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35)
신들의 배달기사(135)
“호오, 신기하군. 이렇게 한순간에 내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다니. 도깨비감투인가? 귀게스의 반지? 아니지. 기척도 희미한 걸 보니 그 명계의 왕이 가진 투구로군.”
요르문간드의 사체, 그 배 속.
그간 대계를 위해 북유럽 신화 전역에 쌓아왔던 영향력을 사용해 덫을 파고 기다린 남자는.
예상대로 수르트의 팔찌를 회수하기 위하여 보기 좋게 걸려든 인간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무스펠헤임의 왕이라면 요르문간드가 죽었을 때 필히 제 팔찌를 찾으려 들 것이고.
그 사체를 북유럽이 아닌 지상으로 옮겨 놓는다면 성좌들이 직접 수거하러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필히 심부름꾼을 고용해 되찾으려 할 터.
덕분에 아스가르드에 심어놓은 간자는 이 이상 활동하기 어려워졌겠지만, 이로써 눈엣가시 같던 녀석을 제거할 수 있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대계를 이행하는 데 있어선 나쁘지 않은 쓰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설령 제가 가진 가장 강한 패를 하나 잃게 됐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불확실한 변수를 제거하는 편이 더 안정적이었으니까.
“하준, 상대가 저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가 바로 기회인 겁니닷.”
“응. 근데, 이걸 어떻게 빠져나가지?”
가만히 흥미로운 눈빛으로 저들이 사라진 자리를 살피는 상대를 보며 넌지시 눈치를 보내는 루시오에, 가만히 머리를 주억인 하준은.
어떻게 일단 퀴네에로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닥에서 자라난 수정으로 인해 꽉 막힌 입구를 흘기며,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아! 혹시 상점에 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없습니깟?”
“상점? 으음.”
이어진 답에 곰곰이 고민에 빠진 하준은.
일단 녀석의 말대로 시야 한구석에 상점을 쭉 펼치며, 저 무지막지한 괴물로부터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아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그래도 지금 포인트가 400만이 넘게 있는데.
어딘가 하나쯤은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시켜줄 신기가…….
“아!”
“찾았습니깟?”
그렇게 스크롤을 쭉쭉 내리며, 저 단단한 수정을 깨부수는 데 써먹을 만한 물건을 찾아 열심히 눈알을 굴리기도 잠시.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한 신기에 우뚝 손가락을 멈춘 그는.
이내 몸소 그 효과마저 이미 체험해본 적 있는 신기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수정도 광석이니까, 그거라면 아마 확실하게 치울 수 있을 거야.”
-캐내는 자의 곡괭이[5,000p] [캐내는 자의 곡괭이]
-살아생전 무엇이든 캐내지 못한 게 없었던, 위대한 도굴왕의 곡괭이.
-그 어떤 무덤이든 광물이든, 딱 한 번 반드시 캘 수 있게 도와준다.
(남은 사용 횟수: 1)
툭-
아직 제가 이 신기한 능력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 헤파이스토스의 부탁으로 서리 갱도를 찾아 만년한철을 캐는 데 써먹었던 ‘캐내는 자의 곡괭이’.
그 거대한 골렘의 머리에 박혀 있는 거대한 광석을 단 한 번에 쏙 빠지게 만들어줬던 훌륭한 성능의 곡괭이를 기억한 하준은.
곧장 망설임 없이 녀석을 구입하곤, 허공에서 뚝 떨어진 곡괭이를 잽싸게 손에 쥐었다.
“좋아. 이제 이걸로 수정을 치우기만 하면…….”
“하준! 조심하는 겁니닷!”
“응? 흐, 흐어어억!”
쐐애액-
이윽고 간만에 쥐어보는 묵직한 느낌에, 슬그머니 막힌 입구를 흘기며 발길을 옮기려던 찰나.
갑자기 제 소매를 확 잡아끄는 루시오에 고개를 돌린 그는.
저 멀리서 저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오는 날카로운 광석을 발견하곤, 황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다.
카챵-!
쩌저적-
“무, 무슨……. 어떻게 안 거지?”
그리곤 뒤에 입구를 가로막던 수정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 흩어지는 광석을 바라본 하준은.
뒤이어 바닥에 흩뿌려진 파편에서 꽃처럼 피어 바닥을 찢고 자라나는 수정을 보고선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잘못해서 파편 하나라도 튀었다간 뼈도 못 추리겠는데.
그런데 도대체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지?
분명 아직 퀴네에를 켠 지 1분도 안 됐을 텐데.
“당황하지 마는 겁니닷, 하준! 아무리 칠죄종이라도 신기의 능력을 무시할 순 없는 겁니닷!”
하나 당황도 잠시.
루시오의 외침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하준은.
여태껏 몇 번이고 제 목숨을 살려준 퀴네에의 효과를 믿으며,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래.
그 베파르는 물론 전설 속의 대괴수 히드라도 감히 눈치채지 못했는데.
제아무리 칠죄종이라 한들 어쩔 수 있을 리가.
게다가 애당초 보였으면 처음부터 우리가 사라지는 걸 보고 그리 놀라지도 않았겠지.
“……설마, 아까 곡괭이 때문인가?”
이후 그나마 위치를 들켰으리라 짐작이 가는 부분을 떠올리며 손잡이를 꾹 쥔 그는.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또 날아올지 모를 공격에 멀어진 자리를 훑으며, 조용히 침음을 내뱉었다.
조심조심.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이목을 끌고 다시 가서 수정을 부수면…….
“……어?”
그렇게 금방 마음을 다잡고서, 다시금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위해 반대편으로 반지 낀 손을 들어 올리던 찰나.
천천히 옆으로 손을 옮기는 상대를 마주한 하준은.
자연스레 저들 앞으로 쫙 펼쳐진 손바닥을 보고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쐐액-
“루시오!”
“……엣?”
콰앙-!
쩌저적-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저들을 향해 쏘아진 공격에 넋을 잃은 루시오를 데리고서 황급히 몸을 숙인 그는.
아슬아슬하게 제 머리를 스치고 벽에 박혀 수정을 꽃 피우는 광석을 보고선,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이거, 아무래도 우연이 아닌 거 같은데.”
광석이 날아온 높이로 봤을 때.
명백하게 루시오를 노리고 쏘아진 일격.
어쩌면 조금 전 곡괭이와는 상관없이, 정말로 따로 저들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하준은.
그 불길한 상상을 뒷받침하듯, 또 저들이 있는 곳을 향해 슬슬 옮겨오는 손을 보고선 이를 악물었다.
“……뛰어!”
쐐액-!
곧 녀석의 손바닥 앞에 시퍼렇게 모여드는 무언가를 마주한 그는.
조금 전 퀴네에의 성능에 대해 호언장담하던 때와는 달리 당황한 얼굴로 여전히 벙쪄 있는 루시오를 깨우곤, 빠르게 옆으로 내달렸다.
콰앙-! 쾅-!
“제기랄, 도대체 뭐가 문제지? 진짜 그냥 보이는 건가?”
이제는 아예 머뭇거릴 틈도 없이 연달아 날아오기 시작하는 광석에, 슈트의 능력까지 사용하며 루시오를 데리고 튄 하준은.
통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제에 입술을 저미며,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수정으로 인해 좁아져가는 공동을 보고선 난감한 듯 주먹을 꾹 쥐었다.
‘이래서야 도망은커녕 입구에 수정이 더…….’
쩌억-!
“컥!”
“하, 하준!”
잠시 뒤.
기어코 아슬아슬하게 피한 광석에서 자라난 수정에 얻어맞아 고꾸라진 그는.
순간 턱 막힌 숨에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하준! 괜찮습니깟!”
“스읍……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러건 말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광석에, 욱신거리는 등을 털곤 다시금 다리를 움직인 하준은.
혹시 몰라 슈트 안쪽에 받쳐 입은 마나난 맥 리르의 황금 사슬 갑옷 덕에 무사한 몸뚱이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이게 없었더라면 지금쯤…….
“……하준, 이제 됐으니깟, 루시오를 놓는 겁니닷.”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도 이렇게 아슬아슬한데, 그러다 만약 저 녀석이 널 노리면 혼자서 어떻게 도망치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에 부르르 몸을 떨며, 쏘아져 오는 광석에 더욱 집중해서 공격을 피하길 잠시.
무언가 결심한 듯 결의에 찬 루시오의 목소리에 지그시 눈살을 찌푸린 그는.
슈트의 효과를 받아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자신조차 여전히 아슬아슬한 광석들을 보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속 루시오를 노린 겁니닷.”
“허, 참. 그걸 어떻게…….”
“확실한 겁니닷! 그야 루시오는 지금 하준이랑 달리, 퀴네에의 효과를 80%밖에 받지 못하고 있으니깟! 계속 어렴풋이 위치를 들키고 있는 것입니닷!”
이어진 외침에 일순 말문이 막힌 하준은.
그간 루시오조차 그 누구에게도 들킨 적이 없었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렇게 말했었지.
다행히 여태까진 그 신기의 성능의 8할만 내는 것만으로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이번처럼 상대가 저런 거물이라면 그 2할의 차이만으로도 이렇게 기척을 잡아낸다 한들, 사실상 크게 놀라울 게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놓는 겁니닷. 그리고 루시오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볼 테니깟, 그동안 하준이라도…….”
텁-
이윽고 자꾸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내뱉는 루시오에, 손바닥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은 그는.
이걸로 알게 된 문제점에 재빨리 상점을 뒤적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시간은 무슨. 야 인마, 네가 그런다고 저거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5초? 10초?”
툭-
그리곤 언젠가 이럴 날이 올 줄 알고 대충 스크롤의 위치까지 기억해놓은 신기를 찾아, 곧장 구매를 마친 하준은.
허공에서 훅 떨어지는 물건을 확 낚아채 루시오에게 건네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쓰잘머리 없는 소리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둘 다 살 수 있을지, 쓸 만한 신기나 한번 생각해봐.”
“하준…….”
퀴네에 레플리카.
하준의 말에 그렁그렁한 눈가를 슥슥 닦으며, 투구를 뒤집어쓴 루시오는.
곧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며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참고로 그거 이제 재고 없다!”
그렇게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님프를 놓아준 하준은.
그래도 제 눈에는 반투명하게 어렴풋이 비치는 녀석을 바라보며, 이제 기척을 잡을 수 없는지 우뚝 멈춘 공격을 보고선.
혹시 몰라 아직 닫지 않은 상점을 슥 둘러보았다.
“좋아. 그럼 그동안 나는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한번 부딪쳐볼까?”
루시오가 답을 내는 동안.
저 칠죄종이 가만히 기다려주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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