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23)
신들의 배달기사(123)
“쉰일곱, 쉰여덟, 쉰아홉…… 육십. 수량 맞습니다, 길드장님!”
슬슬 자정이 다가오는 늦은 밤.
부탁받은 상자를 모두 꺼내놓고, 하나둘 내용물을 체크하는 헌터들을 지켜보던 하준은.
이내 확인을 마친 듯 천막으로 물건을 옮기기 시작하는 이들을 보며, 아이리를 향해 조용히 말을 붙였다.
“자, 그래서. 보수는 어디서 받으면 될까요, 고객님?”
그런 하준의 물음에 잠시 불편한 듯 그를 흘긴 아이리는.
곧 나지막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비록 레이코가 통역할 때 금액의 단위를 따로 말해주지 않았다고는 해도, 모자란 금액에 대놓고 혀를 차곤 돌아서던 모습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쪽도 답답한 상황에 필요 이상으로 그를 의심했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더구나 애당초 저쪽 또한 돈 벌자고 이 위험한 일을 받아들인 것이었을 테고.
“……레이코를 통해서 저희 길드 건물로 돌아가시면 곧장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해 놓을게요. 110억 엔. 세금도 이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따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사람이야 어쨌든 받기로 한 물품은 다 받았겠다.
하준이 보는 앞에서 레이코를 불러, 바깥에 있는 직원에게 전달을 마친 그녀는.
이제 됐냐는 듯 가만히 그를 올려다봤다.
“에헤이, 이거 왜 이러실까?”
“네? 무슨 문제라도…….”
“110억이 아니라 160억이죠. 아까 50억 더 얹어주신다고 했잖아요.”
그에 무슨 소리냐는 듯, 지그시 고개를 저은 하준은.
처음 원화인 줄 알고 따져서 올린 금액이긴 하지만, 한 번 내뱉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금액을 조정했다.
아예 그때 안 된다고 했으면 모를까.
이미 160억까지 줄 수 있는 걸 알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무르는 건 좀 그렇지.
“네? 하지만 그건 그쪽이 단위를 오해해서…….”
“레이코, 160억이라고 다시 전해.”
“아이리 언니!”
이후 기어코 50억 엔을 추가로 받아낸 하준은.
분한 얼굴로 저를 잔뜩 노려보는 레이코의 눈빛에, 고맙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도 당연히 원화일 거라 오해를 하긴 했지마는, 따지고 보면 그녀가 액수를 엔화 그대로 불러준 덕에 올려먹은 셈이었으니까.
“……정정했어요. 돌아가면 160억 엔, 바로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역시 성준 씨가 소개해주신 길드답게 통이 참 크시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번 공략, 꼭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이윽고 다시금 바깥에 연락해 보상을 정정하는 걸 확인한 그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거래였다는 듯,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돌아섰다.
고작 배달 한 번 하고 160억 엔,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1,600억에 달하는 금액을 날로 먹다니.
이거 횡재했구만, 횡재했어.
“하준, 얘기는 잘 끝났습니깟?”
“아무렴! 여기 길드장이 아주 통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직후 스쿠터가 있는 자리로 돌아온 하준은.
혹시 몰라 근처를 지키고 있던 루시오를 보며, 전혀 문제없었다는 듯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그런데 루시오 너, 표정이 왜 그래? 혼자 있는 동안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으음, 하준, 그게 말입니닷.”
하나 돌아온 반응에 무슨 일인가 지그시 눈살을 좁힌 그는.
꽤나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는 녀석의 모습에, 천천히 귀를 기울였다.
“실은 아무래도 여기, 몬스터가 숨어있는 거 같습니닷.”
“……몬스터? 어디? 이 근처에?”
몬스터.
루시오의 말에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핀 하준은.
널따란 공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우거진 초목을 보며, 어딘가 스산함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뭔가 보이진 않지만, 숨어 있으려면 얼마든지 숨어있을 거 같긴 하네.
“저기, 천막 안에서 짐승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겁니닷.”
“뭐? 천막? 하지만 저긴…….”
하나 살랑이는 수풀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뚫어져라 살펴보고 있기도 잠시.
조용히 손을 들어 초목이 아닌 공터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녀석에, 살며시 눈길을 돌린 그는.
분명 상자를 확인하곤 헌터들이 쉬기 위해 들어간 천막을 보며,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루시오, 설마 헌터들 중에 몬스터가 숨어있다는 거야?”
“그렇습니닷. 루시오의 코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닷.”
통 의문스러운 상황 속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연 하준은.
돌아온 대답에 퍽 진지한 루시오의 눈빛을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하긴, 여기는 여우 숲이라고 했으니…….”
“둔갑술을 써서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었을지도 모르는 겁니닷.”
이어진 말에 과연 머리를 끄덕인 그는.
이를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끙끙 앓으며, 슬쩍 아이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에라이, 모르겠다. 뭐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도 명색이 일본 3대 길든데.”
그리곤 곧 그 옆에 있다 저와 눈길을 마주친 레이코를 보며, 찌릿하고 돌아오는 눈빛에 지그시 고개를 저은 하준은.
곧장 고민을 털어내곤 망설임 없이 스쿠터 위로 올라탔다.
설마 루시오가 단박에 알아챈 사실을, 본격적으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들어온 저 거대 길드가 모르고 있을까.
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남겨 놓은 거겠지.
뭐, 설령 아니라 해도 애초에 내 일은 딱 보급품을 배달해주는 것까지였고.
띠링-
“……응?”
그렇게 제 할 일도 다 마쳤겠다, 이만 시동을 걸고 던전을 나서려던 찰나.
경쾌한 알림과 함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마주한 하준은.
딱 봐도 위험 부담 좀 감수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주문 내용을 보고선, 가만히 눈살을 찌푸렸다.
“하준, 왜 그럽니깟? 출발하는 거 아니었습니깟?”
“……그랬지. 나도 출발하려고 했는데.”
야타의 거울이라.
다행히 저번처럼 물음표로 점철된 것이 아닌 화끈하게 공개된 정보에, 배달 팁에 오른 물건을 살핀 그는.
적어도 뒤에 레플리카가 붙지 않은 걸로 봐선 몇 번이고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보상에, 천천히 말을 이었다.
“루시오, 혹시 야타의 거울이 뭔지 알아?”
“야타의 거울 말입니깟? 물론 알고 있는 것입니닷! 그런데 왜……. 헉! 혹시 또 배달 의뢰가 들어온 겁니깟?”
“응. 누가 이 던전 좀 같이 깨달라네? 아무래도 저기 있는 헌터들 중 누가 모시고 있는 성좌인 거 같은데. 아무튼, 이거 좋은 거야?”
이윽고 당연하게 고개를 주억이는 루시오를 본 하준은.
표정을 보아하니 제법 유명해 보이는 물건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마저 얘기를 물었다.
“야타의 거울. 팔지경. 일본에선 3대 신기라 불릴 정도로 아주아주 유명한 신기인 것입니닷! 일본의 태양신이신 아마테라스 님이 아드님이신 오시호미미 님한테 내린…….”
“아니, 아니, 설화는 됐고. 효과 말이야, 효과.”
곧 길어지는 이야기에 휘휘 손을 저은 그는.
아까부터 가겠다고 해놓고 가만히 저들 눈치를 살피는 자신을 수상쩍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이리를 보고선, 짤막하게 핵심을 요청했다.
“……효과는 거울에 비친 상대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닷.”
즐겁게 설명하고 있는데 중간에 말을 잘라먹은 탓일까.
뾰로통한 목소리로 돌아온 답에 어색하니 웃음을 흘린 하준은.
미안하다는 듯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조금 전 들은 효과를 떠올렸다.
상대의 진짜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
이런 게 어디 쓸모가 있는 걸까?
‘……뭐, 가지고 있으면 언젠간 써먹을 날이 오긴 하겠지.’
일본의 3대 신기라더니.
생각보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효과에 실망한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주억이며 눈앞에 뜬 요청을 받아들였다.
일단은 한번 도와줘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포기하고 나가면 되겠지.
딱히 실패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마침 시간대도 자정이 다가오고 있고.
“가자, 루시오.”
“……어딜 말입니깟? 설마 저 사람들한테 다시 돌아가는 겁니깟?”
“응. 아무래도 몬스터가 헌터로 둔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돌아가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이만 빠르게 결심을 마친 하준은.
곧바로 시동을 끄고 스쿠터에서 내리며, 다시금 아이리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유야 어쨌든 도와주기로 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알리고 몬스터를 색출해내는 편이 낫겠지.
“거짓말. 그냥 보상이 탐나서 그러는 거지 않습니깟.”
“……시끄러.”
이윽고 금세 루시오와 함께 아이리 앞으로 돌아온 그는.
무슨 일로 다시 왔냐는 듯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그녀를 보며, 잴 것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섰다.
“원래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음이 좀 바뀌어서요. 추가로 받은 돈도 있으니, 이번 공략 좀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공략을요?”
그에 다짜고짜 공략을 돕겠다는 하준을 보며,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를 흘긴 아이리는.
조금 전 그가 타고 있던 스쿠터를 슥 살피고선,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배달기사, 아니셨나요?”
“맞아요.”
곧 내뱉은 물음에 당당하게 돌아온 답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눈으로 하준을 올려다보며, 무슨 꿍꿍이인가 잘근잘근 입술을 저몄다.
“저기요! 배달 끝나고 50억이나 더 받아먹었으면 됐지. 그 스쿠터로 공략을 대체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이번엔 또 뭘로 얼마나 뜯어먹으려고…….”
슥-
이후.
옆에서 가만히 통역을 해주다 울컥 화를 내는 레이코를 말리며 앞으로 나선 아이리는.
제법 진중한 그의 눈빛을 보고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뭔지는 몰라도 도와주겠다는 이야기가 마냥 거짓말 같지는 않았으니까.
“일단 얘기나 한번 들어보죠. 어떻게 저희를 도와주시겠다는 건가요?”
“글쎄요. 우선.”
곧 진정한 듯 다시 시작되는 통역에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방금 레이코가 낸 짜증으로 인해 제 쪽에 쏠린 시선들을 흘기며, 천천히 천막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여우들부터 한번 찾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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