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22)
신들의 배달기사(22)
“아흐, 아파라…”
어두컴컴한 지하.
난데없이 푹 꺼져버린 바닥에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진 하준은, 얼얼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하마터면 죽는 줄 알았네.”
도대체 얼마나 깊이 떨어진 걸까.
딱딱하니 흙도 아니고 석재 같은 바닥에 용케도 안 죽었다 싶은 그는, 더듬더듬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빛을 밝혔다.
“휴. 다행히 안 부셔졌… 흐어억!”
밝아진 화면에 라이트를 켜고 주변을 둘러보던 하준은, 곧 제 뒤에 딱 달라붙어 있던 인영을 보고선 화들짝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까, 깜짝야. 뒤에 있었으면 말 좀 해주지. 놀랐잖아.”
제 허리께쯤 겨우 올라오는 조그마한 체구.
조금 전부터 계속 불빛을 비추고 있건만.
어째선지 멍하니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루시오를 내려다본 그는, 슬쩍 눈앞에 손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말을 물었다.
“…죽었냐?”
“안 죽었습니닷.”
바로 대답이 나오는 걸 보니, 떨어지면서 어딜 다친 거 같지는 않고.
대체 뭐가 문젠지, 하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녀석의 낯빛을 살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마치 곧 죽을 사람처럼.”
“그럼 갑자기 위에서 깜깜한 지하로 떨어졌는데, 멀쩡하겠습니깟?”
“…그것도 그러네.”
예상외의 정론에 말문이 턱 막힌 하준은, 나지막이 고개를 주억이며 살며시 눈길을 돌렸다.
그냥 평범하게 얼어붙은 거였나.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면, 뭔가 좀 더 난리를 피울 줄 알았는데.
“하. 미치겠네. 진짜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이내 루시오로부터 시선을 돌리곤 마저 근처를 살핀 하준은, 앞으로 오라는 듯 벽으로 막혀 있는 뒤를 보고선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내가 지금 배달을 뛰는 건지, 던전 탐사를 하는 건지.”
기껏 스핑크스까지 잘 쫓아내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건만.
나와서 물건을 받아줘야 할 고객은 또 어디 가고, 웬 이상한 함정이 설치되어있는 건지.
배달 두 번 왔다가는 아주, 사람 잡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내릴 때 이걸 들고 와서 다행이네.’
스마트폰 라이트에 의지해 컴컴한 길을 지나던 하준은, 반대쪽 손에 고이 들린 지팡이를 보고선 씁쓸하니 미소를 지었다.
만일 이것마저 스쿠터에 두고 내렸더라면, 나중에 여길 다 빠져나가더라도 자칫 다시 돌아와야 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자, 잠깐! 잠깐 멈추는 겁니닷!”
“응?”
이후로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끝이 보이질 않는 통로에, 마음이 초조해져 갈 때쯤.
하준은 갑자기 제 소매를 당기며 자리에 멈춰 세우는 루시오를 보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왜 그러는데?”
언제 이 지하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이상, 제때 배달을 마치려면 도리어 지금보다 더 서두를 필요가 있었건만.
[남은 시간 : 13분 32초]그는 자정까지 몇 남지 않은 시간을 보고선, 나지막이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그 반짝이는 것 좀 이쪽에 비춰줄 수 있습니깟?”
“…이 벽에?”
그래도 무언가 멈춰 세운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하준은, 바라는 대로 스마트폰을 낮춰 루시오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라이트를 비춰주었다.
“어? 웬 그림이…”
이윽고 아래쪽에 어떤 벽화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자세를 낮추며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았다.
“사람이랑… 거인?”
여기저기서 제각기 뭔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듯 보이는 거인.
‘무슨 재롱잔친가?’
안 그래도 깜깜한 통로에, 남들이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숨겨놓으려고 했던 건지 뭔지.
보기 불편하게 골반 높이에다가 그려놓은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던 하준은, 곧 뻐근함에 눈을 떼고선 허리를 폈다.
“아앗! 이, 이건!”
“뭐야? 뭔지 알겠어?”
그리곤 겸사겸사 기지개도 쭉 켜고선, 다시 몸을 숙이려던 그때.
그는 무언가 알아낸 듯 눈이 동그래진 루시오를 보고선, 살며시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겁니닷. 무지무지 오래전에, 님프들을 모아 학대하고 구경거리로 즐기는 아주아주 못된 신이 있었다고!”
“이거 님프였어?”
“보면 모릅니깟?”
잔뜩 화가 난 듯 씩씩거리는 목소리.
하준은 주먹만 한 발로 툭툭 벽에다 분풀이를 해대는 녀석을 보고선, 어쩐지 제가 본 것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해석에 조용히 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학대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무슨 태형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죄인처럼 묶여서 벌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한쪽엔 자전거처럼 바퀴가 달린 무언가를 타고서 달리고 있는 님프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운동회나 어떤 축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분명 총장님도 어렸을 때, 이 무시무시한 곳에 끌려갔던 적이 있다고 했던 겁니닷. 엄청엄청 힘들고 괴로워서, 요즘도 가끔 악몽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닷.”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이 거인… 아니, 신이 너희 꼬맹이들을 모아다가 학대하고 즐겼다고?”
“그렇습니닷. 그리고 꼬맹이 아닙니닷!”
하준은 꼬맹이라는 말에 또 발끈하는 루시오를 보며, 확신하듯 벽화의 해석을 늘어놓는 모습에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이 조막만한 녀석들을 데려다 마구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를 상대로 배달이 늦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으니까.
저벅-
이내 벽화를 뒤로하고 전보다 빨라진 발걸음으로 출구를 찾아 떠난 하준은, 제 옆에서 앙증맞은 두 주먹을 꾹 쥔 채 날아다니고 있는 루시오를 보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
“뭡니깟?”
“너, 도대체 여긴 왜 떨어진 거냐?”
작은 몸으로 제 보폭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팔락거리던 날개.
그는 자신의 물음에 갑자기 날갯짓을 그만두곤 제자리에 선 녀석을 보고선, 덩달아 걸음을 멈춰 섰다.
“…방심했습니닷.”
“방심?”
“그렇습니닷. 인간도 깜짝 놀라면 온몸이 막 굳지 않습니깟? 날개도 마찬가지인 겁니닷. 게다가 떨어지면서, 어쩌면 그게 정말 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닷.”
그게 문이었을지도 모른다라.
하긴, 여태껏 막연히 함정이었을 거라고 단정을 짓긴 했지만.
어쨌든 초인종을 누르고 나서야 바닥이 푹 꺼졌다는 걸 떠올려보면, 모양새가 좀 그럴 뿐이지 실은 대문을 열어준 거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 그건 그것대로 미친놈 아닌가?’
“아무튼, 이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입니닷. 루시오는 초엘리트 님프라서 괜찮지만, 인간은 죽을지도 모르는 겁니닷.”
어느 쪽이든 제정신은 아니리란 생각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하준은, 바로 코앞에 있었던 문을 보고선 루시오와 함께 발을 옮겼다.
툭-
이윽고 먼저 문 앞에 다가간 루시오를 보며.
그는 족히 5m는 될 법한 거대한 문짝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흐읏! 으으으읏!”
그렇게 사뭇 긴장한 얼굴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기도 잠시.
“…”
하준은 아무리 낑낑대며 애써도 열리질 않는 문에 말없이 저를 돌아보는 녀석을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슬며시 손을 거들었다.
끼이익-
크그그긍-
“배달이요!”
곧 녹슨 철문처럼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열린 안쪽을 보며.
그는 지금껏 지나온 통로와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한 장소에,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돌려가며 주변을 밝혔다.
“…아무도 없나?”
석재로 보이는 바닥과 벽을 제외하곤 근처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텅 빈 공동.
하준은 기대와 달리 인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남은 시간 : 9분 52초]자정까지, 앞으로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저기, 저쪽에 뭔가 있는 것입니닷.”
“어디? 저 앞에?”
뒤이어 다급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던 그는, 무언가 발견한 듯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루시오를 보고선 그리로 걸음을 움직였다.
“이게 뭐야. 완주하지 못하면 나갈 수 없는 방?”
널따란 벽 아래쪽에 떡하니 붙어 있는 안내문.
허리를 수구려 그곳에 적힌 글귀를 살핀 하준은, 이전과 다르게 처음 보는 문자임에도 어째선지 술술 읽히는 글을 보고선.
그 요상한 내용에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덜컹-
“흐억!”
퉁- 퉁- 퉁-
달칵-
“갑자기 불이… 어?”
이어서 안내문을 모두 읽기 무섭게, 저절로 천장에 불이 들어온 방을 보며.
그는 아직 다 둘러보지 않았던 자리에 쭉 마련되어 있던 물건들을 발견하고선, 조용히 눈살을 좁혔다.
평평한 책상과 그 위에 놓인 물컵.
그리고 그 옆에 위층과 이어져 있는 나선형의 계단.
“구성이 어디서 본 거 같은 구성인데… 아!”
가만히 그 둘을 지켜보던 하준은, 금방 머리를 스치는 어떤 생각에 눈을 번뜩였다.
“아까 그 벽화랑 똑같네!”
인간과 거인… 아니, 님프와 신이 자리에 없어서 그렇지.
놓여 있는 물건들은 조금 전 벽화에 새겨져 있던 것들과 형체가 비슷했다.
그때 무슨 고문이 어쩌고 하기에, 실제로는 그림과 달리 위험한 물건들인가 싶었건만.
파르르-
아무튼 뭐가 뭔지는 몰라도 어서 이 방을 탈출하기 위해, 우선 눈앞에 보이는 책상 앞으로 막 걸음을 옮기던 찰나.
하준은 무슨 일인지 옆에서 몸을 벌벌 떨고 있는 루시오를 보고선, 발을 멈춰 섰다.
“드, 들어본 적 있습니닷.”
“…이것도?”
“그렇습니닷. 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아마도 영원히 산 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혀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이나, 억겁의 시간 동안 홀로 하늘을 떠받들어야 하는 아틀라스의 형벌을 방불케 한다는 지옥의 경기. 철님삼종경기인 것입니닷!”
“철님삼종경기?”
프로메테우스니, 아틀라스니.
거창하게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하준은, 마지막으로 터져 나온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인삼종경기의 님프 버전이나 뭐 그런 건가.
“가장 먼저 첫 번째! 물 한잔 원샷하기!”
“…응?”
이내 곧바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루시오를 보며.
그는 뭔가 시작부터 이상한 경기의 내용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겁니닷. 잔이 자그마치 이따만한 것입니닷!”
“아니, 그거 그냥 머그컵 크기잖아.”
말은 무슨 세숫대야라도 가져다 놓을 것처럼 하더니.
하준은 두 손으로 대강 휴지 한 통 조금 안 되는 크기의 원을 그리는 녀석을 보고선, 김이 다 빠진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음으로, 쉬지 않고 계단 50개 오르기! 날개는 일절 사용하면 안 되는 겁니닷. 폐가 찢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절대 중간에 멈춰선 안 되는 것입니닷!”
뒤이어 계단 50개.
숫자는 많아 보이지만, 잘 쳐야 아파트 4층 정도 안 되는 높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골인지점까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몰아야 하는 것입니닷.”
게다가 자전거도 저 계단 위에 보이는 공간을 보아하니, 기껏해야 200m쯤 달리는 걸까 싶었고 말이다.
“무려, 보조 바퀴도 없이.”
하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각한 얼굴로 설명을 끝마친 뒤, 천천히 저를 올려다보는 루시오를 보고선.
도무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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