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48)
신들의 배달기사(48)
부아아앙-
가파르게 경사진 구덩이 안.
끝끝내 헤라클레스의 부탁을 완수하고 아틀라스의 얼굴에서 내려온 하준은, 곧바로 대놓았던 스쿠터를 타고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이야. 그래도 밖에 괴물 하나 없는 거 보니까, 위쪽도 마냥 쉬고만 있진 않았나 보네. 그치? …루시오? 루시오!”
“히야악! 뭐, 뭡니깟? 왜 갑자기 귀에다 소리를 지르고 그럽니깟?”
그러곤 깔때기처럼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새에, 둥글게 벽을 타고 돌며 올라서기도 잠시.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글거리던 괴물들은 온데간데없이, 자잘한 핏자국만 남은 광경에 연신 감탄을 터트리던 그는.
이내 영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갑자기는 무슨.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도대체 아까부터 뭣 때문에 그렇게 넋을 놓고 있는 거야?”
아틀라스의 위에서 괴물의 배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적부터, 한참을 지나 막 구덩이를 빠져나온 지금까지.
하준은 평소 그 천진난만한 성격과 땍땍거리던 말투가 무색하게, 계속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녀석을 보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겁니깟?”
“뭐가? 황금사과 그거?”
이윽고 돌아온 답에 1,000p를 주고 구매한 황금사과를 떠올린 그는, 가늘게 눈을 뜨고서 지그시 저를 쳐다보고 있는 루시오를 향해 가만히 어깨를 으쓱였다.
“말했잖아. 샀다고. 전에 곡괭이랑 스쿠터 나올 땐 얌전히 잘만 봐놓고서, 왜 이제 와서 딴소리래?”
자기가 상점에서 물건을 사다 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하준은 어째 ‘오르는 자의 곡괭이’를 사서 절벽을 올랐을 때보다 더 호들갑을 떠는 녀석을 보며,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때도 충분히 놀랐던 겁니닷! 하지만…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깟! 황금사과는 분명 헤라 님의 과수원 관리직책을 맡은 님프가 재고를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수로…”
시큰둥한 반응에 무슨 소릴 하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인 루시오는, 이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아하기 짝이 없는 황금사과의 출처를 떠올리며 입술을 씹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건을 팔았다는 것은, 필히 어딘가에 판매자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수상쩍기 그지없는 성능을 가진 곡괭이도 그렇고, 요 스쿠터도 그렇고, 이번 황금사과도 그렇고.
당최 어떤 신이 관련되어있는 건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질 않았다.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 모든 게 정당하게 취득한 재고가 아닌, 어딘가에서 슬쩍해온 장물이기라도 한다면…
“난들 아냐? 그냥 언제 한 번 빵꾸 좀 내고 가져온 거겠지. 아무튼, 덕분에 잘 해결했으니까 됐잖아?”
그러건 말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근심에 빠진 루시오를 향해 걱정 말라는 듯 엄지를 치켜세운 하준은.
곧장 멈추었던 스쿠터를 출발시키며, 다시금 벽을 타고 구덩이 밖으로 나아갔다.
“…하준은 참, 속 편해서 좋겠는 것입니닷.”
그에 넘어질세라 재빨리 허리를 붙든 님프는, 달리는 바람 소리에 기대 삐쭉 입을 내밀며 조그맣게 불만을 토로했다.
걸리면 자기만 죽나.
천벌은 같이 받을 텐데.
“이 자식이, 말하는 거 하고는.”
“드, 들렸습니깟? 헤헤… 으에엑!”
“그래, 임마. 쬐끄만 게 어디 감히 어른을 놀리고 있어.”
뒤이어 못된 소리에 살며시 눈살을 찌푸린 하준은, 한 손으로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콱 붙잡아 쭉쭉 잡아당기며 응징을 가했다.
“으으! 쯔끄믕 그 으느르그 믗브늘… 히약!”
탁-
그러곤 곧 손을 놓고 재차 핸들을 잡은 그는, 얼얼한지 제 볼을 쓰다듬으며 저를 째려보는 루시오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문제 될 거였으면 진즉에 문제 되고도 남았을 테니까.”
낌새를 보고서 대강 녀석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차린 하준은, 지금도 제가 입고 있는 슈트와 퀴네에를 툭툭 가리키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신들이 무슨 바보도 아니고.
지금껏 상점에서 구매해온 품목에 무언가 잘못될만한 것이 있었더라면, 애당초 헤파이스토스에게 퀴네에 레플리카를 맡겼을 적부터 사달이 났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여태 제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건, 적어도 그 출처가 그들에게 책잡힐 만한 곳은 아니라는 얘기겠지.
아니면, 설령 그렇다 한들 신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거나.
“확실합니깟?”
“…아마도?”
“아마도가 뭡니깟! 아마도갓!”
“악! 야, 야! 나 운전해, 운전!”
찝찝한 대답에 제 볼을 늘린 복수라도 하려는 듯 하준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은 루시오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그만 근심을 털어냈다.
어찌 됐든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서 무얼 어쩌겠는가.
그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부릉-
이후로 얼마나 달렸을까.
한참을 빙글빙글 돌아 겨우 바위산 정상에 도착한 하준은.
널찍하니 펼쳐진 공터 한가운데 천천히 스쿠터를 세우고선, 어디 갔는지 자리에 안 보이는 헤라클레스를 찾아 구석에 놓인 사체 더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 참. 내려갈 땐 순식간이었는데, 올라오는 데는 또 한세월이네. 헤라클레스 님? 헤라클레스 님!”
“으음… 헛? 버, 벌써 왔나?”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에서 작은 언덕처럼 쌓인 사체를 등받이 삼아 누워 있던 거구를 발견한 하준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깬 그를 보고선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람 하나 속여서 제 웬수한테 보낸 거치곤 참 태평하네.
“으응? 뭐여, 아직 해도 안 떴구만! 혹시 아틀라스 그 쪼잔한 양반이 그냥 내쫓던가? 음. 역시, 아무래도 무리였나보구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선 어두컴컴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곧 씁쓸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헤라클레스를 마주한 그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멋대로 판단해서 실망하고 자빠져 있는 영웅을 보고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언제는 저보고 은인이라더니.
누가 아레스 형제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영 양아치가 따로 없구만.
“아뇨, 다 듣고 왔는데요?”
“…어? 아니, 무슨 수로? 그 티탄 놈이 그렇게 순순히 정보를 불었다고?”
그에 껄끄럽지만 하는 수 없이 직접 내려갈 준비를 하러 몸을 일으키던 헤라클레스는, 예상외의 답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하준을 내려다봤다.
눈앞의 인간이 제 부탁을 듣고서 구덩이 안쪽으로 향한 지가 고작 반나절 남짓.
당시에 타고 내려가던 요상한 이동수단의 속도로 짐작건대, 아마 오가는 데만 대부분 시간을 쏟아야 했겠건만.
도대체 어찌 그 짧은 새에 아틀라스를 설득한 건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전용 님프에, 히드라의 독을 구해오고 스승님의 다리를 고쳤다 했을 때부터 예삿놈은 아닌 줄 알았다만. 설마하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순순히… 예, 뭐. 그 정도면 순순히 가르쳐주신 거 같네요.”
금세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에 피식 웃음을 흘린 하준은, 어서 얘기해보라는 듯 슬쩍 저를 향해 귀를 기울이는 영웅을 보고선 잠시 구덩이 속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여기요. 황금사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내 방금 황금사과를 가져오라 말한 지가 채 10초도 지나지 않았거늘. 네놈이 무슨 수로 벌써 그걸… 응?
「허업! 하, 하준. 이거 진짜진짜 황금사과입니깟? 어, 어떻게? 어떻게 구한 겁니깟!」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놈! 한낱 인간이 이걸 어찌 가지고 있던 거지?
비록 그전에 지금의 헤라클레스처럼 작은 오해가 있긴 했지만, 이후 몇 번이고 번쩍이는 사과를 둘러보던 아틀라스는 별수 없이 제가 아는 정보를 토해냈다.
물론 중간중간 바른대로 말하라는 둥, 상점에서 샀다는 이야기는 쥐뿔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여튼 그 위대하다는 티탄도 스틱스강의 맹세만큼은 거스를 수 없었는지, 그로부터 괴물의 출처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놈이 뭐라던가?”
“글쎄요. 뭐 수수께끼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얘기를 막 늘어놓던데. 놈들이 무슨 ‘일곱 갈래로 갈라진 땅, 군데군데 푸른 불길이 넘실거리는 곳’에서 왔다고 했던가.”
일곱 갈래로 갈라진 땅.
군데군데 푸른 불길이 넘실거리는 곳.
헤라클레스는 하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조용히 표정을 굳히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이거, 일이 곤란하게 됐군.’
그 하나 같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생김새만 해도, 멀쩡한 곳에서 기어 올라온 놈들은 아니리라 생각했었지만.
하고 많은 곳 중에서도 하필 그곳 출신이었을 줄이야.
‘지금 여기서 죽치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만.’
제 예상이 맞다면, 이건 단순히 저들 올림포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저들 신화와 가까이에 적을 두고 있는 북유럽을 포함해,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수십수백에 달하는 자잘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앞으로 사태가 더욱 커지기 전에, 힘을 합쳐 만반의 준비를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이미 다른 곳은 한창 다가올 침략에 대비 중일지도.’
이하준이라고 했던가.
제 스승에 집사람을 비롯해, 형님에 옛 친우까지.
헤라클레스는 고작 보름 남짓한 시간 만에, 벌써 여러 신과 영웅들의 부탁을 멋들어지게 해결해낸 은인을 바라보며.
곧 예견된 재앙에 대비해, 어딘가 복잡한 심경으로 그를 흘겼다.
‘바란다면 지상이든 여느 신화든 아무 문제 없이 오갈 수 있는 자유로운 몸. 겉으론 그저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범인의 곁에 님프가 붙은 것 또한 다 운명이었단 말인가. 베 짜는 세 여신도 참 가혹하시지. 이 작은 은인의 어깨에 너무나 무거운 짐이… 응?’
허나 근심도 잠시.
안쓰러운 눈빛으로 하준을 살피던 영웅은, 이내 한 손바닥을 쫙 펼친 채 저를 향해 내놓고 있는 그를 보고선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자네 지금 뭐하나?”
“네? 에이, 다 아시면서.”
그에 무슨 그런 걸 다 묻냐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인 하준은.
조금 전부터 계속 눈치를 줬음에도 계속 모르쇠 하는 헤라클레스를 향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일 끝났잖아요, 고객님.”
뭐긴 뭐야.
“계산, 하셔야죠.”
팁 달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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