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30)
신들의 배달기사(30)
띠링-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하준, 정말로 이쪽으로 가는 거 맞습니깟?”
케이론의 부탁을 받고서 숲을 나선 지도 어언 반나절 남짓.
어둑어둑 해가 다 저물어 갈 즘에 높다란 산 앞에 선 하준과 루시오는, 올려다보기만 해도 벌써 눈앞이 아찔해지는 경사에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글쎄. 일단 내비는 그렇다는데.”
깎아 내지른 듯한 절벽 위를 가리키고 있는 주황색 픽업 마크.
하준은 꼭 이 암벽을 타야만 한다는 듯, 몇 번이고 경로를 재설정해 봐도 똑같은 길만 알려 주는 화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때처럼 제한시간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냥 안전하게 돌아서 가면 안 되는 걸까.
도대체 케이론이 말한 동굴이라는 게 이 앞 어디에 있는 건지는 몰라도, 왜 굳이 이렇게 위험한 경로를 가르쳐 주는 건지 의문이었다.
“거참 이상하네. 정말 여길 타고 오르라고? ⋯근데, 넌 거기서 뭐 하냐.”
어쩌면 지난 피라미드 때처럼 숨겨진 길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내비상으로는 전방 몇 미터 앞이라고만 나와 있었기에 혹시나 싶어 벽을 더듬던 그는, 마찬가지로 옆에서 여기저길 꾹꾹 눌러보고 있는 루시오를 보고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보면 모릅니깟? 같이 찾아주고 있는 겁니닷!”
“…아니, 그쪽은 안 봐도 될 거 같은데.”
설마하니 여기도 무슨 님프랑 관련이 있으리라고, 스위치가 있어도 녀석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겠는가.
이만 됐다는 듯 천천히 손을 내저은 하준은, 가만히 루시오를 내려다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보다 잠깐 저 위에 가서, 동굴이 있나 좀 확인해봐 봐.”
“…엣? 루시오가 말입니깟?”
“그럼 네가 가지 내가 가랴? 등에 날개 있잖아. 한 번 날아서 쓱 둘러보고 오면 되지.”
아무런 표시도 없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벽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장치를 찾는 것보단, 차라리 누군가 절벽 위를 살펴보고 오는 게 더 빠를 터.
마침 날 수도 있겠다, 루시오를 보내보기로 한 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저 자신을 가리키는 녀석을 보고선 고개를 주억였다.
“이, 이렇게 깜깜한 곳에서 날면, 삐죽 튀어나온 나뭇가지 같은 데 걸릴지도 모르는 것입니닷!”
이윽고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는 루시오를 보며.
하준은 슬그머니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곤 부르르 몸을 떠는 놈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밤중에 혼자 떨어지는 게 무서운 건 아니고?”
“…아닙니닷! 루시오 같은 초엘리트 님프가, 고작 캄캄하다고 겁먹을 리가 없지 않습니깟! 진짜진짜, 하나도 안 무서운 겁니닷!”
“오호. 그으래?”
아니긴, 무드등을 안 켜면 무섭다고 밤에 잠도 못 자는 녀석이.
애써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팔짱을 끼는 님프를 본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시오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워!”
“히야아악! 뭐, 뭐 하는 겁니깟! 하준이 무슨 어린애입니깟?”
무서운 거 맞구만 뭘.
“아무튼.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빨리 다녀와. 뭐가 나올 거면 진즉에 나왔을 테니까.”
“…그야 하준은 당연히 괜찮지 않겠습니깟? 가도 루시오가 가는 거니깟.”
이내 깜짝 놀란 루시오를 달래며 절벽 위를 가리킨 하준은, 뾰로통한 눈빛으로 저를 쏘아보는 녀석을 보고선 슬쩍 주머니를 뒤적였다.
하여간, 까탈스럽긴.
그래도 언젠간 이럴 줄 알고, 다 방안을 마련해놨지.
부스럭-
“자. 끝나면 사탕 줄게, 사탕.”
보란 듯이 쭉 펼친 손바닥 위로 놓인 달콤한 과일 맛 사탕.
만난 지 나흘 새에 눈앞의 님프 다루는 법을 완벽히 깨우친 하준은, 아닌 척하면서도 힐끔힐끔 돌아가는 눈길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시오가 뭐, 사탕만 주면 다 말 잘 듣는 어린애인 줄 아는 겁니깟?”
그럼 지가 어린애지 어른인가.
그렇게 사탕과 자존심 사이에서 한참을 저울질하다, 끝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휙 고개를 돌리는 녀석을 본 하준은,
하는 수없이 다시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움큼 사탕을 집어내 말을 이었다.
“열 개 줄게.”
“금방 갔다 오는 겁니닷!”
“⋯.”
빠르네.
툭-
“하준.”
“어, 왔어? 동굴은?”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그동안마저 벽을 훑으며 장치 같은 게 있을까 둘러보던 하준은, 생각보다 빨리 올라갔다 온 루시오를 보며 답을 기다렸다.
“그, 있긴 있었던 것입니닷. 중간에.”
“중간?”
위에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지, 중간이라니.
알 수 없는 말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던 하준은, 곧 무언가를 떠올리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절벽 한가운데에 동굴이 뚫려있었다는 거야?”
“그렇습니닷.”
하필이면 이 가파른 절벽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니.
돌아온 대답에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은 그는, 마침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돌 부스러기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래서 경로가 하나밖에 안 잡힌 거였구만. 돌아서 산을 오른다 해도 어차피 절벽을 타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
“그래서, 어떡할 겁니깟?”
“어쩌긴 뭘 어째.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속으로 긴장도 잠시.
걱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인 하준은, 금세 마음을 다잡고서 절벽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정말 괜찮은 것입니깟? 자칫 삐끗하면 아야 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 겁니닷!”
“에이, 괜찮아. 혹시 떨어져도 뒤에서 누가 받아주겠지.”“…그게 됐으면, 애초에 루시오가 하준을 안아서 옮기지 않았겠습니깟?”
말이야 될 대로 되라 싶어도,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객기를 부리려는 건 아니었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구매를 유도하듯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띠링-
[Tip * 배달이 잘 풀리지 않을 땐, 포인트 상점을 이용해보세요. 쓸 만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그 팁에 적힌 대로, 상점에 쓸 만한 물건이 준비되어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포인트 상점]-황금 사과[1,000p]
-납 화살[10,000p]
-황금 화살[50,000p]
-스쿠터[100,000p]
곧바로 상점을 켠 하준은, 쭉 나열된 목록을 둘러보며 필요한 상품을 찾았다.
이게 무슨 돈 넣고 돈 먹기도 아니고,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 포인트를 써야 한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배달만 마치고 나면 다 메꾸고도 남을 금액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번 건으로 그간 수많은 영웅을 길러냈다는 케이론의 마음에 들 수만 있다면.
언젠간 그의 제자들 또한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고.
‘어디 보자. 분명 이 어디쯤 있었는데… 아, 찾았다.’
이윽고 한참 동안 스크롤을 내리던 그는, 곧 원하던 물품을 발견하고선 허공을 훑던 손을 멈춰 섰다.
-캐내는 자의 곡괭이[5,000p]
-오르는 자의 곡괭이[5,000p]
지난번에 서리 갱도에서 만년한철을 캐낼 적에 구매했던 캐내는 자의 곡괭이.
그 아래에서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은 하준은, 천천히 손가락을 옮겨 자세한 정보를 살펴보았다.
[오르는 자의 곡괭이]-살아생전 어디든 오르지 못하는 곳이 없었던, 위대한 등반왕의 곡괭이.
-그 어떤 산이든 절벽이든, 딱 한 번 반드시 오를 수 있게 도와준다.
(남은 사용횟수 : 1)
캐내는 자의 곡괭이와 마찬가지로, 일회용에 단순명료하기 짝이 없는 효과.
말없이 눈을 돌려 코앞의 절벽을 다시 올려다본 그는, 이내 망설임 없이 구매를 이어나갔다.
[잔여 포인트 : 188,700p]툭-
“하, 하준! 방금 봤습니깟? 갑자기 곡괭이가 뿅 하고 생겨난 겁니닷!”
뒤이어 아까부터 멍하니 허공에다 대고 손가락을 휘적거리던 하준을 이상하게 지켜보던 루시오는, 난데없이 그의 앞에 나타난 곡괭이를 보고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흡사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듯한 그 광경은, 마치 신들이 쓰는 권능과 같았으니까.
“내가 샀어. 방금.”
“샀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깟?”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녀석을 무시하곤 바닥에 떨어진 등반용 곡괭이, 피켈을 집어든 하준은.
곧장 팔을 걷어붙이고선 있는 힘껏 절벽에 날을 박아 넣었다.
콰악-
“허억, 헉…”
이후, 두 피켈을 번갈아 휘둘러가며 절벽을 오르길 수십 분.
루시오의 안내를 따라 기어코 툭 튀어나온 동굴 입구에 도착한 그는, 쓰러지듯 대자로 바닥에 드러누워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헐떡였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가격도 비싼데, 힘은 힘대로 다 써야 한다니.
딱 한 번이긴 해도 어디든 반드시 오르게 해준다는 말마따나, 제 몸이 저절로 전문 산악인 뺨치게 움직여주긴 했지만.
팔 아파 죽을 거 같은데도 멋대로 계속 등반을 강행당한 고통은, 감히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준, 정말로 고생 많았던 것입니닷.”
“오냐. 너도 수고 많았다.”
파삭-
이어서 횟수를 다해 재가 되어 부스러지는 곡괭이를 뒤로하고 충분히 휴식을 마친 하준은, 높이가 족히 20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입구를 바라보며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좋아. 이제 저 안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녀석한테, 침만 받아오면 된다 이거지?”
이제 막 앞에 섰을 뿐인데, 벌써부터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 깜깜한 동굴 안.
“빨리 하고 돌아가자. 팔에 근육통 오기 전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케이론에게서 받은 시험관을 꺼내든 그는, 스마트폰 라이트로 안쪽을 비추며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저벅-
“하, 하준. 아직 멀었습니깟?”
“…그러게. 생각보다 동굴이 깊은가 본데.”
그 뒤로 한 걸음 한 걸음, 컴컴한 어둠 속을 헤쳐 나가길 30분 즈음.
갈수록 더해지는 공포감에, 이젠 거의 매달리듯 제 팔을 꼭 붙잡은 루시오를 반쯤 질질 끌던 하준은.
과연 슬슬 도착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에 고개를 갸웃하며, 내비를 들여다보았다.
똑-
“히야악!”
“흐억! 까, 깜짝야. 뭘 물 떨어지는 소리 가지고 그렇게 놀라고 그래? 난 또 뭐 괴물이라도 나온 줄 알았네.”
허나 꺼진 화면에 패턴을 풀고서, 남은 거리를 확인해보기도 잠시.
옆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덩달아 흠칫한 그는,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은 녀석을 일으켜 세우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차, 차라리 어두운 것보단 눈에 보이는 괴물이 더 나은 겁니닷. 이러다 심장이 남아나질…”
“쉿. 잠깐만.”
치이익-
직후, 속삭이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푸념을 늘어놓는 루시오의 입을 막은 하준은.
무언가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내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스스슷-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듯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 불빛을 받아 옅게 빛나는, 거칠고 단단해 보이는 비늘덩이.
그리고 사람 따위야 간단히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벌어진 주둥이 위로, 날카롭게 자리 잡고 있는 두 송곳니.
또 무엇보다 하나하나 거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덩치와,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는 시뻘건 눈동자.
“…아이 씨.”
그만 허공에 떠오른 아홉 쌍의 눈과 시선을 마주쳐버린 하준은, 무슨 동네 마실 나가듯 쉽사리 부탁을 던지던 늙은 켄타우로스를 떠올리며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