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16)
신들의 배달기사(116)
“……있다!”
컴컴한 배 속, 여기저기 쩍쩍 갈라진 땅 가운데.
베파르가 피워낸 붉은 안개를 피해 상점을 뒤적이던 하준은.
루시오의 추천으로 찾은 신기를 보며 재빨리 정보를 훑었다.
[브류나크 레플리카]-켈트 신화의 광명의 신, 루 라바다가 가진 신물 중 하나인 벼락의 힘을 머금은 창. 그 레플리카. 투창 시, 한번 목표로 잡은 상대를 절대 빗나가지 않는 ‘필중(必中)’의 효과를 가진 무기이다.
(남은 사용 횟수: 1)
‘필중(必中)’.
가뜩이나 자욱하고 모든 것을 빠르게 부식시키는 안개 탓에 애를 먹고 있었던 그는.
보기만 해도 반가운 글귀에 미소를 지으며, 곧장 망설임 없이 신기를 구매했다.
띠링-
[잔여 포인트: 1,072,700p]텅- 터덩-
맑은 알림과 동시에 쭉 빠져나가는 포인트와 함께, 허공에서 튀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루 라바다의 신기.
특이하게도 끝이 무려 다섯 갈래로 갈라진 오지창(五枝槍), 브류나크를 들어 올린 하준은.
보기보다 가볍고, 왜인지 부르르 떨리는 녀석을 훑으며 신기하다는 듯 손을 쥐었다 폈다.
벼락의 힘을 머금었다더니, 뭐 전기라도 흐르고 있는…….
-크르릉!
“흐어억! 뭐, 뭐야, 방금? 창이…….”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손에 쥔 브류나크를 살피기도 잠시.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으르렁거리는 무기를 보며 질겁한 그는.
순간 저도 모르게 던져버릴 뻔한 녀석을 황급히 꾹 잡으며,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그렇게 놀랄 거 없는 겁니닷! 원래 그런 창이니깟.”
그에 괜찮다는 듯 옆에서 가만히 고개를 주억인 루시오는.
지금도 하준의 손에서 스스로 조금씩 창끝을 움직이며, 벌건 안개를 향해 목을 긁어대는 신기를 보고선.
여타 많은 무구들 중에서도 제법 특이한 녀석의 설화를 떠올렸다.
브류나크(Brionac).
본디 이름은 아라드와(Areadbhar), 혹은 게 아살(Gae Assail).
무기 주제에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피를 갈망하고, 전투가 다가오면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살육의 시작을 알리는 마창.
단순히 악마를 죽이는 거라면 부처의 화신이자 멸악의 상징인 부동명왕의 구리가라검이나, 강력한 파사의 기운을 가진 칠성참요검 등, 그보다 훨씬 훌륭한 신기가 많았지만.
자신이 굳이 녀석을 추천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상대가 누가 됐든 한번 쫓은 적은 스스로 움직여 절대 빗나가지 않는 필중(必中)의 효과와, 모든 것을 꿰뚫는 필관(必毌)의 효과.
물론 필관(必毌)의 경우에는 워낙 갑옷이나 방패 쪽에서도 상충되는 효과가 많아, 반드시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어폐가 좀 있었지만.
필중(必中)은 쉽사리 틈을 보이지 않는 베파르의 허를 찌르는 데, 분명 큰 힘이 되어줄 터였다.
콰아아앙-!
그렇게 어딘가 확신에 찬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님프를 보며, 말없이 브류나크를 흘기던 하준은.
이내 커다란 폭음에 정신을 차리고선, 어느덧 많이 가라앉은 안개 너머를 내다봤다.
“아하하하! 슬슬 힘에 부쳐 보이는구나, 미후왕!”
그 짧은 사이에 오간 공방에 난장판이 된 바닥.
뿌옇게 인 먼지 사이로 촉수 서넛을 펼치고 높이 선 베파르는, 조금 전 면전에서 안개를 뒤집어쓴 이후로 반응이 많이 굼떠진 오공을 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칫. 본체였으면 이까짓 잡스러운 녀석 따위, 진즉에 해치우고도 남았을 텐데!”
베파르의 능력에 의해 군데군데 부식되어 닳아 없어진 털과,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져 곪아버린 피부들.
흘러내리는 진물과 끔찍한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분신은, 따끔거리는 눈가를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몰려드는 공격에 이를 악물었다.
부웅-
쩌어억-!
“크읍!”
충혈된 눈에 붉게 물든 시야 탓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여유롭게 받아넘길 수 있던 일격들이, 이따금 사각을 찌르고 몸뚱이를 후려쳤다.
터엉-!
옆구리를 때린 촉수에 휘청이는 몸을 바로잡은 채, 황급히 땅을 딛고 다음 공격을 쳐낸 오공은.
또 숨어서 무슨 기회를 엿보는지 사라져버린 하준을 떠올리며, 봉을 고쳐 쥐었다.
쩌억-!
꾸구국-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참 열심이네. 그런 상태로 버텨봐야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이만 포기하고 편해지는 게 어때. 어차피 분신일 뿐인데.”
이윽고 허공에 붕 떠오른 촉수를 꼬아, 알베르토 때처럼 분신을 찍어 누른 베파르는.
슬그머니 제 몸을 둘러싼 녀석들을 느슨히 풀고선, 벌어진 틈새로 분신을 마주하며 보란 듯이 히죽였다.
“흥! 몰라도 뭘 한참 모르시는구만? 오히려 분신이니까 더욱 물러설 이유가 없지. 이런 과감한 플레이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말이야!”
타악-
그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세를 기울인 오공은.
순식간에 여의봉을 줄여 자리를 빠져나오며, 미끄러지듯 앞으로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뭣? 큭…… 이, 망할 원숭이가!”
부웅-
뒤늦게 그를 찍어 누르던 그대로 바닥을 때린 촉수를 회수하곤, 나머지를 다리 삼아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악마는.
아까와는 반대로 훅 길어지며 틈새를 찌르고 들어온 신기를 보고선, 아슬아슬하게 코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봉 끝에 이를 갈았다.
“좋아. 굳이 고통스럽게 가는 게 소원이라면야. 바라는 대로 뼈조차 남기지 않고 부패시켜 주겠어!”
화아악-
뒤이어 스멀스멀 온몸에서 붉은 안개를 피워낸 베파르는.
그대로 줄어드는 여의봉을 타고 분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틈새를 향해 언뜻 검붉게 비칠 정도로 짙게 모인 녀석을 연기처럼 뿜어댔다.
“하! 이거 완전 바보 아냐? 원래 분신은 뼈 같은 거 안 남거든? 펑 하고 연기로 사라지는 게 보통이란 말이지!”
부웅- 붕-
그에 재빨리 손을 옮겨 여의봉의 중앙을 잡고선 빙글빙글 돌린 오공은.
흩어지는 연기 사이, 훤히 드러난 틈을 향해 미소 지으며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친구! 지금이야!”
“……뭐?”
가까운 거리에서 귀를 때리는 외침과 동시에 스르르 돌아가는 그의 시선을 따라, 반사적으로 눈길을 돌린 악마는.
조금 전 부패의 안개를 뿜어댄 탓에 활짝 열린 틈새를 닫으며, 혹시 모를 충격에 몸을 움츠렸다.
“하하! 뻥이야. 단순하긴.”
쩌어어억-!
“크으윽!”
하나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하준을 경계하며, 어떻게든 공격의 단초를 찾기 위해 오감을 곤두세우기도 잠시.
어느새 닫혀가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뒤통수를 때리는 일격에 튕겨져 나가, 데구루루 바닥을 구른 베파르는.
금세 정신을 차리곤 저 멀리 줄어드는 여의봉을 보고선, 수치심에 입술을 저몄다.
“이, 빌어먹을 원숭이 녀석이! 본체도 아닌 고작 분신 주제에!”
콰앙-!
얼얼한 뒤통수 아래.
뜨끈하게 흐르는 피를 느끼며 괴성을 터트린 악마는.
곧장 급히 두른 촉수 몇을 다시 펴고선, 땅을 박차 오공을 향해 덤벼들었다.
쿠웅-! 쿠우웅-!
“이거 이거, 화가 제법 많이 난 모양이네?”
이윽고 마구잡이로 내리쳐오는 공격에 놀리듯 빈정거리며 촉수를 쳐낸 분신은.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 달리, 한 번 일격을 받을 때마다 저릿하다 못해 찌르르 울리는 양팔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콰아아앙-!
“크흐!”
사방에서 쉴 틈 없이 날아드는 연격 사이.
촉수 둘을 꼬아 채찍처럼 휘둘러오는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선 그는.
순간 온몸을 내달리는 충격에 헛숨을 들이켜곤, 곧 나지막이 탄성을 터트렸다.
‘젠장, 슬슬 한계인가.’
아무래도 아까 여의봉을 돌리며 뿜어져 나온 안개를 흩트릴 적에, 채 거르지 못하고 뒤집어쓴 녀석이 문제인 듯싶었다.
물론 그 전부터도 이미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깟 거짓말 한번 했다고 원숭이를 아주…….”
푸욱-
이젠 아주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는 봉 끝에, 쓴웃음을 터트리며 농을 던지던 오공은.
무어라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제 가슴을 꿰뚫은 촉수를 보고선, 스멀스멀 온몸으로 터지는 격통에 눈을 부릅떴다.
“장난은 이걸로 끝이야, 분신 씨.”
짧지만 격렬했던 싸움 끝에 기어코 분신을 잡아낸 베파르는.
놀란 얼굴로 조용히 저를 흘기는 그를 내려다보며, 차오르는 승리감에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제 남은 건 별 위협도 안 되는 기사 하나와, 꽤 전부터 보이지 않는 성가신 녀석 하나뿐.
혹시 모를 일격에 대비해 조심조심 움직이면 시간이야 좀 걸리긴 하겠지만.
미후왕의 분신에 비하자면 그 두 녀석들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흐흐. 그래, 끝이야. 내 친구의 승리로 말이지.”
“하! 그런다고 내가 또 속을…….”
퍼엉-!
뒤이어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분신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리던 악마는.
곧 사방으로 퍼지는 뿌연 연기를 보고선, 눈살을 팍 찌푸렸다.
“큿! 이 망할 놈이 끝까지…….”
“아니. 이번엔 거짓말 아니야.”
“무, 무슨……. 앗 차가!”
그리곤 눈앞을 가리는 녀석에, 이리저리 손을 휘적거리던 그때.
난데없이 귓가를 스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베파르는.
이어서 제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액체에,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뭐야, 이건? 물…….”
푸우욱-
“커헉! 어, 언제?”
그간 촉수에 둘러싸여 온몸에 묻은 점액질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는 물에,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기도 잠시.
갑작스레 뿌연 안개를 뚫고서 거의 다 닫힌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무언가에 흠칫한 악마는.
곧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기운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파즈즈즈즉-
“끼야아아아아아악!”
뒤이어 서서히 퍼지는 고통 위로, 덮어쓰듯 온몸을 내달리는 격통에 비명을 지른 베파르는.
이내 숯처럼 거멓게 탄 몸뚱이 위로 매캐한 연기를 뿜어대며,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쿠웅-
“휴, 다행이다.”
스르르 풀려 연달아 떨어지는 촉수들 사이.
몽글몽글 빛으로 화해 사라지는 브류나크를 보며, 움찔거리는 사체 앞에 선 하준은.
아직도 전류가 흐르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식은땀을 슥 훔쳤다.
“하마터면 구멍 막힐 뻔했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