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48)
신들의 배달기사(148)
“하,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컴컴한 동굴.
갑작스레 무너진 절벽에 당황한 하준은, 낙석에 맞아 꽉 막혀버린 입구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내일 다시 올까?”
그저 잠깐 팔이 진정될 때까지만 쉬려고 했을 뿐인데.
난데없이 이 갑갑한 동굴 속에 갇혀버린 그는, 잠시 스마트폰 불빛으로 주변을 훑으며 입구를 가로막은 바위를 두드렸다.
중간중간 빛이 들어오는 틈새로 봐선, 슈트만 쓰면 간단히 뚫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조금 전 곡괭이를 사는 데 쓴 5,000p가 아깝긴 했지만, 아까 절벽이 무너져 내리기 전에 들렸던 굉음을 떠올린 하준은.
또 분노한 협곡의 주인이 어쩌고 하던 주문 내용을 기억하며 슈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둘러보는 게 낫지 않습니깟?”
“그런가? 하긴, 정말 위험하면 그때 가서 냅다 튀어도 되니까.”
곧 루시오의 말에 진정하곤 정신을 차린 그는, 혹 그 협곡의 주인인지 뭔지 하는 녀석의 위치가 나와 있을까.
배달 어플을 켜곤 주문을 다시 상세히 살펴보았다.
“여기서 대략 10km 정도……. 좋아, 다행히 그렇게 멀진 않네.”
아니나 다를까.
내비게이션 화면에 주황색으로 반짝이는 목적지와 경로를 확인한 하준은.
여차하면 충분히 퀴네에를 쓰고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가까운 거리를 보고선, 곧장 스쿠터를 꺼내 들었다.
부릉-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툭-
그렇게 금방 목적지 근처에 도착한 그는.
길고 좁게 구불구불 이어지던 통로 끄트머리, 거대한 공동으로 빠져나가는 출구를 발견하곤 슬쩍 스쿠터를 멈춰 세웠다.
“여깁니깟?”
“응. 아마 이 안쪽 어딘가에 있는 거 같은데.”
그리곤 조심조심 벽에 붙어 공동 입구에 선 하준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공동을 슥 훑으며, 슬며시 스마트폰 라이트로 안을 비춰보았다.
“뭐야, 어디 갔어? 거리상으로 보면 분명 이 안쪽에 있어야 하는데.”
텅 빈 바닥.
내비에 나온 목적지와는 달리, 아무것도 없는 공동을 마주한 그는.
다시 한번 살펴봐도 여전히 50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주황색 픽업 마크를 보고선, 어리둥절하니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다.
혹시 또 저번 이집트 때처럼 막 위아래로 몇 층 이루어져 있는 건가?
“……하준, 위에.”
“응?”
“위, 위를 보는 겁니닷.”
“위? ……흐, 흐어어어억!”
그렇게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슬쩍 다시 스쿠터 쪽으로 발을 돌리기도 잠시.
떨리는 목소리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루시오에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 하준은.
족히 30m는 되어 보이는 높다란 천장 아래, 둥그렇게 똬리를 틀고 있는 무언가를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르르륵…….
“뭐, 뭐야, 저게? 혹시 배…….”
-크와아아아악!
“아, 아니구나! 죄송합니다!”
쿠웅-! 쿵-!
이윽고 문득 떠오른 동물에 나지막이 말을 읊조리던 그는.
그걸 들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괴성을 내지르며 벽에 머리를 부딪쳐오는 녀석을 보며 흠칫 통로로 물러섰다.
근데 아무리 봐도 진짜 뱀 같은…….
‘……아니, 잠깐만. 뱀?’
이후 그 거대한 머리로 통로를 틀어막곤, 세로로 기다랗게 째진 벌건 눈동자로 저를 내려다보는 괴이를 피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하준은.
이내 머릿속을 스치는 정보에 눈을 끔뻑이며, 슬쩍 제 뒤에 숨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루시오를 돌아보았다.
“루시오, 저거 설마…….”
“……맞는 것 같습니닷. 이무기.”
이무기.
1,000년 동안 수련하면 자그마치 용이 될 수 있다고 알려진 동양 신화의 영물.
비록 북유럽에서 본 요르문간드만큼은 아니지만, 널리 알려진 신화대로 꽤나 거대한 녀석을 눈앞에 둔 그는.
어째선지는 몰라도 제법 화가 난 듯, 아까부터 자꾸만 으르렁대며 저를 노려보고 있는 이무기를 보고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뭐 때문에 저렇게 화난 거지? 분노한 협곡의 주인이라더니, 우리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루시오랑 하준이 오기 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명백히 하준 때문 아닙니깟?”
“뭐? 왜? 내가 뭘 어쨌는데?”
“그야, 하준이 아까 뱀이라고 부르려고 하지 않았습니깟. 루시오가 알기론, 이무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용이 아니라 뱀이라고 들으면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닷!”
“그, 그래? 그건 확실히 화날 만하네.”
다시 천 년이라니.
루시오의 말에 어색하니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다행히 완전히 뱀이라 말하진 않고 우뚝 얘기를 멈췄던 자신을 떠올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대신 용이라 부르면 화가 좀 풀리려나?
“와, 와아! 용이다!”
-크와아아악!
쿠우웅-!
후드득-
“……아무래도 이게 아닌가 본데?”
하나 그런 기대도 잠시.
용이라는 말에 오히려 더욱 화를 내며 이를 드러내는 녀석을 마주한 그는.
자칫 무너질 듯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보고선, 식은땀을 주룩 흘리며 한 발짝 뒤로 더 물러섰다.
“으음, 이걸 어쩐담.”
“어쩌긴 뭘 어쩝니깟. 어서 그걸 줘 보는 겁니닷!”
“……그거? 아, 이거?”
어떻게 해야 이 이무기, 협곡의 주인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까.
난감한 얼굴로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던 하준은, 곧 루시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부스럭-
여의주.
이무기들이 용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료이자, 용이 된 이후에도 애지중지 입에 물고 다닌다는 지고의 보물.
확실히 눈앞의 녀석을 달래는 데 특효약일 물건을 슬쩍 꺼내 든 그는.
무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을 조심스레 손에 들고선, 흘끗 입구를 가로막은 이무기를 올려다봤다.
스윽- 슥-
“이야, 역시 여의주야. 효과 확실하구만.”
그리곤 보란 듯이 여의주를 내밀며 양옆으로 팔을 왔다 갔다 한 하준은.
아까 날카롭게 찢어져 저를 노려보던 눈동자는 온데간데없이, 제 손아귀에 들린 구슬을 따라 요리조리 움직이는 순둥순둥한 눈매를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뭐 하는 겁니깟, 하준! 그러다 진짜 화나면 어떡하려고 그러는 겁니깟! 괜히 놀리지 말고 어서 드리는 겁니닷!”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냥 주는 건 좀……. 막말로 저쪽에서 여의주만 날름 받고 쌩깔 수도 있는 거잖아?”
장난도 잠시.
옆에서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며 말리는 루시오에 팔을 멈춰 세운 그는.
녀석의 말마따나 움찔거리며 떨리는 이무기의 눈가를 확인하곤, 슬쩍 여의주를 다시 안아 들었다.
보아하니 이게 미칠 듯이 갖고 싶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공짜로 주기엔 영 믿음이 안 간단 말이지.
‘이게 어떻게 해서 얻은 보상인데. 깬다고 해도 제대로 보상조차 안 적혀 있는 이무기 하나 달래는 데 쓰기는 좀 그렇지.’
얼마 전 오두막에서 자신에게 팔라고 했던 헤파이스토스의 얘기로 보건대, 직접 후하게 값을 쳐준다 했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포인트 좀 넉넉한 신들 중 아무한테나 가져다 팔더라도 족히 몇백만…… 아니, 어쩌면 천만이 넘는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도 있을 터.
그런 물건을 굳이 안 깨더라도 별 페널티도 없는 콜 하나 해치우는 데 쓰기엔,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 수지가 맞질 않았다.
어디 뭐, 대단한 신기라도 하나 쥐여주면 또 모를까.
“……그럼 여긴 뭐 하러 온 겁니깟?”
“뭐 하러 오긴. 갑자기 동굴 입구가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거지. 애초에 네가 혹시 모르니까 한번 둘러보고 가자면서.”
“그건…….”
이어진 물음에 무슨 요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 덤덤히 얘기를 꺼낸 하준은.
생각해보니 차마 할 말이 없는 듯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는 루시오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 말은 그래도.
정말 여기까지 와서 그냥 이무기 얼굴만 한 번 둘러보고 간다면 또 섭섭하겠지.
마침 여기 도움이 될 만한 물건도 떡하니 들고 있는데 말이야.
물론 그렇다고 조건도 안 맞는데 쉽게 내어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서 말인데요, 이무기님.”
-그륵.
이후 마음을 가다듬고 성큼 이무기의 앞에선 그는.
손에 쥔 여의주를 슥 들어 보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의주, 가지고 싶으시죠?”
여의주.
눈앞의 이무기가 평생토록 그리 바라 마지않던 용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신물.
자신의 물음에 무얼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이는 녀석을 마주한 하준은.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을 살살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이 비싼 여의주.
아무리 긴급으로 걸린 콜과 관련된 물건이라지만.
보상으로 뭐가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쉽게 내어줄 수는 없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요, 고객님?”
띵동-
-배달의 만족, 주문!
[분노한 협곡의 주인을 진정시키십시오.] [제한 시간: X] [배달 팁: ???] [협곡의 주인과 무사히 거래를 마치십시오] [제한 시간: X] [주의 *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흥정 시, 협곡의 주인의 분노를 받게 됩니다.] [배달 팁: ???]공동에 울리는 경쾌한 알림.
무슨 일인가, 슬쩍 곁눈질로 어플에 떠오른 메시지를 살핀 하준은.
살짝 수정된 주문 내용을 보며, 제 선택이 마냥 틀리진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는 듯한 이 시스템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륵?
흥정의 시간.
눈앞의 인간이 설마 이리 대담한 질문을 해올지는 몰랐다는 듯.
당황한 이무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