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98
98화
“뭐라, 로켓 발사체?”
격분해 소리치는 인공 위협적인 목소리에 용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용하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더 화가 났는지 인공은 노발대발했다.
“그것을 만들어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 것이냐?”
인공의 물음에 무슨 대답이든 해야만 했다. 아니면 노기는 더욱 승천할 것이니.
“더는 묻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냉담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
“그럼 그동안 수련생들에게서 벌어들인 회비를 그 로켓인가 뭔가 만드는 데 다 쏟아부었단 말이냐?”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때까지는.”
단호했다. 절대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저리도 야멸찬 인간이 돼 버렸단 말인가.’
서운한 기색을 감출 순 없었지만, 인공 역시 마음을 다잡고 돌아섰다.
“알았다. 시일 내에 우리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사무실을 나가 현관 쪽으로 멀어지는 인공의 뒷모습을 보는 용하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 * *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시간은 평행선을 달렸다.
용하의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 인공의 시간은 하품 나도록 느리게.
오전과 오후 수련 시간에 두 사람은 간혹 얼굴이 마주쳤지만, 외면하기 일쑤였다. 미워서가 아니었다. 꼴 보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괜히 눈길이 마주치면 단단히 묶어두었던 결심이 풀려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어서였다.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래서 마른침을 삼키며 참고 또 참았다.
그런 기류를 가장 먼저 감지한 건 대치동 관장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왜, 최근 관장님과 사범님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마치 대련할 때 서로에게 집중하며 단칼에 베이어 버리겠다는 각오로 빈틈을 노리는 예리한 눈빛 같을까.’
대치동 관장은 다른 수련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혹시 김 관장과 인공 사범을 자기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시선을 제자리로 가져오려고 할 때였다. 김 관장과 인공 사범의 눈길이 짧게 마주쳤는데, 두 사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얼핏 엿보였다.
‘뭐야? 그동안 예리한 눈길이 마주치는 것만 보고 미소를 짓는 순간은 놓쳤던 거야?’
그날 밤.
검도 체육관 사무실에 용하와 인공이 마주 앉아 있었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이후, 정말이지 오랜만에 함께 하는 자리였다.
“오늘 왜 웃으신 겁니까?”
“네 녀석은 왜 웃었던 것이냐?”
“대치동 관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웃었던 게로구나.”
“그럼 형님도…….”
인공은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변명의 뜻이 담긴 토를 달았다.
“수련생들에게 체육관 내부 사정을 들키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지 않으냐?”
“형님의 처사에 저 역시 동의했습니다.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특히 대치동 관장에게는 말이다.”
이번에도 동의한다는 뜻으로 용하는 고개를 숙였다.
인공이 대치동 관장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동안 그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용하가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실망하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무언중에 인공과 일치했다.
“형님!”
인공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었다.
“처음부터 형님과 상의하지 않고 일을 벌인 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후회할 것 없다. 장부가 벌린 일에 후회란 있을 수 없는 법.”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게 다 무슨 소리냐? 달리 방법이 없었다니.”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거든요.”
“혼란스러울 게 뭐가 있느냐? 자네 약혼녀 김미숙 원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검도 체육관도 이만하면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데, 무엇이 부족해 마음을 못 잡고 방황했던 것이냐?”
“그래서 더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생각을 누구에게도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없으니까요.”
“자네와 나는 산전수전을 함께 겪은 사이야. 그런 내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것이냐?”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지금의 제 혼란스러운 심경을 다스리는 건 오롯이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어도 혼자 극복해 보겠습니다.”
“알겠다. 자네도 심지가 있어 그러는 것일 테니, 잠자코 기다리겠네.”
“감사합니다.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그날 이후 용하는 더욱 바빠졌다.
수련생들 눈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달라졌어.’
그동안 주말에만 체육관을 비웠던 용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오후 수련을 마치고 나면 부리나케 검도 체육관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그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얘기겠지. 그리고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일 테고.’
왠지 용하의 말대로 그리 머지않은 시일 안에, 그러니까 조만간 모든 걸 알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단지 기대감이어도 좋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생겨 견딜 수가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가끔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 정도 나누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 * *
―치지직, 치직, 치직!
시공간 이동체 제작 공장에 이리저리 불똥이 튀었다.
우주발사체를 연상시키는 구조물 상부와 하부를 향해 길게 뻗은 두 대의 사다리차 바구니 속에 각각 사람이 보였다. 두 사람은 구조물에 조립하기 위해 용접하는 용하와 조광연이었다.
용접작업은 반나절이나 쉼 없이 계속되었다. 용하와 조광연의 고생으로 구조물의 모양새가 어느 정도 형체를 드러냈다.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일단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다음 작업이라면?”
“저 뼈대 위에 피부를 덮을 겁니다.”
“피부?”
용하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아, 이를 테면요.”
“아, 닭살이 뜨거운 기름에 타지 않도록 옷을 입히는 것처럼요?”
“빙고!”
“맞혔습니까?”
“네, 일단 치장을 좀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치장이면 어떤…….”
“단순히 그냥 치장하는 건 아니고, 수십만 도의 고열을 견딜 수 있는 갑옷을 입힌다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수십만 도의 고열을 견딘다고요?”
“네.”
“그런 고열은 견딜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열에 강한 탄소섬유를 수천 장 겹쳐 1mm까지 압축한 신소재입니다.”
“너무 얇은 거 아닌가요?”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에서 을 만들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게를 고려해 여러 소재로 다양한 실험을 했던.
“아, 그렇죠. 가장 중요한 문제겠죠. 무게가 가벼우면 견고함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견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관장님 경험을 토대로 유추해 봤을 때, 굳이 견고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왜요? 안전이 우선이잖아요. 어쩌다 차원 이동을 했다 칩시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죽고 껍데기만 차원 이동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맨몸으로 시간의 블랙홀을 통과했잖습니까?”
조광연의 말에 용하는 입이 쑥 들어갔다.
하지만 용하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조광연이 시간의 블랙홀이라 일컫는 광채를 통과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劍이 곧 法인 무림에서의 안전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그곳에서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나 숱한 위기를 모면했지만, 무엇 하나 자기 의지로 된 것은 없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욕심도 어느 정도는 깔려 있었다.
“조 박사님, 아무리 생각해도 안전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비근한 예로, 자동차 사고가 나면 튼튼한 차에 탄 사람이 좀 덜 다칩니까?”
“그건 역학적으로 어떤 각도와 위치에서 어느 부위에 부딪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자동차가 튼튼한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왕이면 튼튼한 차를 타면 좀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잖습니까?”
“위안은 좀 되겠죠.”
“네, 바로 그겁니다. 박사님께서 제게 위안을 좀 주십시오.”
스스로 위험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을 어떤 말로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알겠습니다. 최대한 안전에도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더는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참, 그리고 말입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승객 탑승 인원은 4인용으로 해주십시오.”
“네-에?”
조광연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용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음,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주십시오.”
“네-에?”
조광연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확연히 높아졌다. 조광연이 경악했지만, 용하는 여전히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이건 무리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지금, 박사님 설명을 들으면서 이것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광연 박사님은 할 수 있습니다.”
“각계 전문가가 모이면 뭐는 못 하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박사님이 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제가 스스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 관장님이 요청하신 건 교통안전과 물류 이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요?”
“그건 그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뇨, 그 사람들보다 박사님이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보다 훨씬 더 우수한 두뇌를 가지셨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학문 분야가 다른데.”
“징징거리시지 말고 공부하세요. 남들 열흘 걸릴 거, 박사님은 하루면 되지 않습니까?”
조광연은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물론 그야 그렇지만.”
“…….”
“그런데 짐은 얼마나 실을 수 있으면 되겠습니까?”
“음, 이민용 가방 다섯 개 정도 들어갈 만한!”
조광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곧.
“대신 패신저 칸이 좁아질 거라는 것쯤은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짐이 실리는 만큼 사람은 거의 구겨지다시피 승차할 수밖에 없다는걸.”
그 순간 용하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14세기 갈 때나, 21세기로 돌아올 때나,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들을.
이윽고 용하는 비릿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구겨져야 한다면 얼마든지 구겨지겠습니다.”
그날 이후 조광연은 연구실보다는 중앙도서관에 더 자주 나갔다.
당연히 용하와 동선이 겹치는 일이 많아졌다.
“저, 박사님!”
반갑게 대하는 용하와는 달리, 조광연은 시큰둥하게 용하를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의아했지만, 조광연의 손에 들린 서적들을 흘깃 바라보는 용하는 곧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천체물리학 박사 조광연이 자동차와 물류 관련 잡다한 책들을 살펴봐야 하니, 전공 서적보다 훨씬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박사를 도울 만한 일이 없을까?’
용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당장 해결해야 할 잡다한 문제는 스스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공간 이동체에 몇 명을 태울 것인가, 얼마만큼의 짐을 실을 것인가. 그런 작은 문제는 스스로 공부해서 조 박사를 어시스트 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공부하고는 담쌓고 지내 온 용하였다. 만약 용하가 고집을 부린다면, 몇 달이면 될 일을 몇십 년 동안 한다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용하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박사님.’
그것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