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24)
신들의 배달기사(24)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끄응… 지친다, 지쳐.”
자정이 지나기 전, 무사히 배달을 마친 다음 날.
파라오의 배려로 피라미드에서 하룻밤을 보낸 하준은, 아직 일이 남았는지 지상으로 보내지지 않고 변경된 목적지에, 스쿠터를 몰아 다시금 올림포스로 되돌아왔다.
“하루 종일 운전만 하니까 피곤해 죽겠네. 허리도 아프고.”
이틀 동안 장장 스무 시간에 달하는 주행.
물론 정말로 운전만 한 건 아니고, 중간중간 몇몇 트러블이 있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아픈 허리랑 쓰라린 엉덩이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아래에서처럼 도로가 포장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협곡 사이의 자갈밭이나 사막의 모래밭을 건너야 하기도 했으니까.
‘뭐, 그래도 저번처럼 싸우는 것보단 훨씬 나았지만.’
“야! 다 왔으니까 그만 일어나. 짜식이, 중간부터 잠만 퍼질러 자고… 으엑! 침!”
오두막 앞에 스쿠터를 세우고 시동을 끈 하준은, 뒤에서 제 등에다 침까지 묻히며 자고 있던 루시오를 보고선.
기겁한 표정으로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에이 씨, 드러.”
“으응… 벌써 도착한 겁니깟?”
“벌써는 무슨. 조금 있으면 해도 지겠구만. 아무튼, 깼으면 내려와라. 빨리 끝내고 집 가서 자게.”
이어서 물티슈를 꺼내 대충 옷을 닦아낸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루시오를 두고선 곧장 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준!”
“응?”
그렇게 길었던 배달을 마무리하고, 이만 오두막의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하준은 웬일로 인간이 아닌 이름으로 저를 부르는 녀석의 목소리에, 조용히 뒤를 돌아봤다.
“어제오늘, 즐거웠던 겁니닷.”
여태껏 천진난만했던 어린애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목소리.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안녕을 말해오는 님프를 마주한 그는, 피식 웃음과 함께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래. 덕분에 나도 지루하진 않았다. 좀 시끄럽긴 했지만.”
“…시끄럽다니. 훈훈한 장면에 분위기를 못 읽는 것입니닷.”
하준은 장난스러운 대답에 툴툴거리며 따라붙는 루시오를 가만히 지켜보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문고리를 향해 눈을 돌렸다.
초면에 땍땍거리고 쓸데없이 트러블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의외로 아는 것도 많고 나름 재밌는 녀석이었으니까.
똑똑-
“헤파이스토…”
“오오, 형씨! 왔구만!”
덜컥-
이윽고 노크하기가 무섭게 문을 활짝 열고 저들을 맞이하는 헤파이스토스를 보며.
하준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괜히 불안한 눈빛으로 안에 들어섰다.
“아니, 웬일로 또 이렇게 입구에서… 혹시 소주도 걸리신 건 아니죠?”
“에이, 그랬으면 여기 있겠수? 지금쯤 저 어디, 스틱스강이나 건너가고 있었겠지. 별 건 아니고, 내 뭐 좀 줘야 할 게 생겨서 기다렸수다.”
줘야 할 게 생겼다니.
보상이 그게 다가 아니었단 말인가.
어쨌든 더 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것은 없었기에, 하준은 기쁜 마음으로 이어질 얘기를 기다렸다.
“거기, 바깥에.”
“예, 옛! 부르셨습니깟!”
이내 눈을 반짝이며 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아까부터 문 앞에서 우물쭈물 눈치만 살피고 있는 님프를 부른 헤파이스토스는.
제 말 한마디에 군기가 바짝 들어선 허겁지겁 달려오는 녀석을 보곤 덤덤히 말을 이었다.
“실은 조금 전에 형씨가 다녀온 고객한테 연락이 와서 말이요. 듣자 하니 둘이 그렇게 쿵짝이 잘 맞았다더구만.”
“…예? 제가요?”
“루시오가 말씀이십니깟?”
뭐 보상 이야기를 하려는 줄 알았더니.
하준은 난데없이 요 맹랑한 님프와 저를 엮는 그를 보며,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으하하! 맞구만, 맞아! 여튼, 원래는 요번 한 번만 도우미로 부른 거였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그냥 돌려보내기가 영 아쉬워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동시에 자신들을 가리키며 어딘가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인간과 님프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헤파이스토스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형씨는 신화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마침 둘이서 사이가 좋다니 잘 됐지 뭐요? 내 그래서 특별히, 아들내미한테 허락받고 왔수다!”
당차게 준비한 선물을 공개한 헤파이스토스는, 금방 뿌듯한 미소와 함께 기대에 찬 눈빛으로 슬쩍 둘의 얼굴을 살폈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설마, 앞으로도 계속 옆에서 이 인간을 도우라는 말씀이십니깟?”
“으, 으응?”
허나 예상과 달리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반응을 보며.
그는 당황한 듯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둘이 친해진 거 아니었수?”
“뭐, 딱히 안 좋은 건 아닌데. 그 정도는…”
그에 슬쩍 루시오를 돌아본 하준은, 저와 마찬가지로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야 데리고 다니면 언젠가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건 그거고, 대신에 매번 옆에서 무어라 쫑알거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거 때문에 난생처음으로 아들내미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하지만 마냥 거절하기엔 꽤나 슬퍼 보이는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에 머쓱해진 그는, 곧 어색하니 입을 떼었다.
“아휴, 장난이죠. 실은 엄청 친합니다, 저희! 이젠 거의 뭐, 가족이라고 볼 수 있죠. 이야,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이렇게까지 신경써주실 줄은 몰랐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 그런 거였수? 으하핫! 이거야 원, 껌뻑 속았구만! 연기가 아주 제법이요, 형씨.”
슬그머니 루시오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은 하준은, 괜한 우려였다는 듯 다시 표정을 펴며 제 등을 팡팡 두드리는 그를 보고선 조용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골께서 기껏 준비한 선물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딱히 안 좋은 걸 가져다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제 의견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겁니깟?”
다만 선물 본인은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새였지만.
“아무튼. 어제오늘 데리고 다녀봐서 알겠지만, 곁에 두면 도움이 많이 될 거요. 님프야 원래 그렇다지만, 아들내미가 그렇게까지 아까워하는 녀석은 나도 본 적이 없으니.”
“그, 그게 정말이십니깟? 큐피트 님께서… 엄청엄청 영광인 겁니닷!”
그러나 소소한 불만도 잠시.
뒤이은 말에 금세 밝아진 루시오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입가를 씰룩였다.
자연에서 태어나 신과 영웅들을 따르는 님프들에게는, 그들의 칭찬만큼 또 기분 좋은 일이 없었으니까.
하물며 그게 주신인 올림포스 12신의 핏줄이라면 더더욱.
“그러면 이만 들어가 봐야겠구만. 아직도 만들 게 산더미니. 이번에도 배달 고마웠수!”
“아이고, 아닙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쇼!”
끝내 훈훈하게 이야기를 마친 하준은, 보상으로 떠넘겨 받은 루시오를 데리고 현관 앞에 서며 꾸벅 인사를 마쳤다.
설마하니 아침부터 열 시간 가까이 달려서 받으러 온 보상이 이런 걸 줄은 몰랐는데.
“그럼 인간, 앞으로 잘 부탁드리는 겁니닷!”
이윽고 오두막을 나선 그는, 칭찬 한 번에 홀라당 넘어갔는지 의욕이 활활 넘치는 눈빛으로 옆에 따라붙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음과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름으로 불러, 이름으로. 앞으로 계속 볼 건데. 아까도 잘 부르더만.”
“인… 아니, 하준도. 꼬맹이 말고 제대로 루시오라고 부르는 겁니닷!”
번쩍-
“그래, 꼬맹아.”
“아앗!”
짓궂은 대답과 동시에 스쿠터에 올라탄 하준은, 곧 새하얗게 저들을 감싸는 빛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으… 앞이, 앞이 안 보이는 겁니닷!”
“쉿. 조용히 해. 올림포스랑은 다르게, 여긴 날개 달린 사람 같은 건 없어서. 눈에 띄면 괜히 골치 아프니까.”
이내 수그러든 섬광에 슬며시 눈을 뜬 그는, 작은 님프에게 주의를 주며.
집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스쿠터를 이끌고 원룸으로 향했다.
날개라고 해봐야 보통 학예회라도 있었거니 하고 넘기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애가 좀 유별나서 그렇지, 생긴 건 또 이목을 모으기도 했고.
“우와아아… 건물이 진짜진짜 많은 겁니닷! 하준! 저기, 저건 뭡니깟?”
“조용히 하면 사탕 줄게.”
돌아가는 길.
하준은 별천지라도 온 듯, 모든 게 다 신기하다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는 루시오를 보고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들었다.
“사탕! 흡!”
직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곤 합죽이가 되는 녀석을 보며 말없이 미소 지은 그는, 금세 거의 다 도착한 골목에서 우르르 빠져나오는 인파를 발견하곤 잠시 눈을 깜빡였다.
‘뭐지. 무슨 일 있나?’
딱히 근처에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저렇게 사람이 붐비는 곳이 아닌데.
“에이 씨, 오늘도 공쳤네.”
“도대체 그 스쿠터가 뭔데 이틀 동안 이러고 있는 거야?”
“보니까 위에선 찾을 때까지 계속 시킬 모양이던데.”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한 하준은, 잘 들리진 않지만 무어라 투덜거리는 그들을 뒤로하곤.
바뀐 신호에 천천히 골목으로 들어섰다.
“다 도착했으니까, 들어가자마자 발 씻고. 방음 잘 안 되니까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알았지?”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닷. 이제부터 남의 집에 얹혀사는 만큼, 지킬 건 다 지키는 것입니닷.”
방금 그걸로 사람들이 다 나갔는지 평소처럼 텅 빈 원룸촌에 스쿠터를 댄 그는, 시동을 끄고 루시오를 데리고서 계단을 올랐다.
끼이익-
“뭐해? 안 들어오고.”
곧 방 앞에 도착해 활짝 문을 연 하준은, 잘 따라오다 말고 멍하니 서선 안쪽을 살피는 녀석을 보고선 나지막이 눈살을 찡그렸다.
이러다 모기 들어올라.
“…정말 이딴 데 살고 있는 겁니깟?”
그리곤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와, 넋이 나간 눈빛으로 휙 저를 돌아보는 루시오를 보며.
그는 말없이 방문을 꼭 닫았다.
‘이딴 데라니, 말이 심하네.’
조금 좁긴 해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아니, 많이 좁나?’
* * *
“하준! 하준!”
“으음…”
이틀간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본의 아니게 떠맡은 세입자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 하준은, 채 가시지 않은 졸음에 베개를 접어 귀를 막으며 몸을 뒤척였다.
“돌아눕지 말고, 빨리 일어나보는 겁니닷!”
“아흐, 뭔데 그래. 대체.”
허나 멈추지 않는 부름에 하는 수 없이 부스스한 눈을 뜬 그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상체을 일으켰다.
“이거! 여기서 자꾸만 소리가 안 멈추는 것입니닷!”
“소리? 무슨 소리… 응? 이, 이게 뭐야!”
이윽고 제 눈앞에 무언가를 들이밀며 호들갑을 떠는 루시오의 모습에 눈을 꿈뻑인 하준은, 곧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곤 스마트폰을 덥석 집어 들었다.
-배달의 만족, 주문!
-배달의 만족, 주문!
-배달의 만족, 주문!
그도 그럴 것이, 계속되는 알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콜이 밀려들고 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