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46)
신들의 배달기사(46)
“길드장 님!”
덜컥-
‘영원’길드, 길드장실.
성준의 복귀 소식에 곧장 그의 집무실을 찾은 도윤은, 하준의 영입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직접 노량진에 갔다 온 그를 보며.
잔뜩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결과를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계약은 잘하고 오셨어요?”
가장 먼저 하준의 가치를 알아보고 영입을 제안한 게 바로 자신이었으니 만큼, 욕심이 안 날라야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화과산에서 본 그의 무위대로라면.
지난 저들 영원 길드의 숙원이었던 타르타로스 던전의 완전한 공략도, 마냥 꿈이 아니었으니까.
“계약은 무슨. 텄다, 텄어. 아예 그냥 마음이 없어 보이더만.”
그런 도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성준은, 조금 전에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전에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가지고서 온갖 쿠사리를 견뎌다가, 끝내 이사회의 허락을 받아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실패 따윈 생각조차 하지 않았건만.
설마하니 그렇게 듣는 둥 마는 둥, 미련도 없이 저들의 제안을 차버릴 줄이야.
이미 다른 길드와 계약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면 또 모를까,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헌터로서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있었을 리가 없으니.
정말로 그놈의 배달인지 뭔지 때문에 그 좋은 조건을 마다한 건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네? 아니, 왜요? 그 조건에?”
돌아온 대답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한 도윤은, 전날에 슬쩍 들었던 계약조건을 되뇌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리 성준에게 그를 추천했던 저조차, 놀라서 몇 번이고 다시 물었을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었거늘.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제안을 박차고 나갔단 말인가.
“난들 아냐. 갑자기 자기가 무슨 배달을 가야 한다면서 휙 떠나버리던데.”
“아휴. 그렇다고 그걸 진짜로 보내주시면 어떡해요! 딱 봐도 핑계구만, 핑계!”
“…글쎄다. 꼭 핑계 같아보이진 않던데.”
아쉬운 듯 내뱉는 도윤의 말에 어색하니 미소를 지은 성준은, 떠나기 전 하준의 스마트폰에 반짝이던 알림을 떠올리며 침음을 흘렸다.
정말로 그때 콜이 잡혔던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배달 때문에 곤란하다던 그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게 마냥 핑계라고 하기엔, 실제로 스쿠터를 몰고서 던전을 오가는 사람이었으니까.
더구나 그날, 해운대에 있던 게이트까지 찾아와서 배달이랍시고 건네준 새빨간 검도.
이후에 아레스 님께서 친히 메시지로 일러주시길, 자기가 부탁한 물건이 맞다고 하셨고.
“아무튼, 뭐 어쩌겠냐.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고 늘어져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그냥 포기하시게요? 길드장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앞으로 타르타로스 공략에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체념한 듯 무심히 어깨를 으쓱이는 성준의 모습에 놀란 도윤은, 황급히 그를 말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퇴짜를 맞았다 한들 이제 겨우 한 번일 뿐이었다.
고작 이걸로 그만한 인재를 놔주기에는, 그간 하준이 보여준 능력이 너무 아까웠다.
이러다 혹시라도 그가 다른 길드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야 임마. 누가 포기한대? 그게 아니라 일단은 좀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거지. 급할수록 돌아가라. 몰라?”
그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살을 찌푸린 성준은, 근심어린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도윤을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제가 미쳤다고 그걸 포기할까.
자신은 그저 시간을 들여 조금씩 설득해볼 생각일 뿐이었다.
어차피 이젠 하준이 어디 사는지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지금 귀찮게 들러붙어서 반감을 살 필요는 없었으니까.
“…저희가 뭐, 급해도 보통 급했어야죠.”
곧 쭈뼛쭈뼛 답을 내놓는 도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는, 슬그머니 제 눈치를 살피는 녀석을 보고선 풀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 참, 급하긴 무슨. 괜찮아. 그러려고 이번에 다들 부산까지 내려갔다 온 거잖아. 흑룡도, 저번 팔괘로 공략 이후로 기세가 많이 수그러든 모양이고.”
확실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말마따나 상황이 좀 안 좋긴 했지만, 이젠 그렇게 염려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동안 문제가 되던 실적도, 실제로는 하준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대외적으로는 거의 ‘영원’ 혼자서 레벨 8에 달하는 게이트를 공략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만큼, 얼추 해결이 된 상태였고.
가장 거슬리던 흑룡도 최근 화과산에서 저지른 부정이 크게 터짐으로써, 존속 자체가 휘청거리고 있었으니까.
“여튼, 그보다 전에 부탁한 그건 어떻게 됐대?”
이내 미소와 함께 도윤의 걱정을 누그러트린 성준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슬쩍 제 옆에 세워놓은 무기를 보고선 화제를 돌렸다.
“예? 아, 그거요? 아직 보고 못 받으셨어요?”
지난 해운대에서 부러진 검을 대신해 제 성좌, 아레스께서 하준을 통해 내려주신 신물.
과연 신이 내린 물건답게, 본디 예비용으로 구비해놨던 것보다 압도적인 경도와 날카로움을 가진 터라.
기존에 창고에 보관해두던 무기는 경매에 붙이기로 한지가 벌써 이틀이 지났던가.
“거래 잡혔대요. 일본에서 사기로 했다던데.”
비록 저 시뻘건 검에 감히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이름 있는 검이니 만큼.
적지 않은 값에 금방 오퍼가 들어왔을 터라 짐작한 성준은, 과연 예상대로 빠르게 팔린 무기에 덤덤히 고개를 주억였다.
‘원래는 이번 영입에 들어갈 계약금 때문에 올린 물건이긴 했지만.’
“그래? 그럼 슬슬 대비책을 마련해놔야겠네.”
아무렴, 당장 눈앞에 닥친 일거리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최근 길드간 거래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따금씩 고가의 장비들이 운송 중에 도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던가.’
모쪼록, 용병이라도 좀 구하는 편이 낫겠지.
가능하면 탐지계통 능력을 지니고 있는 헌터로.
‘그러고 보니 분명, 배달이라고 그랬었지?’
이윽고 도윤을 데리고서 밖으로 나서는 길드장실 앞.
성준의 입가가, 매끄럽게 호선을 그렸다.
* * *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도대체 얼마나 깊은지, 새카맣게 바닥이 보이질 않던 거대한 구덩이 안.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던 이형의 괴물들이 잠시 헤라클레스의 손에 정리된 틈을 타, 빠르게 안쪽으로 들어선 하준은.
어두컴컴하니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 끝에 높게 솟은 언덕을 보며, 그 아래 스쿠터를 멈춰 세웠다.
“어휴, 살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신이란 작자들은 다들 왜 이렇게 위험이란 걸 모르는 건지.
조금 전 경사진 구덩이를 타고 내려오며 몇 번이고 아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린 그는, 천천히 시동을 끄고선 식은땀으로 푹 젖은 이마를 닦았다.
‘그나마 스쿠터가 좋아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벽 타고 데구르르 끝까지 굴러 떨어질 뻔했네.’
주변에 온통 신이나 영웅들밖에 없어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도 죄다 저들처럼, 그 정도 구덩이쯤은 제 집 안방마냥 들락날락거릴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뭐, 그만큼 보상은 다 짭짤하게 챙겨주는 편이니까.’
“야.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가자.”
이내 아직도 쿵쿵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본 하준은, 중간부터 쥐 죽은 듯 제 등에 기대어 고개를 파묻은 루시오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욱… 자, 잠시만. 진짜진짜 죽을 거 같은 것입니닷.”
멀미라도 온 건가.
다급히 제 옷깃을 붙드는 손아귀에 엉거주춤 멈춰선 그는, 그 짧은 새에 초췌해진 얼굴로 저를 살피는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긴 그렇지 않아도 울퉁불퉁한 길을, 언제 괴물이 튀어나올까 몰라 급하게 달려왔으니.
속이 잔뜩 울렁거릴 만도 한가.
“짜식, 엄살은. 빨리 일어나, 임마. 나도 이런 꺼림칙한 곳에 오래 있고 싶진 않으니까.”
“…지금 이게 엄살 같습니깟?”
적당히 그런 루시오의 등을 두드려주고선 언덕 위를 올려다본 하준은, 분명 깊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왔음에도 밤하늘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천장을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뱉었다.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이고 몽환적인 광경도 광경이었지만, 본디 괴물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곳이니만큼 으스스함이 더했다.
지금까지야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제가 들어선 통로 외에도 녀석들이 지나는 길이 따로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작은 초목하나 보이지 않는 이 시커먼 공간에 계속 머무는 것은 사양이었다.
저벅-
“허억, 헉… 아우 씨, 어떻게 여기는 좀 멀쩡히 사람 다닐만한 데가 없냐?”
이후 스쿠터로는 다니기 힘든 길을 따라, 언덕을 타고 오르길 십 수 분.
아찔한 경사에 겨우겨우 정상에 다다른 그는, 후들거리는 팔다리에 털썩하곤 자리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소개로 케이론을 찾았을 때도 그렇고.
절벽 가운데 살던 히드라에, 해안 동굴에 둥지를 튼 세이렌들도 그렇고.
다들 무슨 험지에 살기로 사전에 약속이라도 해놓은 건지, 이러다 배달 몇 번이면 온몸에 골병이라도 드는 거 아닌가 걱정이었다.
‘뭐. 신이나 그런 괴물들이 말처럼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그래서, 도대체 여기에 누가 있다고 원인을 물어봐달라는 거야? 집도 없고, 그냥 허허벌판이구만.”
“헤라클레스 님께서 따로 일러주시지 않은 겁니깟?”
뒤이어 헤라클레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이곳에 있을 거란 누군가를 찾은 하준은.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텅 빈 정상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하다.
내비는 이미 도착했다고 찍혀있는…
쿠구구구-
“어, 어어?”
“따, 땅이… 마구마구 흔들리는 것입니닷!”
그렇게 의아한 얼굴로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기도 잠시.
곧 지진이라도 난 듯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언덕에 당황한 그는, 서서히 기울어지는 바닥에 황급히 몸을 낮추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야 방금? 여기도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헤라클레스? 지금, 헤라클레스라고 했나?
“…예?”
이윽고 천천히 잦아든 떨림에, 불안한 눈빛으로 슬쩍 고개를 치켜들려던 찰나.
갑자기 귓가에 울리는 갈라진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떤 하준은, 뻣뻣하게 제자리에 굳은 채로 조심스레 말을 물었다.
“누, 누구세요?”
여전히 저들을 제외하곤 조그마한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허전한 정상.
혹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걸까,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말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던 하준은.
이내 누군가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느낌에 슬며시 옆을 돌아보았다.
“하, 하준…”
“응?”
무엇 때문인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조용히 눈길을 아래로 향하는 작은 님프.
“…흐어어어억!”
그런 루시오를 따라 살며시 시선을 내린 하준은, 곧 뭔가를 발견하곤 경악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그도 그럴 것이.
방금까지만 해도 그저 울퉁불퉁한 바닥인 줄로만 알았던 제 발 밑에.
꿀렁-
“히이이익!”
“히야아아악!”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다랗게 뜨인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