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85
85화
검도 체육관 시계는 빠르게 흘렀다.
“형님! 오늘 인공사에 가는데, 함께 가실 거죠?”
“벌써 주말인 게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요즘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저도 오늘이 주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
“가서 차 빼 와. 참, 그리고 언제까지 셰어링카를 쓸 거야? 앞으로 차 쓸 일이 많아질 테니 어차피 살 거 빨리 사자고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또 셰어링 카.”
“오늘만 그냥 셰어링카 이용하고, 포천 다녀온 다음에 자동차 판매장 한번 둘러볼게요.”
“너, 그 약속 지켜야 한다. 그깟 차 하나 사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 속을 끓이고 지랄이야, 지랄이!”
“알았어요, 그만하세요. 그러잖아도 유치원하고 어린이집에서 쓸 승합차도 볼 겸, 여기저기 매장 좀 둘러보려고 했어요.”
“아, 그래? 그렇담 미안하고.”
“뭘 미안할 것까지.”
“참, 그리고 고마워.”
“지금 고맙다고 했습니까? 뭐가요? 대체 뭐가 고맙다는 겁니까?”
“할망구가 전생에 맺힌 한이 많았을 텐데, 그 한까지 풀어줘서.”
“아, 그 말씀이군요. 음, 저는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날의 남채화 어른의 한을 풀어드릴 겁니다. 이제야 하는 말입니다만, 저는 그날의 일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너무도 처참했거든요.”
“당연히 그랬겠지. 나 또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껏 사람을 목이나 허리 등을 두 동강 내는 건 봤어도, 세로로 두 동강 내는 건 처음 봤으니.”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던지, 용하는 어금니를 깨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공 또한 몸서리가 쳐지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리고 보니, 참 재미있는 구성원이네.”
“재미있다니요?”
“쑥쑥 유치원 멤버들 말이야. 이제보니 하나같이 전생에 깊은 한을 가진 사람들이네, 그려. 그 한을 자네가 풀어 줄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내가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리네.”
용하는 뿌듯한 표정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셰어링카 주차장이 그리 멀지 않은데, 어떻게, 함께 가실래요?”
“음, 그럴까? 나도 알아둬야 급할 때 한 번씩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제가 형님 곁에 있는 한, 형님이 직접 운전할 일은 없을 겁니다.”
용하의 뜻 모를 말에 인공은 동그랗게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그거요? 별거 아닌데.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지껄여 봐.”
“성미도 급하시지.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요. 제가 살아있는 한, 누구보다 형님을 극진히 모실 거라는 의미 있는 얘기입니다.”
조금 전 동그랗게 떴던 눈은 금세 초승달처럼 변했다.
“아, 그래? 사고무친한 나를 자네가 극진히 모시겠다고?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릴세, 그려.”
“형님이 좋아하시는 거 보니까. 장설 형님 생각이 나네요.”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용하의 눈에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고였다.
“음, 그 형님… 정말 대단한 어른이셨지…….”
인공 또한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살아계시겠죠?”
“당연하지, 그 형님이 어디 그렇게 쉽게 가실 분이신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하루라도 극진히 모실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자네 심정 충분히 알겠네. 아직 21세기에서 그 어르신과 겹치는 사람은 없었지?”
“네, 아직은요.”
“그렇다면, 아직 과거 어느 시대엔가 살아계신 거야. 그러니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말고, 언젠가 현실로 닥칠 그 날을 위해 늘 준비된 자세로 열심히 살아야겠지?”
“정말 장설 형님이 무림에서 아직 살고 계실까요?”
“무엇을 의심하는 것이냐?”
“제가 모든 사람의 환생을 본다고 장담할 순 없지 않습니까?”
“음,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의심이구나. 그러나, 난 말이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구나.”
인공의 의미심장한 말에 용하는 고개를 숙였다.
‘형님, 실은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비록 들리지는 않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비장한 목소리였다.
* * *
포천 주금산의 인공사.
날렵하게 산을 오르는 용하에 비해 인공은 숨을 헐떡거렸다.
“형님! 해발 800미터 남짓한 산을 오르는데, 뭘 그렇게 힘들어하십니까?”
“그러게, 말이다. 도시 생활 좀 했다고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예전?! 예전엔 어땠는데요?”
“예전엔 검도 체육관에서 편의점 정도 들락거리듯 했었지.”
“에이, 형님도 참! 허풍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요.”
바로 그 순간 인공의 예리한 두 눈이 용하에게 멎었다. 인공의 매서운 눈을 접한 용하는 곧 말을 바꿨다.
“아하, 형님이시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았겠네요. 형님은 경공술에 축지법까지 시전하시는 분이니, 당연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암요!”
“그걸 자네가 어찌 알았는가? 경공술이야 무림에서 보여줬지만, 축지법은 아직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데.”
인공의 말에 용하의 두 눈이 커졌다.
“네? 그럼 진짜 축지법을 쓴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냥 농담으로 해 본 소린데!”
“농담이면 어떻고, 진담이면 또 어떻겠느냐?”
“축지법! 한번 보여주실 수 있나요?”
“인석아, 말 같은 소릴 해! 지금 이 노인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헐떡거리는 걸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네? 그게 무슨…….”
“네 녀석 말대로, 내가 지금 당장 축지법을 시전해 보일 수 있다면, 왜 이토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겠느냐?”
“그럼 뭐예요? 축지법을 쓸 줄 안다는 겁니까, 쓸 줄 모른다는 겁니까?”
“예전엔 그만한 경지에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련이 부족하여 안타깝게도 보여 줄 수가 없구나.”
“뭐, 말은 안 되지만, 형님 말 한번 믿어 볼게요. 왕년에 한 가닥 안 해 본 사람 없다잖아요.”
“썩 믿음이 안 가는 모양이구나. 인공사에 도착하면 작은 믿음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뭔가 보여주도록 하마.”
설마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이것이 생시란 말인가? 말로만 듣던 축지법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른단 말을 어디까지 곧이들어야 한단 말인가.’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상상 속에서나 있을 만한 일. 직접 보게 된다면 더없는 영광이고, 설령 아니어도 세상 어딘가에 축지법을 쓰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남지 않는가.
‘후, 그런 희망으로 남은 인생을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용하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10여 분을 더 올랐을 때였다.
“형님, 여기서부터는 길을 모르겠습니다. 일전에도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헤맸거든요. 이상하죠?”
“내가 앞장서마.”
“네, 알겠습니다. 형님. 형님! 그런데 왜 사찰을 이렇게 깊은 곳에 숨겨 두신 겁니까?”
“속세와 친한 건 나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사는 부처님을 섬기며 내가 수양하는 곳이다. 그러니 세상에 알려질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하지만 인공의 고리타분한 생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형님! 사찰도 잘 활용하면 돈이 되는 세상입니다.”
용하의 말은 곧 인공의 심사를 뒤틀었다.
“뭣이라! 사찰을 활용해서 돈을 벌어?”
주금산 전역에 울려 퍼지는 인공의 노여움에 용하는 오금이 저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망언을 했습니다.”
용하가 깊이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자, 인공은 금세 노여움을 풀었다.
“이해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거라. 탁한 세상에서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대인배인 게야.”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곧 인공사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형님이라는 속세의 호칭을 쓰지 말거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 * *
주금산 정상, 인공사.
“스님! 수련장부터 가시죠.”
인공사에 도착하자 용하가 제일 먼저 한 말이다.
“어허, 아직도 축지법에 미련이 남은 것이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중요한 문제거든요.”
“축지법이 어찌하여 중요한 문제인 게냐?”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환점! 어떤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 게냐?”
“정말 축지법을 제 눈으로 목도하게 된다면, 아마도 저 역시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와 수련에만 매진하게 될 것입니다.”
“음, 그래? 그럼 뭐 하나만 물어보자꾸나.”
“네, 말씀하십시오. 형… 아니, 스님.”
“축지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말 그대로 땅을 줄여 걷는 보법이 아니겠습니까?”
“땅을 줄여 걷는다! 음, 세상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네에?!”
인공의 대답에 용하의 눈이 두 배쯤 커졌다.
“생각해 보거라. 이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은 제각각 자기 고유의 특성을 지녔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 그런데 어찌 사물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겠느냐?”
“경공술은요?”
“경공술은 삼라만상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경공이란 부단한 수련의 결과이니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자기 자신을 부단히 단련해서 강해지는 건 상관없지만, 남을 건드려서 강해지는 건 해악이요 도발이다.
“결국 축지법 같은 건 없다는 말씀이죠?”
“아니, 분명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리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축지법이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네와 나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어떤 것이니라. 꿈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스님. 제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기에, 충분한 가르침입니다.”
“기쁘구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인공은 움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걷는 용하는 차마 인공의 등을 바라볼 수 없었다. 숙연한 자세로 인공의 발뒤꿈치를 내려다보며 걸음을 옮겼을 뿐.
―삐그덕!
움막의 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뒤틀어져 있어,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옅은 비명을 질렀다. 문이 열리자 긴 햇살이 어두침침한 움막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매캐한 냄새도 여전했다.
“보살님 계시오?”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살님, 안 계시오?”
인공이 재차 물었을 때였다. 비로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스님 오셨습니까?”
그리고 곧 모습을 나타낸 보살. 그녀는 해맑은 목소리와는 달리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로 덮여있었다. 뭐랄까, 인상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나 할까.
“보살님, 그동안 잘 지내셨소?”
“스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음, 그럭저럭.”
“저도 그럭저럭.”
둘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내려갑시다!”
단도직입적이었다. 예고도 없이 훅!
“내려가다니, 어딜 말입니까?”
“큰 뜻을 위해 속세로 내려갑시다.”
“속세로요? 스님, 미치신 거 아닙니까? 아니, 노래방에 고기에 탁배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속세라니요? 저는 부처님을 여기 두고 그리는 못 합니다.”
“이 할망구가 망령이 났나. 부처님의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시오?”
인공은 말끝에 언성을 높였다. 더 이상 토 달지 말라는 뜻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허, 뭔 말이 그리 많은가? 이 할망구야! 인공사 주지인 내가 가자고 하면 군소리 말고 따라나서는 거지.”
급기야 막말까지. 인공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보살은 입을 삐죽거리며 구시렁댔다.
“쳇, 자기가 내 서방이야 뭐야? 걸핏하면 큰소리야, 큰소리가.”
“어허, 그래도 이 할망구가!”
조금 전보다 한 톤쯤 목소리가 커지자, 보살의 입이 쑥 들어갔다.
“그 꼴로 내려가면 미친년 취급받을 테니까, 가사장삼 중에 제일 깨끗한 거로 갈아입어.”
인공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보살은, 벽장 깊은 곳에서 보자기 하나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