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어서들 오십시오. 이렇게 또 뵙게 되네요.”
신도시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서자 부동산 업자와 또 한 사람, 건축사가 두 사람을 반겼다.
건축사를 본 두 사람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 건축사님. 이거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미안하다니, 뭐가 미안하다는 거죠?”
오히려 건축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땅을 놓치는 바람에 건축은 좀 어렵게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더라도 땅을 구하는 대로 바로 건축을 할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용하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건축사는 웬일인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어쩌면 의미심장하다고 해야 어울릴 만한 미소였다.
‘뭐지, 저 미소는?’
건축사가 이런 애매한 미소를 짓는 이유는 용하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건물이야 언제 짓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보다는 그때까지 저를 기억해 주시겠다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아, 별말씀을요. 저는 건축사님의 작품을 보고 감동한 사람입니다. 오, 이건 건물이 아니고 예술작품이다! 뭐, 이런 느낌!”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이러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과찬이 아닙니다. 이분은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이 제 뇌리를 떠날 줄 몰랐으니까요. 이다음에 제 건물도 예술품을 만들 듯 지어주십사, 미리 아부하는 중입니다.”
“아부라는 말이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기는 처음입니다.”
건축사의 말에 부동산 업자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부라고 하면 느끼하고 기분 나쁜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오늘 들은 아부라는 말은…….”
부동산 업자는 더는 말을 못 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한동안 덕담이 오가며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혹시 두 분은 알 것 같아서 여쭤보는 건데요. 제가 매입하려던 땅에 건물이 지어지고 있던데, 건축주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그건 알아서 뭐 하시게요?”
부동산 업자의 목소리가 얼핏 상기돼 있었다.
“건축사님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여쭤보는 겁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이번에는 표정까지 상기되었다.
“아아, 다름이 아니고…….”
흘깃 건축사의 눈치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최악의 경우, 건물을 사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그 건물이 다 지어지고, 건물이 유치원으로 사용하기 괜찮다면 말이죠.”
바로 그 순간 건축사의 입가에 두 번째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부동산 업자는 미리 계획하고 있었다는 듯 용하의 말을 기정사실로 끌고 갔다.
“유치원으로 사용하기 괜찮다면 말이죠?”
“네. 저만한 위치에 유치원으로 사용해도 좋은 만큼 예쁜 건물이 지어진다면 안 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예산은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신도시 지역 시세가…….”
“건물이 지어지면 그에 걸맞은 값이 매겨지겠지요. 그때 가서 예산을 세워 볼 생각입니다.”
“실은 건축주께서 미리 제게 매물로 내놨습니다.”
“매물로 내놨다고요? 아직 짓지도 않은 건물을요? 그리고 만약 준공검사 나기 전에 임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준공검사가 안 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용하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건축사가 자기 순서라는 듯 나서며 미리 연습한 대본이라도 읽듯 말했다.
“그 문제라면 건축사인 제가 답변드리겠습니다.”
“…….”
“준공검사는 건축법에 정해진 대로 지어졌는지를 살피는 절차입니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제가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럼 그 건물을 짓는 사람이 건축사님이세요?”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왜 그 말씀을 이제야…….”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실은 사정이 좀 있어서 그만…….”
“그럼 건축주하고도 긴밀하게 연락이 닿겠네요?”
“그럼요. 어디 닿기만 하겠습니까?”
“아, 잘됐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건축주하고 자리 한번 만들어 주십시오.”
“자리! 자리를 만들어서 뭐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왠지 이건 딱 제 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원하는 땅에, 건물을 짓는 사람이 건축사님이라니,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건물 제가 미리 사들이겠습니다. 이번에도 놓칠 순 없지 않습니까?”
용하의 표정에 지난번에 땅을 놓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에 대한 소회가 묻어났다.
“음, 그러시면 다들 마음 비우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볼까요? 어차피 목적이 중요하지, 과정은 괜히 분쟁만 일으키는 거 아닙니까?”
다들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담담하게 들으십시오. 실은 그 땅의 주인, 건축주, 건축사가 모두 같은 분입니다.”
부동산 업자의 말에 용하의 머릿속 계산기 빠르게 돌아갔다.
‘땅 주인과 건축주 그리고 건축사가 한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용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건축사를 직시했다. 그 눈빛이 사뭇 섬뜩했지만, 건축사는 그냥 담담하게 고개를 숙였고, 그것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옆자리의 부동산 업자가 서둘러 자칫 과열될 수 있는 분위기를 중재했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목적 이외에 다른 건 다 봉인해야 한다고.”
그제야 용하는 섬뜩했던 눈을 풀고 부동산 업자를 보았다.
“이건 당부가 아니고, 필수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운다면, 이 거래는 결코 성사되지 못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으로선 모든 칼자루를 쥔 사람이 다름 아닌 건축사였으니.
‘용두방주! 저자는 대체 어떤 운명을 타고났기에 예나 지금이나 항상 주도권을 독점하는 것인가. 저런 자의 유전인자는 따로 있단 말인가. 정말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유전인자라도 가진 자일까?’
용하는 곧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도 놓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가격 흥정부터 해 보겠습니다.”
부동산 업자의 말에 건축사가 딱 잘라 말했다.
“흥정이라니요.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건물 준공부터 하자보수까지 300억입니다.”
“300억!”
용하와 인공은 동시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건물을 매입하려니 그 정도 값은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100억이란 돈을 또 어디서 만들어야 할지 걱정이 앞서서였다.
“왜요, 비싸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었다. 사실 신도시의 중심 상업지역에 이만한 건물을 매입하는데, 300억이란 예산쯤은 세워야 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만한 가격이 나올 이유 또한 있었다.
“저는 결코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전에 제게 건물을 지어 달라고 의뢰하러 왔을 때 말입니다. 그때 지으려던 건물은 연면적 100평에 건평 500평이었잖습니까?”
“그랬습니다. 제가 필요했던 건 놀이터와 마당 그리고 5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짓고 있는 건축물의 규모는 연면적 150평에 건평 1,200평입니다. 연면적도 늘렸고 층수도 8층입니다.”
“건물이 부지의 반을 차지해 버리면 놀이터와 마당이 너무 좁아지지 않습니까?”
“슷! 마저 들으세요. 나머지 150평의 땅에 놀이터와 정원 그리고 연면적 30평짜리 작은 건물을 별도로 하나 지을 겁니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걸 꾹꾹 누르며 견디던 용하가 마침내 펄쩍 뛰었다.
“아니, 그럼 놀이터와 정원이 더 좁아지지 않습니까?”
용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건축사는 줄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허, 가만히 좀 들어보시라니까.”
건축사는 부리부리한 두 눈을 떼굴떼굴 굴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용하는 곧 자세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30평짜리 작은 건물은 2층으로 지을 겁니다. 그리고 그 건물을 기준으로 양쪽에 두 개씩의 미끄럼틀을 만들 생각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놀이터 하면 미끄럼틀, 그네, 뺑뺑이가 주력 놀이기구 아닙니까? 거기에 정글짐 놀이나 트램폴린파크 그리고 볼풀까지. 작은 건물에는 주로 이런 시설들을 만들어 줄 생각입니다.”
건축사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용하와 인공은 무릎을 탁! 치며 감동했다.
“와우~ 역시 건축사님의 안목은 대답하십니다.”
용하는 한마디의 보탬도 없이 느낀 그대로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말입니다. 제가 뭐 크게 돈을 남겨 먹는 것처럼 여기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땅값 150억에 건축비 96억! 합이 246억이죠? 거기다 30평짜리 2층, 60평. 4억 8천! 거기다 정원 꾸미려면 조경비도 만만치 않고 놀이기구도 어린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친환경으로 갖출 계획입니다. 이래도 제가 터무니없이 남겨 먹는 겁니까?”
건축사의 말을 듣고 보니, 그에게 남는 건 거의 없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건축사님 말씀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아이디어를 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 취향대로 지을 수 있게 돼서 더없이 기쁩니다.”
건축사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이번에는 부동산 업자가 입을 뗐다.
“그나저나 100억이란 돈이 작은 게 아닌데, 자금 확보는 가능하시겠습니까?”
“만들어 봐야죠.”
용하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어려우시면 제가 작은 도움이 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면?”
“부동산 업계에 리츠라는 게 있습니다. 예산보다 건물 규모가 클 경우, 비슷한 투자자들을 모아 공동으로 건물을 매입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공인중개사님 말씀은 동업자를 소개하시겠다 뭐 그런 말씀인가요?”
“동업자라고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동업자는 아니고, 공동소유주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는 싫습니다.”
용하는 딱 잘라 말했다. 이유는 미숙이 아니, 연회장 하녀에게 선물로 주는 건데 누군가와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건 선물이 갖는 진정한 의미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대부분 자금이 부족할 때 말입니다. 빚을 내느니 이렇게 많이들 하시는데.”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른 시일 안에 결정해 주십시오.”
부동산 업자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천천히 준비하십시오. 아직 건물 다 지어지려면 시간 충분하니까요.”
“건축사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그사이 다른 임자라도 나타나면 저분들은 또 놓치게 되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니,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제가 이분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팔지 않을 거니까요.”
“네에?”
건축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공인중개사님, 기억 안 나세요?”
“기억이라면 무슨…….”
“그때 말입니다. 제가 그 땅 매입하겠다고 한 날.”
그제야 부동산 업자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기억납니다. 실은 그때 땅을 매입하겠다고 하고 가신 다음 날,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몇몇 사람들이 값을 좀 더 쳐 주겠다며 자기에게 팔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건축사님이 옆에 계셨고요.”
더 듣지 않아도 알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공인중개사님 말씀은 그 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건축사님이 건지셨다 뭐, 그런 말씀입니까?”
얼핏 빈정거리는 말투였지만, 도를 넘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런 생각이라면…….”
“그날 저도 모르게 어떤 의무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저 땅 위에 건축주가 머릿속에 그리는 예쁜 건축물을 지어서 감동을 주고 싶다는.”
가슴을 울려 묵직하게 나오는 목소리였다. 건축사의 말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같은 순간 용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