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6
76화
노을이 붉게 물든 서산을 바라보며 검도 체육관으로 돌아가는 인공과 용하.
“솔직히 난 좀 욕심이 나.”
“욕심이라니, 무슨 욕심이요?”
“그 건물 말이야. 그냥 우리가 통째로 먹으면 안 될까? 남 주기엔 좀 아까워.”
“통째로 먹다뇨,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우리가 무슨 나쁜 짓 해서 갖게 되는 것처럼.”
“아, 미안.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나서.”
“아직 시간 있으니까 좀 더 생각해 보죠.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았는데, 이렇게 좋은 방법들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방법이 없는 줄 알았을 때가 지옥이었다면, 지금은 천국입니다.”
“그런 기분이 든 게, 어디 자네뿐이었겠는가? 나 역시 회원들에게 또 손을 벌려야 하나, 하는 생각에 숨이 막혔어. 물론 꼭 필요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될 수 있으면 수련생 모으는 데만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좋은 생각이세요. 자꾸 이것저것 부탁한다는 건 그에 따른 부작용만 낳을 뿐입니다.”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먼. 맞아, 구분을 좀 해 두는 게 앞일을 생각해서라도 좋을 거야.”
“저는요, 형님! 형님이 수련생 모아 오는 거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형님은 형님이 하실 일을 충분히 하신 겁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해야 했는데, 제가 좀… 아니, 많이 부족하다 보니, 그마저도 형님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네요.”
그 순간 인공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용하를 직시했다.
“어른같이 말을 하는구나!”
“네에? 아니, 제가 어른이지 그럼, 어린아이입니까?”
“허허, 평소 알고 지내던 자네답지 않아서 하는 말일세.”
“평소에 제가 어땠길래요?”
“매사에 촐싹거리고 띄엄띄엄했잖아.”
“뭐, 뭐라고요? 촐싹거린 건 인정하겠는데요, 띄엄띄엄은 아니지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자네가 조금 전에 인정한 거 아냐.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아, 그건…….”
“됐어. 그렇게 억지로 변명하지 않아도 돼. 아무튼 난 자네 그런 면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뭐요, 많이 부족한 거요?”
“이것저것 너무 완벽하면 그보다 더 밥맛 떨어지는 것도 없어. 그런데 자네는 적당히… 음, 뭐랄까? 오, 그래! 나사가 적당히 풀린 사람 같아서, 그냥 편해.”
“그냥 편해요? 그 말은 좀 부족해 보이니까 만만하다 뭐, 그런 말이죠?”
“아니! 인간미가 넘친다는 말이야.”
“뭐라고요? 어떻게 나사가 풀려서 대하기 편한 게, 인간미가 넘치는 것과 같은 말이죠?”
“아이참, 그게 말이야. 솔직히 인간미 넘친다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좀 그렇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 이 사람이! 끝까지 그렇게 털어야 직성이 풀리겠어?”
“사람이 맺고 끊는 게 분명해야 하지 않습니까.”
용하의 언성은 조금 높아졌다. 그러자 인공은 어르듯 말을 이어갔다.
“알았어, 얘기해 줄게. 별다른 건 아니고, 내가 좀 알량해서 그래. 나는 말이지, 누군가를 칭찬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
“쉽지 않다니요, 그게 뭐가 어려워요. 잘하는 거 잘한다고 얘기해 주면 되는 건데.”
“말했잖아. 알량해서 그렇다고.”
“형님! 누가 그 말을 믿겠어요? 형님이 알량하다니. 제가 보기엔 형님만 한 대인은 세상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인공은 뭉클했다.
“바로 그런 점이야. 자네는 너무 쉽게 남을 칭찬하잖아.”
“칭찬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죠?”
“아무렴!”
“쳇, 무슨 칭찬을 그렇게 한담!”
“난 원래 그렇게 해.”
“어련하시겠습니까? 누가 땡추 아니랄까 봐.”
“뭐라, 땡추?”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두 사람은 서산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모처럼 소리 내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이보시게, 김 관장.”
“네, 형님. 아니, 사범님.”
“밤새 고민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 주기엔 좀 그래. 음, 그래서 말인데, 임대를 놓는 건 어떨까?”
“임대를요?”
“그래! 보통 어딜 가나 전세가가 분양가의 80%는 된다잖아.”
용하는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고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게다가 설령 전세가 아니더라도, 월세로 임대하고 은행 대출이자 갚으면 더 남는 장사지.”
“아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유치원을 오롯이 미숙이에게 주고 싶다고요. 제 마음이 담긴 선물에 빚을 얹어서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선물이잖아요.”
“이보게, 김 관장. 그게 다 무슨 소리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니.”
“아,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음… 연회장 하녀에게 말입니다.”
“연회장 하녀? 아 참, 그랬지? 내가 잠깐 잊고 있었네. 자네 약혼녀 미숙 씨가 연회장 하녀의 환생이라고 했지?”
두 사람의 대화에 특별히 어색함이 있었던 건 아니다. 흐름이 이상하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단지 용하가 한 말 가운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인공의 말문을 간헐적으로 막았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니, 그 석연찮은 말은 대체 무슨 뜻으로 했단 말인가.’
“너무 고민하지 말게. 그 또한 머리를 모으면 좋은 방법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네.”
이번에도 용하는 오롯이 선물로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그런 고집이라면 쓸 만한 고집이라, 굳이 꺾을 이유가 없었다.
인공은 말없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분양하지 않고 나머지 건물값을 만들 방법이 있다면 유치원으로 쓸 공간을 제외하고 전부 전세를 놓는 건데, 상업지역 특성상 대부분 장사하는 사람들이 세를 얻으려 몰려들 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공의 미간이 다시 한번 좁아졌다.
‘장사치들 특성상 보통 그달 장사해서 남는 이문으로 임대료를 내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럼 월세 보증금은 기껏해야 전세의 2, 30%에 불과할 텐데.’
이번에도 미간의 골이 깊게 파였다.
‘…은행 대출이 불가피할 것 같은데,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갈 방법이 없을까? 그 방법만 찾는다면.’
어떤 고민을 하든 오롯이 미숙이에게 유치원을 선물하겠다는 용하의 복심을 바뀌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간절했다. 인간 김용하, 그가 조금만 유연해진다면 일이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해질 텐데. 인공은 기도라도 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날 오전 수련을 마친 인공은 서둘러 검도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형님! 아니, 사범님! 어딜 그렇게 급히 가세요?”
다급하게 외치는 용하의 물음은 뒤로한 채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졌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변두리에 있는 작은 마을금고 앞이었다.
“아이고, 아무리 변두리 은행이라도 그렇지. 이걸 누가 은행이라고 생각하겠어?”
아무리 봐도 은행 같지 않아 발걸음이 떼지질 않았다. 그때였다. 뒤뚱뒤뚱 걸어와 마을금고 쪽으로 들어가는 한 노인이 보였다.
인공은 때를 놓치지 않고 그 노인을 불러 세웠다.
“저기, 할머니!”
“뭣이여, 할머니? 이 영감탱이가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겨?”
매서웠다. 인공사에 있는 보살의 성질머리는 갖다 댈 곳도 못 되었다.
깨갱!
인공은 꼬리 내리기 바빠, 미처 물어보지도 못한 채 물러나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아닌 것 같다. 패스!”
재고의 여지조차 없었다. 인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그리고 인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공을 태운 버스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같은 길을 달려 신도시로 향했다.
‘참 이상하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는데.’
신도시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게, 괜히 초조했다.
‘아니다.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려야 하지. 그런 게 당연한 거잖아. 모르는 걸 알려고 아니, 배우러 가는데.’
용하가 미숙이에게 유치원을 선물하고 싶듯이, 지금 인공은 용하에게 그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도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니까, 그가 원하는 걸 선물하고 싶었다.
“자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냐. 그래서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주고 싶어.”
그 마음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인공은 누가 듣든지 말든지 그냥 중얼거렸다.
버스에서 내린 인공은 주위를 크게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보이는 은행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간판만 봐도 알 만한 제1금융권의 은행이었다.
“조바심이란 게 본능이었단 말인가? 그럴 리 없는데 조바심이 생기는 걸 보면.”
인공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은행 간판이 일렁거리며 훅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윽고 은행 앞에 선 인공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인공은 숨 한번 쉬는 것조차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숨쉬기는 운기조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들숨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 나를 긴장시키는 것이란 말인가. 그저 궁금한 것을 알고자 온 것뿐인데.”
인공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 후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은행 안으로 들어온 인공은 상기된 얼굴로 창구를 둘러보았다. 입구 쪽에서 인공을 본 청원경찰이 그를 이상히 여기고 다가왔다. 그리고 곧 제일 만만해 보이는 은행원을 찾아낸 인공이 걸음을 내디디려 했을 때였다.
“저… 고객님… 무슨 일로 오셨죠?”
얼핏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인공의 정체를 떠보려는 속셈이었다.
인공은 들은 체도 않고 자기가 찜한 은행원에게 시선을 꽂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인공의 눈빛이 청원경찰 눈에는 복수심에 불타 무슨 일인가 저지를 것만 같아 보였다.
“여보세요!”
청원경찰이 소리를 지르자 은행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청원경찰이 인공의 팔을 꺾어 저지하려 했을 때였다. 인공은 본능적으로 청원경찰의 공격을 방어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어이쿠!”
* * *
인근 지구대.
황급히 들어온 용하는 숨을 헐떡거리며 상기된 눈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의 눈에 한쪽 팔이 수갑에 채워진 채로 잠들어 있는 인공이 보였다.
“형님!”
용하는 한달음에 인공에게 다가갔다.
“형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인공사의 주지 스님께서 경찰에 체포되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용하는 경찰들 들으라는 듯 비통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저기요!”
경찰들 가운데 하나가 용하를 불렀다.
“저 말입니까?”
“네, 아저씨 말입니다.”
“왜요?”
“저 사람이 스님이라는 겁니까?”
“그럼 아니란 말입니까?”
“그냥 확인차 물어보는 건데, 꼭 그렇게 시니컬하게 말을 해야 합니까?”
“이것 보세요, 경찰관 양반! 당신 같으면 지금 이 마당에 시니컬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속세를 떠나 부처에게 귀의한 인공 스님께서 경찰에 현행범으로 연행됐다는 건 전대미문이 아니오? 이건 누가 들어도 통탄할 일이잖소? 오호통재라!”
용하가 일대 소동을 벌이는 통에 잠들었던 인공이 눈을 떴다.
“이보게, 김 관장!”
경찰을 향해 고개를 돌렸던 용하는 놀란 눈으로 인공을 휙 돌아보았다.
“형님! 아, 아니, 인공 스님! 이게 다 무슨 봉변이십니까? 스님을 연행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은 없습니다. 죄명이 뭐? 공, 공무집행 방해? 대체 무슨 공무를 방해했길래.”
경찰 하나가 용하에게로 다가왔다.
“그게 말입니다.”
경찰관의 손이 몸에 닿으려 하자 용하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제압해 뒤로 꺾었다.
“아, 아… 손, 손. 이 손 좀 놓으세요. 이거 엄연히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심하게 엄살을 부리는 경찰의 입에서 습관적으로 새 나오는 말.
용하는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지으며 매섭게 물었다.
“혹시, 아까 말한 공무집행 방해와 지금 이 공무집행 방해가 같은 말입니까?”
경찰관을 고통을 호소하며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용하는 뿌리치듯 경찰관의 손을 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건 공무집행을 방해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공격을 방어한 정당방위입니다.”
“정당방위!”
지구대 안 경찰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사람 말 한마디에 공무집행 방해가 정당방위가 되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말이란 그런 것이었다. 누구의 처지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공무집행 방해가 되기도 하고, 정당방위가 되기도 하는.
게다가 청원경찰은 미리 알리지도 않고, 은행을 찾은 고객의 몸에 손을 댔으니, 마땅히 응징해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인공은 긴 세월 영춘권과 검술을 연마한 무술 고수가 아니던가.
“형님…….”
인공을 부르는 용하의 목소리가 한없이 처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