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40)
신들의 배달기사(40)
“저깁니다.”
쏴아아-
파도가 새하얗게 부스러지는 모래사장.
이아손을 따라 배들이 들어선 항구를 지나쳐, 조금 멀리까지 나온 하준은.
저 앞에 깎아 내지른 듯한 절벽을 가리키는 그를 보고선, 괜찮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아이고! 저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죠. 세이렌인지 뭔지, 그건 이제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고객님은 이만 걱정 붙들어 매시고, 돌아가서 푹 쉬고 계십쇼.”
이 돈 많고 멀끔한 영웅에게서 받은 부탁은 바로, 요 근래 항로에 나타나 선박 운행을 방해하는 세이렌들을 모두 처치해달라는 것.
얘기만 들으면 그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놈들을, 도대체 어느 세월에 다 찾아서 때려잡아야 하나 싶겠지만.
다행히 녀석들이 서식하는 해안 동굴의 위치는 모두 이아손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는 하준 씨만 믿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 새벽까지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편히 들어가십쇼!”
이윽고 안내를 마치고 걸음을 돌리는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배웅을 끝낸 하준은.
이제 지도를 보고서 동굴을 찾아 세이렌들을 때려눕히기만 하면 끝나는 일에, 싱글벙글 입꼬리를 올리며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 반대편에 그 괴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이거지?’
“…뭐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렇게 내비를 보며 경로를 확인하곤 길을 따라 막 발을 옮기려던 찰나.
아까부터 따끔거리는 뒤통수에 머리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 그는, 어딘가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루시오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닷. 그런데 하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입니닷. 세이렌이 정확히 뭔지는 아는 겁니깟?”
“세이렌? 에이, 그 정도는 나도 알지. 인어잖아, 인어.”
누구를 참 바보로 아나.
녀석의 물음에 전에 읽었던 세이렌의 특성을 떠올린 하준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그시 저를 살피는 놈을 보며.
전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노랫소리로 사람을 홀려서 바다에 몸을 던지게 만드는 놈들이었던가.
그쯤이야 뭐, 히드라나 팔괘로 같은 거물들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지.
“에휴. 그러면 그럴 줄 알았습니닷. 세이렌을 보고 그냥 인어라니. 누가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칠 얘기인 것입니닷!”
허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루시오를 마주한 하준은, 이어서 잘 들으라는 듯 세이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녀석을 보고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세이렌이 정말 노래만 좀 할 줄 아는 인어라면, 그 아테나 님의 총애를 받던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 님조차 괜히 싸워보지도 않고 밀랍으로 귀를 막고서 피하려 들었겠습니깟? 녀석들은 수중전의 달인. 여럿이 모이면 그 바다 괴물 크라켄도 순식간에 문어숙회로 만들어버린다는 해상 최강의 전사들인 것입니닷!”
해상 최강의 전사, 세이렌.
과연 듣다 보니 썩 그럴싸한 얘기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린 그는.
그 말마따나 이아손 또한 직접 놈들을 치우지 않고, 오르페우스를 시켜서 리라로 쫓아내기만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긴,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보상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겠지.’
모름지기 세상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는 법.
저 또한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금액에 홀린 듯이 부탁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번 콜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쯤은 대강 예상하던 바였다.
“루시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내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저를 올려다보는 루시오를 보며.
하준은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과 함께, 씨익 입가를 끌어 올렸다.
띠링-
[포인트 상점]-황금 사과[1,000p]
-납 화살[10,000p]
-황금 화살[50,000p]
-스쿠터[100,000p] [잔여 포인트 : 288,700p]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건 없으니까.”
포인트 상점.
평소 같았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해결법이었지만, 이번엔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탈탈 털어도 괜찮을 만큼 두둑한 보상이 예정되어 있었다.
‘10만 포인트짜리 스쿠터가 그 정도 성능인데. 20만이면 뭐, 뭍에 올라온 인어들 정도야 떡을 치고도 남겠지.’
해상 최강의 전사니 뭐니 해봐야, 결국 세이렌들이 머무르고 있을 곳은 절벽 아래에 숨겨져 있는 해안 동굴 내부.
안쪽에 고인 물이 조금은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놈들이 자랑하는 그 해상전은 애초에 시도조차 불가능할 터.
혹시나 녀석들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만 잘 조심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을 터였다.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나한텐 이게 있으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만 발걸음을 마저 옮긴 하준은, 아까 해변가에 대놓은 스쿠터에서 가지고 내린 물건을 꾹 쥐며 미소를 지었다.
아레스에게서 보상으로 타낸 나무 몽둥이.
케이론한테서 받은 활이야 화살이 없어서 당장 쓸 수는 없겠지만, 이거라면 지금이라도 대충 들고 휘두를 수 있었다.
겉으로는 그냥 등산하다 주운 아무 나뭇가지처럼 생겼지만, 이래 봬도 엄연히 신이 내려준 무구.
그것도 신들의 왕 제우스가 그리 아끼던 보물이니만큼, 세이렌쯤이야 단방에 스틱스강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터였다.
“하준? 하준!”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을 끝으로 제대로 방안조차 내놓지 않은 채 앞서가는 하준을 본 루시오는, 당황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스핑크스 때도 그렇고, 히드라 때도 그렇고, 그 촉수들이 마구 튀어나오던 게이트에서도 그렇고.
도대체 이 양반은 대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매번 뭐만 하면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꼴을 보자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놀라운 건, 그러면서도 결국 어떻게 잘 해결은 한다는 거였지만.
‘음. 인어들한텐 뭘 쓰면 좋을까. 작살? 그물?’
그러거나 말거나.
루시오의 걱정에도 그저 어찌하면 세이렌을 값싸게 처리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던 하준은, 곧 스크롤을 주르륵 내리던 화면 가운데 홀로 반짝거리는 글귀를 발견하곤 손가락을 멈춰 섰다.
-로렐라이의 황금 빗[150,000p] * 강력 추천!
로렐라이의 황금 빗.
자그마치 15만 포인트나 하는 물건 옆에 떠오른 추천을 본 그는, 잠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상점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빗? 도대체 빗으로 뭘 어쩌란 거지. 이걸로 비늘이라도 치라는 건가?’
퀴네에나 곡괭이나.
얼굴을 가리는 데 쓰든, 광석을 캐내고 절벽을 오르는 데 쓰든, 사용처가 상황과 대략 맞아떨어졌었는데.
요번에는 인어를 잡는데 웬 빗 같은 걸 추천해주니, 의구심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뭐, 그거야 자세히 보면 알겠지.”
“뭘 자세히 보면 아는 겁니깟?”
“응? 아. 그런 게 있어.”
[로렐라이의 황금 빗]-독일의 전설, 로렐라이 언덕의 로렐라이가 자신의 황금빛 머리를 빗을 때 사용했다던 황금 빗. 노랫소리로 사람들을 홀려 라인강 바닥에 시체의 산을 쌓아 올렸다던 인어의 힘이 깃들어있다.
-단 한 번, 이 빗으로 머리를 쓸어준 인어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그 어떤 명령이라도.
(남은 사용횟수 : 1)
인어가 쓰던 빗이라.
설명을 읽은 하준은, 그제야 왜 이런 걸 추천했는지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15만 포인트나 하는 주제에 고작 일회용이라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인어에 한해선 그 어떤 명령이라도 내릴 수 있다는 능력은 과연 매력적이었다.
이미 앞에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써놓았으면서, 굳이 뒤에다 또 이렇게 강조를 해놓았다는 건.
그야말로 죽으라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아니, 암만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빗질 한 번에 15억이라니. 무슨 빗을 금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로렐라이의 ‘황금’ 빗.
아.
금으로 만들었구나.
툭-
[잔여 포인트 : 138,700p]이내 망설임 없이 구매를 마친 하준은, 눈앞에 떡하니 선 절벽을 보며 혹시 돌아가는 길이 없나 내비를 살폈다.
어차피 요번 기한은 새벽 4시까지니까, 딱히 무리해서 여길 타지 않아도…
“후.”
없네.
툭-
[잔여 포인트 : 133,700p]“하준. 아까부터 뭘 그렇게 사는 겁니깟?”
“뭐긴 뭐야. 다 이번 배달에 써먹을 것들이지.”
하는 수 없이 전에 절벽을 오를 때 썼던 물건을 다시 구매한 그는.
벌써부터 아려오는 것만 같은 팔을 걷어붙이며, 있는 힘껏 곡괭이를 휘둘렀다.
“흡!”
카앙-!
“허억, 헉… 아우 씨, 힘들어 죽겠네!”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젖먹던 힘을 다하고도 억지로 움직이는 팔에 겨우겨우 정상에 도착한 하준은, 다행히 내려갈 땐 따로 길이 잡히는 내비를 보고선.
한참을 돌아 절벽 아래, 해안 동굴이 보이는 위치까지 닿을 수 있었다.
“하준. 저깁니깟?”
“그래. 우리 돈덩이… 아니, 세이렌들이 사는 곳이지.”
어둑어둑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는 해안 가운데.
저 멀리 입구를 지키고 선 인영 두 개를 발견한 그는, 곧바로 퀴네에를 작동시키고선 몽둥이를 꾹 쥔 채 동굴로 다가갔다.
‘혹시 모르니까 빗을 일단 아껴두기로 하고. 우선 저 경비들부터 하나씩 처리해볼까.’
여인의 상체에 새파란 비늘이 반짝이는 꼬리가 이어진 전설 속의 생물.
직접 보니 아름답기보단 마치 불쾌함의 골짜기에 걸린 것 같은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하준은, 바닥에서 아무 자갈을 하나 집어 들고선 가능한 멀찍이 녀석을 날려 보냈다.
툭- 투둑-
“응? 뭐야, 방금.”
“몰라. 위에서 자갈이라도 떨어졌나 보지.”
“그런가? 그래도 한 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인간들이 온 거면 어쩌려고. 안에 공주님도 계시는데.”
“…아이, 정말. 귀찮게.”
이윽고 자갈이 구르는 소리에, 한 녀석이 미끄러지듯 꼬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자리를 이탈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입구에 혼자 남은 경비를 보고선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좋아. 다른 애들은 전부 동굴 깊숙이 있는 모양이네.’
혹여 생각보다 동굴이 짧아 안에서도 밖이 다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던 하준은, 우려와 달리 아주 컴컴한 안쪽을 보고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러면 이제 이놈들을 처리해도 다른 세이렌들한테 들킬 일은 없다는 얘기였으니까.
[하준. 지금입니닷.]뒤이어 자갈이 떨어진 곳을 확인하러 간 놈의 동태를 살피던 루시오를 바라본 그는.
곧 입 모양을 크게 벌리며 신호를 내리는 녀석을 보고선, 꽉 쥔 몽둥이를 크게 들어 올렸다.
“죽어랏!”
뻐억-!
“아악!”
짧게 내지른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뒤통수를 후려친 나무 몽둥이.
‘돼, 됐나?’
살이 찢어진 듯 피가 튀며 바닥에 고꾸라진 세이렌을 내려다본 하준은, 마른침을 삼키며 움찔거리는 녀석을 가만히 살폈다.
“쓰으읍… 뭐야? 누구야!”
‘…이런 젠장!’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다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몸을 일으키는 놈을 본 그는, 이내 피 묻은 몽둥이를 더욱 세게 쥐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분명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을 거라더니.
“아오! 아레스 이 개새끼!”
쩌억-
“악! 뭐, 뭔데! 대체 어디서 때리는… 아악!”
분노한 하준은 일단 눈앞에 쓰러진 녀석이 바다로 도망가지 못하게 연신 몽둥이를 휘두르며, 제 아버지 제우스가 가장 아끼던 보물이 어쩌고 같은 망발을 내뱉던 싸가지없는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웅-
‘내가 다음에 또 그 양아치를 믿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쩌어억-!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