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11)
신들의 배달기사(111)
“하준, 하준! 저기 마을이 보이는 겁니닷!”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해안선을 따라 처음 비프로스트에서 찍힌 목적지에 다다른 하준은.
저 멀리 둥그렇게 쭉 둘러친 목책을 바라보며, 적당한 곳에 스쿠터를 세워놓곤 활짝 열린 마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기, 하준. 이 마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깟?”
“그러게. 뭔가, 너무 조용한데?”
루시오의 말에 목책 사이로 흘끗 비치는 마을을 훑은 그는.
그 말마따나 뭔가 허전한 거리를 보고선 고개를 기울였다.
경비도, 보통 이만치 다가왔으면 나와서 검문을 하든 보이든 해야 하는데.
특히 저들처럼 시대에 안 맞는 복장을 하고 다니는 이방인이라면 더더욱.
“여기, 이 마을입니까?”
뒤늦게 슬레이프니르를 숨기고 합류한 알베르토를 돌아본 하준은, 텅 빈 마을 입구를 가리키는 그를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전부 내륙으로 대피한 건가.
천천히 마을에 들어선 하준은, 거리 곳곳에 널브러진 집기를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이 정도 규모면 한 명쯤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무언가 아는 이가 있을 줄 알았건만.
설마 이미 다 마을을 버리고 떠났을 줄이야.
‘하긴, 요 며칠 새 근처에 있던 마을들이 문자 그대로 사라져버렸는데. 여전히 해안가 근처에서 버티고 사는 사람이 있을 리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석구석 건물을 뒤진 그는.
정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마을을 보고선, 멍하니 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준 씨, 이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일단은 해가 다 질 때까지 기다려봐야겠죠.”
“……기다려요? 바로 다음 마을로 가는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마을 한쪽을 둘러보고 온 알베르토는.
태평하게 주인 없는 가판대에 굴러다니던 과일이나 집어 허기를 달래는 하준을 보고선, 통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예, 뭐. 내비가 아직 여길 가리키고 있으니까.”
“내비? 내비게이션?”
그에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화면에 찍힌 목적지를 보여준 하준은.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그를 보고선 어색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야.
당장 이 근처에 아무도 없는데 다짜고짜 내비를 보여줘 봐야, 모르는 사람은 그저 이게 뭔 뜻인가 하겠지.
“그냥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그럼 분명히 뭔가 일어날 테니까.”
말없이 주머니에 다시 폰을 집어넣은 그는.
잠시 영 못 미더운 눈길로 저를 흘기곤 멀리 떨어져 앉는 알베르토를 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마음 같아선 뭔가 그럴싸한 이유를 대고 싶어도.
저 또한 왜 이곳을 가리키고 있는진 모르기에, 무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지금껏 그래왔듯, 내비를 믿고 기다릴 뿐.
“하준.”
“응?”
이내 옆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하준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루시오를 마주하곤,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요르문간드, 잡을 생각인 겁니깟?”
이어진 물음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 그는, 곧 시야 구석에 비치는 메시지를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요르문간드의 배 속에 있는 ???를 처치하십시오.] [제한 시간: X] [배달 팁: ???]요르문간드의 배 속에 있는 누군가를 처치.
이제는 아주 배달의 비읍도 없는 주문을 보고선,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린 하준은.
대상은 물론 보상도 적히지 않은 이 요상한 콜을 보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저몄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건수는 그냥 보이자마자 취소했을 텐데.
그놈의 칠죄종인지 뭔지, 혹시나 이번에도 그놈들이랑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자칫 신들이 놈들을 막지 못해 세상이 멸망해 버리기라도 하면, 지금껏 죽어라 모은 제 재산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셈이었으니까.
‘내가…… 내가 다 어떻게 번 돈인데. 이대로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순 없지.’
그간 열심히 배달을 뛰어 벌어들인 수백만 포인트에, 중간중간 영원 길드를 도와 계산받은 수백억에 달하는 재산까지.
고민 끝에 자신이 지켜야 할 행복을 떠올린 하준은, 잠시 미뤄놨던 선택창을 위로 끌어 올리며 수락 버튼을 꾹 눌렀다.
“루시오, 혼자 도망치래도 안 갈 거지?”
그리곤 옆에서 대답을 기다리는 루시오를 돌아본 그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녀석을 보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요르문간드한테 먹힐 거야.”
“……잠깐, 그게 무슨 소립니깟?”
곧바로 앞으로 여기서 어찌할 것인지, 본론을 툭 내뱉은 하준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듯 눈살을 좁히는 님프를 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지금 여기 있는 마을째로 먹혀서 놈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 보통 뱀은 통째로 먹잇감을 삼킨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적어도 재수 없게 이빨에 씹혀서 죽는 일은 없겠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랏! 애초에 그놈 배 속엘 왜 들어가겠다는 겁니깟? 혹시 뭐, 안에서 뱃가죽을 뚫고 나오기라도 하겠단 겁니깟?”
그에 가만히 하준의 얘기를 들어주던 루시오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작전에 말을 잘라먹으며, 속사포처럼 질문을 늘어놓았다.
“애당초 하준이 받은 건 요르문간드 퇴치가 아니라, 요 근래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범인이 요르문간드가 맞는지 확인만 하는 거였지 않습니깟? 그런데 갑자기 그 신님도 잡아먹는 괴물을 잡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배 속에 들어가겠다닛.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깟?”
“루시오! 쉿, 쉿!”
갈수록 커지는 목소리에 슬그머니 알베르토 쪽을 살피며 루시오의 입을 틀어막은 하준은.
잔뜩 불만 어린 눈빛으로 째릿 저를 노려보는 녀석을 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깟, 이번 일에 칠죄종이 관련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깟?”
“응.”
혹 알베르토가 들을까, 조곤조곤 이야기를 마친 그는.
다행히 잘 알아들은 듯 흥분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낮춘 루시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들이 직접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쉬쉬한 얘기에, 굳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거, 굳이 하준이 먹힐 필요가 있습니깟? 그냥 처치만 하는 거라면 신님들한테 부탁해도 되는 거 아닙니깟?”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지. 혹시 안에서 뭔가 잘못되더라도, 버티기만 하면 신들이 와서 잡아줄 거란 얘기잖아?”
루시오의 물음에 오히려 좋다는 듯 얘기를 내놓은 하준은.
콜을 수락했음에도 여전히 ‘???’로 표기되어 있는 보상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모르긴 몰라도 난이도만 보면 보통 대단한 물건이 준비된 게 아닐 테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후, 좋습니닷. 그러면, 그 신님들은 대체 누가 불러온답니깟?”
“누구긴 누구겠어.”
슬며시 눈길을 돌려, 마침 아무도 없는 마을에 슬레이프니르를 들인 알베르토를 돌아본 그는.
저한테 몰린 시선을 느낀 듯 이쪽을 마주 보는 그를 보고선, 천천히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알베르토 씨.”
“……예.”
아까 별 대책 없이 내비만 믿고 기다리겠단 얘기에 실망이라도 한 걸까.
조금은 퉁명스레 내뱉는 말투에 어색하니 미소를 흘린 하준은, 슬슬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조금 있다 요르문간드가 오면, 알베르토 씨가 헤임달 님한테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그에 가만히 있는 동안 슬레이프니르의 갈기를 다듬어주며 시간을 때우던 알베르토는.
난데없는 부탁에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얼빠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준 씨는요? 그리고 이곳에 요르문간드가 올지는 또 어떻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으음, 그야…….”
돌아온 말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늘인 하준은.
차마 또 내비가 그랬다고는 할 수 없는 분위기에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부탁드립니다. 혹시 모르니까 마을에선 좀 떨어져 계시고.”
결국 대충 이야기를 얼버무리며 마무리한 그는.
이후 찝찝하게 저를 흘기는 눈빛을 뒤로한 채, 자리로 돌아가 때를 기다렸다.
쿠구구-
“온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광장 가운데 앉아, 하염없이 부두가 있는 방향을 살피던 하준은.
곧 거칠게 흔들리는 바닥과 함께, 저 멀리서부터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는 별들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요, 요르문간드. 정말로…….”
이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탁탁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그는.
놀란 얼굴로 저 멀리 바닷가를 내다보는 알베르토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히히힝-!
이윽고 텅 빈 마을에 울려 퍼지는 슬레이프니르의 울음소리에 걱정을 덜고 다시금 고개를 돌린 하준은.
시커먼 안개가 다가오듯 점점 빛을 잃어가는 풍경을 보며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막상 이렇게 보니까 더 무지막지하구만.
크라켄은 그래도 얼굴은 보였었는데.
“하준…….”
꽉-
마찬가지로 오들오들 몸을 떨며 제 소매를 꾹 잡아당기는 루시오를 돌아본 그는.
괜찮을 거라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였다.
혹 정말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한들, 이쪽도 비장의 수 하나쯤은 갖추고 있었으니까.
쿠구구구-
“히야악! 하, 하준! 괜찮습니깟?”
곧 더욱 심해진 떨림에 자세를 낮춘 하준은.
순식간에 시커먼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달과, 지금 밟고 서 있는 땅째로 훅 기울어지는 몸을 보며 옆으로 손을 쭉 뻗었다.
콰악-
“괜찮아! 그보다 너도 뭐 안 부딪히게 조심해, 루시오!”
미끄러지듯,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수렁 아래로 떨어지기 전.
마을 광장에 세워져 있던 이름 모를 구조물을 붙잡고 버틴 그는.
그 모습에 옆에서 날개를 살랑이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는 루시오를 보고선,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쿠우우웅-
잠시 후.
무언가 닫히는 소리에 말없이 뒤를 돌아본 하준은.
그나마 한 줌 들어오던 빛조차 없이 새까매진 풍경을 보고선 마른 입술을 적셨다.
“……좋아. 이제 시작해볼까.”
세계 먹는 뱀, 요르문간드.
그 배 속을 탐방할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