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94
94화
교육부
국방부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눈곱만큼이라도 연관이 있는 부서라면 무조건 떠올려 보았다.
‘천문학이니까 하늘과 관련 있잖아. 정확히 말하면 우주겠지만. 아무튼 하늘이니까 기상청?’
곧 용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기상청은 너무 약해. 딱 들으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뭐, 그런 거 없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보안요원의 눈꺼풀은 이미 동공을 반쯤 덮은 상태다.
‘저 눈빛은!’
인내심의 한계. 상대를 적대시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기가 막힌 방법 하나가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순간 보안요원이 최후통첩이라도 하듯 입을 뗐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나오셨습니까?”
“아, 네……. 아까부터 기관, 기관 하시는데. 기관에서 나온 사람 아니면, 조 박사님을 만날 수 없다는 뜻입니까?”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작전상 한 말이었다. 이렇게 해 둬야 방문객을 대하는 보안요원의 태도를 문제 삼을 수 있으므로, 보험 하나 든다 생각하고 말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그러니까, 오직 법밖에 모르는 검사도 이 원칙은 지킨다. 그런데 사설 기관의 보안요원 따위가 감히 나를 의심해? 아직 확인도 안 된 나를.’
보안요원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뒤늦게 본인이 매뉴얼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걸 각성한 표정이었다. 보안요원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다시 긴장감을 조였다.
“아니,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천체물리학과 연구동을 찾는 분들 대부분 정부 기관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정부 기관에서 나온 게 아니어도, 조 박사님을 만날 수는 있다는 뜻입니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복잡한 심리전의 터닝포인트. 일은 순식간에 용하가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리고 용하의 물음에 보안요원이 채 대답도 하기 전이었다.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일전에 조광연 박사님이 출연했던 바로 그 방송국.”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이렇게 몰아치듯 들이댄 이유는 상대에게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보안요원의 뇌리에 조 박사가 당부했던 말이 전광석화처럼 스쳤다.
“앞으로 방송국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자주 올 것이오.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친절히 안내해서 내 방으로 모실 수 있도록 특별히 부탁 좀 드리겠소.”
보안요원의 눈이 일순 빛났다.
거의 동시에 용하의 눈에서도 빛이 반짝였다.
‘앗싸! 제대로 먹혔어.’
방송국에서 나왔다는 말에 보안요원은 얼핏 연구동 바깥을 살피는 기색이었다.
“혼자 오셨습니까?”
“왜요, 혼자 오면 안 됩니까?”
“방송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스텝들이 최소 이십여 명은 함께 오던데요.”
“아, 오늘은 저 혼자 왔습니다. 출연이 결정되면 스튜디오로 모실 예정입니다.”
“스튜디오라면…….”
“네, 방송국 메인 스튜디오 말입니다.”
“아, 방송국 메인 스튜디오!”
“오늘은 일단 조 박사님 만나 뵙고, 그분의 가설인 시간 여행에 대해 간단하게 취재만 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새 조광연 박사와의 만남은 확실시되었다. 보안요원이 바보여서도, 용하가 뛰어나서도 아니다.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였다.
“올라가시지요.”
보안요원의 태도가 급변했다. 뭐랄까, 견학하러 온 사람을 대하는 안내자 mode라고나 할까.
아무튼, 작전 성공!
보안요원의 뒤를 따라 연구동 안을 걷는 용하는 연신 두리번거렸다. 가장 눈여겨봐 둔 건, 출입 때 보안장치를 통과하는 방법과 CCTV 위치였다. 영화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 이 정도면 충분히…….’
용하는 비웃기라도 하듯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조광연 박사 연구실 앞에 서는 보안요원. 그리고 두어 걸음 뒤에 멈춰 서는 용하.
이제 마지막 관문이다. 용하는 보안요원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싱겁게도 보안요원은 문 옆에 붙어있는 작은 초인종을 눌렀다. 작은 카메라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안에서 바깥 상황을 살필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리고 곧.
―띠리링~
잠금장치가 해제되며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들어가십시오.”
극도로 정중했다. 아마도 조광연 박사 앞이어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용하가 안으로 들어서자, 조 박사는 좀 과장됐다 싶을 만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방송국에서 나오셨다고요?”
방송 출연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음, 다음에 올 땐 소품으로 카메라 한 대 정도는 들고 와야겠군. 카메라 보면 그냥 자빠질 것 같은 표정이잖아?’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쉽게 일이 풀려 오히려 불안했다. 호사다마 好事多魔.
하지만 비릿한 미소로 승리를 예감했다.
* * *
돌아오는 길에 용하는 오직 한 가지.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만 있다면…….’
그 생각에만 골몰했다.
생각이 생각을 만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종잡을 수 없이 증폭했다.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만 있다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 낸 가장 빠른 속도는 음속이다.
‘쳇, 왜 사람들은 천둥 번개라고 하는 거지? 번개 천둥 아닌가? 빛이 먼저 번쩍하고, 그다음 우르르 쾅쾅이잖아.’
조 박사의 가설을 바꿔 말하면.
[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없으니,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성립되었다.
용하는 조광연 박사를 한껏 비웃었다. 그의 이론은 연구할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생각하면 그럴듯한 이론이다. 하지만 깊이 있게 생각하면 반대급부가 더 타당한 이론. 하지만 용하는 경험자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7세기나 거슬러 과거로 갔다가 다시 21세기로 돌아온.
광속(光速).
빛의 속도라는 말이 용하의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사패산 터널 속에서 내가 운전하던 차의 속도라고는 고작 200km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다면, 광채(光彩) 때문이었을까?’
무림에 처음 떨어졌을 때가 새롭게 떠올랐다. 인공은 믿어주지 않았지만, 용하는 무림으로 차원 이동을 한 게 광채 때문이라고 고집을 부렸던 때가.
그리고 곧 용하의 두 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막연했던 추측이 점차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광연 박사보다 그의 가설을 더 믿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왜냐고?’
천체물리학자 조광연 박사. 그가 세운 가설은 이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가설을 몸소 체험한 사람은 정작 김용하 아닌가.
용하는 지체하지 않고 조광연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 한잔하자고 제안할 생각이었다. 설령 거절당한다 해도 크게 손해 볼 건 없었다. 적어도 방송국 직원이라는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할 테니까.
“조광연 박사님?”
―네, 그렇습니다만.
“네, 낮에 찾아뵌 방송국 직원입니다.”
―아 네, 전화 받기를 잘했네요. 실은 모르는 전화번호라 받을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왠지 뺀지 먹기 직전에 구원받은 기분인데요.”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미안해하는 기색이네요? 맞습니까?”
―네, 미안합니다.
“앞으론 미안할 일 하지 않으시면 되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떻게요?”
―음, 어떻게 할까요?
“저장하세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렇게 쉬운 방법을 왜 저만 몰랐을까요?
그 순간 용하는 ‘그건 다름 아닌, 너의 고정관념 때문이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야 바쁘셔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지구의 미래와 우주의 발전을 위해.”
―알겠습니다. 저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제 지인 중 한 분이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용하의 예감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지, 바로 이거지! 드디어 찬스가…….’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박사님! 괜찮으시면 저하고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아, 글쎄요…….
“술자리가 내키지 않으시면, 저녁 식사도 괜찮습니다.”
진심, 아무런 기대감 없이 그냥 던져 본 말이었다. 그런데!
―네, 좋아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려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술이든, 식사든, 일단 만납시다.
얼떨떨했다. 이런 순간 용하의 머릿속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말. 호사다마 好事多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가릴 때가 아니다.’
그날 저녁. 남들 퇴근 시간보다는 좀 이른 시각에 조광연 박사를 만났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쉽게 시간을 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허, 그렇습니까? 저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닙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사람 산다는 게 별거 있습니까? 이렇게 만나서 술 한잔하고, 밥 한 끼 먹고, 뭐 그러면서 인연을 맺는 거지요.”
인연이라는 말에 용하는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7세기를 거슬러 무림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조 박사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였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기를 바라는 건 결코 아니다. 단지 조광연 박사가 무용담이라고 생각하고 흥미롭게 들어만 준다면, 그를 이 일에 끌어들일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용하는 지금, 어떻게든 천체물리학의 대가 조광연 박사를 끌어들여, 일을 수월하게 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음, 방송국에 계신다니 군말 떼고 허심탄회하게 제안하겠습니다.”
방송국에 계신다니?! 왠지 그 말이 씁쓸했다. 바꿔 말하면, 방송국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뭐 그런 말로 들려서였다.
그 순간 용하의 머릿속에 빠르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방송국 사람.
‘일단 도화선에 불부터 제대로 붙이자. 불만 제대로 붙는다면, 한동안 세상은 타임머신이니 시간 여행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일이 그쯤 되면 방송국을 끌어들이는 건 일도 아니다.’
“조 박사님. 혹시 그 제안이란 게, 제 생각과 같은 겁니까?”
“네?”
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조광연 박사의 표정은 용하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했다.
‘정말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인가.’
“아, 그러니까 제 말씀은, 저희 채널에 천체물리학자 조광연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자는…….”
용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조광연 박사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뭐,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것 같은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곤란하다! 조광연 박사의 표정에 보기 민망할 만큼의 실망이 눈에 띄게 스쳤다.
“단!”
바로 그 순간 힘없이 내려가던 조광연 박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말에 조광연 박사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말씀하십시오. 어떻게든 가능한 구석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정말 무엇이든 하실 겁니까?”
확인차 던진 용하의 질문에 조광연 박사는 한발 물러서는 기색이었다.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과학 관련 프로그램에 천체물리학 코너를 구성하고, 조광연 박사님을 고정출연 시키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말에 조광연 박사는 얼핏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이런 반응은 판단을 명확히 할 수 없을 때 내비치는 행동 중 하나다.
“죄송하지만, 그 코너라는 게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보통은 오 분에서 팔 분 정도 되는데, 조광연 박사님 코너는 십이 분에서 십오 분 정도 편성하려고 합니다.”
“십이 분에서 십오 분이라……. 그럼 혹시 제가 드리는 시청각 자료에 CG 처리도 해주실 건가요?”
“물론입니다. 방송의 꽃은 비주얼 아닙니까? 조금이라도 시청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방송국에서 알아서 해드릴 겁니다. 조 박사님께서는 내보낼 자료를 취합해서 방송국 작가팀에 넘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우리 작가팀에서 대본으로 만들어 다시 전달할 겁니다.”
“제 자료에 손을 댄다는 말씀인가요?”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제 자료는 학술적으로 인정받은 논문입니다. 제가 저작권자란 뜻이죠.”
“아아, 손을 댄다는 게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고,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는 대본 작업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바로 방송사고로 이어집니다.”
“방송사고로까지……?”
“아닐 것 같죠? 그런데! 각 분야 전문가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실력만 믿고 그냥 카메라 앞에 섰다가 이삼 분도 채 못 돼서 그냥 읽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입니다.”
“NG가 아니고 방송사고입니까?”
“NG는 피디가 짚어냈을 때 얘기고, 못 짚어내고 그냥 나가면 방송사고입니다.”
“아아,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조 박사님은 방송에 참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방법이 마땅치 않더군요. 그래서 다방면으로 찾아봤는데, 현재로서는 방송 매체가 그나마 제 머릿속 그림을 가장 비슷하게 보여주더군요.”
“아아…….”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방송에 얼굴이나 내비치고, 인플루언서가 되려고 기를 쓰는 속물로만 알았는데,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