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25)
신들의 배달기사(25)
“뭐? 어제도 못 봤다고?”
널따란 집무실.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보고서를 확인하던 박성준은, 저번에 지시한 영입 건으로 저를 찾은 3팀장을 보고선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예, 길드장님. 혹시나 해서 노량진 근처를 싹 다 돌았는데, 말씀하신 헬멧이랑 스쿠터는 없었답니다. 어쩌면 그쪽도 눈치채고 번호판을 바꾼 게 아닐까요?”
최근 잇따른 공략 실패에 서리갱도의 붕괴, 하도윤의 입원까지.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거리가 산더민데, 이젠 금방 찾을 줄 알았던 스쿠터까지 말썽이라니.
성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답답함에 침음을 내뱉었다.
“계속 뒤져볼까요?”
“아니야, 됐어. 그렇게까지 했는데 못 찾았으면 어쩔 수 없지. 지금 같은 상황에 언제까지고 인력을 낭비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스쿠터남의 영입은 물론 중대사였지만, 그렇다고 이미 놓친 걸 미련하게 쫓고 있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진 않았다.
아무리 이번에 흑룡이 내부 고발로 인해 기세가 주춤해졌다고는 해도, 저들 또한 꽤 오랫동안 이렇다 할 실적을 쌓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와중에 그나마 2팀, 3팀으로 정리하던 던전과 게이트까지 오래 비워두었다간.
매스컴이든 협회든, 또 어디서 물어 뜯길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보다 부산 쪽은 어떻게 됐대? 보니까 상황이 별로 좋아 보이진 않던데.”
어차피 영입 쪽은 또 언젠간 인연이 닿을 터.
우선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기로 마음먹은 그는, 본디 그제 부산에 있었던 볼일을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A급 헌터 여섯을 필두로 한 공략조는 후퇴. 결국, 아직까지 해결 못 한 모양입니다. 앞으로 닷새면 던전으로 자리 잡을 추세고요.”
“…그래?”
한 달 전, 부산 해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게이트.
성준은 수차례의 공략시도 끝에 골칫덩이로 전락한 녀석을 떠올리며,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협회에서 우릴 찾을 때부터 만만치 않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설마 A급 여섯이서도 감당이 안 될 줄이야.’
보통 순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A급 여섯이면 어지간한 랭커 두 명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뒤를 받쳐줄 다른 헌터들까지 다수 있었으리란 걸 따져보면, 게이트뿐만 아니라 웬만한 던전도 공략해볼 만한 전력이었다는 얘기건만.
끝내 게이트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오다니.
‘차라리 잘됐어.’
처음 협회에서 내놓은 추정치를 훨씬 웃도는 난이도에 곰곰이 고민을 마친 성준은, 이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간만에 출장이다. 가서 아린이하고 1팀 애들한테, 내일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으라고 전해.”
위태로운 자리를 다시 공고히 하는 데는, 빼어난 실적만 한 것이 없는 법.
안 그래도 타르타로스의 공략을 준비하는 동안 어떻게 채워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A급 여섯이 실패하고, 위치 또한 인구가 밀집된 해운대로 이슈가 되는 게이트라면, 짧은 시간 내에 성과를 내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내일, 어딜 말씀이십니까? 설마 부산을요?”
“닷새 뒤면 던전으로 변할 추세라며. 가서 브리핑 듣고 공략까지 하려면 넉넉하게 사흘 전엔 들어가야지. 왜? 3팀도 같이 갈래?”
조금 급작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1팀은 타르타로스 공략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일정이 없으니 괜찮았다.
오히려 최근 실패로 다들 가라앉아 있을 테니, 이번 기회에 잃어버린 자신감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하도윤 팀장님은…”
“미쳤어? 팔이 부러진 애를. 걘 쉬라 그래.”
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준은, 매무새를 고치며 슬쩍 창밖을 내다봤다.
“부산에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쪽까지 낄 걸 생각하면 나머지로 충분하니까.”
도로 건너편,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협회 건물.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길드가 어디인지.
다시금 똑똑히 보여줄 시간이었다.
* * *
“아이 씨, 뭐야. 그냥 콜이잖아.”
허름한 자취방.
가뜩이나 좁은데 전날부로 마음껏 팔도 못 펴게 된 하준은, 아침부터 자꾸만 울리던 알람의 정체를 확인하곤 실망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괜히 설렜네.”
혹시 헤파이스토스나 누가 소문내서 여기저기 찾는 신들이 많아진 건 아닐까 기대했건만.
내용이나 요청사항을 보아하니, 죄다 평범한 건수들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처음 알 수 없는 콜을 받고 올림포스로 올라가 헤베를 만났던 날.
그는 말도 안 되는 개진상의 리뷰에 일주일 동안 정지를 먹었던 어플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하니까 또 어이가 없네. 아니, 내가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먹고 일감까지 뺏겨야 하냐고.’
결과적으로 보면 덕분에 신들의 배달을 맡을 기회를 얻긴 했지만, 어찌 됐든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망할 지사장 새끼.
진상이 잘못한 거면 그쪽한테 따져야지.
왜 항상 엄한 라이더한테 지랄이래.
“그래서 뭐였습니깟? 이제 괜찮은 겁니깟?”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스팸메일 같은 거.”
“…스팸?”
“있어, 그런 게.”
지금 이러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울리는 알람에 소리를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하준은, 다시 밀려오는 졸음에 대자로 드러누우며 베개를 뒤집어썼다.
“아앗! 자꾸 혼자만 알지 말고, 루시오한테도 제대로 가르쳐주는 겁니닷! 이래 봬도 앞으로 계속 함께할 파트너 아닙니깟!”
“…앞으로, 계속? 어흐, 그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정신이 확 깨네. 그래, 파트너지. 파트너.”
허나 밍기적거리기도 잠시.
옆에서 소름이 다 돋는 이야기에 벌떡 일어난 그는, 한눈에 빠짐없이 다 들어오는 살림살이들을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혼자서도 미어터지는데. 아무리 애라도 두 명이서 살긴 힘들겠지.’
당장 몸뚱이만 들어와도 화장실 가는 것조차 걸리적거려 죽겠는데.
옷가지에 뭐에 하나둘 챙기다 보면, 밟고 다닐 바닥이나 있을는지.
“안 되겠다. 좀 이따 외출할 거니까, 빨리 준비해. 뭐 할 거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스팸이 뭔지나 알려달란 말입니닷!”
주섬주섬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 하준은, 대충 세면을 마치곤 그득하게 쌓인 포인트를 바라보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필요할 때 팍팍 써야지. 배달 뭐, 한두 번 할 것도 아니고. 포인트야 다시 쌓으면 그만이니까.’
[잔여 포인트 : 195,300p]19만 하고도 5,300포인트.
모두 다 현금으로 바꾸면 거의 20억에 달하는 금액.
아무리 서울 집값이 많이 올랐더라도, 이만하면 자가 하나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터.
“준비 다 했어?”
“…하준 말대로, 뭐 할 거나 있습니깟? 그보다 어딜 가려는 겁니깟?”
“어디긴. 이딴 데 말고 다른 데 좀 가보려는 거지. 이사하면 가구는 뭐로 채울까나.”
끼익-
갑자기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생각을 하니 싱숭생숭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진 하준은,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세면만 마치고 현관 앞에 선 루시오를 데리곤 들뜬 발걸음으로 자취방을 나섰다.
물론 당일 입주는 힘들 테니 당분간은 여전히 이 좁아터진 원룸에서 살아야겠지만, 넓은 데로 곧 이사하리란 사실만으로도 들떴으니까.
“어디 보자. 어차피 두 명이니까 그렇게 넓을 필요는 없을 테고. 24평 정도면 충분하려나? 요즘은 방도 다 세 개니까.”
근데 또 집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댔는데.
혹시 모르니까 화장실도 두 개는 있어야 할 거 같고.
행복한 고민에 빠진 하준은, 솟아오르는 입가를 주체 못 하며 성큼성큼 근처 부동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준, 하준! 정말로 집을 옮기는 겁니깟?”
“왜. 막상 하루 지내보니까 아쉬워? 그새 정이라도 든 거야?”
“…미쳤습니깟? 루시오가 어제 그 푹신한 거 밖으로 몇 번이나 떨어진 지 압니깟?”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곧 기대에 찬 눈빛으로 끼어든 루시오는, 헛소리에 눈살을 찡그리며 아직도 얼얼한 것 같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짜식, 아니면 아닌 거지. 근데 어쩌냐. 설령 오늘 방을 구해도 바로는 못 들어가는데. 아마 어지간하면 한 달은… 응?”
우우우웅-
그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어린 님프의 기대를 박살 내던 하준은,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에 고개를 갸웃하고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뭐야. 딱히 전화 올 데가 없는… 지사장?”
이윽고 화면에 비친 이름을 확인하곤 인상을 찌푸린 그는, 천천히 발을 멈추곤 연락을 받았다.
이제 이 짓거리도 슬슬 그만둔다고 얘기해야 했으니까.
“예, 지사장…”
-야, 이하준! 너 왜 콜 풀렸는데 아직 한 건도 안 받았어? 지금 배달이 몇 개나 밀렸는데. 이러다가 또 저번 분식집처럼 업체 바꾼다고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너 돈 벌기 싫어?
그렇게 배달 일 하면서 별로 괜찮았던 추억은 없었어도, 마무리는 좋게좋게 하자는 마음으로 차분히 입을 열던 찰나.
하준은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꼬장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돈 벌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냐, 이 미친놈아. 근데 벌어도 더 이상 너 같은 새끼 아래에서 벌고 싶진 않다.”
-뭐? 지금 뭐라고… 너 진짜 잘리고 싶어서 그래?
“씨이팔, 자르든지 말든지. 매번 그지 같은 진상들 상대하기도 지겹고, 그럴 때마다 감싸주진 못할망정 쌍으로 지랄하는 니 꼬장 받아주기도 이젠 지쳤다, 지쳐!”
-야, 이하준! 너 이러면 어디 가서 또 배달할 수 있을 거 같아? 너 이 자식아,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리면 이 바닥에서 끝이야, 인마!
가능하면 미운 정으로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건만.
그는 스마트폰 너머에서 점차 격해지는 언성에 나지막이 혀를 차며, 날이 갈수록 앞머리가 자꾸만 넓어지던 지사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네가 그러니까 맨날 머리가 빠지는 거야. 아무리 가게가 중요해도 제 사람도 좀 챙길 줄 알아야지. 틈만 나면 자르니 콜을 끊느니 협박은. 아무튼, 이만 끊는다. 블랙리스트는 뭐, 마음대로 하시고.”
-뭐, 뭐? 야! 인간적으로 머리는 건들지 마라! 머리는…
뚝-
“팍 씨. 어따 대고 짜증을 내고 있어, 짜증을.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하, 하준. 괜찮습니깟?”
“응? 아냐, 아무것도. 배고픈데 집 보기 전에 밥부터 먹으러 갈까?”
끝내 울컥하는 지사장의 목소리를 뒤로 통화를 끊은 하준은, 거친 욕지거리에 기가 죽은 듯 우물쭈물 제 눈치를 살피는 루시오를 보고선.
어색하니 미소를 지으며 마저 걸음을 옮겼다.
‘어휴. 속이 다 시원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