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8
8화
“스님이 무사하신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까부는 건지. 누가 보아도 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저것들은 늙은 것이나 젊은 것이나, 용감한 거야 싸가지가 없는 거야? 늙은 건 싸가지없기가 극에 달해 날뛰더니, 결국 주화입마로 나자빠지고, 저 어린 것은……!’
보현의 한쪽 입꼬리에 옅은 경련이 일었다. 눈빛 또한 매섭게 변해 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 받아 줘서는 안 돼. 하는 꼴을 보니 장난으로라도 받아 줬다가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야. 으흐, 느낌이 안 좋아. 차라리 이참에 멀리,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쫓아 버리는 게 앞으로 닥칠 재앙을 막는 방법일 수도.’
이렇게 마음을 정한 보현은 서늘하게 호통쳤다.
“아니 될 것이오!”
용하는 토끼 눈을 뜨고 물었다.
“왜요?”
“인공 스님은 수양이 깊어 주화입마에 드셨지만, 그대는 수양이 깊지 못하니 필시 객사를 면치 못할 관상이요. 이것이 더는 복호사에 머물게 할 수 없는 이유요.”
쳇! 갖다 붙이기는. 보현이 무엇인가 숨기려 한다는 생각이 좀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
만약 이대로 물러선다면, 진짜 스님을 잃을지도 몰라. 내가 지킬 거야. 반드시 내 손으로 인공 스님을 지켜 내고 말 것이다.
용하가 머릿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본 보현이 물었다.
“公은 지금 복호사에 머물고 싶어 이러는 것이오 아님, 인공 스님을 구하겠다는 일념 때문인 것이오?”
“그런 뻔한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인공 스님은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오. 나 또한 인공 스님에게 그런 사람이고.”
“인공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말이오? 하물며 목숨까지도.”
“두말하면 입 아프죠.”
“그럼, 설산으로 가서 그곳에 살고 있는 흑룡이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를 가져오시오.”
“뭐라고요? 지금 장난하세요? 여의주가 실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오? 괜히 있지도 않는 용의 여의주 따위로 감히, 스님과 거래를 하자는 건 아닙니까?”
“있지도 않은 여의주라, 당치 않은 말이오. 아홉 개의 정파 가운데 아미파만이 여의주를 갖지 못하였소. 그 아홉 번째 여의주를 가져오라는 말이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21세기 사고방식으로 판단했다간 오류를 범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좋아요. 그건 생각 좀 해 보고 답을 드리는 거로 하고 뭐 하나만 묻겠습니다.”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어쩌다 주화입마에 드신 겁니까?”
“우리도 실은 그것을 궁금해하던 참이오.”
뭣이라, 누구보다 그간 있었던 사실을 잘 알면서 어찌 저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들 소행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보현의 대답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의지할 곳 없는 용하는 작은 판단 하나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인공 스님께서 왜 주화입마에 드셨는지 낱낱이 파헤치겠습니다. 대인께서도 협조하시리라 믿습니다.”
용하의 날 선 이 말은 보현에게 쐐기가 되었다.
“제 의견은 묻지도 않고 어찌 그리 당돌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오?”
“의견을 묻지 않았다니요, 제가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왜, 굳이 대인께 의견을 물어야 합니까?”
“뭣이라!”
분노가 극에 달한 보현의 목소리가 심장을 짓눌렀다. 보현은 붉어진 눈시울로 용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숨겨진 표독함이 보였다.
그렇지, 그것이 바로 너의 본모습이지. 인공이 주화입마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아미파를 대하는 용하의 태도는 급격히 달라졌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저는 말입니다. 대인께서 왜 그리 역정을 내시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계속 그렇게 빈정거릴 작정이시오?”
“빈정거리다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단지 궁금하다고 하시니, 궁금증을 좀 풀어드릴까 해서 기회를 드린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역정을 낼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제가 베푼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저 혼자서라도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좀 지나치다 싶은, 용하의 당당함을 목도한 보현은 머릿속이 다 혼란스러웠다.
‘얼치기라 여겼는데, 쉽게 물러설 것 같지가 않구나.’
* * *
전당에 아미파 여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여인들로 순식간에 전당이 꽉 찼다. 탁! 누군가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에 술렁이던 전당이 조용해졌다. 그 틈을 타 아미파 2인자가 보현에게 불만의 목소리로 물었다.
“대인! 어찌하여 그런 애송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겁니까?”
보현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보현의 반응을 보는 아미파 여인들은 얼핏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인자는 보현에게 조금 가까이 입을 가져가 낮은 목소리로 위로하듯 말했다.
“대인! 사실 우리가 인공이란 자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적도 없지 않습니까?”
“전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왜요? 모름지기 주화입마란 수양을 쌓는 구도자의 심인성에서 비롯되지 않습니까? 인공이란 자 스스로 선택한 것을 두고, 어찌하여 우리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곳 복호사는 우리 아미파의 근거지이기 전에 사찰이다. 사찰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잊은 것이냐?”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비록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는 있으나, 사찰은 공익을 중요시해야 하는 장소라는 걸 간과해선 아니 된다. 알겠느냐? 더군다나 이곳 복호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돌리는 보현.
못 본 체하면서도 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2인자.
‘최근 들어 부쩍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사리 분별도 제대로 못 하고. 혹시 그건가?’
지금 아미파의 2인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치매 초기 증상이었다.
2인자는 눈을 들어 보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 * *
“혹시 설산을 아시오?”
“혹시 설산을 아시오?”
설산을 수소문하느라 수없이 외치는 용하의 목소리는 당장에라도 피를 토할 듯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서산을 향해 하루의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용하의 표정은 근심으로 얼룩졌다.
“이를 어쩐다… 한시라도 빨리 설산을 찾아야 할 텐데…….”
저잣거리 행인들의 움직임이 조금 전보다 눈에 띄게 빨라졌다. 폐장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면 저잣거리에 적막감이 흐르고 곧 어둠이 깔릴 것이다.
“일단 오늘은 어디 가서 눈 좀 붙이고 내일 다시 와야겠군.”
일종의 거래 같은 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기 자신과의 거래. 그렇게 바빴던 하루를 정리하고 폐장이 한창인 저잣거리를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였다.
“혹시, 어딜 찾으시오?”
딱히 성별을 특정 짓기 애매한 미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곧 용하는 자기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계집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용하의 눈길이 닿은 곳에 열 살 남짓 돼 보이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다섯 척이 좀 안 되는 적당한 키에, 머리를 단아하게 땋아 내린 계집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어쩔 것이냐?”
비록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용하의 표정은 웬일인지 해맑았다.
“어디서 오셨소?”
분명 예의를 갖추고는 있었으나 소녀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당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다짜고짜 물어 오는 소녀를 바라보는 용하의 표정은 딱 그거였다. 어이없네!
하지만 표정은 곧 강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건 알아서 무엇 하려고 그러느냐?”
“저잣거리에서 벌써 세 번째 보는데, 매번 어딘가를 찾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소녀의 말에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아, 나를 알고 있었느냐?”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총명함. 다소 맹랑하긴 해도 어리석은 어른보다 나은 참신한 기운.
생각이 여기까지 머물자 곧, 용하는 소녀의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접어 자세를 낮췄다. 말투도 달라졌다. 조금 전 막 대하는 듯했던 퉁명한 말투가 자상하게 바뀌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았느냐?”
“오늘 처음 본 게 아닙니다. 얼마 전 장 씨네 도포 훔쳐서 꽁지 빠지게 줄행랑치지 않았소? 그때 公을 수상히 여겨, 오늘도 줄곧 따라다녔소.”
거침없이 쏟아내는 소녀의 말에 용하는 짐짓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 그때 도포를 도적질하는 걸 본 모양이구나.”
“그럼요, 어디 보기만 했겠소.”
“그런데 어찌하여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신고? 그것이 무엇이오?”
“신고가 무엇인지도 모른단 말이냐?”
“이곳 저잣거리 정보란 정보는 내가 다 가지고 있지만, 그런 말은 처음 듣소.”
소녀의 말에 용하는 귀가 솔깃해졌다.
“저잣거리의 정보란 정보는 다 가지고 있다고 하였느냐?”
“그리 말했소. 그게 뭐 잘못되기라도 했다는 것이오?”
소녀가 무슨 말을 해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의 당돌한 태도가 한 가닥 희망을 전하는 듯했다. 용하는 소녀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웬일인지 강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이 아이는 모든 걸 정확히 알고 있어. 마치 어느 마을 이장이 자기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설산에 대해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현듯 용하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기특하구나. 그럼 뭐 하나만 물어도 괜찮겠느냐?”
“얼마든지요. 하지만 돈 될 만한 정보는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할 것이오.”
“알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거라.”
“좋소, 말씀해 보시오.”
“그날 내가 혼자였느냐,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
소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저잣거리 초입과 용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소녀가 이런 태도를 보인 건, 용하와 인공 그리고 두 사람을 쫓던 사내를 의미했다.
“음, 정확히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 좋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이 있느냐?”
“그럼요. 그 일로 그날 이 저잣거리가 얼마나 술렁였는데 그걸 기억 못 하겠소? 그리고 지금부터는 제 대답 한마디 한마디에 비용이 발생할 것이오. 그래도 괜찮겠소?”
“아무렴, 괜찮고말고.”
“그럼 접수비로 현금 다섯 문부터 내시오.”
“다섯 문?”
“네, 다섯 문이요.”
대체 다섯 문이 얼마를 말하는 거야? 용하는 다섯 문의 가치가 얼만큼인지 또, 어떻게 대금을 치러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슬슬 짜증이 났다. 하지만 욱하는 순간 모든 걸 잃고 만다는 생각에 참고 또 참아야 했다.
“내 말이 어찌 들릴지 안다. 하지만 말을 해 주어야 내가 방법을 찾을 것이다.”
“말해 보시오.”
“음, 다섯 문이 물건으로 치면 얼마나 되겠느냐?”
참으로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비록 어렵게 새 나온 말이었지만, 소녀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찌하여 삼척동자도 아는 것을 어른이 돼서 그걸 모르시오?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소.”
“흠흠, 그러게나 말이다. 지나가던 개가 다 웃더라도 이를 어찌하겠느냐, 내가 그것을 모르니.”
“참으로 딱하시오. 그건 그냥 돈 안 받고 말해 주겠소.”
“그래, 그렇게 해 준다면 참으로 고맙겠구나.”
“지난번에 도포를 훔쳐 달아나지 않았소?”
“예끼! 훔쳐 달아나다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래서 얼마인 게냐?”
“그 도포 값을 두 번 치른다 생각하시면 될 것이오.”
소녀의 말에 용하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입을 뗐다.
“그럼, 여기서 잠깐 기다리거라. 내 금방 가서 도포 두 벌을 가져오겠다.”
“또 훔칠 작정이시오?”
“그게 아니라, 너에게 정보에 상응하는 값을 치르려면, 도포 두 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포목점에 가서 도포를 사 오려는 것이다.”
“값을 치르기 위한 거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소.”
“그럴 필요가 없다니, 그게 다 무슨 말이냐?”
“도포로 치르든, 문(구리동전)으로 치르든, 그건 괘념치 않을 것이오. 다만 어떤 것으로 값을 치를 건지, 그것만큼은 분명히 하셔야 할 것이오.”
마치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듯했다. 용하는 무엇으로 값을 치르면 소녀가 만족해할까, 고심했다.
소녀는 말똥하게 뜬 눈으로 용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 소녀와 눈을 맞춘 용하는 생각했다.
‘어찌하여 저리도 해맑은 눈으로 사람을 옥죄는 것인가.’
어떤 답이든 해야 했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기대감이 큰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그렇다면, 용하가 꺼내든 카드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