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08)
신들의 배달기사(108)
“오랜만이에요, 하준.”
정겨운 오두막.
연속으로 두 번이나 날아온 콜을 받곤 올림포스로 올라온 하준은.
익숙한 풍경에 곧장 문을 두드리곤, 저를 기다리고 있던 헤파이스토스의 안내를 받아.
꽤 간만에 보는 고객님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프레이야 님!”
프레이야.
모든 발키리들의 수장이자, 무려 그 오딘에게 직접 마법을 가르쳐주었을 만큼 마법에 정통한 미의 여신.
일전에 편지 배달 건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그녀를 마주한 하준은.
그때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보상을 기억하며, 자못 기대감에 찬 얼굴로 반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소문은 익히 들었어요. 그동안 미노타우로스도 잡고, 레드 드레이크도 잡고, 이번엔 크라켄까지. 이제는 북유럽에서도 하준을 모르는 신이 없을 정도던데요?”
그에 살포시 입가를 가리며 웃음을 흘린 프레이야는.
그날 이후로 고작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써 내려간 영웅을 보며, 전에 봤을 때보다 더욱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을 좁혔다.
“에이, 또 보자마자 빈말하시기는. 그렇게 띄워주신다고 더 싸게 해드리거나 그런 거 없습니다?”
“빈말이라뇨. 사실을 말한 건데.”
거기다 대부분의 영웅들과 달리 겸손하기까지 한 하준을 보며, 제법 탐나는 눈빛으로 그를 흘긴 여신은.
본디 이곳을 찾은 목적도 잊곤, 스멀스멀 차오르는 욕심에 조용히 입술을 핥았다.
돈에 있어서 너무 깐깐하다는 게 조금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 정도야 실력 있는 영웅으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크흠, 프레이야?”
“……어머, 미안해요, 헤파이스토스. 아시겠지만, 북유럽엔 영웅이 적어서.”
말없이 점점 음흉해지는 그녀의 표정에, 헛기침을 하며 자제를 바란 헤파이스토스는.
돌아온 답에 불편한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슬그머니 하준을 돌아봤다.
“으음, 이번엔 배달 팁을 얼마나 받아야 하지? 최근에 페이백 들어온 거 빼고는 200까지 받아봤으니까, 적어도 100단위는 되면 좋겠는데.”
“일단 무작정 크게 부르고, 안색이 안 좋으면 그때 가서 살짝 낮추는 겁니닷. 그게 협상의 기본인 것입니닷.”
눈앞에서 프레이야가 저를 아예 북유럽으로 데려갈 궁리를 하고 있건 말건, 태평하게 제 님프와 보상 얘기나 하고 있는 그를 확인한 대장장이 신은.
괜한 걱정에 웃음을 터트리며, 말없이 자리를 비켜섰다.
그래.
그럴 인간이었음 애초에 처음 만난 그날, 넥타르부터 빈 병으로 돌아왔었겠지.
“아무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어쩌면 이번 사안이 저번보다 더 급할 수도 있는지라.”
“어우, 그럼요. 편하신 대로 하십쇼! 편하게.”
헤파이스토스가 떠난 자리.
더 잴 것 없이 직진으로 나오는 프레이야를 보며, 오히려 좋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지난 편지 배달 건보다 더 급할 수도 있는 사안이란 얘기에 눈을 끔뻑이며, 긴장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본디 저승에 가야 할 영혼들이 멋대로 천국으로 올라오던 것보다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라.
“실은, 최근 미드가르드에 있던 도시들이 하룻밤 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모양이에요. 그것도 해안가에 붙은 도시들 위주로.”
며칠 전, 오딘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 여신은.
어느 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그의 신전을 찾았다는 두 어부의 말을 기억하며 입술을 저몄다.
해안가에 있던 작은 마을.
밤바다에 비친 아득히 거대한 그림자.
일순간 새카맣게 뒤덮인 하늘과, 무언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린 마을.
그리고 당시 마을이 있던 자리 뒤로 흘끗 비쳤다던, 시뻘겋고 길게 찢어진 안광.
그 말을 모두 들은 프레이야는, 곧장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곤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하준을 찾았다.
산 자의 몸으로 헬헤임까지 다녀온 데다, 최근 그 거대 괴수 크라켄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그라면.
아마 놈을 이기진 못하더라도, 정말로 녀석이 맞는지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미드가르드?”
“북유럽 신화의 인간 세상을 말하는 겁니닷.”
여신의 말에 무슨 말인가 고개를 기울인 하준은.
옆에서 설명을 덧대는 루시오를 보며,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매일 밤 크레타섬 같은 곳이 하나씩 지도상에서 지워져 버리고 있다 이거지?
“……어?”
그렇게 보니 영 말도 안 되는 스케일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방금 그 말이 사실이냐는 듯 프레이야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 설마, 지금 저보고 그 괴물을 처치해달라는 걸 아니시죠?”
하룻밤 사이에 도시 하나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괴물이라니.
혹시 그 크라켄이라면 가능할까, 마음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던 하준은.
다시 붙으면 턱도 없을 싸움에 곤란하단 표정으로 여신을 훑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승리는 어디까지나, 녀석이 다리 한 짝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럴 리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리 염치없는 부탁은 하지 않는답니다.”
“그, 그렇죠? 휴, 다행이다.”
하준의 물음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은 프레이야는.
처음부터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덤덤히 답을 내놓았다.
만일 그 괴물이 제가 생각하는 녀석이 맞다면.
그는커녕 자신이 직접 나선다 하더라도, 쉬이 잡을 수 없는 상대였으니까.
“그러면 저한테 부탁하고 싶으신 일이라는 게…….”
“정찰.”
이어진 말에 곧바로 목적을 내보인 여신은.
이내 좀 더 자세히 얘기를 늘어놓으며, 진지한 눈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지금 당장 미드가르드로 가셔서, 누가 도시를 없애고 있는 건지, 그 소문의 주인공을 밝혀주셨으면 좋겠어요.”
띠링-
[현재 미드가르드에서 펼쳐지고 있는 믿지 못할 소문. 그 소문의 주인공을 밝혀내십시오.] [제한 시간: 168시간] [주의 * 배달에 실패하거나 포기할 시 천벌을 받게 됩니다.] [배달 팁: ]순간 눈앞에 주르르 떠오른 메시지에 당황한 하준은.
재빨리 반투명한 창을 옆으로 밀어놓곤, 고민하듯 흘끗흘끗 내용을 살폈다.
소문의 주인공이라.
굳이 염치없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강조하는 것으로 봐선, 딱 봐도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건데.
“루시오, 혹시 뭔가 짚이는 건 없어?”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슬그머니 루시오를 돌아본 그는.
그렇지 않아도 걸리는 부분이 있는 듯, 퍽 심각한 표정의 님프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미드가르드오름(Miðgarðsormr).”
“미드, 뭐?”
돌아온 답에 무슨 뜻인가, 멍하니 눈을 깜빡인 하준은.
곧 마저 말을 잇는 녀석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다른 말로 요르문간드(Jǫrmungandr). 아무래도 그 괴물 뱀의 소행인 것 같습니닷.”
요르문간드.
장난의 신 로키의 아들이자, 신조차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맹독을 가진 대괴수.
전승상으론 무려 온몸으로 미드가르드를 휘감을 수 있는, 사실상 크라켄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사이즈의 괴물을 떠올린 루시오는.
대답 대신 하준을 올려다보며, 그저 지그시 고개를 내저었다.
“으음.”
평소 같았으면 떽떽거리는 목소리로 절대 안 된다고 할 녀석이 도리어 조용하게 반대해오는 것을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흘린 그는.
잠시 근심 어린 눈빛으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루시오가 저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보통 위험한 녀석이 아니긴 한 모양인데.
“하준?”
늦어지는 답에 불안한 얼굴로 하준을 살핀 프레이야는.
갈수록 깊어지는 고민에 눈살을 찡그리며, 초조한 듯 입술을 꾹 물었다.
“일단.”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심 끝에 천천히 입을 연 하준은, 눈앞에 뜬 창에 아직 비어있는 부분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을까요, 고객님?”
“읏…….”
또 저번처럼 선제시를 뿌리는 그를 보며, 파르르 눈가를 떤 여신은.
그간 해결한 일이 일이니만큼, 전보다 많이 올랐을 몸값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팔…….”
“팔시이이입?”
쿵-
아직 얘기를 다 끝마치기도 전에 말꼬리를 늘이며, 일어날 듯 식탁에 손을 올리는 하준을 마주한 프레이야는.
그 무례한 언사에 주먹을 꾹 쥐면서도,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 또 이만한 영웅이 없다는 걸 되뇌며 억지로 입가를 끌어 올렸다.
“십은 너무 적죠? 한 백오십 정도면…….”
단번에 두 배.
이만하면 됐겠지, 하는 눈빛으로 다시금 앞을 바라본 여신은.
누가 봐도 똥 씹은 표정으로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그를 보고선, 꽉 쥔 주먹을 덜덜 떨었다.
“하, 하준! 표정 좀 푸는 겁니닷, 표정 좀!”
이내 프레이야의 뒤편으로 허옇게 피어오르는 한기에 흠칫 몸을 떤 루시오는.
황급히 머리를 내밀어 하준의 얼굴을 확인하곤, 옆구리를 쿡쿡 찔러 그만하라 눈치를 주었다.
“오백.”
“허!”
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원하는 금액을 제시한 하준은.
순간 터무니없는 금액에 기가 막혔는지 주전자 끓는 소리를 내는 여신에도 아랑곳 않고, 굳건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 오백? 이런 날강도 같은! 아무리 그래도 단순히 요르문간드가 맞는지 확인만 하고 오면 되는 자리에 그렇게나!”
“그럼 삼백.”
기어코 터져 나오는 불만에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단가를 낮춘 그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흘기는 프레이야를 보고선, 슬쩍 식탁 아래로 루시오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끄응…… 알았어요, 삼백. 대신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줘야 해요.”
아니나 다를까.
결국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없는 대체재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해버린 여신을 본 하준은.
지금껏 자기가 언제 무례한 태도를 보였냐는 듯, 자본주의의 얼굴과 몸짓으로 돌아가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고! 그거야 뭐,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고객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