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03)
신들의 배달기사(103)
“앗싸! 또 외출인 겁니닷!”
“매일매일 이렇게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는 것입니닷!”
“다람쥐 씨, 오늘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 겁니닷!”
이른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방방 뛰어다니던 세 님프를 데리고 보육원을 나선 하준은.
자꾸만 삐져나오는 하품에, 찰싹찰싹 제 볼을 때리며 졸음을 내쫓았다.
이 조그만 놈들은 뭐 잠도 없나?
어제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면서, 지치지도 않고 또 출발 대행진이네.
“얘들아, 천천히 좀 가라. 천천히 좀!”
루시오를 따라 이곳 도랑물 마을에 도착한 지도 어느덧 나흘째.
무언가 알아볼 게 있다고 혼자 떠나버린 님프를 대신해 보육원에 남은 그는.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방을 하나 내어주는 대신, 그동안 애들과 좀 놀아줄 수 없겠냐던 원장의 부탁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루시오, 부탁이다. 빨리 좀 와라.’
그래봐야 하루 이틀이겠거니 하고 허락한 자신을 원망하며, 벌써 저 멀리 마을 입구에 다다른 애들을 쫓아 걸음을 옮긴 하준은.
반가운 얼굴로 경비들과 인사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을 발견하곤,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자.”
“와아! 와아!”
끼이이익-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만세를 부르는 아이들의 앞으로,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
“고생이 많으신 겁니닷.”
“힘내시는 겁니닷!”
안쓰러운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문지기들의 말에 어색하니 미소를 흘린 그는.
뭐가 그리 급한지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먼저 틈새로 쏙 빠져나가는 녀석들을 보고선, 벌써부터 몰려오는 피로감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준, 하준! 오늘은 좀 더 멀리 가보는 겁니닷!”
“오르부스! 하준이 아니라 하준 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깟! 대단한 영웅님이시니깟, 좀 더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입니닷!”
“엣, 하지만 루시오 누나는 그냥 하준이라고 했던 겁니닷.”
“그건…… 루시오 언니는 엘리트 님프라서 그런 겁니닷!”
하지만 일은 일.
방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다잡은 하준은, 잠시 문 앞에 멈춰서 티격태격하고 있는 애들을 보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자, 자. 호칭은 아무렴 됐으니까. 일단 우리, 목적지부터 좀 정해보는 걸로 할까? 오르부스, 아까 좀 더 멀리 가보자고 했었지? 어디 생각나는 곳이라도 있어?”
어제도 아침 일찍 나갔다 해가 다 저물어서야 겨우 마을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좀 더 멀리라는 말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지만.
기왕 놀아주기로 한 거, 굳이 거기다 대고 흥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도 놀이방에서 또 시달릴 거, 아예 그냥 밖에서 체력을 다 빼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거 같았고.
“으음, 그러고 보니 마을 근처에 엄청 엄청 예쁜 꽃밭이 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 것입니닷!”
“앗! 그 이야기, 비르고도 들은 것입니닷!”
“펠루스도, 원장님이 말씀해주신 겁니닷!”
“……꽃밭?”
꽃밭이라.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돌아온 이야기에 조용히 혼자 말을 곱씹은 그는.
루시오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저에게 부탁하고 간 내용을 떠올렸다.
분명 시간 나면 꽃 한 송이만 구해다 달라고 했던가.
노란 꽃잎에, 특이하게도 밤에 꽃을 피우는 녀석이라는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 거기 가서 누가 누가 더 희귀한 꽃을 찾나 한번 해볼까?”
“핫! 그런 거라면 오르부스가 엄청 엄청 희귀한 꽃을 찾아주는 겁니닷!”
“비르고도! 비르고도 절대 안 지는 것입니닷!”
“바로 출발하는 겁니닷!”
안 그래도 그 꽃은 또 언제 찾아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꽃밭행을 허락한 하준은, 마찬가지로 방방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니 미소 지었다.
꽃도 찾고, 애들도 좋아하고.
일석이조로구만.
“꽃밭 님, 어서 나오시는 겁니닷!”
“으으, 나뭇잎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겁니닷!”
곧바로 투명한 날개를 퍼덕이며 두둥실 떠오른 녀석들을 쫓아, 혹 놓치지 않게 잔가지들을 옆으로 치우며 숲을 돌아다니던 하준은.
통 보이지 않는 꽃밭에 답답했는지 고도를 높이를 애들을 보고선, 경고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너무 높이 올라가 제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면 다시 찾는 데 큰일이기도 하고.
원장이 말하길, 아직 어린 님프들은 독수리 같은 맹금류한테 걸리면 위험하다고도 했으니까.
“얘들아, 위험하니까 너무 그렇게 높게 날지는……. 응?”
부스럭-
그렇게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애들을 살피며 숲을 뒤적이길 얼마나 지났을까.
젖힌 수풀 사이로 환히 들어오는 알록달록한 빛깔을 마주한 그는.
저 멀리 널따란 공터 끝까지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보고선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아아!”
“진짜 진짜 예쁜 것입니닷!”
이후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선 자신을 따라 바닥으로 내려온 님프들을 보며, 신난 녀석들을 데리고 꽃밭에 들어선 하준은.
반짝이는 눈으로 여기저기 뒤적이는 애들 사이에 끼어, 루시오가 부탁한 꽃을 찾아 주변을 훑었다.
“으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쪽엔 아예 없는 건가?”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꼬르륵거리는 배와 저물어가는 날을 보고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밤에만 피는 꽃이라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낮에 그런 걸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던 듯싶었다.
“하준, 하준! 여기 네잎클로버인 겁니닷!”
“비르고는, 비르고는 이따만한 꽃을 찾은 것입니닷!”
이윽고 예상외로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열심히 꽃밭을 돌아다니던 님프들을 불러 모은 하준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로 네잎클로버 하나를 찾고선 자랑스러워하는 오르부스와, 제 얼굴보다 큰 해바라기를 들어 올리며 해맑게 웃어 보이는 비르고를 보며.
대견하다는 듯 두 녀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래. 둘 다 대단하네. 네잎클로버도, 해바라기도 멋진걸? 그리고 펠루스는…….”
그리곤 굉장히 뿌듯해하는 애들을 보며, 슬슬 돌아갈 생각에 남은 한 명을 찾아 근처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곧 텅 빈 꽃밭을 보며 당황한 듯 말을 이었다.
“……펠루스? 혹시 펠루스 못 봤니?”
“펠루스 말입니깟? 펠루스라면 아까 저 구석에……. 어?”
하준의 물음에 조금 전 친구가 있었던 자리를 돌아본 비르고는, 새빨간 꽃들만 덩그러니 핀 바닥을 보고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사, 사라진 겁니닷! 분명 저기 있었는데…….”
“펠루스! 펠루스, 어디 있는 겁니깟!”
돌아온 답에 하얗게 질린 하준은, 말없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아이가 있었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루시오가 부탁한 꽃을 찾으면서도 중간중간 애들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잠깐 한눈을 파는 바람에…….
“얘들아,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금방 찾아서 데려올 테니까.”
“싫습니닷! 오르부스도, 오르부스도 같이 찾는 겁니닷!”
“비르고도!”
“오르부스! 비르고! 그러다 너희까지 사라지면…….”
뼈아픈 실책에 입술을 저미며, 잠시 아이들을 두고 펠루스를 찾아 나서려던 하준은.
붕붕 고개를 저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제 시선을 피하지 않는 녀석들을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아니, 아니다. 대신 둘 다 내 곁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그거라면 걱정 마는 겁니닷!”
“비르고도, 그렇게 꼬맹이는 아닌 겁니닷!”
그 결연함에 마지못해 동행을 허락한 그는.
주의대로 양옆에 찰싹 달라붙은 애들을 데리고선, 펠루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 애가 어디로 갔을지는 애들이 더 잘 알겠지.
“펠루스!”
“어디 있는 겁니깟! 들리면 대답하는 겁니닷!”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와 함께 벌겋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하필이면 또 날아서 갔는지 발자국도 안 남은 녀석에, 초조한 얼굴로 무작정 주변을 뒤지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쿠구구구-
“히야아악!”
“……펠루스!”
“저쪽입니닷, 하준!”
문득 숲속에 울려 퍼지는 비명에 흠칫 고개를 돌린 하준은.
재빨리 슈트의 효과를 발동시키고서 두 님프를 안아 들곤, 소리가 들려온 장소를 찾아 발을 움직였다.
-크워어어엉!
“고, 곰 씨……. 흐끅! 살려주는 겁니닷! 펠루스는 맛없는 것입니닷!”
잠시 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펠루스를 발견한 그는.
웬 동굴 안에서 곰한테 위협당하고 있는 녀석을 보곤,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갔다.
-크워어……. 크왕?
그대로 오르부스와 비르고를 옆에 내려놓고, 앞발을 들어 올린 곰을 콱 붙잡은 하준은.
안쪽에서 날개로 도망치지도 못하게 입구를 가로막고 선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렸다.
부우웅-
-크와아아앙!
이윽고 족히 3m는 될 법한 거대한 덩치를 있는 힘껏 내던진 그는.
하늘 높이 뛰어올라 저 멀리 쿵 소리를 내며 사라진 놈을 뒤로한 채, 아직도 벌벌 떨고 있는 님프의 앞에 무릎 꿇었다.
“펠루스,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고?”
“흐아아앙! 엄청 엄청 무서웠던 겁니닷! 곰 씨한테 잡아먹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닷!”
눈높이를 맞추고, 곧장 안겨드는 녀석을 토닥인 하준은.
다행히 상처 하나 없는 펠루스를 보고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준, 아니, 하준 님. 진짜 진짜 강한 것입니닷.”
“그러니까 말했지 않습니깟! 루시오 언니가 무척이나 대단한 영웅님이라 했다고!”
조금 전, 하준이 내려준 곳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르부스와 비르고는.
무슨 나뭇가지를 집어 던지듯 그 커다란 곰을 손쉽게 한 손으로 던져버린 그를 보며, 자못 존경스러운 눈으로 널찍한 등을 올려다봤다.
“자, 나쁜 곰 씨는 내가 대신 ‘이놈’ 해줬으니까. 이제 그만 뚝 그치고, 마을로 돌아……. 응?”
뒤이어 펠루스를 달래곤 자리에서 일어선 하준은.
씩씩하게 고개를 주억이며 친구들 곁으로 가는 녀석을 잠깐 바라보다, 이내 옆에서 흘끗 비치는 노란 무언가에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이건…….”
동굴 모서리.
벽에 붙어 수줍게 피어난 샛노란 꽃잎을 마주한 그는.
그새 능선을 넘은 태양 대신, 어두컴컴한 밤하늘 위로 살포시 떠오른 달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앗! 저 꽃은!”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멈춰 서는 하준을 보며, 도도도 그의 옆으로 다가선 오르부스는.
동굴 입구를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달빛을 맞아 신비롭게 빛나는 꽃을 보고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지하게 귀한 님프 꽃! 달맞이꽃인 겁니닷!”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