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04)
신들의 배달기사(104)
개울물 대학.
그리스 신화의 님프들은 물론, 저 멀리 켈트 신화의 요정들조차 배움을 청하러 유학을 온다는 교육의 명소.
학점과 상관없이 그저 무사히 졸업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최소 영웅의 보조 자리가 보장되는, 훌륭한 아웃풋의 명문 대학교.
똑똑똑-
거의 2년 만에 모교에 도착해, 신화학과 학과장실을 찾은 루시오는.
졸업생 신분으로 자료실 열람을 허가받기 위해,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누굽니깟? 지금 채점 때문에 바쁘니깟 다음에 오는 겁니닷.”
끼이익-
돌아온 답에 그저 묵묵히 문을 연 그녀는.
채점은 무슨, 어차피 조교 시킬 거면서 찌릿하고 문짝을 노려보는 교수를 발견하곤 꾸벅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오랜만인 겁니닷.”
굳이 채점 때문이 아니더라도 요 근래 일이 바빴는지 산발이 된 녹색 머리에, 삐뚤게 쓴 뺑글이 안경.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저를 보며, 이게 꿈이야 생시야 눈을 끔뻑이는 교수를 마주한 루시오는.
이내 반가운 얼굴로 환히 미소 지으며 저를 반기는 그를 바라보았다.
“……루시오? 이게 얼마 만입니깟! 졸업하고 큐피트 님한테 발탁된 이후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너무너무 반가운 것입니닷! 한데 여긴 웬일입니깟? 설마 드디어 대학원 과정을 밟을 생각이 든 겁니깟?”
하나 그것도 잠시.
듣기만 해도 끔찍한 제안에 흠칫 뒷걸음친 루시오는.
참 존경하는 님프긴 했지만, 동시에 그의 밑에서 수학하며 거북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루에 한 번씩 아침 인사 대신으로, ‘그래서 우리 랩실엔 언제 들어올 생각이니?’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게 언제부터였더라.
첫 수업 때 멋모르고 신나서 교수님의 실수를 정정해버린 그날부터?
파라오 같이 사후에 추앙된 신들을 두고 갈리는 견해에 괜히 한마디 했다가, 다음 강의 때 교수와 일대일 토론을 붙게 된 그 순간부터?
그것도 아니면…….
“농담입니닷, 농담!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닷. 엄청 엄청 대단한 영웅님을 모시게 됐다고 말입니닷!”
조금 전, 대학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교수를 대면하고 나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트라우마에 식은땀을 흘리던 루시오는.
곧 장난이었다며 제자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그를 보고선, 정신을 차리곤 어색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어째 농담이 마냥 농담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해서,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깟?”
“그게, 학과 자료실의 열람 권한을 받고 싶은 것입니닷!”
아무튼 이만 의자 등받이에 기대 누우며 편한 자세로 저를 올려다보는 교수를 마주한 그녀는.
이어진 물음에 곧장 목적을 털어놓았다.
“……학과 자료실을 말입니깟? 혹시 영웅님을 모시는 데 어딘가 모르는 부분이라도 생긴 겁니깟? 그 루시오갓?”
그에 진심이냐는 듯 놀란 표정으로 루시오를 바라본 교수는.
이내 어딘가 요상함에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시오는 제 교편 인생 수백 년간 겨우 두 명밖에 만나지 못한 천재 중의 천재이자.
학부생 과정은 물론 박사 과정에서나 다룰 법한 신화적 지식들을 통달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으니까.
한데 그런 엘리트가 졸업 이후로 얼굴 한번 안 비치다 갑자기 찾아와선, 학과 자료실에 수록된 자료를 찾는다니.
딱 봐도 무언가 꺼림칙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습니닷. 처음엔 어떻게든 루시오 혼자 알아보려고 했었는데, 신님들조차 쉬쉬하는 정보인 걸 보곤 여기가 생각난 겁니닷. 학과 사무실엔 신님들께서 직접 지우신 이야기, 즉, 금서에 대한 기록도 있지 않습니깟?”
“……금서, 말입니깟?”
아니나 다를까.
제법 위험한 정보에 손을 대려 하는 제자를 보며 입술을 저민 교수는.
고민 끝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시오, 도대체 어떤 일에 휘말려버리고 만 겁니깟? 금서가 괜히 금서가 된 게 아니란 거,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깟.”
저 하늘의 신들이 이야기를 지우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지우는 것이었다.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높으신 분의 치부라든가.
자칫 신화 간에, 혹은 나라 간에 분쟁거리가 될 수도 있는 문제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누군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위협이 될 만한 정보라든가.
“일곱 갈래로 갈라진 땅. 군데군데 푸른 불길이 넘실…….”
텁-
“그 얘기, 어디서 들었습니깟?”
이윽고 루시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그녀의 주둥이를 틀어막은 교수는.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슥 훑었다.
“읍, 읍! 푸하앗!”
“앗, 미안한 겁니닷!”
그리곤 억눌린 신음 소리에 흠칫 손바닥을 뗀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제자를 보곤 고개를 꾸벅였다.
예상을 한참 웃도는 이야기에 너무 놀라버리는 바람에 그만.
“……아틀라스 님한테 들은 겁니닷.”
“아틀라스 님이라면 그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고 계시는, 엄청 엄청 커다란 티탄님 말입니깟?”
“맞습니닷. 그리고 벌써 세 번이나 거기서 튀어나온 괴물들이랑 마주한 것입니닷!”
그에 불만 어린 표정으로 무어라 따지려던 루시오는.
전에 없이 초조한 교수의 얼굴을 보고선, 고분고분 질문에 답했다.
“그게, 정말입니깟?”
세 번.
한 번만 봐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녀석들을 자그마치 세 번이나 만났다는 얘기에 헛숨을 들이켠 교수는.
지금 올림포스는 물론 북유럽, 켈트, 저 멀리 이집트와 수메르에서까지 가장 핫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녀의 주인을 떠올리며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용케도 여태까지 살아남은 겁니닷. 과연 세이렌 무리를 무찌르고, 미노타우로스에 그 거대 괴수 크라켄까지 잡았다는 영웅님다우신 겁니닷!”
하나씩만 떼어놓고 봐도 기존의 어지간한 영웅들보다 더욱 위대하고 빛나는 업적들.
눈앞의 제자가 그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한 그는, 자못 부럽다는 눈으로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흠! 그래서, 도대체 거기가 뭐 하는 곳이기에 그러는 겁니깟?”
딱 봐도 무언가 아는 구석이 있는 그 반응에 씨익 미소를 지은 루시오는.
조용히 목을 가다듬으며, 그놈의 일곱 갈랜지 뭔지 통 알 수 없는 지역에 대하여 물었다.
“음, 그건…….”
제자의 물음에 곤란한 표정으로 눈길을 피한 교수는.
도리어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며 지그시 제 눈을 쳐다보는 그녀를 보곤, 부담스러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직접, 내려가서 확인해보는 겁니닷.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으니깟.”
교수의 말에 잠시 게슴츠레 그를 흘기던 루시오는.
이내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한 걸음 뒤로 떨어졌다.
보아하니 제가 원하는 정보는 그 자료실에 있을 거 같을뿐더러,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도 꽤나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올림포스의 주신들을 보면 사실인 듯했으니까.
“그럼 지금 바로 자료실로 가도 되는 겁니깟?”
“……조금만 있어 보는 겁니닷. 금방 허가증을 끊어줄 테니깟.”
“알겠습니닷. 여기서 기다리는 것입니닷.”
결국 원하는 바를 얻어낸 그녀는, 말마따나 금세 준비된 허가증을 들고선 신화학과 자료실을 찾았다.
“으음, 책이 너무 많은 겁니닷!”
그렇게 학부생 시절에도 이따금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들락날락했던 자료실 안으로 들어선 루시오는.
어째 그때보다 더 넓어진 듯한 방을 보며, 원하는 정보를 찾아 책장을 뒤적였다.
가장 의심이 가는 ≪그리스 신화의 잊혀진 지역들≫이라는 제목의 책부터 시작해, ≪올림포스의 지우고 싶은 과거≫라는 고서.
뿐만 아니라 북유럽, 켈트, 이집트 등 수많은 신화와 관련된 자료집들까지.
“으, 흥미로운 내용들이었지만, 이 책도 아닌 것입니……. 우, 우와악!”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어떻게든 하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날밤을 새워가며 책을 붙잡고 늘어지던 녀석은.
아무리 뒤져봐도 작은 단서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에 터덜터덜 힘없이 발길을 옮기다, 기어코 휘청이며 책장 위로 푹 엎어졌다.
쿵-
우르르르-
“아읏…… 크, 큰일 난 겁니닷! 책이……. 앗?”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자료실에, 다급히 책장을 일으켜 세우려던 루시오는.
오랜 세월 탓에 기울어진 바닥을 잡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책장 다리 한쪽을 받치고 있던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하고선 홀린 듯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Septem Peccata Mortalia≫
아무런 장식도, 그림도 없는 그저 새까만 표지 상단.
친숙하디친숙한 라틴어로 적혀 있는 붉은색 글씨를 읽어 내려간 님프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그토록 찾아 헤맨 고서임을 느끼곤, 퀭한 눈을 빛냈다.
“……칠죄종.”
칠죄종.
엉망이 되어버린 자료실의 정리도 잊은 채, 그대로 첫 장을 넘긴 루시오는.
따로 목차도 없이 곧바로 튀어나온 지문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곱 갈래로 갈라진 땅. 군데군데 푸른 불길이 넘실거리는 곳…….”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지명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고 책을 탐독해간 님프는.
그간 질리도록 봤던 촉수와, 일전에 헤라클레스를 만난 바위산에 널브러져 있던 사체. 그리고 그때도 보지 못했던 다른 끔찍하게 생긴 괴물들까지.
“이, 이건 말도 안 됩니닷.”
녀석들에 대해 꽤나 상세하게 적힌 설명들을 읽으며 점점 딱딱하게 표정을 굳혀가던 루시오는.
이내 뒷장에 나오는 칠죄종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선,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럴 순 없는 겁니닷! 이게 사실이라면 대체 왜…….”
텁-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을 넘긴 님프는.
혹 누군가 또 이를 찾을까, 시커먼 책을 원래대로 책장 밑에 받침대로 두고선 황급히 떨어진 책들을 주워 넣었다.
“……아무래도 이건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닷.”
통 믿기지 않는 내용에 근심 가득한 얼굴로 돌아선 루시오는.
어째 며칠 전보다 더 복잡해진 것만 같은 마음을 추스르며, 곧장 완벽하게 정리된 자료실을 빠져나갔다.
“하준…….”
알고 보니 더욱 터무니없는 일과 엮여버린.
자신과 하준의 처지를 한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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