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23)
신들의 배달기사(23)
“대, 대단한 것입니닷! 이 정도면 개울물… 아니, 바닷물 신기록인 겁니닷!”
공동 2층.
자정이 지나기 전에 어서 이 재롱잔치 같은 경기를 완주하고 출구 앞에 선 하준은, 아까부터 뭐만 하면 옆에서 감탄을 터트리고 있는 루시오를 보며 조용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만해. 쪽팔려 죽을 거 같으니까.”
아무리 배달을 위해서라지만,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다 큰 어른이 애들 자전거 위에 앉아서, 제 허리춤에나 간신히 올라오는 녀석한테 박수나 받는 꼴이라니.
[남은 시간 : 6분 51초]한숨을 푹 내쉬며 스마트폰을 확인한 그는, 앞서 이 우스운 경기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지체된 시간에 입술을 꾹 씹었다.
크그그긍-
이윽고 아래층에 붙은 안내문에 적혀 있던 대로, 쇳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철문을 바라보며.
하준은 부디 이제 끝났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 인간! 조금만 천천히 좀 가는 겁니닷!”
“그럴 시간 없어. 빨리 날아서 오든가 해. 날개는 장식이냐?”
“루시오도 그러고 싶지만, 아까 방에서부터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닷!”
저 멀리,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까지 높다랗게 이어진 계단.
다행히 이걸로 지하를 탈출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 그는, 금세 계단을 모두 올라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와…”
텅 빈 방에 책상과 애들용 자전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지하와는 달리, 곳곳에 황금으로 빛나는 고풍스러운 장식들이 잔뜩 늘어져 있는 거대한 홀.
저벅-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에 멍하니 넋을 놓고 눈을 깜빡이던 하준은, 곧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선 나지막이 목소리를 높였다.
“배달이요!”
집 안을 보아하니, 배달팁도 꽤 넉넉하게 받아낼 수 있을 터.
어떻게든 시간 내에 도착도 했겠다, 부푼 마음으로 홀 중앙에 놓인 계단을 올려다본 그는, 이내 난간을 잡고서 또각또각 모습을 드러내는 상대를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감히 이 야밤에 멋대로 여의 처소에 숨어들다니, 참으로 무엄한지고.”
척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갖은 치장과 황금색 비단으로 짜인 드레스.
“그대, 침입자여. 무슨 연유로 그런 무례를 저질러가면서까지 이곳을 찾았는가.”
“예? 그냥 배달 왔는데요.”
하준은 짙은 눈화장에 우아한 걸음걸이로 제 앞에선 여신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무례는 배달시켜놓고 앞에서 문도 안 열어주는 게 무례지.
기껏 힘들게 지하까지 떨어졌다 올라왔더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전에 부탁하신 물건이 완성됐다고,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이것 좀 가져다드리라고 하셔서…”
“흐에엑, 헥… 드디어, 드디어 도착한 것입니닷. 하마터면 폐가 찢어질 뻔한 겁니닷!”
아무튼 지난 고생은 고생이고, 일단 일은 마쳐야 하니 주섬주섬 지팡이를 건네주려던 찰나.
“…님프?”
그는 뒤에서 헥헥대며 간신히 계단을 모두 올라온 루시오를 발견하곤, 자연스레 눈이 돌아간 여신의 모습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엣? 이 아줌마는 누굽니깟? 인간, 아는 사람인 것입니…”
“님프라니, 실로 오랜만이로구나!”
“흐아아앗! 가, 갑자기 뭡니깟?”
뒤이어 망설임 없이 녀석에게 달려들어 번쩍 들어 올리곤 끌어안는 그녀를 보며.
하준은 순간 서로 아는 사이인가 싶어, 가만히 눈치를 살폈다.
‘암만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워낙 친근하다 못해 격한 반응에 혹시나 했건만.
조금 전에 루시오가 꺼내려던 말도 그렇고, 지금 열심히 빠져나오려 버둥거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적어도 님프 쪽은 구면이 아닌 거 같았다.
“그대가 이 아이의 주인인가?”
“네? 아뇨, 그건…”
“우우웁! 사, 살려! 숨을 못 쉬겠다는 겁니닷!”
주인이냐니.
하준은 알 수 없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곤란한 표정으로 괴로운 듯 낑낑대고 있는 루시오를 살폈다.
“음? 그러고 보니 그 뒤쪽에. 꽤 오랫동안 쓰지 않아 잊고 있었건만, 한때 님프들을 데려다 재롱잔치를 즐길 때 쓰던 통로로구나. 후후. 참으로 귀여운 아이들이지.”
“인간! 뭘 자꾸 구경만 하고 있는 겁니깟? 어서 구해달라는… 으읍!”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저들이 올라온 계단을 바라보는 여신을 보며, 하는 수 없이 깊은 한숨과 함께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우선 걔 좀 놔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다 죽을 거 같아서.”
“아. 미안하구나. 여는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써서 말이다.”
“푸하!”
다행히도 송장을 치우기 전에, 어느새 축 늘어져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루시오를 자리에 내려놓는 그녀를 보며.
하준은 쪼르르 달려와 제 뒤에 숨어선 빼꼼 고개를 내밀어 살피는 녀석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주, 죽을 뻔한 겁니닷. 방금 스틱스강에 거의 무릎까지 들어갔다 온 것입니닷.”
이윽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경계심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루시오를 뒤로한 채.
여신은 여전히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얼굴로 녀석을 지그시 쳐다보다, 곧 눈길을 돌려 하준을 마주보았다.
“이거 소개가 늦었구나. 여는 가장 비옥하고 찬란한 두 땅의 주인이자, 모든 사원의 수장. 전지전능한 매, 호루스의 화신. 파라오다.”
“…파라오?”
이어진 소개에, 하준은 잠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파라오는 그냥 왕 아니었나?’
“신님들은 대개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입니닷. 큐피트 님이나 헤파이스토스 님처럼 태생부터 신이신 경우. 그리고 저 못된 아줌마처럼 살아생전 신으로서 추앙된 경우.”
“…어린 님프여. 아무리 여라도 그런 말은 좀 상처로구나.”
“히야악! 드, 들린 겁니깟?”
허나 의문도 잠시.
그는 까치발을 들어 속닥속닥 귓속말을 걸어오는 루시오의 설명에, 나지막이 고개를 주억였다.
보면 볼수록 의외로 아는 게 많단 말이야.
“후후, 농담이다. 어찌 됐든, 본디 여의 처소에 허락도 없이 침입한 그대는 곧장 석관에 가두어 못을 박아야 함이 마땅하나. 이번만큼은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이유 정도는 들어주도록 하겠다. 님프가 따르는 이 중에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직후, 살벌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오는 파라오를 보며.
하준은 중간중간 풀리는 표정과 함께 루시오를 향해 돌아가는 시선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래서 이 녀석을 붙여준 건가.’
하긴 저렇게 좋아하면 이쪽이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좀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은 배려였다.
물론 그전에 여러모로 피곤해지긴 했지만.
“이유고 자시고. 배달이라니까요?”
여하튼 진지해진 분위기에, 하준은 아까부터 계속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내보였다.
“배달? 아! 벌써 날이 그렇게 되었구나.”
그러곤 이내 천천히 물건을 받아드는 파라오를 보며.
하준은 지금까지도 계속 줄어들다 아슬아슬하게 멈춘 시간을 확인하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시간 : 8초]‘진짜, 하마터면 제때 도착하고도 실패할 뻔했네.’
“음! 마감도 좋고, 형태고 좋고. 과연 소문대로구나. 훌륭하다.”
곧 이리저리 지팡이를 돌려보다,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챙기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슬슬 기대에 찬 얼굴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그러면 배달 팁은…”
“배달 팁? 아, 수고비 말이냐? 그거라면 걱정 말거라. 여는 그리 인색한 신이 아니니.”
띠링-
우아한 손짓과 동시에, 귓가를 때리는 경쾌한 알람.
[배달 팁으로 ‘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파라오’님으로부터 추가로 ‘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곧바로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하준은, 과연 그 말마따나 화끈한 금액에 쾌재를 지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잔여 포인트 : 195,300p]자그마치 10만에 달하는 액수.
그는 단숨에 자릿수를 바꾸다 못해 20만에 육박한 포인트를 눈에 담으며, 싱글벙글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객님!”
“…인간은 자존심도 없는 겁니깟?”
그에 뒤에서 둘을 번갈아 보고 있던 루시오는, 방금까지만 해도 피곤함에 쩔어 있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하준을 보고선 어이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그 배달 팁이 뭐라고.
“무슨 소릴! 네가 밖에서 맛있게 먹은 사탕도, 다 여기서 나오는 거야.”
“핫! 그, 그런 겁니깟?”
“암. 그렇고말고.”
이어서 뚱한 반응에 쯧쯧 혀를 차며 루시오를 내려다본 하준은, 금방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꿈뻑이는 녀석의 모습에 당당히 고개를 주억였다.
“후후. 그대와 님프는 참 친해서 보기 좋구나. 아무튼, 다음부턴 몰래 지하로 돌아서 오지 말고, 제대로 입구로 들어오도록 하거라. 덕분에 그리운 추억이 떠올라서 반갑긴 했다만, 아무래도 매번 그러는 것은 여도 곤란하니 말이다.”
“아유, 그야 물론입… 예?”
뒤이어 재미있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라오의 말에 반사적으로 맞장구를 치던 하준은, 마냥 흘려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에 잠시 말을 멈추고 조용히 그녀를 올려다봤다.
“아니, 저희 입구로 들어왔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입구는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한쪽밖에 뚫어놓지 않았거늘.”
“네?”
누가 봐도 알 수 있다니.
그는 순간 저들이 가장 처음 마주했던, 피라미드 한쪽에 커다랗게 뚫려 있던 구멍을 떠올리곤 말없이 루시오를 내려다봤다.
“하, 하지만 분명 옆에 경비병이 없으면 초인종을 누르라고 새겨져 있던 것입니닷!”
“오! 그걸 읽은 것이냐? 그 문자는 사장된 지가 벌써 천년은 더 지난 걸로 안다만. 아직 어려 보이는 님프가 제법 명석하구나.”
“엣?”
항변하듯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이던 루시오는, 돌아온 대답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한 눈빛으로 파라오를 쳐다봤다.
제가 읽었던 것이, 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고어였다니.
“저기, 파라오 님. 그 말씀은…”
이내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하준은, 설마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니까, 초인종도 경비병도 다 옛날이야기였다는 거지. 이제는 그냥 입구로 쭉 들어와서 문을 두드리면 된다는 거다.”
“…네?”
어쩐지, 손님 접대가 영 터무니없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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