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42)
신들의 배달기사(142)
“흐윽…….”
“틀렸어. 우린 모두 끝이야! 이대로 저 몬스터들한테 다 죽을 거라고!”
피라미드 최상층.
거대한 방, 그 구석에 주르륵 놓인 철창 안.
난데없이 카이로 한가운데 터진 게이트에, 무방비로 몬스터들에게 잡혀 끌려온 관광객과 시민들은.
철창 앞에 저들을 지키고 선 흉흉한 분위기의 미라들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벌벌 몸을 떨었다.
“다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아직 모두 살아 있잖아요! 계속,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꼭 구조대가 올 겁니다!”
개중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한 채로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달랜 남자는.
횃불이 비치는 곳, 저 멀리 왕좌에 올라 저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파라오의 모습을 한 괴물을 보며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괜찮……은 거겠지?
저 몬스터들이 당최 무슨 꿍꿍이로 저를 비롯한 사람들을 이렇게 잡아 가둔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근 하루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구조대? 하! 그런 게 왔으면 진즉 밖에서 무슨 소란이라도 있었겠지. 어디 아무도 안 사는 시골 깡촌, 사막 한가운데서 열린 것도 아니고. 수도 한복판에 떡하니 게이트가 열렸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있겠어? 게다가 애초에 구조대가 와서 어떻게 될 거였으면, 다들 여기까지 끌려오기도 전에 당신 선에서 탈출할 수 있었겠지!”
“그, 그건…….”
하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도 잠시.
제 뒤편에서 들려오는 힐난에 말문이 막힌 그는.
주변 사람들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자꾸만 앓는 소리를 내뱉는 남성의 말에, 차마 반박은 못 하곤 조용히 입술을 저몄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이 또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젠장.”
모하메드 하디드.
이집트에서 제일가는 길드, ‘오시리스’의 길드장이자.
태양신 ‘라’의 선택을 받아, 세계 랭킹에서도 당당히 5위를 차지하고 있는 최정상급 헌터.
조금 전, 그 말을 끝으로 제게서 등을 돌리고 돌아선 남자의 말마따나.
본디 어지간한 수준의 헌터들 수십으로 이루어진 구조대보다 훨씬 더 강한 헌터인 그는.
하필이면 홀로 집에서 편히 쉬고 있던 와중에 휘말려버린 터라, 장비고 뭐고 뭣 하나 걸친 게 없는 제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분한 얼굴로 주먹을 꾹 쥐었다.
“하다못해 무기만 있었어도…….”
그러곤 슬그머니 예의 파라오를 올려다본 하디드는.
처음 이 게이트에 휘말렸을 적의 일을 기억하며 이를 악물었다.
「……네가 아니다.」
마치 손톱으로 쇠를 긁어내리듯 소름 끼치는 목소리.
지금 제 앞을 지키고 선 미라들조차 단숨에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제 불덩이를, 간단히 손짓 한 번으로 무력화시킨 끔찍한 보스.
이후 실망한 듯 저를 부하들 사이로 내팽개치며, 다시 누군가를 찾아 걸음을 옮기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에 주먹을 떨었다.
쿠웅-!
“히익!”
“바, 방금…….”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가만히 허공만 바라보는 보스를 흘기며, 어찌하면 탈출할 수 있을까 기회를 엿보던 찰나.
갑자기 흔들리는 바닥에 흠칫 주변을 살핀 하디드는.
희미하게 아래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소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어어억!
-그억…….
“구, 구조대!”
“구조대가 온 거야! 살았어! 우린 이제 살았다고!”
구조대.
갈수록 선명해지는 소란에 기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사람들을 본 그는.
걱정 반, 기대 반인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밖에서 구조대가 온다 한들, 저 괴물을 상대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길드원들이 제 장비만 잘 가져와 준다면, 여럿이서 어떻게 한번 해볼 만할지도.
끼이이이익-
이윽고 밖에서 열리는 문에 슬쩍 고개를 돌린 하디드는.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히 안으로 들어와 파라오의 앞에 넙죽 엎드리는 미라를 보며 무슨 일인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륵…… 그어억! 그어어어!
매번 짧게 동굴 같은 소리만 내뱉던 다른 놈과는 달리 제법 기다랗게, 그것도 어딘가 확실히 급해 보이는 목소리로 무어라 보고하는 녀석.
모르긴 몰라도 무언가 변수가 생긴 듯한 상황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품던 그는.
직후 저들이 있는 철창을 흘기는 파라오를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설마.
저들을 인질로 잡으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 이쪽으로 왔는가.
하나 우려와 달리 금세 철창으로부터 시선을 거둔 파라오는.
보고를 마친 미라를 다시 밖으로 돌려보내며, 손에 쥔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쿵-
“방금 또 들었어?”
“한데, 이번엔 되게 근처에서 난 거 같은……. 히, 히이익!”
뒤이어 전보다 더 거대해진 울림에, 다들 미라들 눈치를 살피며 수군수군 얘기를 나누던 찰나.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비명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하디드는.
순간 왕좌 옆에서 번뜩이는 시뻘건 네 안광을 보고선, 놀란 듯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저, 저게 무슨…….”
쿠웅-
각기 인간의 몸통에 개와 새의 머리가 달린, 거대한 사이즈의 오래된 석상.
당연히 장식인 줄 알았건만, 난데없이 예를 취하듯 양옆에서 왕좌를 향해 무릎 꿇은 두 석상을 본 그는.
이내 무심히 놈들을 내려다보는 파라오를 보며, 떨리는 얼굴로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잡아 와라.
쿵- 쿠웅-
곧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문밖으로 나서는 두 석상을 가만히 바라본 하디드는.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그 거대한 덩치에,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무너질 듯 흔들리는 바닥을 보며 땀에 젖은 주먹을 꾹 쥐었다.
……저걸, 구조대가 이길 수 있을까?
“하준! 앞에, 앞에!”
“어? 어어어어! 뭐야!”
그리곤 곧바로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눈을 커다랗게 뜬 그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구조대에, 당황한 표정으로 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래층에 있었을 텐데.
콰앙-!
와르르르-
“아, 안 돼!”
이윽고 요란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하디드는.
아마도 그 두 석상에 당해 아래층으로 곤두박질쳤을 인원들을 떠올리며, 비통한 얼굴로 눈물을 삼켰다.
“콜록, 콜록! 어우, 놀라라. 아니, 갑자기 그렇게 튀어나와서 문을 막으면 어떡합니까! 하마터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준, 거기 이미 죽은 겁니닷.”
털털털-
그러나 울분도 잠시.
복도에서부터 뿌옇게 인 먼지 뒤로,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서는 누군가를 본 그는.
서서히 바닥에 깔리는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와 웬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그 두 사람이 탄 무언가를 발견하곤, 순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게 뭔……. 스, 스쿠터?”
* * *
“어후, 먼지야. 그래도 빨리 도착해서 다행이다, 그치?”
아직도 뿌옇게 인 먼지 안.
위로만 50m나 떨어져 있다는 목적지에, 혹시나 제한 시간이 모자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스로틀을 당겼던 하준은.
다행히 층고가 높아서 그런지, 한 세 층 올랐더니 금방 도착한 목적지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루시오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준, 하준 사전엔 ‘안전 운전’이란 단어는 없는 겁니깟?”
핼쑥해진 얼굴로 힘없이 스쿠터에서 내린 루시오는.
조금 전 박을 뻔했던…… 아니, 박아서 부숴버린 거대한 무언가를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그래도 1층에서부터 미라들을 전부 치어버리고 다니느라, 여기저기 썩은 시체 살점이 달라붙어서 냄새다 뭐다 끔찍해 죽겠는데.
그 암만 봐도 돌덩이 같은 뭔가에 그냥 냅다 박아버리다니.
그나마 스쿠터가 웬만한 신기 부럽지 않게 튼튼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튀어 올라서 납작쿵 머리를 박을 뻔했다.
“에이, 인간적으로 그걸 어떻게 피하냐? 갑자기 툭 튀어나와선 복도를 아예 꽉 막아버렸는데. 게다가, 안전 운전 할 거였으면 애초에 던전에서 이런 거 안 몰았지.”
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듯, 휘휘 손을 내저은 하준은.
스쿠터가 뻥 뚫고 지나간 다리에, 휘청이다 서로 부딪히며 무너져 내린 석상들을 기억하며 슬쩍 입구를 살폈다.
아이 씨, 다 무너져서 반쯤 입구를 막아버렸네, 저거.
돌아갈 땐 또 어떻게 한다냐.
“아무튼, 여기 ‘라’ 님이랑 계약하신 헌터…… 아니, 이게 아니지. 그러니까…….”
어쨌건.
막힌 입구는 뒤로하고, 일단 배달부터 마치기 위해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던 그는.
자연스레 한국말로 사람을 찾으려다, 문득 위치를 깨닫곤 곤란한 눈빛으로 루시오를 돌아보았다.
“루시오, 너 혹시 아랍어는 할 줄 모르냐?”
“……잠깐 기다려보는 겁니닷.”
역시 개울물 대학 수석 졸업생.
누가 고대 문자까지 마스터한 엘리트 아니랄까 봐, 자신 있게 사람들이 갇힌 철창으로 향하는 루시오를 본 하준은.
마저 주머니에서 부탁받은 물건을 꺼내곤, 녀석을 뒤따라 철창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네가 이하준이냐?
“예? 아! 혹시 그쪽이 ‘라’ 님의…….”
널따란 방 안에 나지막이 울리는 한국어.
그것도 떡하니 귀에 틀어박히는 제 이름에,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그는.
언제 왔는지 제 앞에 선, 꼭 어디선가 본 듯한 가면을 뒤집어쓴 누군가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에이 씨, 그럴 리가 없지.”
파라오.
척 봐도 보스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생김새에, 일말의 기대를 집어치운 하준은.
아니나 다를까, 저 옆 철창에서 루시오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를 보곤 조용히 혀를 찼다.
“하, 이러면 나가린데.”
가능하면 깔끔하게 무기만 던져주고서 끝내고 싶었는데.
“그 망할 꼬맹…… 아니, 신. 보나 마나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겠지.”
-그어어어…….
-그어억…….
곧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곤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파라오를 마주한 그는.
그 끝에 달린 해골에서 붉은빛으로 번쩍이는 안광과 함께, 하나둘 벽 쪽에 세워져 있던 관짝을 부수고 나오는 미라들을 보고선 하는 수 없이 슈트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콰아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