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9
9화
“어리다고 얕보지 마세요.”
낭랑한 목소리의 소녀. 왠지 밉지 않았다.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아이 대하듯 물었다.
“아니! 그럴 리가……. 이 아저씨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느냐?”
용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정보팔이 소녀에게 보여 주며 다시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스마트폰을 흘깃 보는 소녀의 눈이 일순 커졌다. 소녀는 그 눈빛 그대로 고개를 한 차례 갸웃했다.
그러고는 해맑은 눈으로 그저 신기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뭘 그리 신기하게 보는 것이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시작도 안 했다니 그럼, 이것 말고 무엇이 또 있다는 겁니까?”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용하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피었다.
“잘 보거라.”
용하는 스마트폰 전원을 눌렀다. 그러자 곧 화려한 빛을 내며 스마트폰이 켜졌다. 거의 동시에 소녀는 짐짓 놀라며 물러섰다.
그리고 곧 슬그머니 다시 다가와, 그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외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소희라고 합니다.”
웬일인지 고분고분 대답했다. 분명 무엇인가 바라는 게 있는 사람처럼.
“음, 정보팔이 소녀 소희라… 참으로 예쁜 이름이구나. 그런데 왜 갑자기 말투를 바꾼 것이냐?”
“어… 어… 그건… 말입니다. 公께서 저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고 판단되었기에 예를 갖춘 것입니다.”
“음, 사리분별은 정확한 아이로구나.”
“…….”
“그런데 소희야. 너는 정보를 팔아 돈을 버는 장사치가 아니더냐?”
“그러합니다.”
“나는 장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 것이냐?”
“촉입니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촉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정보다 아니다, 그걸 빨리 감 잡아야 남들보다 신속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상품화할 수도 있고 흥정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정보팔이 소녀의 말에 용하는 크게 공감했다.
“오호라, 역시 장사치다운 말이로구나. 소희야, 여기 불빛이 환한 곳을 잘 보거라.”
용하는 스마트폰 속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어떠하냐. 이 가운데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정보겠느냐?”
스마트폰 화면을 본 소녀는 미간을 좁히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천천히 살펴보거라.”
“…….”
소녀는 아직도 다물어지지 않은 입으로 찬찬히 스마트폰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이냐.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이 가운데 어떤 게 쓸 만한 정보가 될 것 같으냐고 묻지 않느냐.”
그제야 소녀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용하의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소녀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정보를 가졌으면서, 어찌하여 설산을 몰라 그렇게 수소문하고 다닌 것입니까?”
“오호, 그래? 음, 소희야, 그럼 이것을 좀 보거라.”
용하는 설산에 대한 자료를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설산]
눈 덮인 산.
불교 관련 서적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달리 이르는 말.
산꼭대기가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다.
“보았느냐?”
소녀는 아직도 놀란 눈을 스마트폰에서 떼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정보를 다룰 줄 안다니 하는 말이다. 네가 보기에 이런 자료를 토대로 과연 설산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
그제야 소녀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입을 열었다.
“설산에 왜 가려고 하는지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 그거…….”
용하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어찌하여 말씀을 하려다 마는 것입니까?”
“아, 그게 말이다…….”
이번에도 용하는 난처한 기색으로 딸막거리고만 있었다. 소녀가 먼저 입을 뗐다.
“혹 말이 새 나갈까 염려돼 그러신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公께선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누구입니까? 저잣거리에서 정보팔이 소녀,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정보를 다루는 제가 입이 가볍다는 평가를 받았다면, 그동안 이 저잣거리에서 어떻게 장사를 했겠습니까?”
소녀의 말은 추호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명백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지나쳤던 것 같구나. 좋다! 얘기해 주마.”
용하가 모든 걸 얘기해 주겠다고 하자, 소녀는 해맑게 미소 지으며 투명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실은 아미파의 우두머리와 거래를 하였다.”
용하의 말에 조금 전까지 해맑게 미소 짓던 소녀의 표정이 다소 놀라는 기색으로 변했다. 그뿐 아니었다. 투명했던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드리워졌다.
“정파의 우두머리와 말입니까?”
“왜, 무엇이 잘못됐느냐?”
“그럼요, 잘못돼도 많이 잘못됐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잘못되었길래, 그리 험한 말을 하는 것이냐?”
“아홉 정파의 장문인들은 자기 뜻대로 일이 진행되면, 모른 척 먼 발치서 지켜만 봅니다. 그런데 만약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싶으면 전쟁도 불사할 것입니다.”
용하는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군 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정파의 우두머리와 어떤 거래를 했습니까?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용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보현과 나눴던 이야기를 소상히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소녀는 수차례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산에 흑룡이 산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게다가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는 말은…….”
소녀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설산에 흑룡이 없다는 말이냐?”
다소 격앙돼 보이는 용하의 물음에도 소녀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어찌하면 대답해 주겠느냐.”
“쉬흔 문 주십시오.”
“뭐, 뭣이라!”
“뭘 그리 놀라십니까? 저잣거리에서 흔히 발생하는 당연한 상거래를 가지고.”
“흔한 상거래?”
“네. 가격 또한 정찰제입니다.”
“뭐, 정찰제?”
“조금 궁금하면 다섯 문, 많이 궁금하면 열 문, 아주 많이 궁금하면 쉬흔 문…….”
웬일인지 용하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거, 혹시…….”
소녀가 말을 하려다 말자 용하는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말해 보거라.”
“혹시 외상 거래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오호라, 신통하구나! 그런데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용하가 통사정하며 아부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으나 소녀는 야멸차게 거절했다.
“외상은 사절입니다. 이 정보란 게 말입니다. 마치 휘발유 같아서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거든요.”
조금도 이치에서 벗어남이 없는 말이었다.
용하는 어떻게 하면 문이라 칭하는 화폐를 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전광석화처럼 소녀의 전대를 낚아채 달아났다.
“날치기다!”
소녀는 저잣거리가 떠나가라 외치며 날치기를 뒤쫓았다. 하지만 날치기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져 갈 뿐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광경을 먼발치서 지켜보는 용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었다.
‘흠, 잘하면 굳이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설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는걸.’
그때였다.
―저놈 잡아라! 저놈 잡아라!
“누가 날치기를 좀 잡아 주시오.”
어느새 소녀의 목소리도 아득히 멀어져 갔다. 그제야 용하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몇 킬로미터쯤은 5분 안에 달려가야 하는 대리기사였다.
용하는 순식간에 소녀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여유 있게 미소 지었다. 그것을 본 소녀는 잔뜩 골이 나서 물었다.
“그렇게 잘 달리면서 날치기당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겁니까?”
바로 그 순간 소녀는 용하와 눈이 딱 마주쳤고, 그의 의도가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스쳤다.
“혹시 그것이오? 그거라면 알겠소. 돈 안 받을 것이니, 저놈이나 빨리 잡아 주시오. 잡아만 주시면, 설산이든 흑룡이든,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소녀의 말에 용하는 얼핏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쏜살같이 치고 나가 날치기 바로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예사롭지 않은 사내의 덩치, 200근은 족히 돼 보였다.
무슨 수를 쓰든 정면 승부는 피하고 보자. 저 아이나 내게 필요한 건 전대다. 전대만 되찾으면 그뿐이다.
“어디 보자… 쓸 만한 작대기 같은 거 어디 없나?”
사방을 두리번거렸을 때였다. 그사이 저잣거리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여기저기에 빈 칼집 몇 개가 나뒹굴었다.
“하늘이 돕는구나!”
용하는 순식간에 칼집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전대를 움켜쥔 사내의 손목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으악!
사내의 비명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전대를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을 뿐 좀처럼 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용하는 전대를 움켜쥔 손을 향해 또다시 일격을 가했다.
분명 전대를 뿌리치며 비명을 지를 거라 생각했는데, 비명은커녕 사내는 혀를 날름 내밀고는 저만치 앞서 달아났다.
“뭐얏, 피한 거야!”
용하는 한 차례 심호흡으로 각오를 다지고 팔을 크게 흔들어 속도를 냈다.
“기다려라! 이번엔 쥐도 새도 모르게 일격을 가한 후 전광석화처럼 전대를 빼앗을 테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용하는 사내의 옆으로 조심스럽게 붙었다.
그리고 전대를 움켜쥔 사내의 손을 향해 순식간에 칼집을 휘둘렀다.
바람조차 침묵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으아악!
사내는 전대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몇 걸음 앞으로 거꾸러지며 숨이 끊어질 듯 비명을 쏟아냈다.
전대를 손에 넣은 용하는 한달음에 달려 소녀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우쭐거리는 손길로 전대를 내밀었다.
“이제 말해 주겠니? 어디로 가면 설산에 닿을 수 있는지.”
소녀는 잽싸게 전대를 낚아채려 들었다. 검도 고수 용하. 그가 어설픈 소녀의 손에 전대를 빼앗길 리 없었다. 용하는 전대를 쥔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정보부터!”
소녀의 귀에 용하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소녀는 용하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펄쩍, 펄쩍 뛰며 전대를 손에 넣는 데만 급급했다. 용하는 까치발까지 들어 올린 채 치열하게 흥정을 벌였다.
“정보!”
“전대 먼저 주세요.”
“아니, 정보 먼저!”
“제가 어찌 公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럼 나는, 장사치인 너를 어찌 믿겠느냐?”
“정보를 살 생각이 없어진 겁니까?”
“그럴 리가……. 그런데 말이다. 세상 어느 거래가 돈부터 받고 물건을 주더냐. 물건부터 받고 돈을 건네는 게 시장의 상거래 아니더냐?”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 순간 소녀의 표정은 모든 걸 체념한 사람 같았다.
“부탁할게요. 전대는 제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돌려주십시오.”
소녀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용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정보!”
“좋아요, 설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선, 아까 그 작은 상자 안에 있던 정보는 잘못된 것입니다.”
“작은 상자? 아아, 스마트폰……. 그래 무슨 정보가 잘못됐다는 게냐?”
“설산은 히말라야산이 아닙니다. 히말라야는 서천서역에 있는 산이고 아미파의 수장이 말한 설산은 남서부지역에 있는 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옥룡산이 있는데, 그 산이 사시사철 눈에 덮여 있습니다.”
소녀의 말에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이 귀에 가서 걸릴 듯했다.
“고맙구나! 참으로 고마워.”
* * *
소녀와 헤어진 용하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힘차게 걸었다.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이 길이 막히는 곳에 정보팔이 소녀가 말해 준 흑룡이 산다는 전설 속의 그 산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어야 그곳에 닿을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막연한 길을 걷는 사람치고는 꽤나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음… 뭐랄까… 희망찬 미래를 예견케 한다고나 할까.
“반드시 여의주를 찾아내 인공 스님을 아미파 소굴에서 구해 내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