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172)
신들의 배달기사(172)
“그륵…… 요, 요 비겁한…….”
툭-
신전 입구.
만신창이가 된 복도 가운데, 은은한 달빛으로 빛나는 활을 들고 선 하준은.
몇 번의 포격 끝에 온몸 여기저기가 터져 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쓰러진 아가레스를 보며 조용히 시위를 놓았다.
“후……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빡빡한 시위를 연달아 당기느라 파르르 떨리는 손을 쥐었다 펴며, 슬슬 활을 집어넣은 그는.
마냥 제 생각처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는지, 한 번 화살을 쏠 때마다 점점 옅어지던 달빛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갈수록 화살이 희미해져 간 걸 생각하면, 많아야 앞으로 한두 번 쏘면 끝이었으려나.”
“예상보다 아슬아슬했던 것입니닷!”
아무튼.
활의 효력이 다하기 전에 무사히 아가레스를 잡아낸 하준은.
그 난리 통에도 어찌 매를 날려 보내느라 엉망이 된 복도를 슥 흘기며, 천천히 사체로부터 몸을 돌렸다.
번쩍-!
“읏!”
“히약! 가, 갑자기 뭡니깟?”
그 순간.
근처에서 터져 나오는 섬광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환한 빛무리에 뿌옇게 물드는 시야에, 당황한 듯 벽으로 붙으며 휙휙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뭐지, 방금?”
띠링-
[‘솔로몬의 반지’가 지옥의 귀공자, ‘아가레스’의 힘을 흡수합니다.]“……어?”
하나 당황도 잠시.
곧 맑은 알람과 함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눈을 깜빡인 하준은.
우려와 달리 좋은 소식에 긴장을 풀며 경직된 입꼬리를 슥 풀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깟, 하준?”
“……흡수했어. 그 사브나크 때처럼.”
“사브나크? 아, 아앗!”
이윽고 조심스레 어찌 된 일인지 묻는 루시오에, 괜찮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은 그는.
아까 내뿜은 빛이 남아 반짝거리는 솔로몬의 반지를 문지르며, 이전에 한 번 이집트에서도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분명 거기서 투탕카멘의 가면을 쓰고 파라오 행세를 하던 사브나크를 잡았을 때도, 똑같이 빛이 막 터졌었지 아마?
그 뒤로 있었던 일이 벨페고르에 사탄에, 모두 칠죄종과 연관이 있던 터라 잠시 잊고 살았었는데.
[솔로몬의 반지]-지혜의 왕, 솔로몬이 악마들을 사역하는 데 사용했다 전해지는 반지. 착용자가 굴복시킨 악마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ㄴ현재 사용 가능한 악마 목록
-사브나크: 착용자의 전방으로 부식시키는 안개를 내뿜는다.
(남은 일일 사용 횟수: 1)
-아가레스: 착용자로부터 도망치는 상대를 멈춰 세우거나, 되돌아오게 만들 수 있다.
(남은 일일 사용 횟수: 1)
“오!”
뒤이어 잇따라 떠오르는 메시지를 통해 반지의 정보를 확인한 하준은.
원래 가지고 있던 사브나크의 능력에 더해 추가된 목록을 보고선 감탄을 내뱉었다.
“뭡니깟? 이번에도 막 악마의 능력을 흡수한 겁니깟?”
“응. 막 도망치는 상대를 멈춰 세우거나 되돌아오게 만드는 능력이라네?”
“앗! 그러면…….”
“그렇지. 그래서 아까 일직선으로 계속 복도를 달렸는데도 여기로 돌아온 거지.”
도망치는 상대를 붙잡는 권능이라.
써먹기에 따라선 맞히기 어려운 일격을 필중(必中)으로 먹일 수 있는 능력에 고개를 주억인 그는.
곧 만족스레 미소를 지으며 반투명한 창을 옆으로 슥 치웠다.
그렇지 않아도 상점에서 파는 신기 중엔 일회용이 많아서, 혹시나 빗나가면 타격이 큰 편인데.
이건 꽤 도움이 되겠어.
“좋아. 그럼 슈트도 아직 안 썼고, 새 능력도 얻었겠다. 슬슬 올라가 볼까?”
“바로 출발하는 겁니깟?”
“뭐, 그래야지. 방금 아가레스를 잡으면서 꽤 소란스러웠으니까. 집 나간 악마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를 노릇이고, 또 위에 있는 녀석이 우릴 눈치챘을지도 모르니까.”
이어서 곧바로 주머니에서 스쿠터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하준은.
루시오의 물음에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안장 위로 올라탔다.
“자, 그럼 간다. 꽉 잡아.”
부릉-
그리곤 곧장 시동을 걸고서 핸들을 잡은 그는.
즉시 스로틀을 당기며 칠죄종이 있을 위층을 향해 스쿠터를 몰았다.
덜컹-
한 층, 두 층.
빠르게 신전 복도를 오가며 계단을 찾아 오르길 몇 분.
금세 바깥으로 언덕이 내려다보일 만큼 높이 올라온 하준은.
어느덧 꼭대기 층에 다다라, 굳게 닫힌 대문을 눈앞에 두고선 천천히 자리에 멈추었다.
“후, 여긴가? 그래도 신전 안에 남아 있던 악마는 그 노인네 한 명이 전부라 다행이네.”
“확실히, 몇 명 더 남아 있었으면 퀴네에를 다 써야 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닷!”
곧 스쿠터에서 내려, 복잡한 모양의 음각이 새겨진 문을 바라본 그는.
마치 구름 같은 장소에서 버림받아 밑으로 추락하는 모양의 남자를 새긴 그림을 보고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간다.”
“조심하는 겁니닷.”
달칵-
이윽고 그새 시간이 다 되어 효과를 다한 퀴네에를 다시 작동시키고선, 문 앞에 손을 댄 하준은.
아까 밑에서 막 신전 입구를 열었을 적에 휙 하니 날아왔던 매를 떠올리며, 조심조심 대문을 쭉 밀었다.
크그그긍-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긁으며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
곧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안쪽을 살핀 그는.
깜깜하니 짙게 깔린 어둠 한가운데, 새하얗게 빛나는 안광을 보고선 몸을 떨었다.
“……저놈이.”
“마지막 남은 칠죄종인 겁니닷.”
그렇게 어딘가 서늘한 분위기에 눈살을 좁히며 지그시 상대를 살피길 잠시.
이내 천천히 이쪽을 향해 돌아보는 눈동자를 흘긴 하준은.
분명 퀴네에를 쓰고 있건만, 마치 저와 눈이 마주친 듯 반달로 휘는 눈가를 보고선 흠칫 뒤로 물러섰다.
“무얼 그리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거냐. 어서 들어오거라.”
“뭐, 뭣?”
뒤이어 방 안에 스산하게 깔리는 목소리에 식은땀을 흘린 그는.
정말로 제가 보이는지 콕 집어 제 위치를 잡아내는 녀석을 보고선,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다.
“설마, 이 녀석도 아가레스처럼 우리가 보이는 건…….”
“아닙니닷. 그냥 문이 열리다 말았으니, 찔러보는 것입니닷!”
저벅-
화르륵-
퉁- 퉁- 퉁-
그러나 그렇게 지레 겁을 집어먹기도 잠시.
하얀 안광이 한 발짝 저들을 향해 다가오기 무섭게,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방 전체로 퍼지는 불길을 본 하준은.
덕분에 훤히 들어온 불빛 가운데, 정확히 제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 대충 문 근처를 흘기고 있는 녀석을 보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았어. 괜찮아. 보이지만 않는다면 승산은 충분해.’
비록 벨페고르를 잡을 때처럼 뇌운을 부르는 용이 있다든가, 사탄을 상대할 때처럼 하데스 같은 막강한 성좌가 함께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제겐 국제 헌터 연맹과 브라질 정부로부터 받은 세 신기와, 자그마치 3,000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있었다.
‘설령 녀석이 그 사탄보다 강하다 하더라도, 아스트라페를 열 방쯤 먹인다면 절대 무사할 수 없겠지.’
포인트는 곧 자신의 강함.
비록 일회용이지만, 그 무지막지한 크기의 크라켄도 한 방에 태워버린 제우스의 벼락을 자그마치 열 개나 살 수 있는 포인트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딱히 아가레스처럼 퀴네에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도 없겠다, 당당하게 발을 내디디며 적을 올려다봤다.
끼이이익-
쿵-!
“흐억! 깜짝야!”
“히야아악!”
그러나 그런 자신만만한 모습도 잠시.
뒤에서 덜컹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뛰어오른 하준은.
싸움의 시작을 알리듯, 저절로 닫혀버린 대문을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드디어 할 마음이 든 모양이로구나.”
쿠구구구-
이어서 어딘가 만족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덜덜 떨리는 바닥을 본 그는.
다시금 고개를 돌리며, 소리가 들려온 중앙으로 눈을 옮겼다.
“세상에…….”
휘어진 뿔에 허연 눈동자를 둘러싼 검은자.
녀석의 몸을 전부 덮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펼쳐진 시커먼 날개와, 불길한 오라를 내뿜으며 꺼먼 안개를 질질 흘리고 있는 기괴한 창.
천천히 허공에 떠오른 놈의 아래로, 촉수처럼 늘어진 새까만 무언가.
파삭-
그리고 그런 촉수 위로 하늘하늘 떨어진 깃털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걸 본 하준은.
무슨 능력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녀석을 보고선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루시퍼.”
루시퍼.
오만의 칠죄종.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금서에서 찾은 이름을 떠올린 루시오는.
최초의 타락이자 지옥의 왕, 모든 삿된 것의 아버지를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하준, 조심하는 것입니닷.”
“……아무렴, 알다마다. 특히 저 촉수만큼은 꼭 피해야겠네.”
이거, 생각보다 방이 좁은데 할 수 있을까.
하준은 막상 홀로 저 괴물에 맞서려니 겁이 났지만, 금세 마음을 굳게 먹으며 주먹을 꾹 쥐었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꼭 해내야 한다.’
자신이 패배하면 바깥의 그 누구도 녀석을 막을 수 없다.
제 손에 다른 헌터들은 물론 지구 전체의 명운이 걸린 싸움에, 땀에 젖은 손을 닦아 내린 그는.
언제든 포인트를 쓸 수 있게, 상점을 열어 시야 구석에 띄워놓으며 슈트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달칵-
이제, 이 빌어먹을 칠죄종과의 악연을 끝낼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