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3)
신들의 배달기사(13)
“흐흐흐. 난 이제 부자다.”
비좁은 자취방.
만년한철의 배달을 끝내고 올림포스에서 내려온 하준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포인트를 보고선 헤실헤실 미소를 지었다.
5만 포인트.
배달 한 번에 5억.
물론 곡괭이 값으로 5,000포인트가 들어간 데다가, 직접 던전에 들어가서 광석을 캐오는 수고를 더하긴 했지만.
어지간한 헌터들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데, B급이 일 년에 30억 남짓한 돈을 벌어간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하루에 4억 5천이면 썩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무력하게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인데.’
어제야 어떻게 잘 빠져나오긴 했지만, 다음에도 이리 무사하리란 법은 없었다.
아무리 본인이 조심한다 한들, 언제 어디서 그 골렘과 같은 변수가 생길지 몰랐으니까.
‘상점에 쓸 만한 게 좀 있으려나.’
이내 짧은 고민을 마친 하준은, 포인트 상점을 열어 괜찮은 물건이 있나 목록을 쭉 훑었다.
이젠 뭘 사고 싶어도 살 수 있는 게 없었던 이전과 달리, 꽤 포인트가 쌓여 중간중간 구매 가능한 품목들이 여럿 있었으니까.
[포인트 상점]-칠지도 레플리카[100,000p]
-여의봉 레플리카[500,000p]
-묠니르 레플리카[1,000,000p]
-묠니르[1,000,000,000p]
“…망할. 하나 같이 더럽게 비싸네. 아니, 제일 싼 게 10억이라고?”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다 장비들이 모여 있는 곳을 살피던 하준은, 못해도 10만 포인트부터 시작하는 물건들을 보고선 눈살을 찡그렸다.
이번에 죽을 둥 살 둥 만년한철을 배달해서 벌어들인 포인트가 5만인데.
원본도 아니고 몇 번 휘두르면 사라지는 짝퉁이 10만이라니.
이건 뭐,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은가.
“역시 싸우는 건 그냥 포기해야 하나? 에휴, 하긴. 내가 무슨 진짜 헌터도 아니고, 비싼 포인트 들여서 좋은 무기를 구해봤자 어차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 텐데. 괜히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응?”
그렇게 살인적인 가격에 이만 상점을 닫으려던 찰나.
하준은 문득 시야에 들어온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보고선 흠칫 손을 멈췄다.
-라이딩 슈트[50,000p]
“뭐야, 장비는 그게 다였나? 아닌데, 아래에 더 있는데?”
묠니르나 엑스칼리버 같은 것들이 모여 있는 구간에서, 홀로 위화감을 뿜어내고 있는 요상한 품목이 하나.
“거참 희한하네. 그러고 보니 위에 스쿠터도 있었던 거 같은데. 이런 게 왜 여기 끼어있는 거람.”
하준은 의아함에 두 눈을 꿈뻑이며, 슬며시 ‘라이딩 슈트’라 적힌 글자 위로 손가락을 옮겼다.
[라이딩 슈트][1단계]-더욱 신속하고 안전한 배달을 위해 고안된 라이딩 슈트. 어떤 험난한 지역도 위험한 장애물도, 이 슈트만 있으면 만사 OK!
-하루에 일정 시간, 착용자의 신체 능력과 기술을 단계에 따라 대폭 상승시켜준다.
[다음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포인트 | 100,000p](남은 일일 사용시간 : 3분)
“어?”
이윽고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하준은 놀란 듯 몇 번이고 설명을 읽어내렸다.
“아니, 이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알려줬어야지!”
신체 능력과 기술을 대폭 상승시켜준다니.
비록 3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회용이 아닌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직접 써봐야 알겠지만…’
퀴네에나 곡괭이도 성능 하니만큼은 확실했던 걸 생각해보면, 적어도 아주 엉망은 아닐 터.
게다가 따로 포인트가 더 들긴 해도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걸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쓸만한 장비가 될 게 분명했다.
“…5만 포인트.”
그나마 장비 중에선 가장 저렴하긴 해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
“그래, 이건 투자야. 앞으로 던전 원투데이 다닐 것도 아니고. 까짓거 더 벌어서 채우면 그만이지!”
떨리는 손으로 구매 버튼을 찾은 하준은, 굳은 마음으로 쿨하게 라이딩 슈트의 결제를 마쳤다.
헌터들도 몇천만 원, 수억씩 하는 장비값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띠링-
[잔여 포인트 : 25,300p]“후. 저질렀다.”
툭-
이후 단번에 절반이 넘게 줄어버린 포인트와 함께, 허공에서 떨어진 라이딩 슈트를 보며.
하준은 곧장 옷을 갈아입곤 밖으로 나섰다.
“그럼 어디, 한 번 시험해볼까?”
* * *
“…미치겠네. 이걸 대체 무슨 수로 찾는대냐.”
어두컴컴한 저녁.
길드장의 부탁에 쉬지도 못하고 예의 스쿠터를 찾으러 나온 도윤은, 막막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한민국에 스쿠터가 뭐 한둘도 아니고. 좀 특이한 기종이면 또 몰라, 그냥 평범하게 배달할 것처럼 생겼더구만.”
번호판이든 뭐든 다른 단서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아도 갱도를 막 빠져나왔을 적에, 근처에 모여 있던 헌터들한테 혹시 스쿠터 하나 나오는 거 못 봤냐고 물어도 봤었지만.
모두 안쓰러운 눈빛으로 머리라도 다치셨냐고 되물을 뿐, 타르타로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목격자는 물론 추격해볼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번호판이라도 유심히 살펴보는 거였는데.
뒤에서 바닥을 쿵쿵 울리며 쫓아오는 골렘 때문에, 그럴 생각조차 못 했던 게 천추의 한이었다.
“그나마 부길드장님이 저번에 봤다고 했던 편의점으로 오긴 했는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얘기였을 뿐.
이미 블랙박스로 헬멧 색깔부터가 다르다는 걸 확인한지 오래였다.
그래도 모르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 노량진에 도착하긴 했지만 말이다.
“에휴, 그럼 그렇지. 일이 뭐 마냥 쉽게 풀릴 리가 있나. 그냥 대충 바람이나 쐬다… 앗!”
부릉-
홀로 푸념도 잠시.
편의점 앞에 앉아 적당히 주변을 둘러보던 도윤은, 순간 눈앞을 스치는 익숙한 모양의 헬멧을 보고선 놀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저, 저, 저거!”
금방 지나쳐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틀림없었다.
오늘 낮에 갱도에서, 그리고 일전에 타르타로스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가 분명했다.
부릉-
곧바로 갓길에 대놓은 차에 올라탄 그는, 벌써 저 멀리 떨어진 스쿠터를 보며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저기요! 저기 잠깐만… 젠장!”
허나 머잖아 혼자서 신호에 걸려버린 도윤은, 그사이 놓쳐버린 그를 보고선 아쉬움에 입술을 꾹 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리지 말고 계속 차 안에 있는 거였는데.
‘하는 수 없나. 이렇게 된 이상 편의점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안타까운 눈빛으로 스쿠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도윤은 결국 추격을 포기하고 핸들을 돌렸다.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몰라도, 배달이든 뭐든 용무가 끝나면 언젠간 다시 편의점 앞을 지나칠 터였으니까.
“…어?”
그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던 중.
그는 백미러를 통해 무언가 무리 지어 날아오르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곤, 나지막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거. 새야?”
무슨 지진이라도 난 것도 아닌데, 한밤중에 새들이 우수수 산을 떠나고 있었다.
‘근데 저 방향은… 설마!’
끼이익-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도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재차 방향을 틀었다.
방금 새들이 날아오른 저 자리.
저 자리는 분명, 조금 전에 제가 놓쳤던 스쿠터가 사라진 방향이었으니까.
‘어차피 블랙박스에 번호판도 찍혔을 테니까, 놓치면 그걸로 천천히 찾아봐도 되겠지. 어쨌든 노량진 쪽에 사는 건 확실해졌으니.’
설상 오늘 잡지 못하더라도, 번호판만 알면 언제든 특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산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이번에 놓치면 영영 알 수 없게 될 터였다.
“용마산. 여긴가?”
금세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그는, 우선 주차장에서 내려 위로 올라가기 전에 슬그머니 주변을 훑었다.
던전도 스쿠터를 타고 그대로 들어왔던 사람이 산이라고 내려서 걸어 올라갔겠느냐마는,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역시 없나? 그럼 그렇지. 아니면 중간에 길이 엇갈렸을지도… 음?”
이윽고 근처를 쭉 둘러보곤 스쿠터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등산로를 막 오르려는 그때.
도윤은 위에서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급하게 내려오는 등산객 무리를 보고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깜짝 놀랐다니까? 이러다…”
“저기, 죄송한데 위에 무슨 일 있었나요?”
“응? 어머! 총각, 지금 올라가려고? 가능하면 오늘은 그러지 말어. 아까 위에서 꽝! 하더니,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땅이 막 흔들리는 거 있지? 지금 다들 불안해서 내려오고 있는 거야.”
“…그래요?”
산사태.
어쩌면 자신이 쫓는 남자와 관련이 있는 걸까.
아주머니의 말에 눈을 빛낸 도윤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눈을 빛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총각, 얼굴이 좀 익숙한데. 혹시 연예인…”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총각? 총각!”
곧 모자를 꾹 눌러쓰고 등산객들을 지나쳐 뛰어 올라간 그는, 중간중간 사람들한테 소리가 들렸다던 방향을 물으며 위치를 찾았다.
“어디 보자, 얘기대로라면 아마 이쯤…”
그런 식으로 산길을 오르길 한 시간 남짓.
어느덧 등산로에서 꽤 떨어져 우거진 나무들을 헤치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헤매던 도윤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곤 말없이 자리에 멈춰 섰다.
“와.”
바위.
못해도 5m는 넘을 거대한 바위 앞에 선 그는, 그 가운데 뻥 뚫려 있는 구멍을 보고선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렸다.
거의 1m는 되어 보이는 직경도 직경이었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정교함이었다.
중간에 이만한 구멍이 났는데도, 정확히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금은커녕 자그마한 흠집조차 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이런…”
좀 커다랗긴 해도, 이 정도 바위를 부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신체강화나 자신 같은 무술 계열의 헌터라면 B급만 돼도 손쉽게 산산조각 낼 수 있었으니까.
“…잡아야 해.”
허나 이리도 정교하게 원하는 부분만 파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묘기. 아니, 가히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꿀꺽-
구멍 사이로 훤히 비치는 새카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도윤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경외심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라면 이렇게 부술 수 있었을까.
비록 말석이긴 하나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음에도, 흉내 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도, 우리 쪽으로 데려와야 해.”
대체 어디서 갑자기 이런 괴물이 떨어졌을까.
길드장이 옳았다.
어떻게든 그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영입해야만 했다.
이 정도 실력자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타르타로스의 공략도, ‘영원’이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더 이상 꿈이 아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