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10)
신들의 배달기사(110)
“음? 네가 그 요새 유명한 님프로구나. 그러니까, 이름이…….”
“루, 루시오! 루시오인 것입니닷!”
“아, 그래, 루시오. 만나서 반갑구나.”
비프로스트.
헤임달의 부름을 받아 무지개다리로 돌아온 기사, 알베르토는.
오자마자 신기하다는 듯 스쿠터를 둘러보다, 곧 옆에 있던 꼬마 아이를 알아보곤 반가운 듯 미소 짓는 제 성좌를 보고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둘, 실은 이전에도 비프로스트에 와본 적이 있는 건가?’
그리곤 잠시 미심쩍은 눈빛으로 두 사람을 흘기던 그는.
그렇다고 하기엔 명백히 초면인 듯 보이는 인사를 되뇌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럼 어떻게…….’
헤임달.
거의 평생을 이곳 무지개다리 위에서 보내느라, 같은 북유럽 신화의 신이더라도 아스가르드 출신이 아니면 잘 모르던 그를 떠올린 알베르토는.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눈앞의 꼬마를 살폈다.
신도, 영웅도, 하물며 북유럽 출신도 아닌 평범한 어린아이.
그런 범인(凡人)을 굳이 헤임달이 기억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방금 봤습니깟, 하준? 헤임달 님께서 루시오를 알아보신 겁니닷!”
“그래, 그래. 잘됐네. 이걸로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진 건가?”
“그렇습니닷!”
쪼르르 계속 찰떡같이 붙어 있던 배달기사에게로 달려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짓는 녀석을 바라본 그는.
이내 성큼성큼 남자의 앞에 서선 먼저 손을 내미는 성좌를 보곤,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쩍 벌렸다.
“자네가 이하준인가. 소문은 익히 들었네. 듣자 하니 이번에 단신으로 크라켄을 잡았다지? 아, 조금 전에 들어서 알겠지만, 난 헤임달일세. 이곳 아스가르드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지.”
“아…… 예. 이하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짧게는 수천, 길게는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조금 특출 난 인간이라고 해봐야, 못해도 수만 번은 부딪쳐간 흔하디흔한 인연일 뿐이었으니까.
“듣던 대로 실력에 비해 인상은 평범하구만. 이전에 봤던 영웅들은 죄다 패기가 넘쳤는데 말이야. 뭐, 겸손한 것도 어떻게 보면 지켜야 할 미덕이니.”
그런 신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어디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었다.
특히나 그게 제가 활동하는 신화도 아닌, 타지의 신들에게까지 명성이 퍼진 거라면 더더욱.
‘……말도 안 돼. 그냥 배달기사라고? 이런 게?’
헤임달이 이름을 외우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힘으로 대표되는 헤라클레스? 지혜로 손꼽히는 테세우스? 아니면 그 둘을 이끌고 대규모 원정에 나선 이아손?
아마 저기서 더 쳐봐야 오르페우스나 아킬레우스, 메데이아 정도가 한계일 터였다.
한데 그런 내로라하는 영웅들 사이에, 저 얼빠진 배달기사의 이름이 끼다니.
“아무튼. 대략적인 얘기는 프레이야에게 들었을 테니, 설명은 따로 않겠네. 정말로 요르문간드가 움직인 건지만 확인해주게. 나머지는 아스가르드에서 처리할 테니.”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쇼. 이번에 받기로 한 보상이 꽤 짭짤하니, 금방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부릉-
잠시 뒤.
이야기를 마치고선 꼬마 아이와 함께 스쿠터에 올라탄 하준을 멍하니 지켜보던 알베르토는.
금세 저 멀리 무지개다리 건너, 미드가르드로 들어서는 둘을 보고선 입술을 꾹 씹었다.
“자네, 뭐 하는 건가?”
“……예?”
“뭐 하나, 어서 따라가지 않고.”
“아,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윽고 무심한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떤 기사는.
몰려드는 수치심에 이를 악물며, 재빨리 슬레이프니르를 몰았다.
하준.
이하준.
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미드가르드로 가는 길.
그놈 이름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 * *
이른 아침.
비프로스트를 지나 미드가르드에 들어서, 내비에 찍힌 경로대로 열심히 스쿠터를 몰던 하준은.
상당한 거리에 밤새 노숙을 감행하곤, 말똥해진 정신으로 텐트를 접어 넣었다.
“이야, 그래도 역시 텐트가 있으니까 노숙이 좀 더 편해지긴 하네. 예전에 헬헤임 갈 때는 정말, 가면서도 얼어 뒈지는 줄 알았는데.”
“으, 그땐 정말 끔찍했던 겁니닷. 근데 하준, 텐트가 있으면 이제 더 이상 노숙이 아닌 거 아닙니깟?”
“아, 그런가?”
리자드맨의 늪지에서 레드 드레이크를 쓰러트리고 받았던 주머니를 보며, 흐뭇하니 미소를 지은 그는.
언제 봐도 참 든든한 녀석에, 전날 넣어 놨던 스쿠터를 꺼내 들었다.
쿵-
“알베르토 씨! 알베르토 씨?”
“……예, 출발하시죠.”
그리곤 천천히 시동을 걸며, 어제부터 같이 다닌 기사를 찾은 하준은.
어째 헤임달과 마주친 이후로 생각이 많아진 듯한 그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혼났나?
부릉-
“하준, 하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깟?”
“글쎄. 이 정도면 저녁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숲길을 가르고, 이따금 나름대로 정비된 길목을 지나며 목적지로 향하길 두어 시간쯤.
어느덧 중천에 뜬 해에 또 심심함이 도졌는지, 칭얼대는 루시오를 달래던 그는.
하늘 위.
시커먼 말에 올라 하늘을 달리고 있는 알베르토를 보며, 조금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생긴 건 우리 적토가 좀 더 잘 빠졌어도, 날아다닐 수 있는 거 하난 확실히 좋아 보이네.’
언제 한번 헤파이스토스한테 가져가면 스쿠터로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마침 돌밭을 지나느라 시큰거리는 엉덩이를 쓰다듬은 하준은.
아쉬운 마음으로 입술을 적시며, 괜스레 스로틀을 꾸욱 당겼다.
부우웅-
“해님이 지금 꼭대기에 있으니깟, 저녁이 되려면 앞으로……. 앗! 하준, 하준! 잠깐 멈춰보는 것입니닷!”
“응?”
끼이이익-
그렇게 빨리 돌밭을 벗어난 뒤, 이제부턴 막 해안을 타고 이동하려던 그때.
갑자기 바다를 가리키며 다급히 저를 보채는 님프에, 스쿠터를 멈춰 세운 그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해안선으로 다가가, 유심히 무언가를 살피는 녀석을 보며.
두리번두리번, 마찬가지로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음, 딱히 뭐 이상한 점은 없는 거 같은데?”
“쉿,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는 겁니닷.”
도대체 달리는 스쿠터 위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긴가민가한 얼굴로 조용히 침음을 흘리다, 이내 뭔가 깨달은 듯 하늘 높이 날아오른 루시오는.
그리 내다보는 시점을 바꾸고 나서야, 어딘가 꺼림칙했던 이유를 발견하곤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다그닥-
그러는 사이.
예고도 없이 훅 자리에 멈춰 선 하준을 보며, 무슨 일인가 상황을 살핀 알베르토는.
곧 누군가 파먹은 것처럼 안쪽으로 둥그렇게 나 있는 해안선을 마주하곤,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뭐야, 이거? 크기가…….’
지상에서 족히 30m는 떨어진 곳에서 내려다보는데도, 한눈에 다 안 들어올 만큼 거대한 폭을 가진 둥근 해안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바퀴 고개를 돌린 알베르토는.
당장 이 근처만 하더라도 세 개씩이나 보이는 기이한 형태의 해안선을 보며, 황급히 슬레이프니르를 몰아 스쿠터 옆으로 내려앉았다.
“하준 씨, 큰일입니다! 지금 해안선이…….”
“아! 알베르토 씨,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윽고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 했는데 타이밍 좋게 내려온 알베르토를 보며, 잘됐다는 얼굴로 그를 부른 하준은.
조금 전 루시오가 위에서 봤던 광경이라며, 모래사장에 찍찍 그은 그림을 자세히 바라봤다.
“지금 여기 보면 해안선이 다섯 개 정도 움푹 들어가 있는……. 하준? 하준! 혼자 얘기 듣다 말고 어디 가는 겁니깟!”
이어지는 설명에 덧붙여, 마치 쥐가 파먹은 듯 중간중간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직선을 살핀 그는.
수상하리만치 다들 모양이 비슷한 구멍을 보며, 당장 눈앞에 있는 해안선으로 다가가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깊어.”
대충 봐도 캄캄하니, 수심이 못해도 30m는 넘어가는 듯했다.
해안선.
모래사장과 딱 맞닿은 부분의 바다가, 고작 땅에서 몇 미터 멀어진다고 수심이 수십 미터까지 팍 깊어진다?
“루시오! 아까 그 그림에서 안 파여 있던 부분들은 좀 어때?”
“수심 말입니깟? 잠시만 기다려보는…….”
“1m. 모래사장에서 한 50m 정도 떨어져 있는 구간도, 5m가 채 안 됐습니다.”
“예? 아, 감사합니다, 알베르토 씨. 그리고 그렇다는 말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더욱 확실한 검증을 위해서 막 루시오를 심부름 보내려던 찰나.
그새 언제 알아보고 왔는지 곧장 수치를 알려주는 알베르토를 보며, 꾸벅 고개를 숙인 하준은.
덕분에 바로 튀어나온 결과를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요르문간드.”
요르문간드.
그 크라켄도 한 수 접어주고 갈 어마무시한 덩치를 가졌다는 녀석이, 마을은 물론 아예 그 밑에 있는 땅까지 한꺼번에 꿀꺽 삼켰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다에서 육지와 맞닿는 부분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아래로 뚝 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어떡합니깟, 하준. 이대로 돌아갑니깟? 아니면 조금 더…….”
이번 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꾸만 사라지는 도시와 마을들이 요르문간드의 소행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이만하면 녀석이 개입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하준을 올려다본 루시오는.
무언가 탐탁잖은 부분이라도 있는지, 표정이 영 좋지 않은 그를 보고선 조용히 뒷말을 줄였다.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마을 하나를 집어삼키는 모습까지 보고 갈 심산인가?
“으음.”
그렇게 제 옆에 선 님프가 저를 쳐다보며, 조마조마 눈치를 살피는 사이.
근심 어린 얼굴로 깊은 고민에 빠진 하준은.
잘근잘근 입술을 저미며 터질 것만 같은 머리를 꾹 짚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눈앞엔.
[요르문간드의 배 속에 있는 ???를 처치하십시오.] [제한 시간: X] [배달 팁: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주문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