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이런 기분을 뭐라 해야 하나?”
“뭘요?”
“이런 걸 두고 기대감이라고 하나?”
“뜬금없이 뭔 헛소리예요?”
“너는 애가 꼭, 큰일 앞두고 있을 때마다 싸가지없이 굴더라.”
“제가요? 제가 언제?”
“그냥 하지 말까?”
“에이, 형님. 치사하게 또 그걸 볼모로 잡습니까?”
“일할 맛이 안 나게 하잖아. 네 녀석이 지금!”
“제가 언제요? 괜히 형님 혼자서 자격지심 때문 아닌가요?”
“알았어, 알았다고.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급성장하는 네 녀석 주둥아리의 성능을 내가 무슨 수로 당하겠느냐?”
“뭘 또 그렇게까지.”
“자네 약혼녀를 만난다는 게 말이야. 이게 두려움인지 기대감인지 모르겠거든.”
“두려울 리는 없고, 기대감 아닐까요?”
“이상하게 긴장되고 떨려.”
“왜 그럴까요?”
“그러게, 왜 그럴까? 적잖이 기대되는데, 이상하게 떨려.”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알 것 같다니, 귀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네 녀석이 알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형님에 비하면 아직 한참 어리지만,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나이 먹은 게 자랑이냐? 한 살이라도 어린 게 좋은 거지.”
“알겠습니다. 제가 형님을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헤헤, 이제 네 녀석의 그 얕은수에 넘어가지 않아. 그렇게 날 안심시켜 놓고, 게릴라처럼 급습하려는 수작인 거, 누가 모를 줄 아느냐?”
“형님도 참. 형님! 그거 의심병입니다. 아님, 피해망상!”
“네 녀석은 내가 의심병 환자에 피해망상 정신질환자였으면 좋겠냐?”
“이봐, 이봐. 순식간에 귀책 사유를 내 쪽으로 돌리는 저 능숙함.”
그렇게 입씨름하는 동안 인공의 두려움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강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늘 용하의 발길을 돌리게 했던 긴장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형님! 형님과 말장난해서 그런지 긴장감이 사라졌는데요.”
“긴장감? 자네 긴장하고 있었어? 이상하네! 약혼녀를 만나는데,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농담하지 마세요.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하긴, 자네 때문에 약혼녀가 그 지경이 됐으니, 긴장될 만도 하지.”
“일단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말을 더듬는다거나 식은땀을 흘리면, 형님이 작전대로 잘 좀 해 주십시오.”
“작전?! 아아, 그거. 신도시에 유치원이 하나 생기는데, 거기서 선생님 모집한다더라?”
“그렇지요. 일단 그렇게 말을 꺼내놓고 미숙이 반응을 좀 보자고요.”
“알았어. 그런 거라면 뭐, 훗!”
“연기 잘하셔야 합니다. 괜히 어정쩡하게 했다가 일을 더 어렵게 만들지 마시고.”
“이거 왜 이래? 내가 그랬잖아, 연기하면 메소드! 메소드하면 이 최강땡추인공이라고.”
“그 말, 믿을게요.”
믿는다는 대답이 왠지 체념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두 사람은 발걸음을 성큼 내디뎌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장이 일단의 의료진을 이끌고 로비까지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극진한 대접에 인공은 의아해하면서도 한편, 우쭐한 기색이었다.
“용하, 이 병원에서 우리를 귀빈 대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들릴 듯 말 듯 한 인공의 물음에 용하 역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참, 그 얘기를 안 했네요.”
“뭐?”
인공의 미간이 심하게 좁아졌다. 극도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아, 인상 좀 쓰지 마세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니까.”
그제야 인공은 옅은 한숨으로 안도했다.
“형님, 저들은 제가 보건복지부 직원인 줄 알아요.”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야?”
“지금은 저렇게 우호적이지만,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말입니다.”
용하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왜 말을 하다 말고… 아, 마렵구나. 실은 나도…….”
용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아무렇게나 넘겨짚는 인공이 꼴 보기 싫었다.
“이러니 내가 믿을 수가 있나. 뭐, 메소드라고? 아무튼, 됐고요. 잊지 마세요. 보건복지부!”
“알았어. 그런데 자네도 거, 아무 데서나 막 그렇게 사람 면박 주고 그러지 마. 주눅 들어서 평소 잘하던 것도 못 하겠어.”
“알았으니까, 징징거리지 좀 마세요.”
“알았어. 내가 뭘 그렇게 징징거렸다고…….”
자꾸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공. 그를 지켜보는 용하는 그저 불안할 따름이었다.
‘보자… 형님이 괜히 징징거리고 어리광을 부릴 때, 어떤 일들이 있었더라…….’
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대리기사로 고객인 인공을 처음 만나 제1외곽순환도로를 달릴 때, 무척이나 치근거렸던 인공의 어리광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무림에서는 장설 앞에서 보였던 모습. 그리고 지금.
‘형님의 태도에는 일관성이 있었어.’
일관성. 그것은 다름 아닌 대안이 준비돼 있을 때였다.
‘그렇다면, 형님의 어리광이나 칭얼거림은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
어두웠던 용하의 얼굴이 화사하게 변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제가 뭘요?”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냐? 자네 얼굴에 드리워진, 그 나사 풀린 것 같은 모호한 표정이.”
그 순간 용하는, 못된 짓 하다 들킨 사춘기 청소년처럼,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흠, 제깟 녀석이 아무리 까불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이지.’
안절부절못하는 용하를 바라보는 인공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서두르거라. 병원장이란 작자와 너무 멀어졌어.”
인공은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눈길을 건넨 후, 병원장 일단을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혀갔다. 일순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인 용하는 한 홉의 숨을 들이켤 만한 시간을 두고 인공을 총총히 뒤따랐다.
미숙이에게로 가까워질수록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시곗바늘 소리도,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도, 하물며 숨소리조차 점점 커져만 갔다.
‘형님! 저는 형님만 믿습니다.’
용하의 의식 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병원 전역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윽고 저만치 앞서가던 병원장 일단이 한 병실 앞에서 멈춰 섰다. 그 뒤를 부지런히 따르던 용하와 인공은 마치 급브레이크 걸린 사람처럼 놀란 기색으로 제자리에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곧, 병원장이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마치 용하를 향해 날아오는 비수처럼 느껴졌다. 일순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 바로 그 순간 병원장이 이리 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저 말입니까?”
용하는 확인차 입 모양으로 물었다. 그리고 병원장이 어떤 대답도 하기 전에 이미 그쪽으로 거리를 좁혀 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인공도 발 빠르게 용하의 뒤에 바짝 붙었다.
“음, 무엇보다 환자의 안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환자에게 자극이 되는 요소들이 있으면 안 되니,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용하는 대답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 들어가지.”
―드르르르륵!
누군가의 손으로 미닫이문이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병원장과 일단의 의료진이 성큼 걸음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갔다. 의료진에게 가려져 미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후―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용하는 병실 안쪽을 빠끔 바라보았다. 일전에 왔을 때 갇혀 있던 유리로 된 병실에 비하면 훨씬 아늑하고 햇볕도 잘 드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병실이었다.
“이보게, 김 관장. 뭐, 일반병실하고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인공이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게요. 왠지 좋은 예감인데요.”
“아, 그래? 그럼 됐고.”
그때였다. 병원장의 지시로 의료진들이 둘로 갈라졌다. 둘로 갈라진 의료진들 속에 미숙이 보였는데, 환자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었다. 지금 당장 퇴원이라도 하려고 만반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미숙아…….”
용하는 들릴 듯 말 듯, 그러니까 별 기대감 없이 미숙이를 불렀다. 그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미숙이는 용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용하의 눈에 보이는 미숙이의 눈망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누구?’
일순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했다. 바로 그 순간 미숙이는 한달음에 용하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용하를 부축해 안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빠…….”
“미숙아!”
이제야 자기를 알아보고 눈물 흘리는 미숙이를 끌어안으며 오열하는 용하.
병원장은 의료진들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하고는 먼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료진들은 병원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던 인공은 용하의 발길질에 결국 밖으로 밀려났다.
“예끼, 이 이기적인 인간아. 저 인간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봐줄 수가 없다니까. 도와 달라고 싹싹 빌 때는 언제고 말이야. 두고 봐라. 앞으로 네 녀석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테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궁금했던지, 문틈으로 안을 빼꼼히 들여다봤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보다 길었다. 인공은 다리를 두드리며 지루함을 표했다. 의료진도 지루했던지, 자판기 커피를 뽑아오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 광경을 더는 두고 봐서는 안 되겠던지, 마침내 병원장이 용단을 내렸다.
“일단 각자 일 보세요. 우리가 필요한 자리는 아닌 것 같으니.”
병원장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인공이 한달음에 다가와 물었다.
“그럼 저는요?”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떡합니까? 다 큰 어른이 알아서 하셔야지.”
공공연하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주억거리며 구시렁거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알겠습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일 보세요. 다 큰 저야 뭐,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병원장은 따가운 곁눈질로, 그러잖아도 쓰린 가슴에다 매운 고춧가루를 뿌려놓고는 저만치 멀어져 갔다.
인공은 병실 앞을 서성거렸다. 원무과 안쪽에 걸린 벽시계가 두 시를 가리켰다.
“뭐야, 벌써 두 시야. 점심도 못 먹고 이게 뭐람! 얘들은 점심도 안 먹나?”
―꼬르륵!
점심시간이 지났음을 의식해서인지 배에서 소식을 보냈다. 인공은 살금살금 병실 문을 조금 열었다. 문틈으로 용하와 그의 약혼녀가 마주 앉아 있는 게 겨우 보였다. 아까 본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저렇게 마주 보고 앉아서 뭘 하는 거야?”
두 사람의 표정으로 보아 그리 나쁜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아니, 재회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실력 발휘할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냐? 메소드연기의 진수가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벼르고 벼렸는데 말이야.”
그렇게 혼자 투덜거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띠링띠링~
―띠링띠링띠링~
인공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웬 전화?”
뜬금없는 전화벨 소리에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용하였다.
“왜? 그거 몇 걸음 걷는다고 몸이 닳아 없어지기라도 한다더냐? 잠깐 나오면 될 걸 가지고, 코앞에 두고 전화질이야, 전화질이.”
―형님… 그게 아니고… 미숙이가… 미숙이가… (훌쩍) 예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용하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토록 쓴소리를 내뱉던 인공의 눈에도 얼핏 눈물이 고였다.
* * *
“사범님, 오빠가 저 취직시켜 준대요.”
“아, 벌써 다 얘기한 거야?”
“그럼요. 신도시에 새로 생긴 유치원이라니까 좋아하던데요.”
“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먼. 그나저나 메소드연기의 진수를 보여 줄 절호의 찬스는 그냥 날아가 버린 거야?”
“형님! 오늘 보여주신 형님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메소드연기의 진수였습니다.”
“자네 지금 장난해?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묵묵히 기다려 주신 거요.”
“아, 그거야 두 사람이 제대로 영화를 찍어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기다린 거고.”
“형님! 형님 원래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요.”
“그런 캐릭터가 아님, 뭐, 내가 무지몽매한 불한당이라도 된단 말이냐?”
“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아세요? 갑자기 쳐들어올까 봐.”
그때였다. 두 사람의 대화가 재미있게 들렸던지, 미숙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얼핏 미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