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19)
신들의 배달기사(119)
“내일 있을 타르타로스 원정에 앞서, 포부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이전 원정들에 비해 장비적인 측면에 있어서 확실한 상향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얼마나 좋아진 겁니까!”
“이번에는 2팀까지 더해 공략 인원을 늘리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영원’ 길드 사옥 앞.
마트에서 산 초콜릿을 집에 가져다 놓고, 성준이 보낸 메시지를 따라 강남을 찾은 하준은.
정문 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기자들을 발견하곤, 질색하는 얼굴로 조용히 인상을 찌푸렸다.
“잘나가는 헌터 노릇도 영 쉬운 게 아니구만.”
건물 로비에 딱히 길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견장도 아닌 사옥 입구에서, 그것도 원정에 있어 자세한 얘기는 알지도 못할 일개 팀원들을 붙잡고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자니.
보는 제가 다 답답할 지경이었다.
“우움. 그런데 하준, 이번엔 왜 이렇게 순순히 부탁을 받아주려는 겁니깟? 저번에는 엄청 엄청 깐깐하게 따졌지 않습니깟.”
이윽고 루시오의 물음에 슬그머니 옆을 돌아본 그는.
오독오독 빼빼로를 씹으며 궁금한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녀석을 보고선,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깐깐하긴 뭘 깐깐하게 따져, 인마. 내가 무슨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그냥 몸값 따라 받을 건 받은 거지. 그리고 아직 부탁 들어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일단 얘기나 좀 들어보려고 온 거야, 얘기나.”
언제 오나.
조금 전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놓곤, 사람을 보낼 테니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답장에 따라 근처 카페 앞에 선 하준은.
심심하니 슬쩍 빼빼로 하나를 쏙 빼 먹으며, 저 멀리 입구를 내다봤다.
기자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사람을 보내겠다는 건지.
어디 따로 뒷문이라도 있는 건가.
“하준 씨! 이쪽입니다, 이쪽!”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배도 차고 날도 풀렸겠다, 슬슬 몰려오는 졸음에 꾸벅이길 잠시.
반가운 듯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린 하준은.
진짜 뒷문이라도 있었는지, 건물 뒤편에서 손을 흔드는 누군가를 보며 천천히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저나 부길드장님이라도 직접 찾아뵀어야 하는 건데.”
“아뇨, 뭐…….”
하도윤.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자신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 어색하니 머리를 긁적인 하준은.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단순히 길드장의 손님을 모시는 거라기엔 부담스러우리만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어떻게, 타르타로스 공략 쪽은 잘 준비되셨나요? 아까 보니까 전에 비해 장비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던데.”
이윽고 도윤을 따라 뒷문 근처에 있던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그는.
안에서도 묘하게 계속 저를 쳐다보는 그를 보며, 답답함에 조용히 입을 떼었다.
“하하. 예, 실은 저희 길드원 중에 헤파이스토스 님을 성좌로 두고 있는 헌터가 있어서요. 덕분에 1팀부터 3팀까지, 가지고 있던 장비를 싹 제련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준의 물음에 자랑스레 머리를 끄덕인 도윤은.
일전에 1팀의 탱커들조차 쉬이 막아내지 못했다던 촉수를, 2팀과 3팀의 탱커들이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던 제련의 위력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 기왕 이렇게 오신 거, 하준 씨도 한번 맡기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보통은 안 되겠지만, 하준 씨라면 아마 길드장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실 겁니다.”
“예? 아, 아뇨. 괜찮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은 하준은.
칼 같은 거절에 시무룩하니 고개를 푹 숙이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헤파이스토스를 성좌로 둔 헌터라.
마음이야 고맙긴 하다마는, 헌터가 아닌 성좌 그 자체를 알고 있는 제게 있어선 별로 의미 없는 제안이었다.
애당초 집에 있는 슈트에 평소 쓰고 다니는 헬멧만 하더라도, 다 헤파이스토스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었으니까.
똑똑-
“길드장님, 1팀장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준 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어, 도윤아. 수고했어.”
달칵-
이내 최고층에 올라 길드장실 앞에 선 하준은.
안쪽에서 돌아온 대답과 함께 조심스레 문을 열곤 물러나는 도윤을 뒤로한 채, 천천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하준 씨. 어떻게,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은……. 바로 얼마 전에 게이트에서 보셔놓곤. 그보다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어디 던전을 공략해 달라거나 혹은 도와달라거나 그런 부탁은 안 받습니다. 특히 타르타로스 쪽은.”
곧 바삐 둘러보던 서류들을 내려놓곤 제 앞에 앉은 성준을 마주한 그는.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상대를 보며 혹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용건을 꺼내기 전에 먼저 선을 그어두었다.
아무래도 원정 하루 전, 이 바쁜 시기에 굳이 저를 찾은 것이 영 느낌이 싸했으니까.
“네?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하준 씨가 공략을 도와주신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저희 ‘영원’ 길드의 일이니까요. 길드원 아닌 다른 헌터의 도움을 받아 클리어한다 한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하준 씨가 ‘영원’에 들어와 주신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긴 합니다만…….”
돌아온 얘기에 질린 얼굴로 슬쩍 눈길을 피한 하준은.
그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성준을 보고선, 어색하니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 그때 그렇게 안 들어간다고 거절을 해놨는데도 능글맞긴.
‘아무튼, 몬스터랑 치고받는 부탁은 아니란 거지.’
“실은 이번에 부탁드리고 싶은 건 다름이 아니고, 일전에 하준 씨께서 직접 뒤랑달을 배달해주셨던 길드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또 물건 하나를 옮기고 싶다고 하셔서요. 한데 이게 좀, 배송지가 일반적이질 않은지라.”
“일반적이지 않다니. 어디 뭐 던전에라도 배달해 달랍니까?”
이어진 말에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낀 그는, 혹시나 마음에 성준을 흘기며 지그시 눈살을 좁혔다.
이래놓고 또 막상 가면 싸울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추가로 뭘 도와주실 필요는 없고. 정말로 안쪽에 있는 헌터들한테 물건만 좀 배달해주시면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공략 기간이 길어지면서, 보급품이 떨어진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기엔, 이번 원정에 뭐가 많이 걸려 있는 상태라.”
덧붙인 설명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하준은, 이내 대강 상황을 이해하곤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니까, 뭐가 됐든 진짜 배달만 하고 나오면 된다는 거지.
해운대에 무기를 전해주러 갔었던 것처럼.
“한데 왜 하필 저랍니까? 그렇게 급한 거면 차라리 같은 일본에 있는 협회나 다른 길드에 도움을 청하는 편이 더 빠를 텐데. 아니면 밖에서 대기 중인 길드원들을 시켜도 괜찮을 테고.”
“그게…… 사실 그쪽 원정에 지금 일본 내 길드 순위가 달린 터라, 어디에 도움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럴 겁니다. 같은 길드원들도 주력이 아닌 인원들까지 전부 보조로 데리고 갔다는 모양이고요. 아마 이 부탁도 던전에서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헌터를 통해서 보내온 걸 겁니다.”
그런가.
돌아온 답에 곰곰이 속으로 주판을 튕기던 그는.
금세 계산을 마치곤 씨익 미소와 함께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제, 어디로 가면 되죠?”
어디 위험하게, 혹시라도 눈에 띄게 몬스터랑 싸울 걱정도 없고.
단순히 보급품을 좀 배달해주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
1팀, 2팀 같은 주력이 아닌 나머지도 전부 보조로 쓰려고 데려갔다니, 배달해야 할 짐이 좀 많기야 하겠지마는.
그마저도 리자드맨 왕국에서 보상으로 받은 이 주머니만 있다면, 굳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아! 언제든 얘기만 하시면 그쪽에서 전세기를 보내서 모시러 오겠다고 했으니, 원하시는 시간대에 인천공항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바로 가실 겁니까?”
“아뇨. 지금 바로는 조금 그렇고, 이따가 저녁쯤에.”
하물며 이동까지 편하게 전세기로 날라주겠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제안을 수락한 하준은.
난이도에 비해 벌써부터 짭짤할 것만 같은 벌이에, 흐흐 웃음을 흘렸다.
밖에서 던전으로 물건 하나 옮기는 것 정도야 뭐, 저한테는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지만.
저쪽에 있어선 그게 당장 저들 순위를 비롯해, 여러 이권이 달린 중대한 문제였으니까.
“저녁쯤에……. 예, 그럼 저쪽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어서 곧 다행이라는 듯 한결 걱정을 덜어낸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성준을 마주한 그는.
마찬가지로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조금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상대 길드야 지난번에 제가 최서윤의 방해를 뚫고 무사히 뒤랑달을 전해준 걸 봤으니, 저를 찾았다 치더라도.
‘영원’은 왜 그렇게까지 그쪽에 신경을 써주는 거지?
‘뭐, 이유야 어쨌든 딱히 상관없나. 나야 보상만 두둑하게 받으면 그만이니……. 아, 보상!’
툭-
“음? 하준 씨, 혹시 더 하실 말씀이라도…….”
그렇게 곧 용건을 마치고, 길드장실을 나서려던 찰나.
문득 떠오른 의문에 꼬리를 물듯 되살아난 기억에,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선 하준은.
그대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성준을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상.”
“예?”
보상.
일전에 아틀란티스를 공략하고 루시오의 고향에 들렀다 온 이후로, 매일같이 제집에 찾아온 백아린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한 그는.
어리둥절하니 저를 쳐다보는 성준을 내려다보며, 보란 듯이 손바닥을 슥 내밀었다.
“보상, 주셔야죠. 대신 아틀란티스를 공략해드린 값.”
어휴, 하마터면 까먹고 그냥 돌아갈 뻔했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