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잠깐 화장실 좀 갈 수 있어?”
자유로를 질주해 가는 셰어링카에서 인공이 한 말이다.
“급합니까?”
용하가 난색으로 묻자, 인공은 흘깃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급하지 않으면 자네 약혼녀도 있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겠느냐?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본능적인 것도 하나 조절을 못 하느냐고 욕할 거 뻔히 알면서도, 그걸 무릅쓰고 참다, 참다, 겨우 입을 뗄 용기를 냈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나이에 걸맞게 좀 참았으면 좋았을걸.”
용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대답했다.
“너… 참… 그럴 땐 좀 고민하는 기색이라도 하고 발설을 하는 게 예의 아니겠느냐?”
“예의?! 제가 왜요?”
이번에도 용하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었다. 뭐랄까, 좀 도도하고 냉정하다고나 할까? 아님, 버르장머리 없다고 보았을까? 인공은 평소처럼 호통을 쳤다. 하지만 미숙이를 의식해서인지 낮은 목소리였다.
“이 녀석아, 그럴 땐 좀 머뭇거리기도 하고, 생각하는 척도 좀 하고, 그러는 게 사회생활 잘하는 거야.”
“새삼스럽게 형님 앞에서 제가 처세술을 펼칠 이유가 있나요?”
“오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말은 참 잘하네요.”
미숙이의 말이 왠지 자기를 응원하는 것으로 느끼는 인공. 우쭐해서 미숙이를 돌아보고는 히죽이 웃으며 물었다.
“그렇죠? 이 녀석이 참, 말은 잘하죠? 그것도 아주 번지르르하게 말입니다.”
“형님, 입에 침 한 번 바르시고 다시 말씀하시죠. 말을 잘하는 게 아니고, 말이 진짜 많은 거라고.”
“너는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을 가지고, 꼭 그렇게 곡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냐?”
“곡해가 아니고,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잖아요. 미숙 씨, 이 녀석 진짜 말 많죠?”
용하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던지, 인공은 안절부절못했다. 듣고 있던 미숙이 또한 난처한 기색이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다니.
“오빠, 그런 거 아니거든요.”
차 안은 세 사람의 미묘한 감정싸움으로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그 기운을 가장 먼저 느낀 건 역시, 인공이었다.
‘이대로 두면 우리 세 사람의 관계는 물론, 오늘 퇴원한 미숙 씨 건강에도 도움 될 게 없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한 말이 다름 아닌.
“후훗, 제법이구나. 이제 남의 속도 들여다보는 것이냐?”
“사범님, 이 오빠 원래 말발 세고, 밀당(밀고 당기기) 잘해요.”
“오호라, 이 녀석이 원래 그런 녀석이었구먼.”
“미숙아, 넌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적어도 난 너한테는 말발 조진… 아니, 말 많이 한 적 없고, 신경전 벌인 적 없거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오빠는, 나한테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회한 연인의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형님, 휴게소 들렀다 갑시다. 우리가 뭐 화장실 잠시 들릴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사람도 아니고.”
“근데 휴게소는 반대편에 있는데.”
“괜찮습니다. 저만큼 가서 자유로를 잠시 빠져나갔다가 반대편으로 다시 들어오면 되죠.”
“그럼 갈 때는……?”
“또 저만큼 반대쪽으로 가서 자유로에서 잠깐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되죠.”
“엥! 듣고 보니, 그런 방법이 있었네! 그렇게 쉬운 방법을 두고 괜히 고민했네! 그려.”
“사람 일이란 게 생각하기 나름이죠.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게 세상 돌아가는 일 아닌가요?”
인공의 말을 받아치는 용하를 바라보는 미숙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예전에 보였던 그 유치한 말장난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항상 말뿐이었던 용하. 미숙이 기억하는 용하는 그랬다.
그러는 사이 셰어링카는 자유로를 빠져나가 일반도로를 잠시 달려 다시 자유로에 진입했다.
“형님, 견딜 만해요?”
“아, 그럼! 이 정도쯤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겨우 견디고 있었다.
“정말이죠? 한 2분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거죠?”
“2분! 저기 코앞에 보이는 게 휴게소 같은데, 2분은 무슨 2분?”
“차들이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에서는, 가까워 보여도 실제 달려보면 그렇지 않아요.”
“알았어. 어서 달리기나 해.”
“법규는 지켜야죠. 괜히 찍히면 그거 다 돈이거든요. 게다가 벌점까지.”
“아직도 돈타령이야, 촌스럽게? 돈?!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줄게.”
“벌점은요?”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고.”
“벌점은 용빼는 재주 없어요. 그냥 주는 대로 먹는 수밖에.”
“알았어. 더는 말 안 할 테니까, 살살 가.”
“아 눼~”
이제 막 휴게소로 진입하는 셰어링카.
차 안에서 바라다보는 광경은 어린 시절 소풍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끼게 했다.
―덜컹!
“뭐야? 왜 이렇게 차를 거칠게 세워? 불만 있으면 말로 해.”
“아 눼, 죄송합니다. 대리운전 뛸 때 버릇이 아직 남아 있나 보네요.”
“못된 건 빨리빨리 버려. 오래되면 민폐야.”
“명심하겠습니다. 어서 볼일 보고 오세요.”
“실은 볼일이 급했던 건 아니고, 카페 자유게시판에 여기서 파는 국수가 맛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랐던 적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김에 나도 한번 먹어봤으면 해서.”
“하, 이 형님이 진짜! 좋아요, 온 김에 저도 한번 먹어보죠. 얼마나 맛있는지……. 미숙아, 너도 내려.”
“아니, 오빠 난 됐어.”
“왜, 한 그릇 먹고 가자.”
“나 약 먹어야 해서, 정해진 식사 시간 이외에 뭐 먹으면 안 돼.”
“아 참, 그렇구나. 이를 어쩌지…….”
“나 신경 쓰지 말고 사범님하고 맛있게 먹어. 사범님,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국수를 먹자고 제안한 인공은 괜히 머쓱했다.
“진짜 괜찮으니까, 드시고 오세요. 자꾸 그렇게 미안해하시면 제가 더 난처해지잖아요.”
다들 심각한 분위기였다. 그깟 국수 한 그릇이 뭐라고. 그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냥 긴 여행 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국수 한 그릇 먹는 것뿐인데.
“그럼, 차 안에서 꼼짝 말고 있어. 문 꼭 잠가 두고.”
“걱정하지 마. 내가 뭐 어린아인가?”
용하는 미숙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다녀올게.”
“알았어, 오빠. 국수 맛있게 먹고, 올 때 생수 한 병만 사다 줘.”
“생수?”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대답했다.
“알았어. 뭐 또 필요한 건?”
미숙은 잔잔한 미소로 용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녀올게.”
용하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인공과 함께 매점 쪽으로 멀어졌다.
매점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입이 쩍 벌어졌다.
“뭐야,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형님, 다음에 오죠?”
“무슨 소리!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서자고? 나한테는 좋은 기회 같은데!”
인공은 휴대전화기를 꺼내 서둘러 카메라 모드로 바꿨다. 그러고는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을 두어 차례 찍었다.
“형님, 지금 뭐 하세요?”
“뭐 하긴, 인석아. SNS에 올리려고 스샷 찍는 거다, 왜?”
“그나저나 시간이 꽤 길어질 것 같은데요. 가서 미숙이 데리고 올까요?”
“음, 조금만 기다려 보자꾸나. 일반식당보다 훨씬 빠르게 음식이 나오니 예상보다 빨리 우리 차례가 올 것도 같구나.”
인공의 말에 용하의 시선이 배식구 쪽을 향했다. 정말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의 손이 마치 국수를 만들어내는 기계 같았다.
“네, 말씀대로 금방 우리 차례겠네요.”
그렇게 십여 분을 기다려 마침내 용하와 인공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갑자기 주방을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잘 만들어내다 우리 차례가 되니까 나가버리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아니 주방 직원이 자기 맘대로 위수지 이탈을 해도 되는 겁니까?”
“신고해버릴까?”
“딱 열만 세고, 안 나타나면 그때 하죠.”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의 입에서 비난의 말들이 빗발치고 있을 때였다. 조금 전 나갔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시 들어왔는데, 그의 어깨에 무엇인가 잔뜩 얹혀 있었다. 아마도 국수 만들 재료가 떨어졌었나 보다.
재료를 준비하느라 또 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용하는 조바심을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인공 또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국수 장사도 실은 미안했던지, 그동안 국수를 마느라 바빠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인사치레를 다 했다.
용하와 인공은 입이 헤벌어져 테이블로 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 인공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수 그릇을 찍어 저장했다.
“형님, 시간 없습니다. 빨리 먹죠?”
대기 순서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한 탓에, 조바심이 일었다.
“왜 그렇게 조급해? 그래 봤자 몇 초 차이야. 이렇게 사진을 찍어 두면, 카페 블로그는 물론, SNS가 얼마나 풍성해지는 줄 알고 하는 소리냐?”
“형님, 지금 그런 게 중요합니까?”
“그럼 아니란 말이야? 우리 수련생들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건데.”
아뿔싸!
생각해 보니, 망한 줄 알았던 용하의 삶이 풍성해진 것도 알고 보면, 수련생들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인공 그러니까, 인공이 잘 키워 온 그의 스무스카페 공이 컸다.
“알겠습니다, 형님. 제가 조급한 마음에 잠시 잊고 있었네요.”
“자, 서두르자꾸나. 스샷 찍느라 허비한 몇 초, 만회해 주마.”
말을 끝내기 무섭게 인공은 국수 그릇을 들더니 입 안에다 부어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쩝쩝!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용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사람이야? 국수 흡입기야?’
불과 수 초 만에 국수를 먹어 치운 인공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서둘러 가보자꾸나. 미숙 씨 기다리겠다.”
아직 반도 못 먹은 용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매점을 나온 인공은 느긋하게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형님, 어디 가세요?”
“먹었으니 화장실을 들렀다 가야 하지 않겠느냐?”
에효!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거야. 형님! 다녀오세요. 저 먼저 갈게요.”
“그래,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가마.”
“차 세워 둔 데는 알죠?”
“예끼, 이 사람아! 내가 무슨 노망이라도 난 줄 아느냐?”
“그럼 잘 찾아오세요.”
용하의 발길은 이미 셰어링 카 쪽으로 향해 있었다.
이제 막 주차 존에 들어섰을 때였다. 저만치 보이는 셰어링 카 안에 미숙이 보였다. 그녀를 보자 용하는 그제야 번쩍하고 떠올랐다.
“아차, 생수!”
용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려 매점 쪽으로 달려갔다.
차 안에서 그 광경을 본 미숙은 미간을 좁혔다.
‘저 인간이 또 어디로 사라지려고…….’
미숙의 눈은 용하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곧 용하가 매점 앞에서 생수 사는 것을 보고서야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미숙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마도, 어느 날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린 약혼자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가 아닐까.
생수를 들고 셰어링카 쪽으로 달려오는 용하. 자유로를 달리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들로 위태로워 보인다.
“오빠, 천천히 와…….”
차창을 내리고 크게 외쳐야 할 걸, 그러지 못했다. 무엇인가 목청을 짓눌러 말이 새 나오지 않았다.
이제 막 과속으로 달려온 RV 한 대가 용하 앞을 휙! 지나갔다.
RV가 지나가고 나자 용하는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철렁!
미숙은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에효, 남의 속도 모르고 짓궂기는. 사람 쉽게 안 변한다니까.”
겨우 안도하며 용하에게 시선을 다시 한번 줬을 때였다.
이제 막 자유로에서 휴게소로 진입한 탱크로리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당장에라도 덮칠 기세로 용하를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용하는 미숙이를 바라보는 데만 정신이 팔려 더욱 빠르게 걸음을 내디딜 뿐이었다.
그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목도해야 하는 미숙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빠!”
앙칼진 미숙이의 목소리는 한 소절 메아리가 되어 휴게소 전역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