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28)
신들의 배달기사(128)
-이어서 어제 오후, 일본의 초대형 길드 중 하나인 우로보로스의 여우 숲 던전 공략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로써 우로보로스는 단숨에 전 세계 19위에서 5위 길드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국내의 길드들 또한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늦은 아침.
일본에서의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뒹굴뒹굴 휴식을 만끽하던 하준은.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우로보로스의 소식을 보며, 잘됐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어떻게, 끝까지 잘 마무리된 모양이구만.”
아이리를 비롯한 우로보로스의 헌터들이 공터에서 꼬리 적은 여우들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나가는 동안, 실상 저 혼자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지도 벌써 나흘째.
약속한 보상을 받으러 간 날, 혹시 몰라 저에 대해선 입단속을 부탁했던 그는.
함께했던 길드원들 입에 지퍼를 잘 채운 것인지, 외부인에 관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는 기사를 보며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쪽 입장에서도 굳이 다른 헌터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서 좋을 건 없을 테니.
알아서 다 처리해 놓은 거겠지.
뭐.
애당초 흔적이든 뭐든 따로 건들 필요도 없이, 그날 던전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져버렸을 테지만 말이다.
“보상도,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걸 가져다줬고.”
나지막이 읊조림과 함께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하준은.
슈트와 함께 문 앞에 걸어놓은 보상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사슬 갑옷이라.”
도금인지 뭔지, 황금빛으로 은은히 반짝이는 사슬 갑옷.
본디 ‘영원’을 통해 부탁받은 보급에 대한 보수와는 별개로, 백면금모구미호를 처치해 대신 던전을 공략해준 것에 대한 값으로 지불받은 신기.
“처음엔 웬 장식품을 들고 왔나 했었는데.”
겉보기에 너무 화려한 그 자태에, 당연히 금으로 조각한 장식품 정도 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는.
이후 놀란 눈으로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아이리에게 연거푸 진품이냐 묻던 루시오의 모습을 떠올렸다.
“켈트 신화의 바다의 신, 요정왕 마나난 맥 리르의 황금 사슬 갑옷이라.”
그 어떤 공격에도 절대 파괴되지 않는 갑옷이라 했던가.
물론 모든 것을 꿰뚫는 창이니, 무엇이든 막는 방패니.
여러 신화 간에 워낙 서로 얘기가 모순되는 신기들이 많아서, 루시오 또한 정말 그 어떤 공격도 버텨낼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지만.
적어도 ‘마나난 맥 리르’라는 신이 가지는 이름값을 생각해보면 마냥 허언은 아닐 거라는 모양이었다.
‘그 우로보로스가 자신 있게 여우 숲 공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실상 이 갑옷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지.’
뿐만 아니라 우로보로스 자체에서도 시험해보길, 적어도 길드장 아이리의 공격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히 막아냈다고 했던가.
저야 웬 부적 같은 걸 꺼내 들어서 여우들이 날리는 불덩이를 쉬이 막아내는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썩어도 랭커라고, 그만한 헌터가 전력을 다한 공격을 흠집 하나 없이 막아냈다는데 가짜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여자, 언뜻 얼빵해 보이던 얼굴과는 달리 무려 랭킹 8위에 달하는 거물이었으니까.
“뭐,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올라가 보면 알겠지. 어차피 이것 때문에라도 조만간 한번 들를 생각이었으니까.”
최소한 최상위 랭커급의 전력을 무난히 막아낼 수 있는 성능의 갑옷.
그것만 해도 충분한 보상이 됐으리라 생각한 하준은.
나머지는 전문가에게 가서 알아보기로 하며, 한 손에 낀 반지를 슥 훑었다.
“흐아암. 하준, 거기서 뭐 합니깟?”
“뭐 하긴, TV 보지.”
그렇게 소파 위에 누워 멍하니 손가락을 바라보던 그는.
곧 잠에서 깬 듯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거실로 나오는 루시오를 보고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TV……. 오늘도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입니깟?”
그리곤 자연스레 제 옆에 앉아 리모컨을 잡는 녀석을 흘긴 하준은.
휙휙 채널을 돌리며 볼만한 예능을 찾는 님프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어제 돌아와서 하루 푹 쉬었으니까, 오늘은 슬슬 움직여보려고.”
“벌써 말입니깟? 아! 혹시 저거 때문에 그러는 겁니깟?”
“응.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처럼 여유 있을 때 가서 알아봐야지. 또 이것도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껏 악마까지 잡고 얻은 보상인데, 계속 몰라서 못 쓰고 있기는 좀 아깝잖냐.”
루시오의 물음에 톡톡 손에 낀 반지를 가리키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곤 곧장 TV를 끄고 움직이는 녀석을 보며, 어색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점심은 먹고 갈 거라 그렇게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는데.
쿵-
“준비 다 된 겁니닷! 어서 출발하는 것입니닷!”
잠시 뒤.
후다닥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거실로 나온 루시오를 마주한 하준은.
자기도 내심 궁금했는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갑옷과 반지를 살피는 녀석을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밥이야 뭐, 조금 늦게 먹어도 상관없겠지.
“좋아. 그럼 올라가 볼까?”
* * *
컴컴한 하늘 아래 쩍쩍 갈라진 대지.
그 틈새로 시퍼런 유황불이 마치 뱀처럼 날름거리는 지옥 한가운데.
헐벗은 상체 곳곳에 푸른 비늘이 돋아 있는 파란 머리의 미남자는, 제법 심기 불편한 눈빛으로 제 앞에 앉은 상대를 흘겼다.
“설마 그 콧대 높은 질투께서 이렇게 먼저 나를 찾아오실 줄이야. 이거, 내일은 태양이 서쪽에서 뜨려나 본데?”
안대와 재갈로 눈과 입을 막은 채 바닥에 엎드린 덩치를 의자처럼 깔고 앉아,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마주한 여인은.
언뜻 비웃음처럼 보이는 미소를 슥 날리며, 다리를 꼰 채 조용히 일그러진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베파르가 당했다. 아주 흔적도 없이 타버렸더군.”
사방에서 풍겨오는 역겨운 살 내음에 눈살을 찌푸린 남자는.
차오르는 모멸감에 주먹을 꾹 쥐며, 애써 분노를 눌러 담고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베파르가? 흐응, 의외네. 애가 쓸데없이 조심스럽기는 해도, 그렇게 멍청한 아이는 아니었는데. 보기보다 북유럽 쪽 대처가 빨랐던 모양이네?”
그에 조금은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린 여자는.
곧 있을 전면전에 앞서 하나라도 아쉬운 전력에 입맛을 다시며,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몬스터나 눈앞의 남자가 기르는 촉수 같은, 얼마든지 대신할 존재가 있는 소모품들이 아닌.
진짜배기 악마가 죽었다라.
“인간이다.”
“응?”
“헤임달, 그 피리쟁이가 비프로스트를 떠나기도 전에 이미 신호가 끊겼더군. 베파르를 죽인 건 아마 인간이다.”
“……인간?”
곧 이은 말에 멍하니 눈을 끔뻑인 그녀는.
제가 무얼 잘못 들은 거냐는 듯 남자를 흘기다, 이내 헛웃음을 픽 터트리며 지그시 눈을 좁혔다.
“인간, 인간이라. 설마, 그쪽이 저번 회의 때 말했던 그 별종 말이야?”
그리곤 문득 지난 회의 때 원탁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한 여자는.
헤라클레스나 이아손 같은 대단한 영웅도 아닌 것이, 그 라비린토스의 악몽을 잡았다던 사실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래. 그리스의 새 영웅이 요르문간드의 이변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아마 그럴 거다.”
“흐응…… 그리스의 새 영웅이라. 한낱 인간이 악마를 죽였단 말이지. 그것도 요르문간드의 배 속에서, 그 베파르를.”
인간이 악마를 잡았다.
아무리 저와 같은 칠죄종에 자리한 남자의 말이라 한들, 통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말끝을 늘인 그녀는.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고 손 놓고 있기엔 꽤 골치 아픈 상황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짚었다.
“그거, 확실한 거야?”
“아니었으면 내가 굳이 널 찾아올 필요가 있었을까?”
“으음…….”
진지한 대답에 더욱 표정을 굳힌 여자는.
남은 여섯 중에 하필이면 자신을 찾은 남자를 슥 노려보며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설화 속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미노타우로스를 잡았다.
이것만 해도 그가 다른 칠죄종들을 불러 모아 얘기를 꺼냈을 만한데, 악마라면 또 어떨까.
그녀는 어쩌면 그간 저들이 준비해온 대계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지도 모를 만큼 심각한 이야기에 한숨을 푹 내쉬며, 답답함에 허리를 쭉 젖혔다.
수천, 수만 년 전.
저들을 이 척박한 땅으로 몰아 가두어놓은 성좌들의 감시를 피해, 그 복수를 위한 초석으로 세상에 게이트를 올려 보낸 지가 이제 고작 근 20년.
그로 인해 설화와 실화의 경계가 무너지며, 성좌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긴 했지만.
오랜 기간 이 일을 준비해온 저들과는 달리, 고작 인간들에게 힘을 조금 나누어줄 수 있는 게 전부이니만큼.
그쯤이야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건만.
그게 평범했던 인간이 악마를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야 얘기가 달랐다.
당장은 눈앞의 질투가 말한 그 이레귤러 한 명이 전부일지 몰라도.
이미 사례가 하나 이렇게 튀어나왔다면, 또 어디서 악마와 대적할 수 있을 법한 인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바라는 게 뭘까? 우리 질투께서는.”
결국 고민 끝에 돌아온 답에 씨익 미소 지은 남자는.
예상대로 다른 칠죄종들과는 달리 말이 잘 통하는 그녀를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네 인과율.”
“뭐? 아무리 이번에 베파르를 보내느라 많이 소모했을지라도, 여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인과율은 꽤 남아 있을……. 너, 설마?”
이후 터무니없는 요구를 듣고선 어이가 없다는 듯 정색하며 말을 잇던 여자는.
이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진심이냐는 듯 그를 살폈다.
“그래. 싹은 밟을 수 있을 때 확실히 밟아놔야지.”
그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결의에 찬 얼굴로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더 크기 전에.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인제 와서 대계를 무를 순 없었다.
설령 제가 다른 녀석들보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