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27)
신들의 배달기사(27)
“그러면 본계약 때 다시 뵙겠습니다!”
“예, 고생하세요.”
딸랑-
어둑어둑 노을이 지는 저녁.
하루 종일 노량진을 돌며 매물을 살피던 하준은, 끝내 개중 하나를 집어 가계약을 마치고선 후련한 표정으로 부동산을 나섰다.
‘이걸로 나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구나.’
집 보러 가선 첫날에 바로 도장을 찍다니.
남들이 알면 며칠은 더 둘러보지, 미련하게 그걸 곧장 계약했느냐고도 하겠지만.
그다지 후회는 없었다.
워낙에 매물이 좋았던지라, 딱히 더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았을 정도였으니까.
“드디어 다 끝난 것입니깟? 더 이상 안 돌아다녀도 되는 겁니깟?”
“그래. 끝났다, 끝났어. 그러니까 피곤하단 소리 좀 그만해라.”
“휴, 하마터면 길바닥에서 잠들 뻔한 것입니닷.”
돌아가는 길.
축 처져선 터덜터덜 걸음이 뒤처지는 루시오를 보며 잠시 자리에 멈춰 선 그는, 방금까지만 해도 아파트를 돌 때마다 신나 죽던 녀석을 떠올리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발발발 뛰어다니니까 금방 지치지.
“그럼 이제 그 도랑만도 못한 데랑은 영원히 안녕인 겁니깟? 하룻밤 코하는 사이에 몇 번이고 데굴데굴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깟?”
“안녕은 무슨. 그래도 한 보름은 거기서 살아야 해.”
“…엣? 그, 그럴 수가.”
하준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다, 곧 세상 무너진 얼굴로 황망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루시오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반응만 보면 이미 원룸에서 몇 달은 산 줄 알겠네.
기껏해야 하루 자놓고는.
“근데, 하준. 오늘 봤던 곳 중에 정확히 어디로 이사하는 겁니깟?”
“…넌 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좋아한 거냐?”
“그야 어딜 가든 지금 사는 곳보단 훨씬 낫지 않습니깟.”
‘…그건 그러네.’
“첫 번째 집. 다른 데도 괜찮은 매물이 몇 개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거기가 제일 낫드라.”
정론에 말문이 막힌 하준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며 조금 전 가계약하면서 본 조건들을 떠올렸다.
입주 가능한 날짜도 제일 빠르고, 역이랑도 가장 가깝고, 관리비도 적당하고, 방도 세 개에 화장실도 두 개나 있고.
무엇보다 시세에 비해 한참 저렴한 것이, 가격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거다 싶었을 정도였다.
‘물론 처음엔 무슨 하자가 있는 줄 알았지만.’
듣자 하니 영끌해서 집을 마련했다가, 이번에 금리가 너무 올라서 더는 못 버틸 거 같다고 했던가.
슬픈 눈으로 그리 말하던 집주인을 보니까, 정말로 그냥 돈이 급해서 급매로 내놨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등기에도 아무런 문제 없어 보였고.
‘운이 좋았지.’
오늘 아침에 막 나온 매물이었다고 그랬던가.
가계약을 쓰는 와중에도 다른 부동산에서 두 번인가 연락이 왔었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로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좀만 늦었어도 이렇게 좋은 집은 구하기 힘들었겠지.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웃이 살짝… 껄끄럽긴 하지만.’
요즘 세상이 뭐, 예전처럼 떡 돌리고 급한 일 있으면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옆집이라고 해서 자주 마주칠 일이야 있겠는가?
게다가 딱히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고 약간 유별날 뿐이니, 그거 가지고 이렇게 좋은 매물을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 저녁은 뭐 먹을래?”
자취방 앞.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건물 앞에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쥐고서 루시오를 돌아본 하준은.
슬쩍 집 근처 가게들을 돌아보며 슬며시 입을 떼었다.
“루시오는, 루시오는 아까 그 짜장면이라는 게 좋은 겁니닷!”
“아니다. 그냥 대충 라면이나 끓여 먹자.”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겁니깟?”
이윽고 침을 꼴깍이며 아까 지나친 중국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다, 돌아온 대답에 허탈한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녀석을 보며.
그는 잠시 고민 끝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마저 원룸을 올랐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중국집은 좀 그렇지.”
* * *
“왜지.”
이른 아침.
전날 집을 보고 와서 그런지, 유독 좁게 느껴지는 원룸에서 깨어난 하준은,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루룹-
“푸하앗! 이곳이 바로 극락인 것입니닷! 그런데 하준, 무슨 고민이라도 있습니깟?”
그의 옆에서 그가 끓인 라면을 먹으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던 루시오는, 퍽 심각한 표정에 잠시 포크를 내려놓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콜이 안 와.”
“…콜?”
“배달 요청이 안 온다고.”
헤파이스토스의 부탁으로 파라오가 있는 피라미드까지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지도 어언 이틀.
하준은 실상 콜이 들어왔던 날을 기준으로 하면 자그마치 사흘 동안 깜깜무소식인 요청에,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설마, 이대로 영영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지금껏 못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콜이 들어왔건만.
예고도 없이 갑자기 툭 끊겨버린 일감에,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꾸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깟? 당장 저번에 같이 갔다 오지 않았습니깟?”
“그러니까, 그 이후로 벌써 이틀이나 지났잖아.”
“…지금 고작 이틀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 떤 겁니깟? 다들 엄청엄청 대단하신 신들께서 누구한테 도움을 구하실 만한 일이, 그리 자주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깟! 루시오만큼 진짜진짜 유능한 님프들도, 몇 달에 한 번 불릴까 말까 한 것입니닷!”
“아니, 그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왔었는데?”
“엣…”
이윽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쏘아대는 루시오의 반응에 머쓱하니 웃은 하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녀석의 말을 곱씹었다.
하긴 보통 하루에 수백수천 개씩 콜이 밀려드는 거야, 노량진 근처만 해도 사람이 수만 명씩 몰려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올림포스에 신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다고 매일같이 콜이 들어오겠는가.
오히려 여태까지 일복이 터졌던 거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아, 아무튼! 굳이 그렇게 콜이 필요한 겁니깟? 하루에 한 번씩이나 다녔으면 그동안 벌어놓은 것도 많을 텐데.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지 않습니깟?”
뒤이어 돌아온 답에 잠깐 당황한 듯 마른침을 삼키는 루시오를 보며, 말없이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흘긴 그는.
곧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랬지. 어제까지는.”
[잔여 포인트 : 193,700p]당장 전날에 가계약금을 치르느라 환전한 포인트를 제외하고 남은 것이 19만 하고도 3,700포인트.
허나 조만간 본계약금에 잔금까지 치를 걸 생각하면, 거의 17만 포인트가량이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가구도 들이고 복비에 이것저것 처리할 비용까지 감안하면, 실상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였고.
“근데, 이젠 아니야. 집 사는 데 다 썼거든.”
“무, 무슨 집이 그렇게 비싼 겁니깟! 그때 같이 봤던 곳 말고, 어디 커다란 궁전이라도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깟? 신님의 부탁을 몇 번씩이나 들어드렸다면 못해도 도랑물… 아니, 개울물 정도는 살 수 있어야 정상이란 말입니닷!”
“낸들 아냐? 서울 집값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해.”
이내 살벌한 집값에 기겁하는 루시오를 보며 어깨를 으쓱인 하준은, 말도 안 된다고 바닥을 탁탁 내리치는 녀석을 내비둔 채.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은 라면 냄비를 들어 올리며 마저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대로 가면 머잖아 삼시 세끼 라면만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야. 알아들었어?”
“사, 삼시 세끼 라면으로 말입니깟? …그러면 좋은 거 아닙니깟?”
텅그렁-
곧 알쏭달쏭한 얼굴로 순진하게 내뱉은 대답에 설거지하던 냄비를 떨군 그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녀석을 돌아보며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하기야 라면도 어제저녁에 처음 먹어본 녀석이니.’
여태껏 도랑이니 개울이니 하던 걸 생각해보면, 대부분을 풀떼기나 먹으면서 살아왔을 터.
그러니 삼시 세끼 라면이란 소리에도, 마냥 좋다고 눈을 반짝일 만했다.
“네가 지금 후식으로 뜯고 있는 사탕도 더는 못 먹는다고.”
“헉! 그, 그 정도로 심각한 거였습니깟?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닷!”
허나 앞으로도 매일 라면만 먹을 생각에 침을 꼴깍이기도 잠시.
후식으로 중국집에서 양껏 받아 온 사탕을 까던 루시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에 헛숨을 삼키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하준, 그럼 이건 어떻습니깟?”
그러곤 꽤 심각한 표정으로 약간의 고민을 마친 녀석은, 금방 각오를 다잡으며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계속 그리 침울해져 있지만 말고, 직접 한번 발품을 팔아보는 겁니닷.”
“그게 뭔 소리야? 발품을 팔다니?”
“뭐냐니, 말 그대로입니닷. 배달이라고 꼭 그 콜이라는 게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란 법이 어디 있습니깟? 차라리 그 시간에 헤파이스토스 님한테라도 가서, 배달이 필요한 신님이나 영웅님은 없는지 여쭤보는 것입니닷!”
“내가, 직접?”
그에 귀를 쫑긋이던 하준은, 과연 그럴싸한 이야기에 나지막이 고개를 주억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이 자식, 제법 쓸 만한데?”
“후후. 이제야 루시오의 가치를 좀 알아보겠… 으앗! 하, 하지 마는 겁니닷!”
매일같이 밥만 축내는 줄 알았더니.
웬일로 도움이 되는 소리에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루시오의 머리를 헝클인 그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망설임 없이 설거지를 마치고 스쿠터 키를 챙겼다.
“가자.”
“…어딜 말입니깟?”
“어디긴, 발품 뛰러 가야지.”
부릉-
털털털털-
이윽고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선 루시오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선 하준은, 곧바로 헬멧을 챙겨 쓰고 스쿠터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하준, 뭐 합니깟? 출발하는 거 아니었습니깟?”
“어, 그게…”
그리고 막 핸들에 손을 올린 찰나.
그는 뭔가 문제라도 생겼는지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있다,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는 어떻게 가는 거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