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90
90화
“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
무엇이 그리 유쾌했던지, 인공이 껄껄거리며 웃는 소리가 건물 전역에 울려 퍼졌다.
한 뼘쯤 커진 용하의 성장은 인공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다.
“김 관장! 이제야 좀 관장님답습니다.”
“이 모든 게, 형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형님? 허허허, 체육관에서 그리 부르면 안 된다는 거 잘 아시면서 어찌하여… 아! 아니오. 오늘 하루만 봐줄 테니 마음껏 부르시오. 김 관장.”
“네, 형님. 흠흠… 형님! 형님! 형님! 형님……!”
형님이란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싶었을까?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자 듣다못한 인공이 마침내 용단을 내렸다.
“어허, 이제 그만! 그러다 이 형님 다 닳겠구나.”
하하하!
허허허!
“김 관장. 일단 오늘은 김미숙 원장님 데리고 나가서 이미지 변신 좀 시켜주시오.”
“건축사와 마주칠 일도 없을 텐데,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아, 그 문제 때문이 아니고… 음, 일전에 대치동 입시학원 원장 봤지?”
“그 사람이 왜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교양과 멋이 좔좔 흐르더군.”
인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용하를 훅 바라보았다.
“어찌 생각하시오?”
“뭘 말입니까?”
“좀 고상해 보이는 원장의 이미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인공의 말에 용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뭘 그렇게 복잡해? 신도시 학부모 상대하려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새로 갈아입듯 말이야.”
인공의 말이 언제 틀린 적 있었던가. 용하는 금세 인공의 말을 수긍했다.
“그동안 이 몸은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좀 알아보겠습니다.”
“그걸 형님 혼자서 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걸 혼자 어찌하겠느냐?”
“그럼요……?”
“우리에게는 최강땡추인공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 스무스카페 회원들이 있지 않으냐.”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용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신도시 여기저기 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소. 김미숙 원장님의 환골탈태!”
이번에도 용하는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빠른 걸음을 내디뎌 유치원으로 내려갔다.
아직 선생님도 원생도 없어 한가했다. 아니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이번에 채용한 선생님들 정식으로 출근하면, 원생 모집을 서둘러야겠군. 돈 때문이 아니라, 이런 기운에 휩싸인다는 건 정신건강은 물론, 몸에도 좋지 않을 테니. 특히 미숙이에게는.’
유치원 복도를 걷는 용하의 발걸음은 조금 전보다 더 빨라졌다.
“미숙아!”
헉!
“아, 내 정신 좀 봐.”
자기도 모르게 미숙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자책 때문인지, 용하는 갑자기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었다.
“원장님~”
목소리까지 기어들었다.
“김미숙 원장님~”
그러는 사이 교무행정실을 지나 원장실 앞에 섰다.
―똑똑!
두 번의 노크 소리에 안에 반응이 왔다.
“네, 들어오세요.”
우아하다거나 교양미 넘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예전처럼 원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일 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하는 원장실 문을 활짝 열었다.
“어머나, 오빠!”
문 앞에 서 있는 용하를 본 미숙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높여 외쳤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교실 몇 개를 건너에 있는 교무행정실 사람들조차 고개를 내밀고 구경할 정도였다.
“쉿!”
용하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 채 안으로 들어갔다.
“왜요? 오빠.”
미숙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야, 너는 그… 에효― 직장에서 목소리며 말투가 그게 뭐냐?”
“왜? 내 목소리며 말투가 어디가 어때서?”
“예전에 선생님으로 일할 때하고 지금은 다르잖아. 지금은 이 쑥쑥 유치원의 어엿한 원장님이신데 말이야.”
“그래서?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나, 김미숙은 김미숙이야.”
“음, 그건… 우리 미숙이가 아직 몰라서 하는 소린데.”
“모르다니, 내가 모르는 뭐가 또 있는 거야? 오빠!”
“음, 일전에 선생님 채용 때 말이야. 지원자들 많이 몰려오지 않았나?”
그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어! 오빠. 그땐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까 좀 이상했어. 아직 원생도 하나 없는 신생 유치원에 웬 지원자들이 그렇게 몰렸는지.”
“음, 그건 말이야. 우리 쑥쑥 유치원이 사설 유치원으로는 손가락 안에 든다는 뜻이야.”
“손가락 안에?”
“…….”
“이렇다 할 업적도 없는데 왜?”
“일단 시설 면에서 국내 최고야. 아무도 못 따라와.”
용하의 말에 미숙은 쉽게 입사해서 너무 쉽게 생각했나, 하는 기색이었다.
“그게 다가 아냐. 아마 우리나라 유치원 중에 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데는 없을걸. 게다가 쑥쑥 유치원처럼 장학재단이 후원하는 유치원도 없을 테고 말이야.”
미숙의 표정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한마디로 쑥쑥 유치원은 말이야. 전대미문의 사설 교육기관이란 얘기지.”
용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때, 미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무서워서 이 자리 더는 못 지키겠어.”
“무서워? 뭐가? 대체 뭐가 무서운데? 말만 해! 이 오빠가 다 해결해 줄게.”
“오빠가 제일 무섭고, 그다음은 우리 쑥쑥 유치원이 무섭고. 음. 또 그다음엔…….”
“야, 김미숙! 난 또 뭐라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 있을 때하고는…….”
“할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우리 미숙이 잘할 수 있도록, 엔진에 기름때 빼러 갈까?”
* * *
신도시의 한 뷰티샵.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수석 디자이너의 물음에, 미숙이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보기 민망하게 용하가 먼저 입을 떼며 나섰다.
“음, 그게 말입니다. 좀 우아하면서도 세련되면 좋겠고, 음… 세련되면서도 고상하면 좋겠고, 음… 아! 이게 쉽지 않네요.”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일단 시작하면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제가 생각하는 헤어스타일은, 음… 워킹맘들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적당한 교양미와 우아함! 뭐 그런 이미지가 물씬 풍기면서도 어린이들에게는 엄한 이미지? 아니, 아니지. 어린이들에게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는 뭐, 그런 거!”
“혹시 어린이집 선생님이세요?”
“어허, 그렇게 말하면 제가 좀 불안해집니다.”
“불안해지다뇨?”
“지금 제 말을 듣고 떠올린 게, 고작 어린이집 선생님입니까?”
“…….”
“선생님보다는 조금 위.”
“그럼… 주임 선생님?”
“그보다 조금 더 위.”
수석 디자이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대답했다.
“그럼 혹시, 원장님?”
“딩동댕!”
“아아, 원장님이셨구나!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럼 제가 알아서 척척…….”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가지 더? 수석 디자이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어린이집 원장님 말고, 그보다 조금 더 위!”
“어린이집 원장님 아니셨어요?”
“조금 더 위라니까.”
“그럼… 혹시…….”
“네, 바로 유치원 원장님입니다. 이제 대충 아시겠죠? 제가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알겠습니다. 유치원이 신도시에 있는 건 맞죠?”
“아, 물론입니다. 신도시 핫플레이스가 우리 쑥쑥 유치원입니다.”
“핫플레이스라면… 아,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형물 건축가의 손으로 지어진 그 예술작품 말씀인가요?”
“네, 맞습니다. 신도시 중심 상권에 자리 잡은, 요즘 가장 핫한 그곳!”
적잖이 우쭐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역겹지는 않을 만큼 적당히.
“그곳이 바로 쑥쑥 유치원입니다.”
다소 뻣뻣했던 그러니까, 좀 거만해 보였던 수석 디자이너의 태도가 조금은 녹녹해졌다.
“진작 말씀하셨으면 제가 알아서 다 해드렸을 텐데. 저 이래 봬도 유학파에 청담동 뷰티샵 출신입니다.”
“말씀 안 하셔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무나 그렇게 자신만만할 순 없잖아요. 이 분야가…….”
이 분야가… 라는 용하의 말은 수석 디자이너의 귀에는 뷰티 또는 미용업계로 들렸다. 하지만 용하의 가슴 속 이 말은, 좀 더 포괄적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흔히, 일인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용하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을 때였다. 수석 디자이너의 눈빛이 달라졌다. 용케도 그 눈빛을 감지해 낸 용하는 웬일인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수석 디자이너의 간결한 신호로, 뷰티샵의 움직임이 원스톱으로 일사불란해졌다.
미숙이 앉아 있는 뷰티 침대 의자는 보조 디자이너들의 손에 의해 마치 종합병원 응급실의 베드처럼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울 속 미숙의 이미지는 무섭게 변해갔다. 미숙의 이미지 변신만큼이나 수석 디자이너의 손도 빠르게 움직였다.
미숙이 앉아 있는 뷰티샵 침대 의자를 둘러싼 보조 디자이너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졌다.
‘음, 그냥 재미 삼아 보기엔 좀 미안할 만큼 정성이 대단하군.’
용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막 미용을 끝낸 수석 디자이너의 말을 보조 디자이너들도 일제히 반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미숙.
헤어스타일은 용하가 주문한 대로 우아하며 교양미가 넘쳤고, 유치원생을 둔 워킹맘이라면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이미지로 변신했다.
메이크업도 마찬가지였다. 맑고 투명했던 이전 이미지와는 달리, 여성 잡지에나 나올 법한 커리어우먼이 연상될 만큼 세련된 외모로 변신했다.
그런 미숙의 변모에 용하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얼마입니까?”
“네, 헤어 시술과 메이크업 그리고 그밖에 몇몇 뷰티까지, 110만 원인데 100만 원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던 용하는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겼던지,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고 5만 원 권으로 120만 원을 세더니, 계산대에 척 내밀며 말했다.
“110만 원 나왔지만, 120만 원 결제하겠습니다.”
용하의 말에 수석 디자이너를 비롯한 보조 디자이너들의 놀란 눈길이 계산대로 쏠렸다.
“아니, 왜요?”
계산대 보조 디자이너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용하는 흐뭇한 미소로 대답했다.
“고마워서요. 마음 같으면 더 드리고 싶지만, 마음만 전하겠습니다.”
“아,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놀랄 만큼요.”
바로 그때 수석 디자이너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용하 앞에 서더니, 허리를 깊이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돈 앞에서 드러내는 비굴함으로 보였을 테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수석 디자이너의 지금 이 태도는 프로다운 면모로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때를 놓치지 않고, 계산대 보조 디자이너가 물었다.
“고객님, 저희 뷰티샵 정기 회원으로 가입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네, 회원가입이요.”
“그거 하면, 안 한 거하고 뭐가 달라지죠?”
“차트를 작성해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득이한 사정으로 1년 동안 뷰티샵에 나오지 못하셔도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회원가입 한번 해 볼까요. 단 개인정보 동의니, 민감정보 동의니, 뭐 그런 것만 요구하지 않는다면요.”
“물론입니다. 단 저희 뷰티샵에서 고객관리 차원에서 고객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 정도는 기록해주셨으면 하는데, 그건 괜찮으시죠?”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 음, 뭐 그 정도는…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제 카드번호와 유효기간도 알려드릴 테니, 제가 함께 오지 않더라도 카드로 결제하십시오. 우리 김미숙 원장님 불편하지 않게 말입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원가입 신청서 작성하실 때, 결제 방식 란에 카드번호하고 유효기간 명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이후 미숙은, 신도시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뷰티샵의 VIP 고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