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쳇! 타임머신을 만들겠다고? 내가 미쳤지.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지.’
실낱같은 희망으로 일을 벌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근심만 깊어져 갔다.
돈도 돈이지만 수퍼카를 개조한다는 게 왠지 께름직했다.
오후 수련생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띠링띠링!
“여보세요?”
―네, 조광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박사님.”
―바쁘지 않으면 연구실로 좀 오시겠습니까?
“급한 일입니까? 곧 오후 수련생들이 올 시간이어서.”
―아, 바쁘시군요. 음, 그러면 저녁에 공장에서 뵙도록 하죠.
“네, 그게 좋겠네요. 오후 수련 끝내자마자 바로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계절학기 특강 마치는 대로 공장으로 가겠습니다.
그날 저녁.
수퍼카를 타임머신으로 개조하기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진 공장에서 조광연 박사를 만났다.
그의 눈빛이 여느 때와 달리 초롱초롱했다.
“박사님, 무슨 빛을 발산하는 특수렌즈라도 끼셨습니까?”
“왜요?”
“눈빛이 유난히 빛나네요?”
조광연의 눈빛이 빛나는 이유는 강한 호기심과 의욕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발견의 기쁨?
“이론적으로 타당성은 없지만, 14세기 무림에서 21세기로 돌아올 때 말입니다. 개기일식이 있는 날 에베레스트에서 윙수트에 폭약을 매달아 그 추진력으로 태양 속으로 날아들었다고 했잖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일단 성공했으니, 그것을 토대로 좀 쉽게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타임머신보다 쉬운 게 있을까요?”
“제가 쭉 생각해 봤는데, 수퍼카로 타임머신을 만든다는 발상은 정말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아니, 왜요?”
“이유야 뭐 말로 하자면 끝이 있겠습니다. 그런 걸로 괜히 시간 낭비하고 싶진 않군요. 그보다는 제가 정리한 차원 이동의 조건 몇 가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용하는 솔깃한 기색으로 조광연에게 귀를 기울였다.
“우선 14세기로 갈 때를 잘 떠올려 보십시오. 적당한 속도,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적당한 속도라는 게 뭔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적당한 속도로 광채 속으로 흡입돼 들어간 후 무림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이번엔 14세기에서 21세기로 올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속도를 만들기 위해 나름 애를 쓴 결과, 윙수트라는 비행체를 만들어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폭약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광채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으니 태양을 이용한 거고요.”
별 특별한 것도 없었다. 단지 용하에게 들은 말을 조리 있게 다시 정리했을 뿐.
“이런 마당에 굳이 수퍼카를 개조해서 타임머신을 만든다는 건 구석기시대 발상입니다.”
“그래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그 적당한 속도를 계산해 낼 겁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어려워도 해야죠. 학자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런 거 찾아내라고 고액의 연구비 주는 거잖아요. 연산을 잘 활용하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왠지 듬직했다. 용하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 나왔다.
“아직 마음 놓기는 이릅니다. 적당한 속도를 계산해 내는 것보다, 광채의 비밀을 캐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은 그래서.”
“혹시 저한테 전화하신 이유가…….”
“네, 맞습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재 상상력으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어서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건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14세기에서 21세기로 돌아올 때 말입니다. 개기일식을 어떻게 생각해 냈습니까?”
그때도 그랬지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조광연 박사의 말을 듣고 보니, 왜 그토록 그날이 목말랐는지 되레 궁금해졌다.
“글쎄요? 그때 제가 왜 그랬을까요?”
“허허,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떡합니까?”
“그러게요. 제가 왜 그걸 박사님께 묻는 거죠?”
정말이지 얼떨떨했다. 그래서인지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헛소리뿐이었다.
“아마도 조광연 박사님은 그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용하가 조광연이 광채의 비밀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소희 때문이었다.
‘분명 소희는 그리 말했다. 서역국에서 천문학을 공부한 덕이라고.’
천문학적 지식으로 따지면, 조광연은 소희의 수백 배, 아니 수천 배! 아니, 그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박사님,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이 어떻게 다른 건가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천문학은 우주의 기원, 별의 생성과 소멸, 우주탐사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한다면, 천체물리학은 천문학의 한 분야로 천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물리학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그럼 타임머신은요? 왜 천체물리학자나 물리학자들이 타임머신에 그렇게 목메는 겁니까?”
“천체물리학과 물리학은 다른 게 아닙니다. 단지 주요 무대가 우주냐, 지구냐 하는 차이죠. 아무튼 같은 학문이라고 보고, 두 학문이 끊임없이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건 바로 빛의 속도 때문입니다. 망원경을 통해 본 행성을 보고 직접 싶은 거죠. 음, 다시 말해 빛의 속도를 낼 수 없으면서 행성을 연구한다는 건 결국 탁상공론입니다. 동화나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죠.”
아직도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용하는 이쯤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나는 소희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렇게 해서 소희로 하여 스스로 개기일식의 날을 계산해 내도록 독려한 게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만약 소희와 조광연을 평가하라면, 아직은 소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소희는 시간 이동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좀 원시적이고 무모했지만, 어쨌든 소희 덕분에 21세기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말인데요. 내일부터는 수퍼카를 타임머신으로 개조하는 일은 그만둘 생각입니다.”
“…….”
“대신 그보다 더 효율적인 추진력을 개발해 볼 생각입니다. 아울러 광채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주력해 볼 생각입니다.”
“박사님, 제가 수퍼카를 생각했던 건 수퍼카에 탑재된 엔진 때문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론 자동차가 모든 학문의 총체적 결과물이니까요. 그 엔진을 잘 활용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추진력을 조금이라도 손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제가 생각하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수월한 겁니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뭡니까?”
“로켓 발사체입니다.”
“로켓 발사체?”
“일단 지금은 이론에 불과합니다만, 로켓 발사체를 쏴 올려 태양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다면, 따로 광채를 만들어야 하는 문제도 해결될지 모릅니다.”
여기서 조광연은 불현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조광연이라는 이름이 학계에서 독보적인 대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예상했던 것보다 일을 빨리 처리할 것 같다는 예감에 가슴이 설렌다.
‘그럼 조금만 자극해 볼까? 그래야 박차를 가할 것 같은데. 조 박사는 이미 알고 있잖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보다 쉬운 방법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희한테 했던 것처럼 했다가는 원성만 살 테고.
* * *
그날 조광연과 헤어진 용하는 검도 체육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공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어디 계세요?”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질이야, 전화질이?
“왜요? 그렇게 늦은 시각도 아니잖아요.”
―온종일 얼굴 맞대고 있었으면서 또 무슨 볼일이 있어서?
“형님도 참 무슨 말씀을…. 우리가 언제 얼굴을 맞댔다고……. 저는 수련생들 지도하는 데 여념이 없어, 형님은 코빼기도 못 봤습니다.”
―뭐, 코, 코빼기?
“형님, 솔직히 삐졌죠?”
―삐지긴 누가 삐져? 오후 수련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간 게 누군데?
“그래서 지금 삐진 거잖아요.”
―아 글쎄, 삐지지 않았다는데 자꾸 어른을 농락하려 드는 것이냐?
“형님, 혹시 서운하셨으면 제가 사과드릴게요.”
―아, 필요 없어. 그런 입에 발린 사과에 내가 속을 줄 아느냐?
“입에 발린 소린지 아닌지는 만나보면 아실 거 아닙니까.”
―절대 안 넘어간다. 요놈아!
“남 총무님 숙소에 계시는 거죠?”
짐짓 넘겨짚은 말에 인공은 눈에 띄게 딸막거렸다.
“제가 갈게요. 남 총무님 숙소로.”
―아, 됐어. 내가 갈게. 어디, 검도 체육관으로 가면 돼?
웬일인지 펄쩍 뛰는 기색이었다.
“30분 후에 체육관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이 타이밍에 끊어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수와의 담판에서 맺고 끊는 걸 제때 못했다간, 자칫 약점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여 분 후.
검도 체육관 사무실에 불이 켜지며 문이 열렸는데, 적잖이 그 행동에 짜증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래, 할 말이 무엇이냐?”
문고리를 잡은 건 인공의 손이었다. 그의 얼굴에 아직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형님, 적당히 하시죠.”
“적당히 하라고? 뭘 적당히 해?”
“제가 잘못했습니다. 급한 일이 좀 있어서…….”
바로 그 순간 인공이 용하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
“급한 일? 무슨 급한 일. 내가 모르는 급한 일도 있더냐?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일이 생긴 것이냐?”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공이 말수가 적어졌다는 건 아무런 단서도 노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금 전 그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형님! 제가 말입니다. 제 연애사까지 형님께 꼬박꼬박 보고해야 하겠습니까?”
“뭐, 연애사?”
그 순간 웬일인지 인공의 낯빛이 화색으로 변했다.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문제만큼은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김미숙 원장과 시간을 보낸 것이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전화 한 통이면 들통날, 뻔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대로 입 다물고 있다간 기정사실이 되고 말 테니까.
“아, 아닙니다.”
“뭐라? 아니라고?”
아니라는 말에 인공은 펄쩍 뛰었다.
“김미숙 원장이 아니면,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냐?”
“…….”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네? 형님이 왜요? 왜 형님이 용서할 수 없다는 겁니까?”
“네 녀석은 이 문제를 남녀관계로 볼지 모르지만, 난 이 문제를 인간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그렇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네 녀석은 오랜 세월 쌓아온 인간관계를 배신한 것이다.”
“뭐라고요? 그래서 어떡하시겠다는 겁니까?”
“배신자의 말로를 보여줄 생각이다.”
“형님!”
짧은 한마디였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외침이었다.
“더 할 말이 있는 것이냐?”
“형님에게는 좀 기다려주는 아량은 없는 겁니까?”
“아량? 거, 좋은 말이지. 하지만 네 녀석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구나.”
“부탁입니다. 형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내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거라.”
“아직은 때가 아니라 아무런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좋다. 그럼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 하나만 물어보겠으니 대답하거라.”
“…….”
“주말마다 어딜 그렇게 가는 것이냐?”
“그건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글쎄, 난 들은 기억이 없구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산에 간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예전 무림에서 했듯이 말입니다.”
“공중 부양 말이냐?”
“네, 형님.”
“그건 한참 뒤에 한 말이 아니더냐. 주말마다 소리소문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한참 지나서 말이다.”
“그건 잘 모르겠고, 이래저래 머리가 좀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지금보다 좀 더 잘해보려고 기를 쓴 건만은 사실입니다.”
왠지 진정성이 엿보였다.
“좋다. 지금이라도 말해 보아라. 그동안 나를 배척하면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건…….”
지금까지와는 달리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흠, 말문이 막혔다는 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냐?”
“형님, 제발 넘겨짚지 좀 마시고, 사람을 진심으로 좀 대하십시오.”
“나는 말이다. 네 녀석 그런 태도가 헷갈린다는 말이다.”
“왜요, 제가 이랬다저랬다 하던가요?”
“어디, 그뿐이겠느냐?”
인공의 말에 용하는 한동안 깊은 고심에 빠진 듯했다. 그리고는.
“좋습니다.”
예의 결연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궁금하더라도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인공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저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음, 그건 일단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다.”
“그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하다니, 내가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나는 그저 분명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단서를 다는 네 녀석 행태를 의심하는 것뿐이야.”
“형님, 죄송하지만 그 약속을 하지 않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절명한다 해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허, 네 녀석의 연애사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만큼 위험한 것이더냐?”
“약속해 주십시오.”
사실 ‘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약속하든가 아님, 더는 궁금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강경한걸. 더 고집부리다간 아무것도 못 얻을 테지. 이쯤에서…….’
인공은 얼굴을 싹 바꿨다. 그리고 얼버무렸다.
“약속하마. 실은 아까부터 약속은 했으나, 바로 인정하기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서.”
“정말 딱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용하가 말하기만을 기다리는 인공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리고 마침내.
“로켓 발사체를 연구개발 중입니다.”
어금니 사이로 결연히 새 나오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