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17)
신들의 배달기사(117)
부웅-
촤악-!
“허억, 헉…….”
무너진 성벽 앞, 흐물거리는 사체들로 높이 쌓인 언덕 위.
컴컴한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촉수들을 해치우던 알베르토는.
벌써 수백 마리 가까이 쓰러트렸음에도 통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는 숫자에,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빌어먹을.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아까 전, 많이 상해버린 날 탓일까.
한 번 놈들을 베어 넘길 때마다 과하게 힘을 쓰느라, 피로가 쌓이는 속도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슬레이프니르가 헤임달과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데리고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그 망할 괴물을 상대로 버티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빨리 힘을 보태러 가야 하건만.
-캬아아아악!
-캬아악!
“뭐, 뭐야? 갑자기 무슨…….”
하나 갈수록 깊어지는 고민도 잠시.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하는 놈들을 보고선,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핀 알베르토는.
이내 저 멀리 번쩍이는 섬광을 발견하곤,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설마.”
이윽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하이 톤의 비명소리.
혹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곧장 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 아래, 숯처럼 거멓게 타서 쓰러진 촉수들과 인영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스윽-
곧이어 답답한 듯 헬멧을 벗으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하준을 본 알베르토는.
악마의 사체를 내려다보며 주섬주섬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헬멧을 집어넣는 그를 보곤, 믿을 수 없다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응? 아! 알베르토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에 후련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린 하준은.
언제 왔는지 제 뒤편에서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알베르토를 마주하곤, 꾸벅 감사를 전했다.
만일 그가 그 수많은 촉수들을 상대해주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오공이 있었다 한들 싸움이 어떻게 될지 몰랐었으니까.
“하준! 해치웠습니깟?”
“덕분에. 잘못하면 그냥 촉수에 냅다 꼬라박을 뻔했지 뭐야.”
뒤이어 저 멀리서 뽈뽈뽈 날아오는 루시오를 반긴 하준은.
조금 전, 하마터면 좁아지는 벽에 가로막혀 애꿎은 촉수만 태울 뻔했던 브류나크를 기억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처음부터 녀석이 추천해준 신기가 ‘필중(必中)’ 속성을 가지고 있어, 도중에 창끝을 알아서 바꿔 날아갔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베파르를 둘러싼 벽에 부딪혀, 다른 수를 찾고 있었어야 할지도 몰랐다.
아마 오공의 분신도 사라진 상태에서 남은 포인트를 가지고 다시 놈을 잡는 건 불가능했을 테고.
끽해야 퀴네에를 이용해 구석에 숨어선, 신들이 오기만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겠지.
“후후, 도움이 됐다니 정말 다행인 겁니닷! 역시 하준은 이 엘리트 님프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닷!”
“그래, 그래. 열심히 했으니까, 돌아가면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앗! 정말입니깟? 루시오는 이번엔 사탕 말고 초콜릿이 먹고 싶은 겁니닷! 근데 하준, 그보다 제천대성님의 분신은 도대체 어디서 손에 넣은 겁니깟?”
“아, 그거? 음, 말하자면 얘기가 좀 길어지는데…….”
이윽고 긴장을 풀고서 도란도란 님프와 이야기하며 자리를 옮기는 하준을 바라보던 알베르토는.
다시 한번 새까맣게 탄 악마의 사체를 내려다보며, 분한 얼굴로 주먹을 꾹 쥐었다.
“젠장…….”
처음 헤임달로부터 신화 속 영웅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 저 대신 헬헤임의 문제를 해결했다 들었을 적엔, 그저 남의 일거리나 뺏어 먹는 상도덕 없는 경쟁자가 나타난 줄 알았건만.
막상 이번에 떠밀리듯 같이 일해 보니,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해도 그런 녀석이 아니었다.
“경쟁자라니. 우습지도 않지.”
바로 어제.
비프로스트에서 겪었던 굴욕을 떠올린 알베르토는.
과연 제가 아닌 그를 더욱 살갑게 대해주던 헤임달의 태도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실력에, 입술을 저몄다.
자신을 마치 아이 다루듯이 가지고 놀던 강력한 괴물.
지금껏 그 어떤 놈을 얼마나 상대하더라도 흠이 가기는커녕 날 한번 무뎌지지 않던 대검을 손쉽게 부식시켜버린 악마를, 그 육중하던 촉수 십수 개와 함께 태워버린 저력.
정말로 신화 속에 이름 올린 영웅이 아닌, 저와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하준의 강함에 씁쓸히 고개 숙인 그는.
어느덧 무너진 성벽 아래 기대어, 방금까지 그 무지막지한 녀석을 상대했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얼굴로 평화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하준을 보고선 말없이 눈길을 돌렸다.
“루시오랑 만나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겁니깟?”
“응. 딱 한 번 분신을 소환할 수 있는 머리털은 그때 보상으로 받은 거야.”
“……그런데 그걸 여태까지 아끼고 있던 겁니깟? 세이렌 때도, 헬헤임 때도, 크라켄 때도! 지금껏 죽을 뻔한 순간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말입니닷!”
북유럽의 신들이 슬레이프니르의 연락을 받고 저들을 구하러 오기 전까지, 잠시 루시오를 데리고서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장소로 자리를 옮긴 하준은.
제가 부른 오공의 분신을 떠올리며 떽떽거리는 녀석을 보고선, 그나마 남아 있던 긴장도 모두 흘린 채 편안히 얘기를 나눴다.
“에이, 그야 아깝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손오공의 분신인데.”
“으음. 하긴, 그건 그런 겁니닷. 앗! 그러고 보니 하준, 베파르를 잡은 건 따로 보상이 없는 겁니깟? 애당초 마을째로 요르문간드한테 먹힌 것도, 녀석 때문에 일부러 그런 거지 않습니깟.”
“보상? 아, 그러고 보니…….”
그리곤 이내 루시오의 물음에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내 든 그는.
녀석의 말마따나 완료 처리가 되어 사라졌음에도 들리지 않는 보상 소식을 보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아직도 안 오지?
그 몰골로 베파르가 아직 살아 있는 건 아닐 텐데.
설마 이 망할 놈의 자식이 이제 와서 먹튀를 하는 건…….
띠링-
“응?”
“왜 그럽니깟, 하준? 혹시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보상이 들어온 겁니깟?”
그러나 걱정도 잠시.
그 순간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에 스마트폰을 뒤적이던 손을 멈춘 하준은.
곧 눈앞에 적힌 글귀를 모두 읽고선,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떼었다.
“……에이, 난 또. 괜히 좋다 말았네.”
뭐 포인트도 아니고 주머니나 이 반지 같은 장비도 아니고, 제 무훈이 온 신화에 울려 퍼진다니.
별 쓸모도 없는 보상에 한숨을 푹 내쉰 그는.
퍽 불만 어린 눈빛으로 허공에 뜬 메시지를 노려봤다.
도대체 콜을 보낸 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쪼잔하기는.
띠링-
[보상으로 배달 팁이 강화됩니다.]“어?”
그렇게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던 하준은.
이내 제 마음이라도 읽은 건지 뒤늦게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황급히 표정을 바꾸곤 입가에 함박웃음을 매달았다.
“아이고! 이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되는데!”
“히약! 가, 갑자기 왜 그럽니깟, 하준? 뭐 좋은 보상이라도 받았습니깟?”
이윽고 갑작스레 커진 목소리에 놀란 루시오를 뒤로한 채, 허공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빛을 본 그는.
금세 둥그런 형태를 잡아가는 빛을 보고선, 기대에 찬 눈으로 보상 아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툭-
“이건…….”
“뭡니깟? 뭘 받은 겁니깟, 하준?”
군데군데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진 둥그런 금반지.
비록 분신이라지만 그 제천대성을 밀어붙인 악마를 쓰러트리고 받은 보상이라기엔 뭔가 허전해 보이는 녀석을 요리조리 둘러보던 하준은.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꾸만 얼굴을 들이미는 루시오를 보곤, 어디 한번 보란 듯이 반지를 넘겼다.
저야 워낙 신화에 대해 무지하니 봐도 모르겠지만.
그쪽으론 어지간해선 모르는 게 없는 녀석이라면, 딱 보고 알지도 몰랐으니까.
“……반지입니깟?”
“응.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혹시 뭐 하는 반지인지 좀 알겠어?”
“으음.”
그에 하준으로부터 반지를 건네받은 루시오는.
마치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레 반지와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을 유심히 살폈다.
“헉! 이, 이건!”
“뭐, 뭔데? 귀한 거야? 엄청 좋은 신기야?”
그러다 곧 흠칫 놀라는 녀석을 보며, 반지의 정체를 물은 하준은.
동그랗게 떠진 눈만 봐도 어딘가 굉장한 물건일 건 같은 예감에, 벅찬 얼굴로 대답을 기다렸다.
“전혀 모르겠는 겁니닷!”
콰당-!
하나 기대와 달리 김빠지는 답에 뒤로 넘어진 그는.
통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힘없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대체 왜 놀라는 거냐고.”
난 또, 그만큼 엄청난 신기라도 되나 했건만.
“아직 그렇게 실망하긴 이른 겁니닷, 하준. 그 왜, 저번에 아레스 님한테서 받았던 신기도 그랬지 않습니깟.”
“아레스? 아, 미스틸테인 말이야?”
“그렇습니닷. 그때처럼 오히려 루시오가 못 알아보는 쪽이, 진짜 진짜 귀한 녀석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닷! 왜냐면, 그런 신기들은 애초에 꼭꼭 숨겨져 있으니깟!”
그렇지만 실망도 잠시.
이어진 답에 멍하니 눈을 끔뻑인 하준은.
과연 그럴싸한 말에 몽둥이가 든 주머니를 흘기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루시오도 보통 신기라 해봐야 책에서만 읽었을 테지,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긴. 애초에 그 베파르를 잡고 나온 건데, 양심이 있으면 그저 그런 물건 따윌 보상이랍시고 주진 않았겠지. 그러면…….”
쿠구구구-
“뭐, 뭐야? 방금?”
뒤이어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돌려받은 반지를 애지중지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던 찰나.
갑자기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땅에 얘기를 멈춘 하준은.
혹시 또 소화가 돼서 바닥이 무너지려는 건가, 불안한 눈빛으로 아래를 흘기며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온 것 같습니닷.”
“……오다니, 뭐가?”
그리곤 곧바로 루시오를 챙겨, 저들이 건너온 마을 쪽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알베르토를 부르려던 그때.
웬일인지 침착한 얼굴로 어딘가를 올려다보고 있는 루시오를 마주한 그는.
무슨 일인가, 녀석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긴 뭐겠습니깟?”
콰아아아앙-!
“바로 북유럽 신화의 신님들인 것입니닷!”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