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3)
신들의 배달기사(3)
“음.”
5평 남짓한 작고 추레한 원룸 안.
고생 끝에 하루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하준은, 프레임도 없이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엘리베이터도 고장 났는데 28층에서 배달을 시켜놓고, 기껏 힘들게 찾아갔더니 왜 늦었냐고 지랄이던 미친년.
그것도 모자라서 별점 테러로 기어코 일주일간 콜을 금지당한 내 신세.
일감이 막히기 전에 잽싸게 콜 하나를 주웠더니, 스쿠터랑 함께 웬 이상한 곳으로 떨어져 있지를 않나.
어디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에,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로 배달을 맡게 되질 않나.
마치 온종일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눈앞에 비치는 이 알 수 없는 글귀 때문에,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말이다.
[잔여 포인트 : 1,000p]꾸욱-
“악! 쓰읍… 아무리 봐도 꿈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제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꼬집은 볼때기에 느껴지는 고통이 생생했다.
-배탈 팁? 아, 수고비 말이구만! 그럼, 줘야지. 줘야 하고말고! 자, 여기 있수!
하준은 자신을 헤파이스토스라고 소개한 남자에게 막 배달 팁이랍시고 요 포인트를 받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난데없이 허공에 웬 반투명한 창이 뿅 하고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동시에 바깥에 세워져 있던 스쿠터와 함께, 원래 신호에 걸려 있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으로 이동되어 있었으니.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이걸 대체 뭐 어떻게 쓰라고 준 거야?”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누워 있다 곧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내고 정신을 차린 그는, 결국 사용처도 모르겠는 이 요상한 물건을 보고선 눈살을 찌푸렸다.
배달 팁은 당연히 돈으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기왕 얼굴까지 본 거 자기도 헌터로 좀 만들어주던가.
‘내가 뭐 그렇게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적당히 최강 S급 헌터 정도로만 만들어 줬으면 됐는데.’
띠링-
“흐억!”
그러던 중.
속으로 투덜거리기 무섭게 귓가에 울리는 알림에 화들짝 놀란 하준은, 괜히 찔리는 마음에 벌떡하고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슥 훑었다.
“어후, 깜짝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다행히 별 이상 없이 평소와 같은 자취방에, 또다시 눈앞으로 떠오른 메시지.
[포인트는 상점을 통해 다양한 물건으로 교환하실 수 있습니다.] [상점을 이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상점?”
천천히 반투명한 창 안에 적힌 글귀들을 읽어 내려간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예’라고 적혀 있는 부분을 향해 손가락을 옮겼다.
띠링-
[포인트 상점]-황금 사과[1,000p]
-납 화살[10,000p]
-황금 화살[50,000p]
-스쿠터[100,000p]
“에이 씨, 뭐야 이게.”
알림과 함께 주르륵 떠오르는 목록들.
오른쪽에 놓인 스크롤을 내려가며 물건을 살피던 하준은, 금세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뭐 대단한 거라도 좀 파나 싶었더니, 웬 사과에 화살에.
별로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가격은 또 왜 이렇게 비싼지, 힘들 게 30분을 달려서 벌어먹을 500포인트로는 뭐 하나 살 수 있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에휴. 내가 또 그 이상한 데 가서 배달해주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짐승이다, 짐승!”
한순간에 사람을 스쿠터랑 같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불러들이는 거로도 모자라, 한 모금만 마셔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음료를 가지고 있던 걸 보면 보통 대단한 인물들이 아니었을 터.
그만큼 잠시나마 그들의 배달을 도와주고 받은 포인트 또한 굉장한 값어치를 가지고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스쿠터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몰라도, 그게 10만 포인트나 하는 걸 보니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어?”
그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막 상점을 닫으려던 찰나.
스크롤 맨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하준의 손가락이 우뚝 멈춰 섰다.
-10,000원[1p]
단 1포인트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가격.
그리고 그 옆에 적혀 있는 어딘가 익숙한 기호가 달린 숫자.
“이, 이거 설마!”
그는 다시금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허공에 손을 옮겼다.
툭-
이윽고 팔랑거리며 제 머리 위로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든 하준은, 얇은 종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세종대왕님의 영롱한 자태를 보고선 감격에 찬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잔여 포인트 : 999p]목록에 적혀 있던 대로 정확히 1만큼 줄어든 포인트와, 지금 제 손에 들려있는 만 원짜리 지폐.
“…혹시 가짜 돈은 아니겠지? 알고 보니 흥국은행이라던가.”
이게 꿈이야 생시야.
믿기지 않는 광경에 이리저리 돈을 살펴보던 그는, 이내 지갑에 있던 다른 만 원짜리와 비교해 봐도 일련번호 빼곤 다른 것 하나 없는 지폐를 보고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쓰! 해냈쓰!”
1포인트에 만 원.
그러면 1000포인트는 얼마겠는가.
고작 배달 한 번에 1000만 원을 벌어먹다니.
어느덧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하준은, 주섬주섬 지갑에 돈을 챙기며 구름 위에 사는 고객님께 속으로 감사인사를 올렸다.
-최근 헌터 시험에서 역대 5위에 달하는 성적을 거두며 합격한 신화 계열의 헌터, 임현성 씨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거대 길드간의 경쟁이 화제가 됐던 가운데. 국내 최고이자,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는 ‘영원’에서 임현성 씨의 영입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당분간 돈 걱정도 덜었겠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리모컨을 잡은 그는,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식을 들으며 다시금 침대에 몸을 눕혔다.
-지난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로 임현성 씨는 그리스 신화의 열두 주신 중 하나인 헤파이스토스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영원에서는 이번 영입을 통해 세계 최악의 난이도로 알려진 던전인 타르타로스의 공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응? 잠깐만, 헤파이스토스?”
쏟아지는 졸음에 TV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려던 하준은, 어딘가 익숙한 이름에 눈을 깜빡이며 오두막 안에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이야, 어쩐지. 용안부터 딱 남자답게, 배포 있게 생기셨다 했더니. 신들 사이에서도 한가락 하는 분이셨구만!”
자기가 방금 전에 만나고 왔던 두 사람이 실은 신이었을 줄이야.
놀랍긴 했지만 그렇다고 뒤로 자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몰랐다지만, 돌아와서는 어렴풋이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포인트도 그렇고, 예고도 없이 사람을 데려다가 스쿠터랑 같이 요상한 공간으로 부르고 돌려보내는 것도 그렇고.
애당초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띠링-
-배달의 만족, 주문!
혼자 고개를 주억이며 납득하기도 잠시.
알림과 함께 밝아지는 휴대폰 화면 위로 떠오르는 콜을 발견한 하준은, 망설임 없이 수락 버튼을 연타하며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멍, 멍!”
* * *
“아이고, 이번 고객님은 어디에 계시려나.”
번쩍-
콜을 받기 무섭게 방 안을 온통 새하얗게 물들일 기세로 터져 나오는 빛에 질끈 눈을 감았다 뜬 하준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스쿠터와 함께 낯선 곳에 떨어진 자신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와. 여긴 무슨 식물원인가?”
두 번째로 겪는 일이라 그런지 덤덤하게.
아니. 도리어 기대에 찬 표정으로 주변을 슥 둘러본 그는, 사방에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어디 보자. 응? 바로 근처네.”
바람을 따라 불어오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네비를 확인한 하준은, 바로 30m 뒤에 찍혀 있는 픽업지를 보고선 몸을 돌렸다.
“이이하준 씨? 데메테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 예. 반갑습니다.”
데메테르.
몇 시간 전에 궁전에서 봤던 헤베와는 달리 조금은 나이 들어 보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여인을 마주한 그는, 푸근한 미소와 함께 건네 오는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근데 이이하준이 아니라 이하준인데… 뭐, 아무렴 상관없나.’
“조금 전에 조카한테서 이야기 들었어요. 대신 물건을 배달해주신다고.”
“…조카요? 아, 아! 예. 맞습니다.”
조카.
그 말에 순간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을 떠올린 그는, 곧 어색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그 헤베와도 남매지간이랬는데, 이쪽이랑 사촌지간인 것 정도야 뭐.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후후. 그러면 이 도시락 좀 딸아이한테 배달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 같아선 제가 직접 가져다주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저희 신들은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지라. 원래는 이런 부탁도 함부로 하면 안 되지만, 넥타르도 욕심 없이 전해준 하준 씨라면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데메테르는 그 모습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하준에게 건넸다.
“하하! 물론이죠.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이하준이 책임지고 따님께 배달해드릴 테니까요.”
그에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물건을 받아든 이하준은, 또 배달 한 번에 큰돈을 벌어들일 생각에 히죽이며 스쿠터로 돌아가 도시락을 챙겼다.
번쩍-
‘흐흐. 이번엔 몇 포인트나 받을 수 있으려나.’
동시에 밝은 빛에 휩싸여 자취방으로 돌아온 그는, 벌써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진 것만 같은 기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부릉-
털털털털-
곧바로 배달통을 열어 도시락을 확인한 뒤 시동을 건 하준은, 배달지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고선 네비를 살폈다.
“…응?”
노량진역 근처에서 20분 남짓한 거리.
한강대교를 건너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를 살핀 그는, 한때 신촌역이 있던 자리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파란색 마크를 보고선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아니, 잠깐만. 이건 아니지. 그 딸내미가 이런 데 있을 줄 알았으면 콜 안 받았지!”
왜냐면 그곳은, 지금 전 세계에서 최악의 난이도로 알려진 헌터들의 무덤.
던전, 타르타로스가 위치한 곳이었으니까.
“안 해. 나 배달 못해.”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돈 천만 원에 목숨을 건단 말인가.
하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핸들에서 손을 떼고 스쿠터에서 내렸다.
띠링-
아니, 내리려고 했다.
“하.”
밝은 알림과 함께, 메시지 하나가 제 눈앞에 떠오르기 전까진.
[데메테르의 도시락이 식기 전에, 무사히 배달을 완료하십시오.] [제한시간 : 1시간] [주의 * 배달에 실패하거나 포기할시 천벌을 받게 됩니다.] [배달 팁 : 10,000p]“…좆됐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