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22)
신들의 배달기사(122)
“……저게 뭐야. 스쿠터?”
“방금 뭐라고 한 거야? 갑자기 어서 오십쇼라니. 그리고 뒤에는 한국말이었던 거 같은데?”
여우 숲의 공략을 위해 넓은 공터에다 세워놓은 베이스캠프.
늦은 밤, 난데없이 찾아온 불청객에 천막 밖으로 튀어나온 우로보로스의 길드원들은.
이 위험한 던전 안쪽에 웬 스쿠터를 타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와 어린아이를 보며,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흘겼다.
“다들 조심해! 어쩌면 여우가 둔갑한 걸지도 모르니까.”
이윽고 수군대는 길드원들을 조용히 시키며 앞으로 나선 아이리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2인조를 향해 눈을 좁히며, 조심스레 품에서 부적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영악한 여우들이 저렇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나타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또한 고도의 함정일지도 몰랐으니까.
“저, 길드장님, 혹시 영원 길드에서 보낸 사람이 아닐까요?”
“……‘영원’에서?”
“그 왜, 아까 한국말을 썼지 않습니까.”
그렇게 미심쩍은 눈으로 두 사람을 경계하기도 잠시.
부길드장의 말에 조금 전, 앞에 탄 남자가 꺼낸 이야기를 떠올린 그녀는.
곧 언어에 능하고 직접 던전 바깥으로 도움을 청했던 길드원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레이코!”
“네, 네! 아이리 언니!”
“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겠어?”
“아, 그게, 뭘 배달 왔다고…….”
“……배달?”
설마 보급품을 말하는 건가?
돌아온 답에 다시금 2인조를 살핀 아이리는.
더더욱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부적을 세웠다.
겨우 둘이서 이 많은 인원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당장 눈앞에 그들이 가져온 보급품이라곤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까.
“뭐야, 이거? 분위기가 왜 이래?”
“아무래도 저쪽에서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닷.”
이내 환영은커녕 날을 세우는 사람들을 보며, 당황한 얼굴로 슬쩍 주변을 둘러본 하준은.
어째 갈수록 저를 향해 내려오는 날붙이들을 보고선, 잠시 벗어놓은 헬멧을 꾹 쥐었다.
“저기요! 배달 왔다니까요, 배달? 보급품 이거, 안 받을 거예요?”
그리곤 언제든지 다시 퀴네에를 쓰고 튈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목청을 올린 그는.
기껏 한 고생이 수포로 돌아갈까,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입술을 저몄다.
확 그냥 배달이고 뭐고 돌아가 버려?
“호, 혹시 영원 길드에서 오신 분인가요?”
이후 양쪽 모두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길 얼마나 지났을까.
퀴네에의 지속 시간도 있겠다, 이만 포기하고 왔던 길로 핸들을 돌리려던 찰나.
막 헬멧을 뒤집어쓰던 하준은.
수군거리던 일본어 사이로 들려오는 익숙한 언어에, 잠깐 손을 멈추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훑었다.
“아야메 레이코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보급품 관련으로 영원 길드에서 보내주신 분이 맞나요?”
조금 어눌하지만 확실한 한국어에, 조용히 앞으로 나온 여자를 살핀 그는.
다행히 통역할 마음은 있는 듯, 여기저기 날을 거두는 헌터들을 보고선 그렇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예. 여기서 뭐, 보급품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역시!”
하준의 대답에 살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답했던 가슴을 쓸어내린 레이코는.
곧 싱글벙글 길드장을 슥 돌아보며, 방금 들은 내용을 통역해주었다.
“그럼 그, 보급품은…….”
하나 좋았던 분위기도 잠시.
아이리로부터 무슨 핀잔을 들었는지, 금세 울적해진 얼굴로 돌아선 그녀는.
보급품이 들어갈 자리라고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배달통을 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물었다.
쿵-
“저, 저건!”
“주머니에서 상자가……. 신물인가?”
그에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상자 하나를 툭 꺼낸 하준은.
놀란 얼굴로 재차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헌터들을 보고선, 보란 듯이 내용물을 까주었다.
“무, 물이다!”
“레토르트도 있어!”
이윽고 열띤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마도 책임자로 보이는 여자를 바라본 그는.
먼저 물건을 보여줬음에도,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그녀를 보며 질린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참, 이래도 못 믿겠으면 대체 배달은 왜 시킨 거람?
“아이리 언니! 보급이에요, 보급!”
“레이코, 나도 보면 알아. 하지만…….”
“길드장님, 이만하고 그냥 받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더 의심하다간 계약이고 뭐고 다시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일단 모자란 보급은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 게 아니라면.”
“으음…….”
눈앞의 보급에도 쉽사리 혹시나 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던 아이리는.
이내 불쾌한 얼굴로 주섬주섬 상자를 닫는 상대를 보며, 하는 수 없이 무기를 내리고 성큼성큼 발을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요새 공략 상황이 워낙 안 좋았던 터라,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네요. 우로보로스의 길드장, 나츠메 아이리라고 합니다.”
“이하준입니다. ‘영원’ 길드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곧 통역을 하던 레이코라는 여자와 함께 천천히 앞으로 나온 책임자를 마주한 하준은.
그래도 잘못은 아는지 꾸벅 허리를 숙이며 사과해오는 그녀를 보고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화를 누그러트렸다.
그래, 뭐.
여긴 던전 안이고,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니까.
“가져오신 보급품은 이게 전부인가요?”
“그럴 리가요. 그쪽 직원이 창고에 준비해둔 그대로 다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어진 물음에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냐는 듯, 툭툭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두드린 그는.
슬쩍 주머니를 뒤적이며 나머지 상자들을 모두 꺼내기 전에,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보상부터 좀 들어보고 싶은데요?”
보상.
영원에서도 이번 보수에 대해 따로 얘기해주지 않은 터라, 여태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하준은.
아까 전 길드원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제법 쏠쏠하게 타낼 수 있을 법한 보상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상…… 한 100억 정도면 괜찮으실까요?”
“……100억이요?”
“네, 100억. 거기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셨으니, 추가로 10억 정도 더 얹어드릴게요.”
100억에 추가금으로 10억까지, 도합 110억.
이 정도면 만족스러울 거라는 듯, 제법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리의 모습에 곧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린 그는.
영 마음에 안 드는 눈빛으로 지그시 고개를 저으며,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쯧. 텄네, 텄네. 여기까지 괜히 헛수고했구만.”
“……네? 저, 저기요!”
탁-
그리곤 자연스레 아까 꺼내놓은 상자를 닫으며, 재차 주머니 속으로 슥 돌려놓으려던 하준은.
그 순간 제 팔을 탁 낚아채는 손길에, 퍽 불쾌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하! 그건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데요? 왜 마음대로 남의 물건을…….”
“댁네들 물건! 별로 가지고 싶지도 않으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시고. 그냥 다 창고로 다시 돌려놓을 테니, 얼른 이 손이나 놓으세요. 100억은 무슨. 누굴 봉으로 아나? 영원 길드를 통해서 부탁하길래 좀 제대로 된 곳인가 싶었더니. 이거 완전 도둑놈이로구만?”
팍-!
대충 예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보상에 삔또가 나간 그는.
제 팔을 잡아챈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꺼내놓았던 상자를 마저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한 국가의 3대 길드라는 놈들이, 넉넉하게 챙겨 갔던 보급품을 다 까먹고도 진척이 없을 만큼 높은 난이도를 가진 던전.
그것도 경쟁 중인 다른 길드들 때문에 제대로 된 인력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껏 한달음에 바다 건너 여기까지 달려와 줬건만.
준다는 보상이 고작 110억뿐이라니.
‘아까 보니까 창고에 뭐 쌓아놓은 것도 많더니마는. 거참, 세상엔 있는 놈들이 더하다더니.’
그렇게 투덜투덜 불만을 내뱉으며 주머니를 졸라맨 하준은.
설마하니 인제 와서 약속을 무를 줄은 몰랐는지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헌터들을 흘기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급한 건 너희들이지, 내가 아니다.’
스윽-
“자, 잠시만요!”
이후.
진짜로 다시 스쿠터에 올라타 핸들을 잡는 하준을 보며, 다급히 멈춰 세운 아이리는.
그대로 고개만 슬쩍 돌려 흘긋 저를 내려다보는 그를 향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팍 펼쳐 보였다.
“50억, 50억 더 얹어드릴게요. 이 이상은 정말…….”
“네, 갑니다.”
부릉-
“저, 저기요!”
“흐억! 깜짝야!”
끼이익-
겨우 50억이라니.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듯 짜디짠 보수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하준은.
막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갑자기 앞에서 훅 튀어나오는 레이코를 보고선, 눈살을 팍 찌푸렸다.
“지금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오, 오해가!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에요!”
“……오해?”
혹 그리 멋대로 보내진 않겠다는 생각으로, 협박이라도 하려고 멈춰 세운 건 아닐까.
흠칫 퀴네에를 반쯤 머리에 걸치고선 그녀를 내려다본 하준은.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니었는지, 정말로 억울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레이코를 보고선.
어디 한번 뭐가 오해였다는 건지 얘기나 해보라는 듯, 조용히 턱짓했다.
“100억 원이 아니라, 100억 엔! 추가로 얹어드리는 10억까지, 110억 엔을 드리겠다는 얘기였어요!”
“110억…… 엔?”
곧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멍하니 눈을 끔뻑인 그는.
이내 다시금 스쿠터에서 몸을 내리며, 성큼성큼 아이리의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하하하! 이거 아무래도 오해가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네?”
그리곤 반갑게 손을 팍 내밀며, 얼떨결에 붙잡은 그녀와 신나게 악수한 하준은.
곧바로 주머니에서 하나둘 상자들을 꺼내어 바닥에 척척 깔았다.
거참, 단위가 엔이라니.
이런 건 진즉에 얘기를 해줬어야지.
“하준…… 진짜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닙니깟?”
“시끄러워.”
그에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제게서 고개를 돌리는 루시오를 째릿 노려본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하니 저를 바라보는 아이리를 향해 어색하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여기, 주문하신 보급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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