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5
75화
“형님, 100억이란 큰돈을 무슨 수로 만들죠?”
검도 체육관으로 돌아온 용하가 제일 먼저 한 말이다.
“그리 큰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네에! 100억을 큰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크다면 한없이 크고, 작다면 한없이 적은 돈이지. 홋!”
그 순간 용하는 내심 인공을 비웃었다.
‘웃어? 100억이 큰돈이 아니라고? 쳇, 자기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웃어, 웃기를. 200억도 내가 검술 도감 출판해서 만든 건데.’
그때였다.
“100억, 까짓거! 녀석이 생각만 좀 바꿔준다면, 그 정도 돈 만드는 건 일도 아닌데 말이야.”
들릴 듯 말 듯 구시렁거리는 인공은 이번에도 말끝에 웃음을 보였다. 인공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건 무엇인가 있다는 뜻이다. 반면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아마도 주화입마에 들지 않았을까.
“형님, 뭐라고 중얼거리는 겁니까?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시원스럽게 한번 말씀해 보세요.”
“건축사 말대로만 건물이 지어진다면, 나도 그 건물에 욕심이 날 거야.”
용하는 수긍한다는 기색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차갑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요?”
“자네가 계획했던 건, 중소형 건물을 지어서 유치원 전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거 아냐?”
“물론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오늘 건축사가 짓고 있는 건물은 8층 규모의 중대형이야.”
“그래서요?”
“내 생각엔 그 정도 규모의 건물이라면, 세 개 층 정도만 있어도 훌륭한 유치원을 개원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그 말씀을 하는 이유는…….”
“그래, 이미 네 녀석이 짐작했겠지만, 여섯 개 층은 분양해 버리는 거야.”
“그럼 온갖 사람들이 다 들락거릴 텐데, 어린이들 교육은 뭐가 됩니까?”
“아, 그 문제라면 두 가지만 해결하면 문제없어.”
“두 가지만 해결하면?”
“그래, 두 가지만.”
“그게 뭔데요?”
“첫째는 유치원 전용 출입구를 만들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둘째는 분양이 끝나고 나면 임대를 놓을 때 입주 제한 업종을 분양계약서에 명시하는 거야. 예를 들어 제한 업종은 노래방이나 술집 같은 거, 권장 업종으로는 병원이나 학원 등 어린이 관련 업체들.”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제안이었다.
‘그새 거기까지 생각했다고? 쳇, 대체 이 노인네 유전자는 어떻게 생겼길래 머리가 이렇게 비상하게 돌아가는 걸까?’
한 가지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만을 고집했던, 그래서 앞이 보이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 비해 유연하고 탄력적인 발상을 하는 인공을 대하는 용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그 문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그때까지는 다른 방법도 모색해 주세요.”
“알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다른 방법도 좀 물색해 볼게.”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고 말인데요. 연면적이 150평이면 두 개 층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아, 그래?”
무슨 생각에서인지 인공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그래서인지 용하는 인공이 금방 좋은 묘책을 내놓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내가 한 말 명심하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하나만 고집하면 눈이 멀 수도 있어.”
“…….”
인공의 말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 * *
그날 이후 검도 체육관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김 관장, 건물이 다 지어졌나 봐.”
무엇보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용하 또한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건물이 다 지어졌다고요? 어떻게 알았어요?”
“수련생이 지나오다 봤나 봐. 문자를 보내왔네. 사진까지 찍어서 보냈어.”
인공은 용하 쪽으로 바짝 다가가 수련생에게 전송받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인공의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본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뿐만 아니라 대뜸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용하의 눈에 비친 건물은 보는 사람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기 충분할 만큼 아름다웠다.
현대적인 감각의 유리 건물이지만 전체적인 외관은 중세의 성곽을 연상시켰고, 시점을 바꿔 다른 곳에서 보면 코끼리가 긴 코로 자기 몸에 물을 뿌리는 형상이었다.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만큼 흥미로운.
“형님,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서 가보자꾸나.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구나.”
두 사람은 무슨 대형할인점의 반짝 세일이라도 열린 듯, 빠르게 검도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신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은 두 사람은 몸이 달떠,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모자를 눌러 쓴 버스 기사는 백미러 속의 용하와 인공에게 잦은 눈길을 보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신도시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심장은 심박수를 더했다.
이윽고 버스가 신도시 초입으로 진입했을 때였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버스가 꼼짝 못 한 채 발이 묶여 버렸다. 갑자기 몰려든 차량 때문이었다.
“기사 양반, 대체 왜 이렇게 더디 가는 것이오?”
“창밖을 좀 보십시오. 웬 차들이 이렇게 모여드는지 원.”
버스 기사도 영문을 모르고 있는 눈치다. 인공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뭐 하시게요, 형님!”
“나의 SNS의 위력을 모를 것이냐?”
인공은 서둘러 차창 밖의 광경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리고.
[이거 대체 왜 이런 거죠? 갑자기 차량이 밀물처럼 모여드네요.]인공이 근황을 게시하자 곧, 댓글이 빗발쳤다.
[아, 그거 구경거리가 생겨서 그래요.] [새로 지어진 건물 보러 가는 차들입니다.] [신도시에 신비감이 느껴지는 건물이 지어졌데요.]등등.
SNS를 보는 두 사람의 호기심은 그 크기를 알 수 없을 만큼 증폭했다.
“형님, 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사람들이 이 난리를 치는 걸까요?”
“너무 기대하지 말고 일단 가보자꾸나. 원래 SNS라는 게 뻥이 좀 세지 않느냐.”
“아뇨, 기대감 잔뜩 가지고 갈 겁니다. 암요, 누구보다 더 많은 기대감으로 말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데도 고집을 부리는구나.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아니겠느냐. 김칫국물도 너무 마시면 체하기 마련이고, 비행기도 너무 태우면 떨어질 때 그만큼 더 아픈 것이 세상 이치거늘.”
용하는 상기된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인석아, 지금 내 표정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 게 아니고, 잔뜩 긴장돼 있어.”
“긴장이요? 하긴, 긴장감도 없지는 않습니다. 설레기까지 하는걸요.”
용하는 마음 같으면, 버스에서 내려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일전에 인공이 마음만 급해 호되게 당하는 광경을 이미 목도해서인지,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침착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여라.”
“헤헷, 침착하라고요? 형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비아냥거리지 말거라. 내 말은 다른 뜻이 아니고, 건물이란 것은 100년을 계획하고 짓는 것이 아니더냐. 그러니 조금 늦게 간다고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 건물은 앞으로 우리가 소유하게 될, 우리 건물이 아니더냐. 그리고 원래 주인공이란 제일 마지막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느냐. 좀 늦게 도착한다고 주인공이 바뀔 리도 없는데, 뭘 그리 조바심을 내는 것이냐?!”
듣고 보니 인공의 말이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신도시로 오는 내내 달떠 있었던 용하의 태도가 비로소 차분해졌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몇 달 전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곳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리 차분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발걸음이었다.
얼마나 걸음을 내디뎠을까, 눈앞이 인파로 술렁거렸다. 그 광경이 마치 이벤트가 진행 중인 놀이동산을 보는 듯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기 맞지?”
“네, 형님. 저 앞에 보이지 않습니까? 예전엔 없었던 건물이.”
인공의 시선이 인파를 지나 저 멀리에 새로 지어진 건물에 가닿았다. 그의 시야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최첨단 건물이 보였다. 몰려든 인파에 묻혀 건물 전체를 볼 수 없으니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아, 환상적이다!”
인공은 탄성을 내지르며 얼어붙은 듯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말했다.
“이보게, 용하! 우리 건물 매입하는 날 불꽃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불꽃놀이요?”
“그래! 준공식 때 유치원 개원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매스컴 좀 타야지.”
역시 인공다운 발상이었다.
“형님,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요? 어차피 우리가 돈 들여서 해야 할 홍보잖아요. 그런데 형님 말대로 하면 돈도 절약하고 효과도 크고, 겸사겸사 아주 좋은데요.”
“그러게, 말이다. 나야 뭐, 건물 보고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지만, 건축사 그 양반이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건축사가요?”
“음,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마음 씀씀이가 보통 아냐. 땅도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 버리면 자네가 영영 못 건질까 봐 자기가 잡아 뒀다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 색안경 끼고 사람을 대했던 것 같아요.”
“트라우마지.”
“트라우마요?”
“그래. 무림에서 우리가 방주 앞에서 어떻게 했는지. 그 사람 눈 한 번 부릅뜨면 오금이 다 저렸잖아.”
“그랬었지요. 그런데 은근히 정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자네 생각이고. 자네야 뭐, 방주 그자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니, 나 같은 호위무사 나부랭이가 겪은 상처를 짐작이나 하겠어? 난 말이지, 그자 앞에만 서면 숨이 막혔으니까.”
“그렇게 안 보였는데, 그런 아픔이 있었습니까? 내 눈에는 담담하게 즐기는 것 같았는데.”
“즐기다니, 내가? 내가 무슨 사디스트니, 고통을 즐기게?”
“아무튼 저는, 묵묵히 무림에 적응하는 형님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조금은 실망인데요.”
“실망할 것 없어. 조금은 즐겼으니까. 난 늘 그런 환경을 꿈꿨으니까.”
“스님다우신 말씀이네요. 세상이 너무 혼탁하죠? 우리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자못 회의적인 말투였다.
“일단 나온 김에 건축사 좀 만나 볼까요?”
“건축사는 왜? 난 그 사람 자주 보는 거 별론데.”
“분양하기로 한 거 말입니다. 혹시 도움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 거라면 공인중개사를 만나 봐야 하는 거 아냐?”
“부동산 업자보다는 건축사가 좀 더 신뢰감이 가서요.”
“그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지, 인공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리고 용하가 그렇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을 때, 인공 역시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은 건축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없나?”
“미리 전화라도 하고 올 걸 그랬어요. 공사 현장에 계시는 것 같네요.”
그때였다. 인기척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건축사였다.
“아, 계셨었군요?”
용두방주의 환생인 건축사를 보는 게,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없었다.
“네. 바로 못 나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일에 꽂히면 주변을 못 봐서.”
“아닙니다. 건축사님의 그 집중력이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란 거 잘 압니다.”
“빈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은 좋은데요.”
“아이고, 빈말이라뇨.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진심! 백퍼!”
“알겠습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괜히 일하시는데 방해된 건 아닌지요?”
“아닙니다. 이 건축이란 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보니, 저에게는 일보다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긍휼함이 더 중요합니다.”
“아, 본보기가 될 만한 가치관입니다. 존경합니다. 거, 요즘 말로 리스펙!”
너스레를 떠는 인공을 보는 건축사는 얼핏 헷갈렸다.
‘대체 무슨 용건으로 왔길래, 저렇게 쓸데없는 밑밥을 던지는 걸까?’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누추한 곳까지 걸음을 해주신 진짜 이유가 뭡니까?”
건축사의 물음은 말 그대로 단도직입적이었다.
“아, 네… 그게… 건축사님 말씀대로 막 그렇게 돌직구 할 내용은 아니어서…….”
“그래요? 괜히 긴장되는데요. 제가 한번 넘겨짚어 볼까요?”
“…….”
“혹, 말입니다. 건물값 부족한 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그거 의논하러 오신 거 아닐까요?”
건축사의 말에 인공은 물론 용하마저 두 눈이 커졌다.
“역시 그랬군요. 어디 한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봅시다. 머리를 모으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왠지,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습니다.”
인공이 인사치레하자, 용하는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나머지 100억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내린 결론은 분양입니다.”
“분양이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 개 층입니다. 그러니 놀이터와 정원 그리고 정원에 있는 작은 건물 이외에 나머지를 선분양한다면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요?”
“이론적으로는 한 개 층만 분양해도 100억이 넘는 돈이 만들어집니다. 신도시 시세 평당 7,000만 원에 150평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건물을 분양할 땐 땅값 계산은 지분으로 산정하니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아, 지분!”
“그러니까 150평짜리 한 층을 통째로 판다 치면, 건축비 12억에, 지분이 층당 37.5평이니, 대략 한 층 분양가는 26억 정도로 산정할 수 있습니다.”
건축사의 말에 용하와 인공은 솔깃했다.
“그럼, 100억이 좀 넘겠네요?”
“그렇지요. 건물값 부족한 부분 100억 빼고 나머지는 분양한 사람들 리베이트로 제공하면 되겠네요.”
정말이지 작정하고 짜 맞춘 듯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저희가 분양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베이트만 투명하게 책정한다면 전문가들이 붙을 겁니다. 제가 지은 건물은 항상 분양업자들이 눈독을 들이기 마련이니까요.”
이미 예전에 많이 해 봤다는 듯 건축사가 자신감을 보였다.
그 순간 용하는 얼핏 불안한 기색으로 생각했다.
‘일이 너무 순조롭게 풀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