.”
더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 말인즉, 그냥 넋 놓고 기다려야 한다, 이 말입니까?”
“그렇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