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36)
신들의 배달기사(136)
“으음, 사라졌나.”
공동 중앙.
그간 어렴풋이 느껴지는 조그마한 기척을 쫓아 광석을 쏘아내던 남자는.
어느 순간 이 공동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기척을 보며, 조금은 난감한 얼굴로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과연, 이러니 베파르가 당할 만도 해.”
아무리 제가 무리해서 지옥을 떠나 올라온 탓에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리도 쉬이 제 기감을 벗어나 버리다니.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나마 계속 피하던 놈들을 떠올린 그는.
이제 보다 더 잡기가 까다로워진 상대를 보며, 답답함에 쯧 하고 혀를 찼다.
‘곤란하군. 시간이 그리 여유롭진 않은데 말이야.’
본디 빠르게 녀석을 제거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남자는.
예정보다 길어지는 싸움에 입술을 저미며 텅 빈 공동을 쭉 훑었다.
제아무리 여태 대업을 위해 쌓아온 인과율과 북유럽에 심어놓았던 장기짝들을 소모해 이곳으로 넘어왔다 한들, 원래대로라면 자신은 함부로 지옥을 벗어나 있을 수 없는 존재.
비록 그 대가로 이미 한참이나 약해져 있는 상태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제가 지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에게 걸린 제약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제가 지옥에서 오래 벗어나 있는 만큼 그 가증스러운 성좌들도 점점 더 인과율에서 자유로워지고 말 터였으니까.
동시에 지금 자신이 이곳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도 들키고 말 테고.
“……별수 없나. 조금 무리해서라도 다 날려버리는 수밖에.”
고민도 잠시.
지금도 조금씩 흐르는 시간에 금세 결단을 내린 그는.
이 이상 소란이 커졌다간 금방 성좌들에게 들킬 것을 각오하곤, 가능한 한 억눌러 온 힘을 끌어 올렸다.
어차피 수정으로 입구도 막혔겠다, 공동 어디에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이 근처 일대를 다 쓸어버리면 그만인 데다가.
설령 들키더라도 어서 정리하고 돌아가면 끝이었으니까.
쿠구구구-
그사이.
빠르게 상점을 둘러보며 쓸 만한 신기를 찾던 하준은.
가운데서 무얼 준비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는 공동을 보며 불길한 얼굴로 중앙을 흘겼다.
“저 녀석, 뭘 하려는 거지?”
퀴네에의 효과로 저와 루시오 모두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녀석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손바닥 위로 서서히 커다랗게 뭉치고 있는 시퍼런 무언가를 보자니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막아야 할 거 같은데.”
이윽고 어딘가 불안한 눈빛으로 놈과 루시오를 살핀 그는.
이제 2분도 채 남지 않은 슈트의 지속 시간을 보며 초조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녀석이 지금 무엇을 노리고 있든 간에, 당장 그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차피 슈트의 능력이 다하면 뭐가 날아오든 공격을 피할 수 없는 몸.
최대한 그 전에 승부를 봐야만 했으니까.
스르륵-
그렇게 주르륵 스크롤을 내리던 하준은.
저마다 이름도 거창해 보이는 신기들 사이, 그나마 확실하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만한 녀석을 보고선 홀린 듯이 그리로 손가락을 옮겼다.
-바이던트 레플리카[3,000,000p]
-트라이던트 레플리카[5,000,000p]
-아스트라페 레플리카[3,000,000p] [아스트라페 레플리카]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다루는 번개. 그 레플리카. 번개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가공할 만한 위력을 자랑하나, 동시에 쥐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를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만큼 다루기 위험한 무기이다.
(남은 사용 횟수: 1)
아스트라페.
상점에 있는 신기들 중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최대의 위력을 낼 수 있는 물건을 클릭한 그는.
이전에 그 거대한 크라켄조차 단번에 숯덩이로 만들어버렸던 이 번개의 위력을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녀석을 구매했다.
띠링-
[잔여 포인트: 1,659,700p]순식간에 2/3가량이 쭉 빠져나간 포인트를 보자니 마음이 좀 아팠지만.
언제 슈트의 효과가 다할지 모르는 지금, 바보처럼 아끼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루시오에게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신기를 떠올려 달라 얘길 해놓긴 했지만, 그것도 언제 답이 돌아올지.
그리고 정말 무슨 방법이 있을지는 모를 노릇이었으니까.
파직- 파지직-
“후.”
곧 요란하게 튀는 스파크와 함께 허공에 모여든 번개를 쥔 하준은.
혹시나 휘말릴까, 제 근처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며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는 루시오를 향해 뒤로 빠지라 손짓하곤.
이제는 시퍼런 기운을 넘실거리며 공동 중앙을 훤히 밝히고 있는 상대를 향해, 서서히 팔을 뒤로 젖혔다.
“음? 갑자기 웬 빛이……. 뭣?”
동시에 옆에서 번쩍이는 빛에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린 칠죄종은.
단순히 주변을 밝히는 용도라기엔 불길한 소리와 함께 툭툭 끊기듯 점멸하며 압도적인 광량을 뽐내는 녀석을 보고선, 흠칫 몸을 떨었다.
“설마 그 난봉꾼의……. 아니, 하지만 어떻게 성좌도 영웅도 아닌 인간이 그걸!”
얼마 전.
아틀란티스에서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른 크라켄의 사체를 떠올린 남자는.
도대체 무엇에 당했는지는 몰라도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던 모습을 기억하며, 통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발광하는 빛을 훑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예상이 맞다면, 저건 감히 한낱 인간 따위가 부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아스트라페’.
수많은 신화, 수많은 성좌들이 소유한 수백 수천 개의 신기들 중에서도 그 위력 하나만으로는 전체에서 수위를 다툰다는 제우스의 번개.
한 번 내리침에 그 거대한 티탄들을 무더기로 쓸어낼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을 갖추긴 했지만, 동시에 그리스 신화 내에서도 그 제우스밖에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신기를.
같은 주신 격인 포세이돈이나 하데스, 하물며 그 영웅 최강 헤라클레스도 아닌 저 평범한 인간이 멀쩡히 다루고 있다니.
“이런 무식한……. 큭!”
파직-
경악도 잠시.
갈수록 거세지는 광량에 지그시 눈살을 찌푸린 그는.
이젠 지척까지 튀겨오는 새하얀 스파크를 슥 흘기곤, 제 손에 넘실거리고 있는 시퍼런 힘의 정수를 바라보았다.
“……이런 빌어먹을!”
콰악-!
뒤이어 짧은 망설임 끝에 바닥에 손을 처박은 남자는.
본디 그 건방진 인간과 님프를 싹 쓸어버리기 위해 끌어모은 일격을, 전부 눈앞에다 쏟아부었다.
“흐읍!”
번쩌억-!
쩌저저적-!
이윽고 그런 녀석을 향해, 한껏 뒤로 뺀 번개를 있는 힘껏 던진 하준은.
일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온 빛에 온통 새하얗게 물든 공동 가운데.
압도적인 에너지에 그저 허공을 가르는 것만으로도 그 근처 일대를 새까맣게 태우던 번개가 놈에게 닿기 직전, 바닥에서 희미하게 솟구쳐 올라오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설마, 아니겠지?’
그리곤 곧 삐- 하고 울리는 이명과 동시에 잦아드는 빛 사이.
아직 침침한 눈을 끔뻑이며, 후폭풍에 얼굴을 가렸던 팔을 슬그머니 내린 그는.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야에 언뜻 비치는 시퍼런 뭔가를 마주하곤, 마치 두꺼운 벽처럼 제 앞을 턱 가로막고 있는 그것에 가만히 눈살을 좁혔다.
“이건…….”
조금 전, 그 칠죄종이 서 있던 자리로부터 일직선으로 쭉 치솟은 거대한 수정.
“……말도 안 돼.”
딱 봐도 번개가 지나간 자리.
가운데가 커다랗게 뻥 뚫려, 무슨 동굴처럼 길게 이어진 구멍을 바라본 하준은.
그 끝에 드문드문 남은 핏자국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너머를 보며,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번개를 막았다고? 그 커다란 크라켄도 한 방에 태워버린 일격을…….”
“하준! 옆에 조심하는 겁니닷!”
“……어?”
쐐액-
그렇게 당황하는 사이.
다급한 외침에 흠칫 옆을 돌아본 그는.
어느새 정확히 제가 있는 자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조그마한 광석을 보고선, 재빨리 바짝 몸을 숙였다.
쩌억-
카챠앙-!
“무, 무슨…….”
“하준! 괜찮습니깟?”
이윽고 아슬아슬하게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녀석에 마른침을 삼킨 하준은.
일단 황급히 들킨 자리를 쭉 벗어나며, 공격이 날아온 쪽을 슥 살폈다.
“허억, 헉……. 빌어먹을. 이 쥐새끼 같은 놈!”
곧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저들을 찾아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는.
반쯤 녹아내려 뻥 뚫린 옆구리에,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상대를 보고선 다행히 한시름 걱정을 덜어놓았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걸 맞고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제기랄. 내가 한낱, 한낱 인간 따위에게!”
아스트라페에 얻어맞기 전.
수정으로 벽을 세워 간신히 직격을 면한 남자는.
끄트머리에 살짝 스쳤을 뿐임에도 제법 커다랗게 뚫려 녹아내린 구멍을 보며, 전신을 내달리는 끔찍한 고통에 부서질 듯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억지로 지옥을 벗어나느라 이렇게까지 약해져 있었을 줄이야!’
제아무리 그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번개라 한들, 본신의 절반.
아니, 반의반만큼의 힘만 낼 수 있었더라도 고작 한 방에 이리 상처 입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그 막대한 열기에 상처가 절로 지져져 버린지라 회복도 잘 안 되는 구멍에 입술을 저민 그는.
점차 흐려지는 시야에 분한 얼굴로 주먹을 꾹 쥐었다.
“……젠장, 이리된 이상 어쩔 수 없나.”
막는다고 막았음에도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처에 잠시 고민에 빠진 남자는.
이내 곧바로 결심을 내리고선 크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지금 이 상태로 지옥으로 도망치려 한들, 또 한 번 아스트라페가 날아오지 말란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여기 남았다간, 결국 계속되는 출혈에 천천히 죽어버리고 말 터.
“이 씹어 죽일 인간 놈.”
꾸욱-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어차피 죽을 거.
소기의 목적을 떠올린 그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주변을 슥 흘기며, 제 손으로 뒷목에 붙은 비늘을 잡아 뜯었다.
촤악-!
“내 기필코 네놈만큼은 저승으로 가는 길동무로 삼아주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