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미안해. 자네 모르게 해결해서 웃는 얼굴 보고 싶었는데.”
“형님, 그 마음은 알겠는데 좀 어리석었습니다.”
“인정할게. 자네가 어떤 비난을 해도 다 들을 각오가 돼 있어.”
평소 인공답지 않게 풀이 팍 죽어 있었다.
“비난이라뇨, 형님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다 아는데, 비난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정말? 정말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거야? 실수로라도 앞으로 이번 일을 거론한다거나, 걸핏하면 꼬투리 잡는다거나 하는, 그런 치사한 일은 없을 거라고 믿어도 되는 거지?”
이번에도 인공은 그답지 않게 몇 번이고 확인하며 다짐받으려 했다.
“그럼요. 그리고 제가 또 뭘 얼마나 꼬투리를 잡았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뭘 또 아닌 척을 하고 그래? 늘 그랬으면서. 꺼리라도 하나 생겼다 하면, 봉을 뽑으려고 들었잖아?”
“제가요? 그럴 리가요. 저 말입니다. 아무리 가진 거 없이 음지에서 살았어도 치사하게는 안 살았습니다. 그런 내가 왜? 뭐, 뭐가 아쉬워서.”
“원래 돌멩이 던지는 사람은 그 돌에 맞는 사람 심정을 몰라. 하나, 돌멩이에 맞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잊지 못하는 법. 그걸 두고 사람들은 트라우마라고 하더군.”
“아이 진짜, 형님!”
“소리 좀 지르지 마. 무섭단 말이야.”
“이제 장난 그만 치죠.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지나치면 언어도단입니다. 말로 다른 사람이 할 말 없게 만드는 건 행패나 다름없고요.”
“정말 깔끔하게 없었던 일로 하는 거야?”
인공답지 않게 코 먹은 소리까지 내며 종지부를 찍으려 들었다.
“알았으니까 그만하시고, 신도시까지 나온 김에 은행에나 들렀다 갑시다.”
“은행, 무슨 은행?”
“우리 돈, 아무 탈 없이 잘 있나, 한번 보려고요.”
“아, 좋지. 그러잖아도 궁금했는데. 그리고 참! 카페 회원이 그러는데, 은행에서 차주에게 아주 저리로 대출도 해주고 관리도 해준다던데.”
“그래서 가보려고요. 분양하지 않고 임대를 놓으면, 은행에서 부동산 신탁 관리를 해줄 수 있는지 좀 알아보려고요.”
“아, 그래? 자네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좀 늦지 않았나? 오늘은 그냥 돌아가고 내일 다시 나오는 게 좋지 않을까?”
“늦었다니, 기우입니다. 우리가 어떤 고객입니까? 은행 빚 하나 없이 개인 돈 200억이 든 계좌를 가진 차주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 글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제 전화 한 통이면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지점장부터 그 아래로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줄곧 자신감을 내비치는 용하의 태도는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사람 같았다.
인공은 그런 용하의 말이 못내 미심쩍었던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연신 용하를 흘깃거리는 한편, 옅은 기대감 또한 지어 보였다.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 걸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게 분명해.’
이윽고 은행에 도착하자, 용하의 말대로 지점장과 간부급 두 사람이 용하와 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점장은 자기 옆에 공손하게 서 있는 두 명의 간부를 용하와 인공에게 소개했다.
‘소개하겠습니다. 여기 두 사람은 저희 은행 부지점장과 VIP 고객관리 팀장입니다.’
부지점장과 VIP 고객관리 팀장은 용하와 인공에게 명함을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인공은 용하를 흘깃 바라보며 의심의 눈길을 풀었다.
용하는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디입니까?”
“아, 처음이시군요. 저희가 진작 모셨어야 했는데.”
“어디냐고 물었잖습니까?”
“네. 우리 은행 신도시 지점에 예금을 하신 VIP 고객님들 접견하는 곳입니다.”
“접견! 은행 지점장님에게 접견이란 말을 다 듣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영광이라고 말씀하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서론은 이쯤 하고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점장을 비롯해 부지점장과 관리팀장의 표정에 긴장감이 스쳤다.
“두 가지 질문과 동시에 제 질문이 가능한지 아닌지도 확인할 생각입니다.”
용하가 잠시 말을 멈추자, 은행 관계자 세 사람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곧 용하가 입을 뗐다.
“머잖아 건물을 매입할 계획입니다.”
“아, 건물을요?”
긴장감이 역력했다. 건물을 매입한다는 말은 돈을 빼가겠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건물값이 제가 가진 돈보다 좀 비쌉니다. 그래서…….”
용하가 딸막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지점장이 먼저 말을 던졌다.
“대출이 필요하시겠군요.”
“맞습니다. 가장 싼 이자로 말입니다.”
“말씀 안 하셔도 그렇게 진행할 겁니다. 차액이 얼마나 됩니까?”
“100억입니다.”
“건물값이 300억인가 봅니다.”
용하는 대답을 대신해 굳게 다문 입으로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혹시, 결례가 안 된다면… 지역이 어디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신도시입니다.”
“신도시 어디……?”
지점장의 표정은 얼핏 놀란 기색과 함께 대충 어딘지 알겠다는 기색이었다.
“네, 맞습니다. 생각하시는 바로 그 건물.”
“그 건물이 담보물이라면, 국내 시중 은행 가운데 가장 저리로 100억 대출 진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그 건물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인가요?”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 건물의 가치는 향후 얼마나 치솟을지 예측이 불가하다는 게,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업계 관망세입니다.”
지점장의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감추고 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렸다.
‘음, 생각보다 쉽게 모든 게 풀리겠군.’
그리고 줄곧 반신반의해서 지켜만 보던 인공은 물끄러미 용하를 바라보았다.
‘제법이야. 녀석이 요즘 하는 걸 보면, 완전히 망한 줄 알았던 이번 생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감동이 너무 커서였을까, 용하는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은행 관계자가 말했다.
“그 문제는 염려 마십시오. 위임장 써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뭡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 건물 규모가 8층인데, 제가 필요한 건 두 개 층입니다. 다시 말해 1, 2층은 유치원으로 쓸 계획이고, 나머지 여섯 개 층은 임대로 내놓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부동산 임대 및 세입자 관리도 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 부동산 신탁 서비스가 필요하시다는 말씀이군요. 우리 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다양한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그 순간 웬일인지 지점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가능하긴 한데,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조건?”
“네, 조건 말입니다. 저희가 개인의 위임을 받아서 부동산 컨설팅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말씀은…….”
“네. 법인이나 재단처럼 유기체를 설립하셔야 합니다.”
“기업체 말입니까?”
“네. 이를테면 기업체처럼 스스로 생산활동을 하는 유기체 말입니다.”
순식간에 용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평생을 운동만 해 온 놈에게 기업체를 설립하라니. 그런 용하의 속내를 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지점장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인가 보군요. 그 문제는 다음에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거론한다고요? 저는 한시가 급한 일인데.”
“염려 마십시오. 계획에 차질을 빚는 일은 없을 겁니다. 참,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며칠 뒤에 일정을 잡아 주십시오. 그때 부동산 신탁팀과 컨설팅팀 팀장들도 함께 자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도 그동안 고민 좀 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긍정적인 조언 감사합니다.”
은행을 나오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는지, 세상이 온통 어둠에 묻혀 있었다.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전 수련을 마치고 잠시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띠링띠링~
―띠링띠링띠링~
검도 체육관 사무실에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인공이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엥!”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는 인공의 반응이었다. 아니란 뜻이다.
“형님, 죄송하지만 제 전화입니다.”
“네 녀석 전화라고? 근데 벨 소리가 왜 그래?”
“바꿨어요. 형님 전화벨 소리 들으니, 레트로 감성이 좋아서요.”
“아, 그랬어? 이제 별걸 다 따라 하는구나.”
인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여보세요?”
용하가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전화기 속에서 아부성 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안녕하세요? 김용하 고객님. 저 지점장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지점장님.”
―일전에 말씀드렸던 거 말입니다. 오늘쯤 시간을 내실 수 있으신가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두말하면 입 아프죠.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공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러니까,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전화를 끊은 용하는 인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지. 분명 전화 받는 목소리는 밝고 경쾌했는데.’
인공이 고개를 갸웃했을 때였다.
“푸하하하하하핫!”
용하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도 남을 만큼 우렁찼다.
“뭐야? 왜 그렇게 미친놈처럼 웃는 것이냐?”
“푸하하하하하핫!”
“어허, 이 녀석이 실성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인공의 호통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푸하하하하하핫!”
그렇게 세 차례 박장대소를 한 용하는 마침내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형님, 출타할 준비를 좀 하십시오.”
“출타할 준비?”
“네, 출타할 준비요.”
“난 항상 출타할 준비가 된 사람인데.”
“아이참, 그 몰골로 어딜 간다고. 옷을 좀 갈아입으시라고요.”
“옷을? 내가 왜? 그리고 갈아입을 옷도 없어.”
“절에서 입는 그 옷이 전부란 말씀이세요?”
인공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은행 직원이 의심스러워서 신고한 거 아닙니까. 요즘 승려복 차림으로 나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다못해 도복이라도 좋으니 갈아입으세요.”
“아, 인석아. 검도복보다는 승려복이 낫지 않느냐?”
“승려복이 어떻게 더 났습니까? 검도복은 직업을 상징하지만 승려복은…….”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인석아, 내가 입은 가사와 장삼도 직업을 상징하기는 마찬가지야.”
“형님, 정확히 말해 승려가 직업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누가 스님을 직업이라고 하면 화내야 할 사람은 오히려 형님이 아닌가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스님이란 직업이 아닌 구도자가 아니던가.
“알았다. 도복을 입도록 하마.”
“오늘 신도시 나간 김에 형님 옷도 몇 벌 사야겠어요. 혹시 모르니까 중요한 자리에 나갈 수 있게 양복도 두어 벌 사야 할 것 같습니다.”
“양복?”
“네. 요즘 젊은 사람들 점잖은 자리에 갈 때 입는 정장 말입니다.”
“갖출 거 다 갖추려면 한도 끝도 없을 텐데. 양복 입으면 구두도 사야 하고, 벨트도 사야 하고, 지갑도 사야 하는데.”
“사야죠. 필요한 거 다 사드릴게요.”
“설마 그래 놓고, 월급에서 까는 치사한 짓은 안 하겠지?”
“선물입니다.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그리고 말이야. 지갑을 사면 그 속도 좀 채워야 할 텐데.”
인공은 용하의 눈치를 핼끔 보았다.
“형님, 염려 마세요. 지갑 속도 채워드릴 겁니다.”
“아, 진짜?”
칠순 노인의 입가에 해맑은 미소가 피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어디 좋기만 하겠느냐?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구나. 새 옷이라고는 열 살 남짓 됐을 때 명절 기념으로 사준 옷을 입어 본 게 마지막이라.”
인공의 말에 용하는 한숨이 다 나왔다.
“형님, 나중에 말입니다. 지가 필요하니까 이제야 사준다고 속으로 욕이나 하지 마세요. 사실 진작 사드리려고 했던 건데…….”
비통했을 인공의 삶을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뭉글뭉글 울음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