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21)
신들의 배달기사(121)
‘박성준…… 이 능글맞은 의뢰주 같으니.’
후지하코네이즈국립공원.
후지산을 중심으로 시즈오카현과 야마나시현 그리고 가나가와현 일부까지 발을 걸치고 있는 거대한 국립공원이자, 지금은 십여 년 전에 발생한 게이트로 인해 울창한 숲으로 변모해버린 무지막지한 규모의 고난이도 던전.
창고에서 보급품을 모두 쓸어 담고, 길드 사람의 안내를 받아 던전 입구에 도착한 하준은.
조금 전 우로보로스 사옥의 주차장에서 줄지어 대기 중이던 트럭과 인부들을 떠올리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급품 옮길 초짜들을 데리고 저 넓은 숲을 뒤져서 공략대를 찾는 거면 그게 호위지, 배달이냐?’
어쩐지.
창고에서 진짜로 혼자 온 게 맞냐고 묻더라니.
그때는 단순히 한 명이서 옮길 수 있을 만한 분량이 아니라 그런 줄 알았건만.
생각해보면 미리 우로보로스의 의뢰 내용을 알고 있었을 성준이, 인부로 쓸 E급, F급 헌터들의 존재를 몰랐을 리는 없으니.
그냥 처음부터 호위 목적으로 저를 보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정말 저 혼자 그 많은 양을 쉬이 옮길 수 있으리라고 믿고 보냈다기엔, 딱히 ‘영원’ 길드의 앞에서 주머니의 능력을 보인 적도 없었으니까.
“이-상, 그럼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급은 걱정 마시고, 나중에 보상만 잘 챙겨주십쇼.”
하나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하준은.
조금은 뚱한 표정으로 천천히 던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선 문제야 어쨌든, 결국 혼자 보급품만 달랑 배달해놓고 오는 건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저벅-
“그래도 입구에서 따로 출입 검사를 안 하는 건 참 편하구만.”
“덕분에 루시오도 간단히 들어올 수 있었던 겁니닷!”
우로보로스 쪽에서 미리 손을 써둔 걸까.
검문도 없이 마음 편히 숲으로 들어선 그는.
아까 텅 비어 있었던 검문소 안쪽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뭐.
다른 3대 길드의 견제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 설령 보급뿐이라 한들 저들 소속이 아닌 타 헌터를 공략 중인 던전 안으로 불러들였다는 게 밝혀지면.
나중에 이 여우 숲을 무사히 공략해 내더라도, 그 진정성에 대해 의심받게 될 테니까.
뇌물을 줬든 뭐든, 알아서 협회 직원들을 구워삶아 놓은 거겠지.
‘어찌 됐든 나랑은 별 상관 없는 얘기지만. 애당초 특정 길드가 던전 하나를 통제하고 있는 것쯤이야, 한국에서도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고.’
아직 바깥에서 못 미더운 눈초리로 제 쪽을 쳐다보고 있는 직원을 뒤로한 채, 좀 더 깊숙이 수풀을 건넌 하준은.
잠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고는, 확실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주머니를 슥 뒤적였다.
“으음, 어디 보자. 분명 이쯤에 놔뒀을 텐데……. 아! 찾았다.”
조금 전 창고에서 잔뜩 욱여넣은 상자들 탓일까.
자꾸만 툭툭 걸리적거리는 판때기들을 피해 손을 휘적이던 그는.
곧 원하던 녀석을 콱 집고선 바깥으로 힘껏 끌어 올렸다.
“흡!”
쿵-
스쿠터.
요즘은 아예 탈 때 빼곤 항상 넣고 다니는 제 애마를 빼 든 하준은.
곧장 배달통에 넣어 놓은 퀴네에까지 딱 착용하곤 위에 올라탔다.
“좋아. 그럼 후딱 끝내고 보상이나 받아볼까?”
“출발인 것입니닷!”
부릉-
이윽고 뒤에 앉아 제 허리를 꽉 붙든 루시오를 확인하고 핸들을 잡은 그는.
아직 외곽이라 그런지 그렇게 빽빽하지 않은 나무에, 빠르게 안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하준, 그 길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가는 겁니깟?”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초입을 넘어 초목이 더욱 우거진 구간에 들어선 하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을 묻는 루시오의 눈빛에, 조용히 미소와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엣?”
너무 당당히 돌아온 답변에, 순간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하니 눈을 끔뻑인 루시오는.
이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그럼 지금껏 목적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돌아다니고 있었던 겁니깟? 여기 이 숲, 엄청 엄청 넓다고 하지 않았습니깟!”
처음부터 자연스레 핸들을 잡고 가기에, 직원으로부터 대강 위치를 전해 들었거나 내비로 무언가 길을 봤으리라 믿었건만.
통 대책이 없는 그 행동에 말하면서도 헛웃음을 터트린 님프는, 곧 망했다는 표정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 큰일 난 겁니닷……. 앞으로 며칠이나 이 위험한 곳에서 밤낮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닷!”
그에 오버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을 흘린 하준은.
백미러에 비치는 축 늘어진 루시오의 모습을 보며, 그리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며칠은 무슨. 걱정하지 마. 길어야 하루 이틀이면 다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어떻게 말입니깟? 이 넓은 숲에서 아무런 단서도 없이, 어떻게 사람을 찾는단 겁니깟?”
막막한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쉰 님프는.
여전히 천하태평인 대답에 이마를 짚으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단서가 없긴 왜 없어, 인마. 주변에 널린 게 다 단서구만.”
“그게 무슨 소리……. 앗!”
그리고는 이를 어찌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하준의 등에다 얼굴을 푹 묻기도 잠시.
이어진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 루시오는, 곧 몇몇 곳과 달리 이동하기 편하게 수풀이 짧게 쳐진 자리들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곳곳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겁니닷!”
“그래. 바로 그거야.”
여태 하준의 등에 가려 앞을 잘 살피지 못해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건만.
보기보다 알기 쉽게 남은 흔적들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 님프는.
뒤늦게 몰려오는 민망함에 어색하니 하준의 눈길을 피했다.
천하의 엘리트 님프가 이런 간단한 것 하나 먼저 알아내지 못하다니.
“아무튼. 이런 흔적들이 전부 그 공략대가 남긴 것들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공략이 시작된 때부턴 그쪽이 전세 내듯 던전을 이용하고 있었을 테니. 아까처럼 수풀이 짧게 쳐진 쪽은 아마도 우리가 찾는 녀석들이 만들어놨다고 봐야겠지.”
그에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방금 지나온 방향을 흘긴 하준은.
그 근처와 달리 홀로 허리 아래까지 잘려 있던 풀들을 떠올리며, 저 앞에도 보이는 짤막한 수풀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우로보로스 길드가 이 여우 숲 공략을 시작한 지, 대충 열흘은 넘게 지났을 지금.
그 전에 쳐놨던 수풀들은 대부분 가슴께까진 쑥쑥 자랐을 터였으니까.
“하준! 생각보다 똑똑한 것입니닷!”
“뭐? 그 말은 여태까진 멍청해 보였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루시오? 루시오!”
이후.
정말 의외라는 듯 놀란 눈빛으로 말을 붙여오는 루시오에, 장난스레 눈썹을 끌어 올린 그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눈을 끔뻑이며, 말없이 휘파람이나 불고 있는 녀석을 째릿 노려봤다.
“에휴, 애새끼 키워봐야 나중에 다 소용없다더니. 벌써부터 나를 놀려먹는구나.”
“……그, 하준이 언제 루시오를 키웠습니깟?”
부릉-
그렇게 마음의 상처에 투덜투덜 말을 내뱉으며, 곳곳에 남은 흔적을 따라 숲을 돌아다니길 오래.
그렇지 않아도 컴컴했던 하늘이 완전히 까맣게 내려앉을 때쯤.
털털털-
“응? 하준, 갑자기 무슨 일입니깟? 혹시 뭐라도 발견한 겁니깟?”
“……아니. 잠깐, 잠깐만 조용히 있어 봐.”
저 멀리 비치는 무언가에 천천히 속도를 줄인 하준은.
이내 스쿠터를 완전히 멈춰 세우곤,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화악-
곧 스마트폰 후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스쿠터 전조등이 밝게 비춰주고 있는 자리를 지나서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위쪽을 비췄다.
“루시오, 저거 보여?”
“저거라니, 어느 거 말입니……. 아앗!”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 사이.
하준의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루시오는.
금세 환한 불빛 사이로 거멓게 올라오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기!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겁니닷!”
연기.
지금껏 짧게 쳐져 있던 수풀보다 더더욱 확실한 흔적에, 흥분한 얼굴로 하준의 소매를 잡아당긴 님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낸 목표에 싱글벙글 미소를 터트렸다.
이거 잘하면 날이 밝기도 전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루시오, 혹시 모르니까 가서 한번 확인해줄래?”
“날아서 말입니깟? 하지만…….”
“걱정하지 마. 퀴네에는 켜줄 테니까.”
“으음, 알겠습니닷! 금방 다녀오는 겁니닷!”
이윽고 연기를 가리키며 정찰을 부탁한 하준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퀴네에를 작동시키며, 지그시 눈살을 좁혔다.
일반적으로 이 숲속에 연기가 날 일이라곤, 누군가 불을 피우고 있을 것밖엔 없었지만.
만에 하나 산불이라든가, 그 백면금모구미호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여우불을 이용해 연기를 피웠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준, 하준!”
곧 금방 탐색을 마치고 돌아온 루시오를 마주한 하준은.
밝게 웃는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예상이 가는 결과를 떠올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땠어? 사람이었어?”
“그렇습니닷! 오십 명…… 아니, 더 더 많은 인간들이 야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닷!”
오십 이상.
인원수까지 대강 들어맞는 광경에 씨익 미소를 지은 그는.
더 이상 지체할 것 없이 스쿠터에 올라타고선, 곧바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스로틀을 꾹 당겼다.
* * *
“아, 정말! 답답해 죽겠네! 도대체 이놈의 여우들이 다 어디로 숨은 거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둘러친 천막 안.
밤새 정찰을 마치고 돌아와 장비를 벗어 던진 우로보로스의 길드장, 나츠메 아이리는.
벌써 보름째 공략은커녕 몬스터 한 마리 마주하지 못한 채 허탕만 치고 있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며, 잘근잘근 입술을 저몄다.
“이번에도 공략 못 하면 우선권이 넘어갈 텐데. 그랬다가 다른 놈들이 먼저 공략이라도 하면…….”
그동안 일본 협회와 정부로부터 이 여우 숲의 우선 공략권을 따내기 위해 바친 뇌물이 얼만데.
이렇게 보스는커녕 여우 새끼 한 마리 못 보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물며 세 길드 중 어디든, 이 던전을 공략하기만 하면 단숨에 일본 제일로 우뚝 설 수 있는 이 시국에선 더더욱.
펄럭-
“기,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왜? 혹시 보스라도 나온 거야?”
하나 처음 넉넉히 챙겨 왔던 보급품도 다 떨어져가는 마당에, 근심 어린 얼굴로 바닥에 얼굴을 파묻던 아이리는.
곧 다급히 천막을 열어젖히며 저를 찾는 부길드장의 목소리에, 걱정 반 설렘 반의 표정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쪽에서 무언가 저희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답니다! 말씀대로 혹시 보스일지도 모르니 어서 전투 준비를…….”
뒤이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는 그의 모습에, 곧장 벗어놨던 장비를 주섬주섬 다시 챙겨 입던 그때.
끼이이익-!
“흐어어억!”
“콜록! 콜록! 뭐, 뭐야?”
갑자기 밖에서 인 소란에 헐레벌떡 밖으로 나선 그녀는.
뿌옇게 일어난 먼지구름 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누군가를 보며.
곧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랏샤이마세! 아, 이게 아닌가?”
이 위험한 던전 안에, 웬 스쿠터 한 대가 떡하니 나타났으니까.
“아무튼 배달 왔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