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44)
신들의 배달기사(44)
동네 카페 안.
우여곡절 끝에 하준을 설득해 밖으로 나온 성준은, 그 자리에서 곧장 보상을 끝마치고선 계약에 관한 이야기로 끌고 나갔다.
“우선 계약금으로 200억. 이후 연에 기본급으로 300억을, 그리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또한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겠습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업계 최고의 조건.
말이 300억이지, 수당과 매번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떨어질 비율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 열 배도 벌어갈 수 있는 계약이었다.
“어떻습니까?”
성준은 어디 랭커가 오더라도 혹할만한 조건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하준을 살폈다.
어제저녁.
부산에서 퇴원을 마치고 올라와 도윤에게 전해 듣길, 의외로 아무 경력은커녕 헌터 자격증조차 없는 사람이라 했던가.
도대체 그런 이가 무슨 수로 타르타로스 심부를 오가고 팔괘로를 잡으며, 해운대의 게이트까지 들락날락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사회에 모인 이사들을 설득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들 말만 없었다뿐이지, 이놈이 드디어 미쳤나 싶은 얼굴이었지.’
신인은 물론 여느 A급 헌터를 들여올 때조차 제안하지 않는, 하물며 1팀 팀장으로 있는 랭커 하도윤의 것보다도 더 좋은 조건.
그나마 이번에 그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문제가 되던 게이트를 공략했기에 망정이지.
그렇게 세운 실적과 체면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욕이란 욕은 다 먹고 홀로 남겨졌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이미 억지 부리느라 뒤에서 욕은 어느 정도 먹은 거 같다만.’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눈앞의 남자가 가지는 가치를 몰랐기에 가능한 이야기.
성준은 이번에 강짜를 부려서라도 하준을 영입하는 게, 훗날 훨씬 큰 이익으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혹 머잖아 그가 다른 헌터들에게도 차츰 알려지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지금 내거는 조건으로도 한참 모자라게 될 터였으니까.
“싫은데요.”
“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저희 길드로 가셔서… 네?”
“싫다고요. 계약.”
이윽고 자연스레 웃음과 함께 하준을 데리고 몸을 일으키려던 성준은.
돌아온 대답에 당황한 듯 멍하니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그러지 마시고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시죠!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러면 제가 조금 더 힘을 써서라도..”
“아이, 거 됐다니까 그러네. 애초에 집에서부터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관심 없다고.”
하준은 설마 제안이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다급히 말을 쏟아내는 성준을 보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계약금이 200억에 기본급만 해도 300억이 넘는 조건.
만일 제가 헌터였다면 천금과도 같은 기회라 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은 배달부.
남의 부탁을 받아다가 목적지까지 물건을 배달해주는 사람이지, 헌터들처럼 몬스터와 싸우면서 던전과 게이트를 공략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배달 한 번에 수억씩 꽂히는데, 내가 뭐가 아쉽다고 길드에 들어간담.’
일거리가 조금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그것도 이젠 이아손의 경우처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영웅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상관없었다.
또 어차피 똑같이 위험을 감수할 거라면, 적어도 어제처럼 의뢰를 받느니 마느니 하는 선택권은 이쪽이 쥐고 있는 프리랜서 쪽이 더 좋았고 말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영원에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내가 하루에 3분밖에 슈트를 사용할 수 없는 이상, 돈값을 해주진 못할 테니까.’
띠링-
-배달의 만족, 주문!
이내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알람에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든 하준은, 밝아진 화면에 떠오른 콜 메시지를 확인하고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눈탱이 치지 않고 도리어 과분한 제안을 건네준 것은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별 메리트도 없고 원치도 않는 길드에 소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이만. 제가 좀 급한 일이 생겨가지고,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보상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루시오! 가자.”
“앗! 얘기는 벌써 끝난 겁니깟?”
이후 옆에서 성준이 사준 레몬에이드를 쪽쪽 마시며 기다리던 루시오를 일으켜 세운 하준은, 곧장 벙찐 얼굴로 가만히 저를 쳐다보고 있는 그를 두고선 가게 바깥으로 발을 움직였다.
“예, 예? 잠시만요!”
텁-
그에 이대로 놓칠세라, 허겁지겁 하준의 손목을 붙잡은 성준은.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냐는 듯 말없이 고개를 기울이는 그를 보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라니. 그게 무슨…”
구차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더라도 조금이나마 얘기를 더 이어가려던 성준은, 곧 미소와 함께 보란 듯이 제 스마트폰을 화면을 툭툭 두드리는 하준을 보고선 조용히 말을 물었다.
“뭐긴요.”
그도 그럴 것이.
“배달이죠, 배달.”
“…배달?”
그 이유가 앞선 파격적인 제안을 두고 떠나기엔 너무 터무니없었으니까.
딸랑-
* * *
“허억, 헉… 아우 씨, 힘들어죽겠네!”
곳곳에 부서진 돌멩이와 자갈이 굴러다니고 있는 높다란 바위산.
콜을 받고 루시오와 함께 곧장 올림포스 어딘가로 떨어진 하준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에 내비를 따라 산을 오르며.
슬슬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정상을 쳐다봤다.
“아니,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저런 산꼭대기에다가 배달을 시키는 거야?”
도로는 개뿔.
제대로 된 등산로조차 없는 험한 길에, 스쿠터를 세워 놓고 하염없이 목적지로 향한지가 벌써 여덟 시간.
오악산 뺨치는 경사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은 그는, 이번에 자신을 불렀을 이름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때는 코앞에다가 잘만 소환해놓고.
왜 하필 이렇게 멀고 높은 데서만 초입에다가 떨구어놓는 건지.
‘진짜, 이래놓고 웬 거지같은 콜이나 주기만 해봐라.’
한 차례 속으로 불만을 늘여놓은 하준은,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다시 힘을 내며 속도를 높였다.
이제 와서 거리가 어쨌든, 이미 받은 콜을 뒤늦게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준. 분명 오늘은 쉰다고 하지 않았습니깟?”
이윽고 뒤에서 힘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늘어져 있는 루시오를 보고선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원래는 녀석의 말마따나 하루 종일 집에서 푹 쉴 작정이었지만.
전에 한 번 배달이 끊겨서 직접 발품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상 들어온 콜을 보자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게 조금 피곤하긴 해도 보상들이 워낙 짭짤해야 말이지.
‘게다가 마침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저벅-
“아휴. 드디어 다 왔네. 거 배달 한 번 받기가 이렇게 빡세서야. 두 번 받았다가는 아주 도중에 앓아 눕겠… 응?”
잡상도 잠시.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둑어둑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겨우 목적지에 다다른 하준은, 곧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벙 찐 표정으로 말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헤엑, 헥… 하준, 거기 뭔 일 있습니깟? 왜 말을 하다 멈추는 것입니깟? 서, 설마 아직 길이 더 남아있는 겁니깟?”
그에 불안한 듯 지쳐있던 날개를 파드닥거리며 정상에 올라온 루시오는, 하준의 옷깃을 잡고선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훅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엣?”
널따랗게 펼쳐진 공터.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질여오는 비릿한 혈향.
축축하게 바닥을 적신 시뻘건 핏물과, 사방에 널브러진 알 수 없는 괴물들의 사체까지.
“하, 하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깟?”
놀란 님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한 듯 손에 쥔 옷깃을 잡아당겼다.
“낸들 아나. 나도 방금 올라왔는데.”
자신은 그저 배달만 받으러 왔을 뿐인데, 이게 무슨 소란인지.
혹시 또 귀찮은 일에 휘말려버린 아닐지 괜스레 걱정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던 하준은, 이내 공터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곤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쯔억-
“으.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밑창에 끈적하게 눌어붙어 실처럼 늘어지는 피.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로 버렸던 신발을 기억하며 눈살을 구긴 그는, 나지막이 혀를 차며 마저 발을 움직였다.
“음.”
이후 머잖아 도착한 자리.
아까 핏물 밖에서 본 사체 앞에 가만히 선 하준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익숙한 모양새의 조각을 보고선 침음을 내뱉었다.
“…하준. 이거, 설마.”
곧이어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옆에 다다른 루시오는, 마찬가지로 반쯤 잠겨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끄트머리가 우악스럽게 찢겨져 나간 선홍빛 촉수.
그 군데군데 감긴 눈꺼풀 사이로 흐리멍덩하게 비치는 눈동자는, 분명 일전에 그 게이트라는 곳에서 본 괴물의 것이었다.
“루시오. 이 녀석들,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던 놈들이야?”
“아닙니닷.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인 겁니닷. 이건 오히려…”
하준의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저은 루시오는, 눈앞의 촉수를 제외하고도 공터에 깔린 사체들을 슥 훑어보곤 입술을 꾹 물었다.
기간토마키아.
머나먼 과거, 신들의 왕 제우스의 조모인 가이아의 손에 의해 태어난 피조물들이, 올림포스를 덮쳐온 대전쟁 당시.
그때로부터 수많은 외형의 괴물들이 기록으로써 내려오고 있었지만, 하나 같이 그중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생김새였다.
마치 다들 바깥에서 흘러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쿵-
“히야악!”
“흐억! 뭐, 뭐야?”
그렇게 퍽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들던 찰나.
갑작스레 근처에서 들려오는 큰소리에 놀란 인간과 님프는, 무슨 일인가 소음이 들려온 쪽을 휙 돌아보았다.
“끄응… 허리야. 나도 나이를 먹었나. 몸이 영 예전 같지 않군. 고작 요 아래 몇 번 왔다 갔다 했다고 힘이 들어서야.”
공터 끄트머리.
혀를 내민 채 축 늘어진 거대한 괴물을 여럿 등에 이고서, 성큼성큼 나타난 근육질의 거구.
쿠웅-!
첨벙-
피칠갑을 한 채 바닥에 핏물이 고인 바닥 위에 사체들을 내려놓은 그를 마주한 하준은, 압도된 분위기 속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슬며시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누구…”
“으응?”
그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잠시 사체에 기대어 쉬려던 남자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며 핏물 가운데 선 인간과 님프를 슥 살폈다.
“아! 으하핫! 도대체 언제쯤 오나 했더니, 이제야 도착했나보군! 자네가 소문의 그 은인인가?”
그러곤 곧 알겠다는 듯 손뼉을 치며 몸을 일으킨 그는, 반가운 얼굴로 하준을 맞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크다.’
2m는 가뿐히 넘을 듯, 저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큰 남자를 올려다본 하준은.
어느새 저를 향해 활짝 내밀어진 손을 내려다보며 살며시 팔을 들어 올렸다.
이 사람이 이번 의뢰인인가.
“아, 예. 저, 그런데 은인이라니. 그게 무슨…”
이윽고 거의 사람 머리통한만 손바닥을 꾹 붙잡은 그는, 말없이 악수를 하며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는 남자를 보고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식은땀을 주륵 흘리며, 힐끔 루시오를 돌아보았다.
…맞겠지?
우리 부른 사람?
“아앗! 이, 이분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