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대치동 관장이 보낸 입시학원 원장은 마치 드라마 속 연기자만큼이나 우아하고 교육자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만일 미숙이 예민했더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용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물며 매사에 긍정적이고 착한 미숙이 눈에는 아니, 머릿속에는 그저 리스펙! 그러니까 본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부러움을 사는 입시학원 원장이 면접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기상천외했다.
“여기 신도시는 임대료가 얼마나 할까요?”
“네?”
미숙은 의문과 놀람의 딱 중간쯤 되는 표정과 어투로 되물었다.
“아, 제 말이 어려웠습니까? 음, 그러니까 제 말은, 여기 신도시에 한 200평쯤 세를 얻고자 한다면 시세가 얼마나 할까? 뭐, 그런 걸 묻는 겁니다.”
얼핏 부동산 업자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식견.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유치원 선생이 그런 걸 알아야 하나요?”
“그럼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은?”
“면접 자리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왜요? 그걸 알아야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가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뭐 그런 지표가 생기는 거잖아요. 사랑으로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 하나하나가 다 돈이라는 생각도 필요한 게 신도시 교육의 현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변두리라면 몰라도.”
변두리라면 몰라도, 라는 말에 용하와 손잡고 희망에 부풀어 검도 체육관을 얻으러 다녔을 때가 전광석화처럼 스쳤다.
‘교육자로서 자세나 마음가짐에 비중을 두느라 자칫 간과했을지 모를 말이다.’
미숙은 자기도 모르는 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입시학원 원장의 눈에는 깊이 수긍하는 기색으로 비쳤다.
“듣던 대로 훌륭한 교육자시네요.”
입시학원 원장의 말에 미숙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듣던 대로?’
제일 먼저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은 인공이었다.
‘혹시 소개하면서 과대 포장한 거면 어쩌지…….’
미숙은 가늘게 떨리는 눈으로 입시학원 원장을 직시했다.
한편 입시학원 원장은, 어떻게 하면 유치원 건물 한 개 층을 좀 싼 임대료로 통째로 얻어 입시학원을 차릴 수 있을까, 그 궁리를 하고 있었다. 신도시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내로라하는 건축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빼어난 건축물.
이런 생각에 입시학원 원장의 입가엔 싸구려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런 입시학원 원장을 바라보는 미숙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얼마나 과대 포장했으면 면접관 표정이 저렇게 화사한 걸까?’
바로 그 순간 미숙의 표정에 얼핏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어쩌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실추된 자신감 때문이었다.
‘너무 좋아하잖아, 부담스럽게 말이야.’
미숙의 얼굴이 서서히 아래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합격입니다!”
느닷없이 던져진 입시학원 원장의 목소리는 자못 기대에 차 있었다.
“네? 합, 합격이라고요?”
도대체 한 게 뭐 있다고 합격이라는 건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저어…….”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조금 전 기대에 찬 목소리는 어느새 우아하게 변해 있었다.
“아, 아닙니다.”
아직 궁금한 게 많았지만, 미숙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일단 합격했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는 없잖아.’
한편 용하와 인공은 차 안에서 미숙이 면접을 잘 치르고 오기만을 손에 땀을 쥐며 기다리고 있었다. 엄밀하게 말해 면접을 잘 치르기를 바라는 게 아니고,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잘하고 있겠죠?”
“별일 없을 거야. 대치동에선 그래도 센스 좀 있다 하는 원장이라고 했으니까.”
“아, 가짜 면접관 말고 미숙이요.”
“자네 약혼녀가 왜?”
“혹시 해서요.”
“자네 약혼녀에게는 이 모든 게 팩트잖아. 이유야 어떻든 경단녀나 다름없었는데, 이번에 오랜 공백을 깨고 취직을 하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요. 그래서 괜히 쓸데없는 말로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나올 테고, 그러면…….”
용하의 말을 듣는 인공의 얼굴 역시 갑자기 불안한 기색으로 변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 여자들이란 원래, 눈곱만큼이라도 공감대가 생겼다 하면, 사돈에 팔촌 얘기까지 못 하는 소리가 없잖아.”
용하의 근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지금이라도 가서 못 하게 할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용하는 긴 한숨으로 대답했다.
“그만두세요. 그게 더 이상해요.”
“알았어. 참,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정색하고 그래?”
두 사람 사이에 기류가 잠시 서먹서먹할 때였다. 저만치에 미숙이 차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 별 탈은 없어 보인다.
“형님! 잘된 거 맞죠?”
“자네 눈에도 잘된 거로 보여?”
“네, 형님. 형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거 맞죠?”
“사람 보는 눈,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조금 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이상한 기류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둘은 나사 풀린 사람들처럼 헛웃음을 지었다.
“쳇, 자축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저녁때 어디 가서 맥주라도 한잔해야죠.”
“맥주? 막걸리로 하는 게 어때?”
“맥주, 막걸리 다 파는 데 가서 마음껏 한잔하죠.”
“그래? 오늘 제대로 한잔 꺾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런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셔요?”
“좋아, 콜! 대신 내일 오전 수련 펑크 내면 그땐.”
“그땐 뭐요?”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아무리 퍼마셔도 수련은 펑크 내지 말자! 뭐, 그런 얘기지.”
“그래야죠! 그게 무도인의 자세 아닙니까?”
“무도인의 자세? 거,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그럼 오늘은 자네 말만 믿고, 그동안 못 한 회포 한번 제대로 풀어보세.”
* * *
다음 날 아침.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다.
―삐걱!
검도 체육관의 사무실 문이 열리며 인공이 나왔다. 어기적거리며 걷는 폼이 아직 잠이 덜 깬 게 분명했다.
“형님! 아침 일찍 어디 가세요?”
어제 대끈 한잔한 사람치고는 목소리가 비교적 경쾌했다.
“수련생들 오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뛰고 오려고 그런다. 왜?”
“별로 마시지도 않았잖아요.”
“그래도 모르는 일 아니냐. 괜히 수련생들 앞에서 사범으로서 지켜야 할 자세를 저버린다면 그건 무도인의 자세가 아니지 않느냐.”
“그럼 좀 있다 저하고 같이 뛰어요.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데, 굳이 이렇게 일찍 나갈 필요 없잖아요.”
“아, 나는 말이다. 동네 몇 바퀴 돌면서 땀 좀 쫙 빼고 사우나라도 들렀다 올 생각이다.”
“아, 그래요? 사우나! 잠깐만 기다리세요. 저도 같이 가요.”
이윽고 두 사람이 동네를 크게 세 바퀴째 돌고 있을 때였다. 동녘 하늘이 황금색으로 변하며 말갛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형님, 저것 좀 보세요.”
“나도 이미 보고 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일출이구나.”
“죄송합니다. 속세를 떠난 형님을 산에서 모시고 와서, 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신세만 지고 있네요.”
“인석아, 내가 언제 누구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더냐? 자네 제안에 내가 자발적으로 내려온 것이니, 그런 생각 하지 말거라.”
“형님…….”
용하의 목소리에 눈물이 고였다.
“자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나를 모독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입조심하거라.”
“…네, 형님!”
“근처에 갈 만한 사우나가 어디 있느냐?”
“한 두어 바퀴 더 뛰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두어 바퀴 더 뛰어서 땀이 나겠느냐?”
“속도를 좀 올려 볼까요?”
용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의 속력은 무섭게 빨라졌다.
“경공술 쓰기 없기!”
“축지법 쓰기 없기!”
물론 농담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던진 말에, 주인 따라 산책 나온 포메라니안이 힐긋 곁눈질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두 사람은 한 사우나의 김이 서린 한증막 안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더운 쑥 향이 폐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다.
“인석아, 이렇게 좋은 데가 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안 데려온 거야? 이 매정한 놈아.”
“몰랐죠. 형님이 이렇게 사우나를 좋아하는지.”
“사우나 싫어하는 사내도 있더냐?”
“솔직히 형님이 사우나를 즐길 거라 짐작할 만큼 깔끔한 타입은 아니잖아요.”
“깔끔한 타입이 아니면?”
“제가 형님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음, 뭐랄까… 한 일 년에 한 번 정도? 아님, 명절날에만 겨우 세수나 할 그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분명 인공이 화를 버럭 내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분은 아무리 자극적인 말을 해도 끄떡없을 만큼 노곤하고 좋았다.
“나 그렇게 지저분한 놈 아니다. 피부색이 구릿빛이어서 간혹 그런 오해를 사긴 하지만, 나 말이다. 길 가다가도 사우나 보이면 들렀다 가는 사람이야.”
“그렇게 좋아하세요, 사우나를?”
“기혈을 순환시키는 데 이만한 게 없거든. 오래전부터 즐겨 왔어.”
“하,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걸요. 형님, 여기 어떤 것 같아요?”
“변두리에 이 정도면 훌륭하지.”
“여기 정기권 끊어서 매일 새벽에 동네 한 바퀴 뛰고 오죠. 작전은 여기서 짜면 좋겠어요.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가슴이 열리는 것 같아 더없이 좋은 것 같습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맨날 잔머리나 굴리는지 알았는데, 가끔 쓸 만한 머리를 굴릴 때도 있구나.”
“저, 잔머리 굴릴 줄 모릅니다. 건전한 놈이라고요.”
용하가 쑥스러운 기색으로 한 말에, 인공이 진심을 털어놓았다.
“이제 그 말 믿어줌세. 조금 전에 한 말은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거야. 자네 첫인상!”
인공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들어, 김 서린 한증막 유리 벽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
잠시 정적이 흐르는 듯했다. 잠시 후 용하가 인공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며 포근히 감싸 안았다.
“형님… 형님은 때로는 큰형 같고, 때로는 아버지 같아요.”
인공은 유리 벽 너머에 시선을 둔 채 자상하게 응대했다.
“나 또한 언제부턴가 네 녀석이 친동생처럼 느껴지고는 했어.”
“형님…….”
그때였다.
“아 참,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다니 뭘요? 이제 대충 안정권에 들어간 거 아닌가요? 이제 미숙이는 유치원 잘 운영하고, 은행 컨설팅 팀에서 임대차 관리 알아서 잘해 줄 테고, 형님하고 저는 체육관 잘 끌고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잖아. 우선 취직을 시켜 놨으니, 출근을 하게 해야 할 거 아냐.”
“물론이죠.”
“그 일정을 좀 말해 보라는 거야.”
“아, 그건 말입니다. 교육지원청에서 연락만 오면 바로 개원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간판 올린 건 뭐야?”
“아, 그건 말입니다. 인허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니까, 개원을 좀 앞당겨 보려고 그런 거죠.”
“그래? 자네만 그냥 믿고 있어도 되는 거야?”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참, 그리고 말입니다. 인공사에 계시는 보살님 말입니다.”
“그 할망구는 왜?”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 산에 두실 순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어린이 장학재단 말입니다. 거기 총무 자리에 누구를 앉힐까 고민해 봤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네 말은, 그 할망구를 장학재단 총무로 앉히자, 이 말인 게야?”
용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확신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런 자리는 말이다. 거, 배움도 좀 있고, 사회 경험도 좀 있고, 음 그리고…….”
“형님, 제가 그 보살님 처음 봤을 때 말입니다. 개방의 경계석 앞에서 협객의 칼에 온몸이 두 개로 갈라진 남채화가 보였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시겠습니까?”
이번에는 인공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남채화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혜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아, 그 국밥 두 그릇!”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혜안을 가진 보살님 같은 분 말입니다.”
“음, 네 녀석이 운동만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정말 검도밖에 모르고 산 놈입니다.”
“아니,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다르고, 적재적소에 둘 줄 아는 좋은 지혜를 가졌어.”
“그래요? 그럼 면접 일정 좀 잡아볼까요?”
“그럴까?”
두 사람은 흡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