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13)
신들의 배달기사(113)
제법 널따란 방.
사람들의 배려로 도시에 남아있던 멀쩡한 집 중에서 하나를 빌려 들어온 하준은.
혹시 모르니 배터리를 아끼겠다고 꺼놓은 스마트폰 탓에 어두운 방 속에서, 심각한 얼굴로 루시오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촉수를 부리던 인영이라. 루시오, 혹시 범인으로 짐작 가는 녀석은 없어? 상대가 어떤 놈인지만 알 수 있다면, 약점을 찌를 수 있을 거 아니야.”
“으음, 그렇게 말해도 말입니닷. 루시오도 그 촉수 놈들에 대해선 딱 책에 적혀 있던 만큼밖에 모르는 것입니닷. 그나마 가능성을 보자면 이전에 하준이 얘기한, 칠죄종의 오른팔쯤 되는 녀석일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깟?”
촉수를 부리던 인영.
그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절대 가볍게 볼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놈이 무엇이 됐든 지휘 계통에 앉아 있다는 건 대개 촉수들보다 강한 녀석이란 뜻이고. 또 끽해야 두어 마리쯤 나왔던 미노타우로스 때와는 달리, 그 꾸물거리는 놈들이 얼마나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였으니까.
‘여기가 좁은 동굴 같은 곳이었다면 해운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쿠터로 다 밀어버리면 그만이었겠지만…….’
슈트의 효과를 이용해 끽해야 3분.
그마저도 지난 레드 드레이크나 크라켄 때처럼 상점에서 파는 신기를 가져다 싸울 경우엔, 고작 한두 번 휘두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제 입장에선.
그 바글거리는 촉수들만큼이나 까다로운 상대가 또 없었다.
놈들이 작정하고 그 지휘관만 계속 싸돌기 시작한다면, 애꿎은 녀석들한테 포인트만 날릴 수도 있었으니까.
“아니면 그 꼬마가 그냥 잘못 본 걸지도 모르는 겁니닷. 아예 그 인영 자체가 헛것이었다든갓, 실은 누군가 촉수들한테 잡아먹히고 있는 걸 보고 착각한 거라든갓. 혹은 그 라비린토스 때처럼, 무언가 놈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든갓.”
“으음, 그런가. 나도 기왕이면 그쪽이 더 편하긴 한데.”
이어진 말에 조용히 말꼬리를 늘인 하준은.
주문란에 떠오른 ‘??? 처치’라는 항목을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단순히 그 꼬마가 잘못 본 거라면, 여태껏 세이렌 퇴치니 레드 드레이크 처치니 잘만 띄워주던 정보가 가려져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촉수나 잡아달라고 적혀 있었겠지.
‘결국 어지간해선 소년의 말이 사실인 걸 전제로 두어야 하나.’
어째 일이 예상보다 쉽게 풀리진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머리를 긁적인 그는.
이내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곤, 앞으로 있을 전투에 미리 각오를 다졌다.
뭐가 됐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게다가 설령 그리된다 한들, 이쪽도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건 아니기도 하고…….
“어우 씨! 까, 깜짝야.”
그렇게 본래는 없었지만, 슬레이프니르 혼자 비프로스트로 향한 덕에 자리에 남은 패를 기억하며,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 하준은.
깜깜한 방구석에서 게슴츠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를 보고선 흠칫 몸을 떨었다.
“저기, 알베르토 씨. 무슨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대체 왜 말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조용히 용건을 물은 그는, 별일 아니었다는 듯 스르르 눈길을 돌리는 알베르토를 보며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혹시 자기만 두고 계속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고 있어서 그러는 건가.
‘……그 반응, 분명 그 소년이 말한 녀석에 대해서 무언가 짚이는 부분이 있는 눈치였어.’
그러건 말건.
머쓱하니 다시 고개를 돌리는 하준을 보며, 조금 전 밖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알베르토는.
동시에 방금까지 두 사람이 나누던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지그시 눈살을 좁혔다.
목소리가 너무 조그마해서 전체적으로 뭐라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자꾸만 촉수가 어쩌고 했더랬지.
‘처음부터 무작정 요르문간드의 배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든 것도 그렇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딘가 짐작 가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계속 쉬쉬하는 건, 무언가 따로 이유가 있어서인가?’
단순히 저를 못 믿는 건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
영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하준과 루시오를 흘기며, 톡톡 제 무릎을 두드리던 기사는.
전날, 유독 그들을 대하는 데 스스럼이 없던 헤임달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술을 저몄다.
쿠구구구-
“응? 뭐야, 바닥이…….”
“하준! 일단 나가서 확인해보는 것입니닷!”
잡생각도 잠시.
난데없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땅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세 사람은.
곧장 무슨 일인가, 황급히 문을 열어젖히고선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빨리 다음 마을로 도망쳐! 바닥이 무너진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귓가에 울리는 외침에 휙 하니 옆을 돌아본 하준은.
대부분 어리둥절해하는 시민들 사이, 몇몇 급하게 짐을 챙기곤 도시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을 보고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자, 잠깐만요! 무너진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 여, 영웅님, 그게…….”
쩌적-
그리곤 곧바로 개중 한 명을 붙잡아 멈춰 세운 그는.
안절부절 뒤쪽을 살피며 발을 동동거리는 남자의 뒤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바로 눈앞에서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닥에 눈살을 찡그렸다.
“……이런 미친!”
바닥이 무너진다더니.
말 그대로 쩍쩍 갈라지다 못해, 몇몇 누런 위액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바닥을 본 하준은.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부글부글 녹아내려 형체를 감추는 땅을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여긴 배 속이었지.
생각보다 위산이 약해서 바닥이 멀쩡해 보이기에 잠시 잊고 있었건만.
“루시오! 어서 타!”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는 지반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비명에 정신을 차린 그는.
다급히 주머니에서 스쿠터를 찾아 밖으로 꺼낸 뒤, 루시오를 찾아 제 뒷자리에 앉히며 알베르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베르토 씨, 일단 안전한 곳으로…….”
띵동-
[1km 앞, 목적지가 있습니다.]“……어?”
그렇게 막 시동을 걸며,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 스로틀을 당기려던 찰나.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는데 제멋대로 알림을 보내는 내비에, 얼빠진 소리를 내뱉은 하준은.
이윽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500m 앞, 목적지가 있습니다.]뒤이어 짧은 간격으로 연달아 울리는 알림에, 설마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저 어두컴컴한 도시 뒤편에 흘끗흘끗 비치는 무언가를 보고선,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화악-
“흐어어어어억!”
“하준, 갑자기 왜 그러는……. 히야아아아악!”
쩍쩍 갈라져 부스러져 내리는 땅에도 아랑곳 않고, 열심히 바닥을 기어 오는 크고 작은 선홍빛 촉수들.
스마트폰 플래시에 훤히 밝혀진 성벽 위로, 하나둘 담을 넘어 도시 안으로 떨어지는 녀석들을 마주한 하준과 루시오는.
순간 온몸을 휘감는 불쾌함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지 못했다.
“저건…….”
그사이.
우선 하준의 말대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성문을 지나치던 알베르토는.
귀 따가운 비명에 흠칫 무슨 일인가 뒤를 돌아봤다, 마찬가지로 도시 안에 펼쳐진 광경을 목도하고선 잠깐 멍하니 눈을 비비적거렸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마치 지렁이처럼 몸을 굽혔다 펴며, 꾸물꾸물 저들을 향해 다가오는 기이한 생명체.
깜깜한 배 속에서 난데없이 환하게 비추는 빛에 놀랐는지, 죄다 반쯤 감겨 있는 수없이 많은 눈깔들.
그 그로테스크한 생김새에, 조금 전까지 촉수니 뭐니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 그는.
보기보다 빠른 녀석들의 속도를 보며, 조심스레 등 뒤로 팔을 뻗었다.
“……하준, 어떡합니깟? 여기서 그냥 싸웁니깟?”
“미쳤어? 바닥이 다 무너져 내리는 마당에 싸우긴 뭘 싸워? 그러다 같이 사이좋게 이 괴물 뱀한테 소화당할 일 있어? 알베르토 씨도 일단 그거 내려놓고 튀세요, 먼저!”
이윽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루시오의 물음에 붕붕 고개를 저은 하준은.
저 앞에 미쳤다고 대검에 손을 올리는 알베르토를 발견하곤, 황급히 그를 말리며 스로틀을 꾹 당겼다.
아니, 당기려고 했다.
쩌억-
본디 성문이 있어야 할 자리 너머로 보이는 땅덩어리가, 반으로 쩍 하고 갈라지기 전까진.
“……이런 시발!”
졸지에 이 망할 촉수들과 함께 도시에 갇혀버린 그는.
벌어진 틈새로 시민들 몇을 집어삼키곤 멀어지는 땅을 보며, 분한 마음에 욕지거리를 터트렸다.
왜 하필 이런 때.
철퍽-
그러나 당황도 잠시.
질척한 소리에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 하준은.
어느새 하나둘 지척까지 다가온 촉수들을 확인하고선 이를 악물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들 도망칠 때 우선 튀고 보는 거였는데.’
괜히 상황 좀 살피겠다고 두리번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친 그는.
금세 둥그렇게 저들을 둘러싼 녀석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준, 느꼈습니깟?”
그리곤 곧바로 사방에서 덤벼들지 않고 저들끼리 눈알을 굴려대며 기다리는 놈들을 흘긴 하준은.
루시오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이상함을 감지하고선, 땀에 젖은 주먹을 꾹 쥐었다.
이 녀석들이 전에도 동굴 천장에 가만히 웅크려 있다가, 사냥감이 지나칠 때를 노리고 덮쳐올 만큼의 지능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질서 정연하게 누군가를 포위하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놈들은 아니었는데.
“어. 아무래도 그 꼬맹이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네.”
그에 누군가 녀석들을 부리는 자가 있다던 소년의 말을 떠올린 하준은.
저 멀리 홍해처럼 갈라지기 시작하는 촉수 무리를 보고선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철벅- 철벅-
“요상한 투구에, 곁에 붙어 있는 하늘색 머리 님프. 응. 맞네, 맞아.”
차분한 발소리 뒤로,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
“감히 그분의 대업에 훼방을 놓고 다닌다는 인간이 어떤 녀석일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네? 그리 강해 보이지도 않고……. 이상하다. 이런 걸로 장난치실 분이 아닌데.”
곧 양쪽으로 쭉 비켜선 촉수들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를 바라본 그는.
특이하게도 양손에 물갈퀴가 달린 인어를 보고선, 동시에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거리는 몸을 보고선 입술을 꾹 물었다.
“뭐,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확인해보면 되겠지.”
빌어먹을.
크라켄을 눈앞에 뒀을 때도 그 덩치에 압도당하기만 했지, 이렇게 떨리진 않았는데.
“어디 한번 그 크라켄을 쓰러트렸다는 실력 좀 볼까?”
띠링-
뒤이어 마주한 얼굴과 함께 눈앞에 갱신된 정보를 확인한 하준은.
급한 대로 일단 주머니에서 미스틸테인을 꺼내 들었다.
[요르문간드의 배 속에 있는 부패의 악마, ‘베파르’를 처치하십시오.] [제한 시간: X] [배달 팁: ???]“……악마.”
꾹 쥔 손에 더욱 힘이 꽈악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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