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신도시 부동산 사무실을 찾은 두 사람은 소스라쳤다.
“네에! 뭐, 뭐라고요?”
용하는 울화가 치밀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말 대신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 용하를 대신해 인공이 부동산 업자를 압박했다.
“이보시오, 부동산 업자 양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말이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원래 부동산 매물이란 게 임자가 따로 있는 겁니다.”
“임자가 따로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부동산 업계엔 상도덕도 없단 말이오?”
“부동산 매매는 말입니다. 누가 먼저 계약서에 도장을 꾹 찍느냐에 따라 임자가 정해진다는 겁니다. 찜했다고 해서 자기 것이 되는 건 아니란 얘기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한테 팔기로 하고 건축사까지 소개했으면서 이런 짓을 한다는 건.”
“이런 짓이라뇨! 말씀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도덕성도, 신뢰감도, 성실성도 없는 그런 짓을……. 그럼 칭찬이라도 할까요?”
“그런 뜻이 아니고, 제 말은.”
“여러 소리 말고 원래대로 돌려놓으시오.”
인공은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두 눈을 더 크게 떴다. 그런 인공을 본 부동산 업자는 찔끔한 표정으로 한층 더 언변을 발휘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려면 민법상 계약을 위반하는 쪽에서 배상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래서요?”
“제가 왜 배상의 책임을 져 가며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계약금이 대체 얼마라는 게요?”
“계약금이 아니라 토지 대금입니다.”
“그러니까 토지 대금으로 계약금을 얼마를 걸었느냐고 묻고 있질 않소?”
“아, 그게 말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그쪽 요청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음과 동시에 땅값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바로 등기작업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성사되었습니다.”
“아니, 그, 그럼 지금 그 땅의 소유권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단 말이오?”
“곧 그렇게 되겠죠. 어제 등기소에 서류 접수를 했으니, 지금쯤 등기 업무가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부동산 업자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쾅!
용하는 부숴 버릴 기세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테이블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용하의 상기된 주먹.
“주먹을 거두거라.”
용하의 주먹은 더욱 매서워졌다.
“어허, 주먹을 거두라는 데도.”
“형님!”
용하는 끓는 목소리로 인공의 말에 대항했다.
하지만 인공은 동요하지 않고 여전히 차분하게 용하를 진정시켰다.
“이 일은 주먹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 어서!”
그제야 용하는 새하얗게 상기됐던 주먹에 힘을 풀고 서서히 거둬들였다.
“이보시오, 업자 양반.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다른 땅이라도 좀 알아봐 주시오.”
인공의 말에 부동산 업자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리려는 찰나였다.
“아뇨, 반드시 그 땅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십시오.”
여전히 끓어오르는 목소리였다.
“이보게, 용하. 그건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이 양반이 그 땅을 가져간 사람에게 배상해야 한다잖아. 계약금의 두 배가 아닌, 토지 대금의 두 배 말이야.”
“그렇게라도 하십시오. 그게 상도덕 아닙니까?”
용하는 핏발이 선 눈으로 부동산 업자를 직시했다.
그 눈빛이 어찌나 섬찟했던지, 부동산 업자는 용하의 눈을 피해 우들거리는 다리를 움켜쥐었다.
부동산 업자가 두려움에 떨자, 인공이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은 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책임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로라하는 건축사까지 소개하고는 왜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겼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꼭 하실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 했는데.”
부동산 업자는 안타깝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하지만 속내엔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런 사실은 여과 없이 용하에게 전해졌다.
“그러니까 그 땅은 저희한테 줬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미리 말씀해 줬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용하가 소리를 버럭 질렀을 때였다.
“그러게, 건축사도 소개해 드리고 했는데, 어제 왜 안 오셨습니까? 저는 신도시 상업지역 땅을 하도 간절히 찾으시길래, 바로 계약하실 줄 알고 따로 말씀 안 드린 건데.”
궁지에 몰린 부동산 업자는 더는 물러설 수 없었던지 언성을 높였다.
‘음, 배수진을 치겠다!’
용하 또한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잇새로 새 나오는 말로 다그쳤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전문가가 왜 전문가입니까?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돼야 전문가다운 거 아닙니까?”
지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언쟁을 지켜보는 인공은 이미 그 땅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 * *
시간은 여느 때보다 빠르게 흘렀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습니다.”
“어찌하겠느냐? 신도시 중심에는 땅이 없다는데.”
그때였다.
―띠링띠링띠링~
침묵으로 일관해 온 검도 체육관 사무실 분위기를 갈라놓는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용하가 주머니를 뒤지며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 순간.
“호들갑 떨지 마. 내 전화야.”
인공은 우쭐대는 기색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유난히도 점잖을 떠는 목소리였다.
―카페지기님, SNS 보셨습니까?
“SNS?”
―누가 SNS에 올린 건데, 신도시 중심상업지역 땅을 매각하겠답니다.
휴대전화 속 카페 회원의 말에 인공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공의 얼굴을 본 용하는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왜 저래? 저렇게 금방이라도 떼굴떼굴 굴러내릴 것처럼 두 눈을 부라릴 땐, 항상 무슨 일인가 생기고는 했는데.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용하의 눈빛은 곧 기대감으로 변했다. 그 눈빛 그대로 인공을 직시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 막 전화를 끊은 인공이 화사한 얼굴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형님,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대충 들어서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음, 조금만 기다려 봄세. 카페 회원에게 땅 주인에 대해 자세히 좀 알아봐 달라고 했으니까 곧 연락이 올 걸세.”
그렇게 두 사람이 채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을 때였다.
―띠링띠링띠링~
인공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두 사람의 눈길이 거의 동시에 휴대전화로 향했다.
“형님, 어서 받아보세요.”
평소 인공의 휴대전화 따위에 별 관심도 없었던 용하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휴대전화 주인보다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인공은 그런 용하를 핼끔 흘기고는 기고만장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번에도 변함없이 점잖은 목소리였다.
―카페지기님, 방금 통화해 봤는데요. 땅을 팔려고 올린 게 아니고, 건물을 지어서 팔겠다고 하네요.
인공의 표정에 약간의 실망이 스쳤다.
“아, 그래…….”
카페 회원과의 통화는 비교적 짧게 끝났다.
전화를 끊은 인공은 물끄러미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으니까.”
“그게 말이다. 음… 땅이 아니고 건물을 지어서 팔겠다는구나.”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쳤다.
“형님!”
“왜……? 왜 또……? 뭐?”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
“어딜?”
용하는 어느새 체육관 문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대답했다.
“신도시에요.”
“뭐, 신도시? 나도 같이 가.”
인공은 순식간에 종종걸음쳐 용하를 뒤따랐다.
버스에 오른 지 30여 분이 흘렀을 때였다. 두 사람은 신도시 중심의 마치 전동차 기지창처럼 쉘터가 즐비하게 늘어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형님, 서두르세요.”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린 용하의 발걸음은, 3개월 전 부동산 업자에게 소개받았던 부지 쪽으로 향했다.
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용하의 뒤를 따라 허둥지둥 걸음을 내디뎠다. 얼핏 조금만 더 빨리 걸었다가는 한여름 더위 먹은 누렁이처럼 혓바닥도 쭉 늘어뜨릴 기세로 말이다.
그렇게 10여 분을 걸어 도착한 곳에 예전에는 없던 공사 현장이 보였다.
용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광경을 저만치에서 바라보며 다가온 인공은 의아해서 물었다.
“어찌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그리 두리번거리는 것이냐?”
“…….”
“아, 이놈아. 사람이 말을 하면 들은 척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제야 용하는 천천히 입을 뗐다.
“형…님…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다니, 뭐가?”
“바로 저곳이 우리가 사려던 땅이 있던 곳 아닙니까?”
“엥!”
그제야 인공은 공사 현장은 물론 주변을 두루 굴러보았다.
“어! 여기가 거기네?”
“형님, 맞죠?”
“그럼 건물을 지어서 팔겠다던 게…….”
“형님, 형님 카페 회원분에게 그 사람 좀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아, 그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뭘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만나야 무엇이든 방법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리고 곧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의 신호음이 들리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네, 카페지기님.
“네, 카페지기 최강땡초인공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뭐 하나 부탁이 있어서요. (듣는) 아까 말했던 그 땅 주인 말입니다. (듣는) 네 맞아요, 그 사람이요. 혹시 제가 그 사람 좀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듣는) 네, 어렵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듣는) 아,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인공은 전화를 끊고 용하를 바라보았다.
“만날 수 있답니까?”
“한번 연락해보겠다고 했으니까,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고.”
용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공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형님!”
인공의 전화벨 소리에 그보다 더 관심을 보인 건 용하였다.
“여보세요? (듣는) 그래, 좀 알아봤어요? (듣는) 아, 고맙습니다. 그럼, 말이죠. 죄송하지만, 그분 연락처를 문자로 좀 찍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듣는) 네, 감사합니다.”
인공이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왔다.
문자가 도착하자마자 인공은 문자에 적힌 번호로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띠링띠링띠링~
몇 차례 신호음이 울렸다.
―콩닥콩닥!
찰나에 불과한 그 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심장은 동시에 요동쳤다.
그때였다.
―여보세요.
인공의 휴대전화 속에서 묵직하고도 탁한 목소리가 새 나왔다.
‘이 목소리는……?’
왠지 낯설지 않은 목소리.
“네, 안녕하세요. SNS에 올린 글 보고 전화를 드렸는데요. (듣는) 아, 땅이 많으신가 보군요. 제가 SNS에서 본 땅은요, 신도시 상업지역에 있는 300평짜리 네모반듯한 땅입니다. (듣는) 아, 그럴까요? 시간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듣는) 알겠습니다. 거기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인공이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만나자고 합니까?”
목이 빠지라 기다리던 용하가 다그치듯 물었다.
“음, 만나자고 하네! 그리 까다로운 사람 같지는 않아.”
“아, 그래요? 다행입니다. 어디서 보자고 하던가요?”
“우리한테 그 땅 소개했던 부동산 사무소에서 보자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그 부동산 사무실을 아는 걸까요?”
“그야 나도 모르지. 신도시에 있는 부동산이니 웬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한민국 경제인구 가운데 부동산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니 신도시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두 사람은 서둘러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용하의 발걸음은 조금 전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천천히 좀 걸어. 그렇게 서두를 것 없잖아. 빨리 가 봤자 어차피 기다려야 할 텐데.”
인공이 하소연하듯 아우성을 쳤지만, 용하의 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앞으로 제 사전에, 한발 늦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뜬금없이 그게 다 무슨 소리인 게야?”
“벌써 잊었어요? 우리가 왜 땅을 놓쳤는지.”
두 사람의 걸음걸이만큼 부동산 사무실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은 뜨겁게 이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