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62)
신들의 배달기사(162)
“크하하하하! 이게 끝이냐, 명왕!”
널따란 공동.
잠깐 얼굴을 비친 불청객을 따라 자리를 비운 사이, 그새 퀴네에를 되찾고 다시 기척을 지운 하데스를 마주한 사탄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시커먼 손길을 하나하나 다 박살 내며, 상처를 입고 어딘가 숨어 있을 녀석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쿠르르륵-
“흡!”
철퍽-
바닥에 진 그림자를 통해 부글거리며 튀어나오는 무언가.
그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쳐 거대한 손아귀를 뭉갠 그는.
이윽고 가늘게 어딘가로 쭉 이어지는 그림자를 발견하곤,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찾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부자연스럽게 끊겨 있는 그림자.
앞서 풀어준 튀폰과 함께, 처음 녀석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제 모습과 기척은 가려줘도, 차마 공격을 위해 불러낸 그림자만큼은 숨기지 못한 하데스를 본 사탄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손길을 맨손으로 찢어발기며,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쩌어어억-!
“컥!”
쿵-
순간 거멓게 물드는 시야와 함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그림자가 끊긴 곳으로 향하기 위해 발을 옮기던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은 그는.
아릿한 충격에 삐- 하고 울리다 이내 잦아드는 이명과 동시에 번뜩 정신을 차리며, 뒤쪽으로 손을 휘둘렀다.
부웅-
“흐억! 위, 위험해라.”
“그거 한 방 먹였다고 끝이 아닌 겁니닷, 하준! 조심, 또 조심하는 것입니닷!”
그에 아슬아슬하게 코끝을 스치는 주먹을 보며, 흠칫 뒤로 물러선 하준은.
아직도 제 손이 얼얼하다 못해 살갗이 다 까질 정도의 충격에도, 금세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사탄을 보고선 질린 얼굴로 슥 녀석을 훑었다.
“크으으…… 이 빌어먹을 인간 놈이!”
제 피부만큼이나 벌겋게 실핏줄이 일어난 눈으로 주변을 흘기는 녀석.
그사이 그림자를 물리고 자리를 옮긴 하데스를 보며, 얼얼한 손을 털어낸 하준은.
무슨 일인지 서서히 공동 전체로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고선 멍하니 위를 올려다봤다.
“뭐야? 갑자기 무슨……. 아!”
조금 전, 구슬을 깨고 뭉게뭉게 피어오른 먹구름.
처음 구슬에서 막 뿜어져 나와 조그맣게 뭉치던 때와는 달리, 그 잠깐 새에 덩치를 불려 천장을 가득 뒤덮은 새까만 구름을 본 그는.
덕분에 벽이고 천장이고 거멓게 들어찬 그림자를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이거, 덕분에 더 편히 움직일 수 있겠는데?”
방금 사탄이 하데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가 시커먼 손을 불러내기 위해 그림자를 일으켰기 때문.
하나 이제 이렇게 먹구름 덕에 온 사방에 그림자가 진 이상, 더는 걸릴 위험 없이 움직일 수 있을 테니.
그쪽에서 더욱 거리낄 것 없이 사탄을 견제해줄 수 있을 터.
스르륵-
스윽-
“큭! 명왕! 이 다 죽어가던 산송장 녀석이 감히!”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벽에서도 튀어나와, 스멀스멀 사탄을 향해 나아가는 손길을 본 하준은.
전보다 많아진 손아귀에 눈살을 찌푸리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녀석을 보고선 한 차례 숨을 돌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이놈을 어떻게 쓰러트리냐는 건데.’
이후, 아틀란티스에서 받은 반지를 이용해 피로 벌겋게 젖은 손바닥을 씻어낸 그는.
혹 떨어지는 물소리에 반응할까, 공동 벽에 조심스레 물기를 닦아내며 슬쩍 튀폰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샤아아아악!
-크읏…… 봉인당할 때 힘줄이고 뭐고 다 잘렸을 녀석이 무슨 힘이…….
-그르륵…… 커헝!
-컹!
-커헝!
정면에서 힘겹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코토스와, 튀폰의 몸과 머리를 물고 늘어지는 케르베로스.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빗물 덕에 전처럼 불길을 뿜을 수 없는 터라, 어찌저찌 막아서고 있는 듯싶었지만.
씻겨 내려 바닥에 고이는 핏물의 양과, 그 덕에 밖으로 드러난 케르베로스의 상처로 보건대.
저 둘이 그리 오래 버텨줄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루시오.”
그에 결의를 다지고 고개를 돌리고선 다시금 사탄을 바라본 하준은.
조금 정신이 없어 보이긴 해도 큰 상처 없이 공격을 쳐내고 있는 녀석과, 갈수록 체력이 빠지는지 점차 그 수가 줄어가는 시커먼 손들을 보고선 조급한 목소리로 루시오를 찾았다.
“혹시, 녀석한테 쓸 만한 신기 같은 건 없을까?”
“사탄한테 먹힐 만한 신기 말입니깟?”
어떻게 용한테 받은 구슬을 써서 한숨 돌릴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코토스와 케르베로스는 튀폰을 상대로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벅찬 데다가, 하데스 또한 전에 입은 상처 탓인지는 몰라도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는 상황.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들한테 좋을 게 없는 상황에 상점을 연 그는.
저에게 남아 있는 포인트를 슥 흘기며 상점을 열었다.
[잔여 포인트: 5,154,700p]일전에 벨페고르를 잡는 데 사용한 누아다의 검, 클라우 솔라스를 사고 남은 500만 포인트.
비록 이번에 헤파이스토스로부터 받은 의뢰를 해결하지 못해, 100만 포인트를 벌지 못하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신기는 충분히 구매할 수 있을 터.
“그래. 뭐든 좋으니까, 생각나는 대로 일단 말해봐.”
제 물음에 지그시 눈살을 좁히며 고민에 빠진 루시오를 본 하준은.
지금도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는 시간과, 서로 맡은 적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코토스와 케르베로스 그리고 하데스를 쭉 훑으며 답을 기다렸다.
“……추락한 붉은 용, 최초의 악, 하와를 꼬드겨 선악과를 먹인 원죄의 뱀. 녀석을 지칭하는 말들을 생각하면 당장 떠오르는 신기는 많지만, 사탄 정도 되는 거물한테 통할 만한 신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입니닷.”
깊은 고민 끝에 조용히 입을 연 루시오는.
대학에서 찾은 금서에 적혀 있던 내용과, 사탄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격을 떠올리며 자못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을 저몄다.
지금껏 하준이 신기를 이용해 신화 속 괴물이나 악마와 같은 강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설화를 통해 알 수 있는 확실한 약점이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억지로 지옥을 넘어오느라 인과율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건, 비교적 격이 달리는 괴물이었건.
사탄과 달리 어찌 신기의 힘만으로 부딪쳐 볼 만한 수준이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꼽자면 저번에 벨페고르를 잡는 데 썼던 클라우 솔라스나 찬드라하스, 아니면 아스칼론 정도가 효과가 있는 것입니닷. 모두 파마나 용살에 있어선 최고로 꼽히는 신기들이니깟!”
하나 그렇다고 얌전히 손가락만 빨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금세 불안을 가라앉히고 진정된 눈빛으로 하준을 마주한 님프는.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신기들을 추려 하나씩 얘기를 늘어놓았다.
빛의 신 누아다의 힘이 담긴 빛과 불꽃의 검 클라우 솔라스.
인도 신화의 나찰왕, 라바나가 파괴의 신 시바로부터 하사받은 달빛을 머금은 칼, 찬드라하스.
앞서 두 신기에 비하면 확실히 격이 떨어지지만, 원죄의 뱀으로서의 사탄이 가지는 신격을 찌를 수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용살검 아스칼론.
물론 이들을 쓴다고 해서 사탄을 잡을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최소한 그의 약점이라도 정확히 찌를 수 있는 수준의 신기는 위 셋 정도가 그나마 대표적이었다.
“클라우 솔라스에 찬드라하스, 그리고 아스칼론이란 말이지?”
돌아온 답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이며 상점을 살핀 하준은.
1,000만 포인트나 하는 가격 탓에 살 수 없는 클라우 솔라스를 제외하고, 남은 두 신기를 찾아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찬드라하스 레플리카[5,000,000p]
-아스칼론 레플리카[3,000,000p][강력 추천!]
잠시 후.
바삐 목록을 뒤져 두 신기를 발견한 그는.
다행히 둘 모두 모자라진 않은 포인트를 보며, 자연스레 더 비싼 찬드라하스를 향해 손가락을 옮기다 잠시 우뚝 손을 멈춰 세웠다.
‘……이게 뭐야, 추천?’
신기나 아이템이나, 그 위력이 대개 상점에서 판매하는 값에 비례하는 만큼.
보통 같았으면 그냥 찬드라하스를 구매했겠지만.
아스칼론의 옆에 붙어 있는 ‘강력 추천’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붙잡았다.
가격 차이만 무려 200만 포인트.
값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만큼, 아스트라페처럼 따로 사용하는 데 끔찍한 벌칙이 있지 않은 이상, 따로 비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찬드라하스 쪽이 유용하겠지만.
그간 무언가 막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놈의 상점이 그 상황에 딱 맞는 물건을 추천해줬던 만큼, 마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도 조금 그랬다.
‘젠장, 이러면 무얼 사야…….’
“크아아악! 이, 빌어먹을 녀석들이!”
쿠구구구-
쩌적- 쩍-
하나 고민이 길어지던 찰나.
어느새 시커먼 손아귀에 둘러싸여 괴성을 터트리는 사탄과 함께, 거칠게 흔들리는 바닥을 본 하준은.
이내 하나둘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닥을 보고선, 휘청이는 몸에 슬쩍 자세를 낮췄다.
“뭐, 뭐야? 갑자기…….”
“……하준! 서두르는 겁니닷!”
“어?”
쿠륵- 쿠르르륵-
콰아아앙-!
“읏! 흐, 흐어어억!”
치이이익-
당황도 잠시.
갈라진 바닥을 가리키며 저를 재촉하는 루시오에, 슬쩍 밑을 내려다본 그는.
곧 굉음과 함께 치솟아 오르는 시뻘건 불길과, 바닥에 튀자마자 순식간에 땅바닥을 녹이고 내려가는 벌건 액체를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게 무슨……. 요, 용암?”
마그마.
이제는 조금만 잘못 발을 디뎌도 뼈째 녹아내리게 생긴 환경을 보며 식은땀을 흘린 하준은.
곧 군데군데 구멍 난 손들을 찢어발기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사탄과, 설상가상 치솟은 불길에 옅어진 그림자를 보고선 주먹을 꾹 쥐었다.
“……이걸로 잔재주는 끝이다.”
쿠웅-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꿀꺽-
선택의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