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28)
신들의 배달기사(28)
“모두 준비됐나?”
“예, 길드장님!”
강남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건물 옥상.
협회 측에서 준비한 헬기가 이륙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공지한 대로 아침 일찍 모인 길드원들 앞에 선 성준은, 간만의 출장에 제법 들뜬 인원들을 보며 퍽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 다들 전해 들었다시피 우리는 해운대 쪽에 새로 생긴 게이트로 향할 거다. 최근에 협회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많이 되는 곳이니만큼, 그간 타르타로스 공략에 매진하는 동안 밀린 실적을 채우기엔 둘도 없는 기회겠지.”
전날 갑작스레 잡힌 일정에, 혹여 사기가 떨어지진 않았을까 했건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모두 눈빛이 초롱초롱하니 내심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하긴, 근래에 계속 실패만 하느라 여기저기 욕만 먹고 다녔으니. 이번에 뭔가 제대로 한번 보여줄 생각을 하면 들뜰 만도 하지.’
이유야 어쨌든, 축 처져서 불만이 들어찬 것보단 의욕이 넘치는 쪽이 좋은 것은 자명한 일.
성준은 곧 어제오늘 협회로부터 전달받은 내용들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타르타로스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다들 방심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릴 수 있도록. 이번 게이트 또한 A급 여섯을 필두로 한 공략조조차 포기하고 나왔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니까.”
앞서 들어간 공략조의 증언과 그들이 채취해 온 사료들을 바탕으로 분석한 전문가들의 얘기에 따르면, 해운대에 생긴 게이트의 레벨은 못해도 7 이상.
세계 최악의 던전으로 소문난 타르타로스가 레벨 9, 일전에 클리어된 화제의 화과산이 팔괘로의 존재만으로 레벨 7 판정을 받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자칫 팔괘로에 버금가는 난이도의 보스가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었다.
“…A급이 여섯이나 붙었는데 실패했다고?”
“그 정도면 타르타로스 이래로 역대 최대 규모 아니야?”
“부산에서 우리한테까지 넘어온 것만 봐도 마냥 쉽진 않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잇따른 공략 실패와 기약 없이 반복되는 훈련에 지쳐, 오랜만에 활약할 건수를 반기던 길드원들은.
성준의 충고에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른침을 삼켰다.
A급 헌터가 여섯.
전력으로 따지자면 이쪽은 입원 중인 팀장을 제외하더라도 랭커만 둘에, 팀원 중에서도 A급이 둘이나 끼어있는 만큼 감히 비교할 바가 못 됐지만.
공략 완료가 아닌 중도 포기라는 건 못해도 공략조의 수준보다 게이트 난이도가 더 높았다는 뜻이고, 저들이라고 꼭 공략하리란 보장은 없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먼저 들어간 공략조에서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종류나 특징, 함정의 위치나 대략적인 지형 등은 대충 파악해놨다는 모양이니까. 게다가 그쪽에서도 인원이 더 붙을 테고.”
그에 어젯밤 대략적으로 전해 받은 자료들을 상기한 성준은, 격려하듯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이전 공략조가 가장 애를 먹었다고 보내온 부분이, 단번에 많은 수의 헌터들이 활동하기 힘든 좁은 복도식 지형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열 명 남짓한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저들 입장에선, 도리어 본래 난이도보다 더욱 쉽게 공략할 요소가 될 수 있을 터.
아직 자신도 모든 정보를 전달받은 것은 아닌지라,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들은 내용만 보자면, 딱히 실패할 건덕지가 없는 여정임은 분명했다.
다만 얼마나 피해 없이 완벽하게 공략을 마치느냐의 차이일 뿐.
“아무튼,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부산에서 듣도록. 그럼 이만, 출발하지. 백아린!”
“…응.”
끝으로 잠시 내려놓았던 짐을 챙긴 그는, 뒤에서 말없이 멀뚱히 얘기를 듣고 있던 백아린을 데리고서 먼저 헬기로 올라탔다.
“아린아. 아까 그 말, 사실이야? 전에 편의점이랑 올리브형에서 봤다던 그 사람이, 어제 너희 집 옆으로 이사 왔다는 게.”
이윽고 옥상에 올라오기 전, 로비에서 마주친 그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 성준은.
2팀과 3팀이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끝내 찾지 못했던 스쿠터남의 행방에 눈을 번뜩이며, 속삭이듯 말을 붙였다.
그간 타르타로스에서도 그렇고, 도윤을 보냈던 서리갱도와 화과산에서도 그렇고.
묘하게 자꾸 그와 연이 닿는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다시 마주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이사 아냐. 집만 봤어.”
그 물음에 잠깐 고민하듯 우물거리던 아린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그때 그 남자와 같이 있던, 어딘가 신비한 분위기의 어린아이.
녀석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보채던 걸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꼭 그리로 이사 오란 법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오면 좋을지도.’
뒤이어 곰곰이 그때의 일을 되짚어보던 그녀는, 곧 몽글몽글 솟는 기대감에 가슴을 부풀렸다.
도윤의 병문안에서 전해 듣길, 그 혼자 팔괘로를 아주 아작을 내버렸다고 했던가.
만일 이웃이 된다면 가끔가다 한 수 배워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저도 몰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어쨌든 어제 집 앞에서 봤다는 거지?”
“응. 그건 확실.”
“됐어. 그거면 충분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 무표정한 녀석이 입꼬리를 씰룩이는 건지.
잠시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아린을 지켜보던 성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해냈다는 듯 주먹을 꾹 쥐었다.
이번 공략이 끝나고 나면 어디서 그의 소재를 찾아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그동안 집을 보러 다녔다면 어떻게 알아낼 방법이야 차고 넘쳤으니까.
아무래도,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었다.
* * *
똑똑-
“계세요?”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친숙함이 느껴지는 오두막 앞.
루시오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올림포스로 올라온 이하준은,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헤파이스토스를 찾았다.
“하, 하준. 정말로 이렇게 마음대로 신님을 찾아도 괜찮은 겁니깟? 따로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이랬다가 천벌이라도 받으면 어떡합니깟?”
“인제 와서 무슨 소리야. 여기 오는 법도 네가 다 알려줘 놓고. 사탕 먹기 싫어?”
“…그치만, 그치만 너무 불경스러운 것입니닷!”
안에서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그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흘끔흘끔 저를 살피는 루시오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자기만 믿으라면서 길 안내도 척척 하던 녀석이.
사흘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그저께 보상을 받으러 다시 이곳에 들렀을 때도 그렇고.
왜 헤파이스토스 앞에만 서면 이리 긴장을 하고 다소곳해지는 건지 의문이었다.
‘파라오의 면전에선 빠꾸없이 아줌마라고 박아버리더만. 그쪽은 순혈이 아니라서 그런가.’
끼이익-
“아침부터 누구요? 따로 연락도 없이… 으응? 형씨?”
“오랜만이십니다, 헤파이스토스 님!”
고민도 잠시.
하준은 자고 있었는지 비몽사몽인 얼굴로 문을 여는 헤파이스토스를 보고선, 반가운 미소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래는 무슨, 본 지 이틀밖에 안 됐구만. 그보다 여긴 웬일이요? 난 오늘 부른 적이 없는데. 혹시 내 앞으로 배달 온 물건이라도 있는 거요?”
그에 알쏭달쏭한 눈으로 가만히 하준을 쳐다보던 헤파이스토스는, 금세 은근히 기대에 찬 표정으로 슬그머니 그의 손을 살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저, 괜찮으시면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부탁? 으하하! 암, 그럼 괜찮고말고! 내 그간 형씨한테 신세 진 게 얼만데, 안 될 게 뭐가 있겠수?”
“그, 그렇죠? 하하하! 역시 헤파이스토스 님이라면 흔쾌히 받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부스럭-
이윽고 조금씩 내려가는 시선에 어색하니 뒤로 손을 숨긴 하준은.
조심스레 건넨 질문에 호탕한 웃음으로 받아주는 그를 보고선, 다행이란 미소와 함께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에 하나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역시 사내대장부다운 생김새만큼이나 참 의리 있고 통이 큰 사람… 아니, 신이었다.
“그래서, 그 부탁이란 게 뭐요? 어디 고치고 싶은 물건이라도 있수? 아니면 이건 공짜로 해주기는 좀 그렇긴 한데, 뭐 만들어줬으면 하는 장비라도 있는 거요? 어느 쪽이든 일단 말만 해보쇼! 내 힘닿는 데까지는 꼭 도와줄 테니.”
“아휴. 그래도 제가 설마하니, 그렇게 염치없는 부탁이나 드리러 왔겠습니까? 근데 그, 말씀드리기 전에. 아무래도 빈손으로 찾아뵙는 건 영 아닌 거 같아서, 뭐라도 좀 챙겨 와 봤는데…”
뒤이어 양팔을 걷어붙이며 의욕을 보이는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은 하준은, 슬쩍 빼놓았던 손을 다시 앞으로 내밀며 아까부터 뽀시락거리던 비닐봉지를 건네었다.
“크흠. 뭐 이런 걸 다… 아, 아니! 이건!”
곧 묵직하니 받아 든 비닐을 조심히 열어본 헤파이스토스는, 짤그랑거리며 서로 부딪히는 녹색 유리병들을 보고선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전에 사모님 몰래 드렸던 거로는 양이 조금 부족하실 거 같아서. 제 작은 성의입니다.”
소주.
뚫어져라 저를 쳐다보는 시선에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인 하준은, 방금 전에 노크하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비닐봉지 두 개를 보란 듯이 들어 올리며 살짝 흔들었다.
“으하하핫! 아이, 거참.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아니,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계속 그렇게 밖에만 서 있지 말고, 우선 안으로 좀 들어오쇼.”
“아, 네. 실례하겠습니다.”
이내 함박웃음으로 저를 반기는 헤파이스토스를 따라 오두막에 들어선 그는, 문이 열린 뒤로부터 쭉 멍하니 저들을 지켜보고 있던 님프를 돌아보며 어서 안으로 오라 손짓했다.
“뭐 해? 빨리 안 오고.”
“엣? 자, 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다 안 된 겁니닷!”
쿵-
“헤, 헤파이스토스 님의 작업실에 두 번이나 발을 들이다니. 더없는 영광인 것입니닷!”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신발 벗고. 그렇지.”
무얼 그리 또 낯을 가리는지 꾸물거리는 루시오를 붙잡고 현관 안쪽으로 끌어당긴 하준은, 금방 문을 닫아버리고선 녀석을 챙겨 헤파이스토스가 기다리고 있는 거실로 향했다.
“해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 거요?”
곧 어떻게 들어오긴 했지만 뻣뻣하게 굳어버린 루시오를 뒤로하고 자연스레 헤파이스토스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하준은, 아직도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은 그를 보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하, 그게 말이죠. 별건 아니고, 근처에 배달이나 뭐, 어디 일손이 필요한 신님이 좀 계실까 해서요.”
“…배달이 필요한 신 말이요?”
돌아온 대답에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인 헤파이스토스는,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며 곰곰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자신한테 부탁이 있다기에 당연히 대장장이 일과 관련이 있을 줄 알았건만.
“으음, 그런 거라면 딱 생각나는 신이 한 명 있긴 한데.”
“있긴 한데?”
“…하, 이거 참. 괜찮으려나 모르겠구만. 나도 영 대하기가 껄끄러운 양반이라.”
짧은 고민 끝에 결국 누군가를 떠올린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하준을 보고선 퍽 난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 그를 소개해줘도 괜찮은 걸까,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리로 한번 가보쇼. 혹시라도 그쪽에서 어떻게 알고 온 거냐고 따지면, 주저하지 말고 꼭 내가 가르쳐줬다고 하고 말이요.”
“아, 예! 그런데, 저기…”
금방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이 들어오는 스마트폰 화면 위로 찍히는 내비를 보고선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어딘가 곤란해 보이는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을 살피고선, 조심스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러는 겁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